봉의산 산행기
*산행일자:2017. 7. 11일(화)
*소재지 :강원 춘천
*산높이 :302m
*산행코스:춘천세종호텔-봉의산순의비-봉의산정상
-소양정-춘천역
*산행시간:13시10분-16시1분(2시간51분)
*동행 :나 홀로
진산(鎭山)이란 도읍지나 각 고을 뒤에 있는 큰 산을 이르는 것으로 그 곳을 진호(鎭護)하는 주산(主山)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기도 하는 산입니다. 1530년에 간행된 『신증 동국여지승람』에 실린 우리나라의 산은 총 2,132산인데, 그중 255개산이 진산입니다. 춘천의 진산은 해발고도가 302M인 봉의산(鳳儀山)입니다. 산은 낮지만 진산답게 이야기 거리가 많아 들러볼 곳도 꽤 있습니다. 춘천이 낳은 소설가 전상국선생은 그의 저서 『춘천산 이야기』에서 봉의산의 볼거리를 아래와 같이 설명했습니다.
“봉의산은 춘천으로 들어오는 관문 삼천리쪽이나 국사봉 정상에 올라 건너다보면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편 그 위용이 온전하게 잡힌다. 전설의 새 봉황은 봉(鳳)이 수컷이고 황(凰)이 암컷이라 하는데 예부터 상서로움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졌다. 동쪽 산허리 한림대학교 뒤쪽에서 만나게 되는 석기시대동굴유적혈거터, 산 서남쪽 7부능선 약수터 절벽 근처의 봉의산성, 소양강을 굽어볼 수 있는 산북쪽 끝자락의 소양정, 그리고 그 옆골짝 절개기생 전개심의 묘비와 함께 봉의산 신길걷기의 각별한 감회를 안길 볼거리가 될 것이다.”
‘삼국유사 스터디’는 여름방학을 맞아 제가 다니고 있는 대학원의 클라스메이트와 매주 화요일에 모여 함께 공부하는 모임입니다. 오전에 그 첫모임을 가져 고구려와 관련된 건국신화를 공부했습니다. 스터디를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한 후 같이 공부한 한희민 선생이 차로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춘천세종호텔까지 데려다주어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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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10분 춘천세종호텔 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동쪽으로 몇 걸음 걸어 다다른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올라갔습니다. 반비어린이집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자 길 왼쪽에 쌓여 있는 축대가 범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위로 올라가 상단에 자리한 봉의산순의비(鳳儀山殉義碑)의 뒷면 비문을 자세히 읽었습니다.
고려고종40년(1253년)몽고군이 춘천에 쳐들어왔을 때 관찰사 박천기(朴天器)의 지휘 하에 고장의 관민 모두가 봉의산성에서 몽고군과 대치하여 항전했습니다. 그 세(勢)가 적에 비해 턱없이 약한데다 식수마저 끊기어 끝내 성을 지켜내지 못하고 함락되자 참전한 관민 이 산성에 피를 뿌리고 전사했으며, 남아 있는 관민도 함께 자결했다는 것을 비문을 읽고서 알았습니다. 동쪽 먼발치로 금병산과 수리봉, 그리고 그 중간의 원창고개가 한 눈에 잡히는 봉의산순의비(鳳儀山殉義碑)에서 아쉽게도 봉의산성을 들르지 못하고 곧바로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포장된 오름 길 왼편으로 ‘봉의산산신비(鳳儀山山神碑)가 보여, 다가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13시45분 해발302M의 봉의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산신비 오른쪽의 시멘트도로 옆으로 낸 수로로 물이 콸콸 흘러내려가는 것은 전날 내린 비 덕분일 것입니다. 올 여름 가뭄은 지겨우리만치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는 대개 단비가 아니고 폭우여서 비 피해를 걱정하게 됩니다. 물 관리가 힘든 것은 수질과 수량을 다 관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올라가 오른 쪽으로 돌계단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돌계단 길로 올라서자 다시 오른 쪽으로 한림대 길이 갈리는 삼거리가 나타났고 정상으로 가는 길은 왼쪽 돌계단 길로 이어졌습니다. 얼마간 고도를 높이자 머리 위에서 공사장의 소음이 짜증스러울 정도로 크게 났습니다. 그 공사장이 이 산의 정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0여분 후였습니다. 정상에 오르자 공사로 어지러웠습니다. 4년 전 방송철탑을 철거해 춘천시민에 온전하게 돌려준 이 산의 정상을 무슨 이유로 어떻게 바꾸려는 공사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공사장에서 일하는 한 젊은이가 접근을 막으며 저 아래가 정상이라고 가르쳐주어 그대로 하산했습니다. 북쪽으로 조금 내려가 각종 운동시설이 잘 갖춰진 체력단련장(?)에서 40분여 쉬면서 50대의 남자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봉의산이 춘천의 진산인 것은 체력단련장에 세워진 ‘봉의산 전적지’ 안내문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봉의산은 춘천의 진산으로 춘천분지를 감계 관측할 수 있는 중요 지형임과 동시에 봉의산성이 산봉우리를 둘러싼 천혜의 요새이다”로 시작되는 전적지 안내문은 “고려시대 때는 거란군과 몽고군의 내침에 의연히 맞서 싸우다 춘천군민들의 장렬히 최후를 맞이했던 역사적 명소이며, 6.25 전쟁초기에는 6사단7연대 전술지휘소가 위치하여 춘천지구전투를 지휘했던 전적지이다”로 이어졌습니다.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이 기습남침을 해오자 7연대장 임부택 대령이 우두산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전투를 지휘하다 적의 포격을 받아 여기 봉의산으로 지휘소를 옮겼고, 그 이튿날 김종오대령도 원주에서 이곳으로 지휘소를 옮겨 통합지휘가 가능해진 국군은 무기와 병력이 4:1로 열세임에도 7:1의 전과를 올렸습니다. 6월27일 18시경 춘천이 적의 수중에 넘어가기까지 사흘 동안 춘천을 사수해 6월25일 당일에 춘천을 점령하고 그 여세를 몰아 수원방면으로 진출하여 국군 주력을 포위하려던 북한군의 남침계획을 좌절시킨 것은 6.25전쟁사에 길이 빛날 전공입니다. 북한군은 춘천전투에서 패한 책임을 물어 2군단장과 2사단장을 직위해제 했다 합니다.
15시8분 소양정에 올라 소양강을 조망했습니다. 체력단련장(?)에서 소양정으로 내려가는 능선 길은 은 북서쪽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번 산행은 집 나올 때 생각해둔 일이 아니라서 등산화 대신 신사화를 신고 올라갔는데 내려가는 길이 많이 미끄러울 것 같아 신경이 쓰였습니다. 소양정으로 내려가는 길은 얼마간 가팔랐으나 전날 내린 비가 표면의 마사토를 쓸어내려가 염려했던 것만큼 미끄럽지 않았습니다. 몇 곳의 가파른 하산 길은 길가에 쳐 놓은 가드 로프를 잡고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반쯤 내려가 노송 숲길을 지나며 아름드리 소나무를 여러 그루 보았습니다. 왼쪽 아래 계곡에서 물이 흘러내려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습니다. 체력단련장에서 20분여 내려가 넓은 공터 위에 세워진 소양정(昭陽亭)에 이르렀습니다.
2층의 소양정이 세워진 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고려 말 원천석의 시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합니다. 산에서 강이 내려다보이는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지형덕분에 이요루(二樂樓)로도 불렸던 이 정자의 2층에 조선의 문인들이 남긴 한시를 적어 넣은 현판이 꽤 여러 개 걸려있었습니다. 그중 제 눈을 끈 시는 의암 류인석 선생의 ‘등소양정(登昭陽亭)’이었습니다.
登昭陽亭
壽春形勝冠東嵬 춘천의 경치 관동에서 제일인데
更一昭陽亭子開 더더욱 강변에 소양정이 서 있구나
遠拔靑光三岳出 저 멀리 솟은 푸른빛은 삼악산에서 나오고
長涵元氣二江來 길게 머금은 원기는 두 강에서 나오네
畵軒花暎前人板 추녀에 꽃처럼 비치는 것은 선인들의 시판
鏡水風生此日杯 거울 같은 강물에 바람 이는 오늘 술잔을 드네
可使夷音終屛息 오랑캐 노래 소리 끝내 막을 수 있다면
動魂韶樂鳳儀廻 혼을 움직이는 소악에 봉황이 돌아오리
마지막 전적지는 소양정 옆에 세워진 ‘공병중대 전적지’입니다. 보병보다 더 열심히 싸웠다는 6사단 공병대대 1중대의 대부분은 보병부대 지원 차 출동했고, 잔여병력은 1개소대 규모였다 합니다. 이 병력으로 소양교를 건너오는 적군에 집중 사격해 큰 피해를 입히고 몇 차례 격퇴하는 전과를 올렸으나 전차를 앞세워 공격해온 적군을 끝내 막지 못하고 대부분이 전사했다 합니다.
14시1분 춘천역에 도착해 봉의산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소양정에서 조금 내려가자 춘천절기전계심묘비(春川節妓全桂心墓碑)가 보였습니다. 춘천부사 김처인의 소실이 된 전계심은 타지로 자리를 옮긴 김처사를 기다리다 모친에 의해 기방으로 팔려간 것은 조선조 정조 때의 일입니다. 전계심은 부사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며 정조를 지켜가다 불량배들에 의해 몸이 더럽혀지자 자살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부사 김처인이 달려와 시신을 수습해 고향인 이곳 봉의산 기슭에 장사를 지내주었다 합니다. 기생 전계심이 절개를 지킨 것을 기리는 묘비를 보고나자 조선시대 남성위주의 봉건문화에 강요되어 질곡의 시대를 살아온 어느 기생의 한 많은 삶을 보는 듯해 기분이 그리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 공덕비를 모아 놓은 곳에 세워진 ‘친일파 이범익단죄문’을 읽었습니다. 내용인즉 친일파 이범익이 강원도지사로 재직하던 1934년에 자신의 공덕비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친일활동으로도 모자라 없는 공덕을 조작해 비를 세울 만큼 파렴치한 인간이 강원도지사까지 지냈다니 참으로 한심하다 싶었습니다. 양구로 가는 넓은 도로변의 정자를 둘러본 후 남동쪽의 춘천역으로 향했습니다. 시원스럽게 넓은 도로를 따라 걸어 춘천역에 도착하는 것으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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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춘천에 첫발을 들인 것은 1968년 여름입니다. 49년이 지나 처음 오른 봉의산은 춘천의 진산답게 유적지가 적지 않아 쓸거리가 많습니다. 이 산을 이번에는 산행으로 올랐으나 다음부터는 산책으로 걸어보고자 합니다. 그때 이번에 들르지 못한 봉의산성 등 몇 곳을 둘러볼 뜻입니다. 시야를 가리는 나뭇잎이 다 떨어진 후 산책에 나선다면 춘천시와 소양강이 한 눈에 조감될 것인데 이번에는 그렇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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