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누리길 탐방기4
*탐방구간:행주산성-호수공원-동패지하차도(평화누리길 4-5코스)
*탐방일자:2018. 10. 16일(화)
*탐방코스:행주산성-행주대교-원능친환경사업소-호수공원-고양종합운동장
-가좌근린공원-동패지하차도
*탐방시간:9시46분-18시12분(8시간26분)
*동행 :문산중학교 황규직동문
경기도 고양 땅을 지나는 평화누리길의 4-5코스를 종주하면서 실로 오랜만에 도시 한 가운데 낸 도심 길을 걸었습니다. 고교동창들과 함께 한북정맥을 종주하면서 고양 시의 한 아파트 단지를 관통해 걸은 때가 20008년이니 꼭 10년만의 일입니다. 이번에 도심 길을 걸으면서 새삼 느낀 것은 10년 전과 달리 도시 한 가운데를 꽤 오래 걸었는데도 전혀 짜증스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리 느낀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10년 전에는 한 여름에 진땀을 흘려가며 도심 길을 걸은데 비해, 이번에는 날씨가 더 할 수 없이 쾌적한 한 가을에 걸은 것이 한 이유가 되겠습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도심 길을 10년 전에는 한북정맥종주차 걸은 것이고, 이번에는 평화누리길 탐방차 걸은 것으로 그 명칭과 목적이 달라서일 것입니다.
한북정맥 종주란 백두대간에 자리한 북한 땅 분수령에서 파주 교하의 장명산에 이르는 한북정맥의 산줄기를 따라 걷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맥 종주 길에 산길이 아닌 도심 길을 걷는 것은 아주 예외적인 일입니다. 이런 길은 도시가 커지면서 산허리를 잘라내고 새로 낸 길이어서 산길만을 이어 걷고자 하는 저 같은 종주 꾼에는 허리 잘린 도심 길이 곱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제가 이번에 도심 길도 걸을 만하다고 생각을 바꾼 것은 이번 종주 길이 한북정맥종주가 아니고 평화누리길 탐방이어서입니다. 평화누리길이란 온 세상에 평화가 정착하기를 염원해 낸 길일 진데, 그런 길이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 더욱 평화가 열망되는 도심을 피해 내야 할 이유가 전혀 없겠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자 일산의 도심 길을 지나며 눈여겨 본 킨텍스와 종합운동장의 날렵하면서도 웅장한 현대식 건물이 최근 60여 년 간 경제적 기적을 이뤄 낸 대한민국 발전의 상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전 9시46분 행주산성에서 평화누리길 4코스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화정역에서 갈아 탄
011번 마을버스가 행주산성에 도착하기까지 20분이 채 안 걸렸습니다. 행주산성 정류장에서 하차해 4코스 인증 스탬프를 찍은 후 산성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권율장군동상을 배경삼아 동행한 황규직 친구를 사진 찍은 후 조금 올라가 왼쪽으로 난 행주토성 길로 들어섰습니다. 해발125m의 덕양산 산자락을 시계방향으로 도는 행주산성 둘레 길은 친구도 초행이라며 좋아했습니다. 둘레 길을 걸으며 먼발치의 북한산과 저 아래 한강이 한 눈에 조망되는 전망대에서 쉬었다 가느라 행주나루에 이르기까지 2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011번 마을버스의 종점인 행주나루는 그 위로 행주대교가 지나고 주변이 지저분해 보였자지만, 어선으로 보이는 작은 배 몇 척이 정박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은 나루의 기능이 유지되는 것 같았습니다.
행주산성은 진주성 및 한산도와 더불어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워 대승을 거둔 3대 대첩지의 한 곳입니다. 김시민(金時敏, 1554-1592)장군은 진주성 1차 전투에서 왜군을 격파해 승리를 거두었으나 전투가 끝날 무렵 총탄을 맞아 유명을 달리 했고, 이순신(李舜臣, 1545-1598)장군은 한산도 해전에서 대승을 했으나 노량진 해전에서 전사해 임진왜란이 끝나는 종전의 순간을 지켜보지 못했습니다. 16세기를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면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3대첩의 명장 중 종전 후 단 한 해라도 평화의 시대를 살다간 분은 여기 행주산성에서 대첩을 이뤄낸 권율(權慄, 1537-1599)장군 뿐이어서 안타까웠습니다. 어느 곳보다 권율장군의 기개를 잘 느낄 수 있는 행주산성이 평화누리길 4코스의 출발점이라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한 것은 평화는 전쟁에서 승리해야만 누릴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승전지여서 그렇습니다. 행주산성을 둘러보고 평화누리길이 안보를 다짐하는 안보다짐 길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행주나루를 지나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누리 길은 자유로(自由路)와 조금 떨어진 밭가 길로 무밭과 그 너머 한강이 정감 있어 보였습니다. 이내 굴다리로 건너 자유로 바로 아래 북서쪽으로 뻗어나가는 시멘트 길을 걷는 동안은 그 위 자유로를 오가는 차들이 내는 소리가 크게 들려 이제껏 머릿속으로 그려온 조용한 시골 길과 같지 않았습니다. 곳곳에서 표지물이 안내해 주는 대로 길을 잘 찾아가 '행주동' 표지목을 지났습니다. 김포대교를 막 지난 서울외곽순환도로를 지하로 통과해 한강으로 바로 흘러들어가는 대장천 위 대장2교를 건넌 것이 13시경입니다. 다리건너 시멘트공터에서 동행한 황규직군이 준비해온 김밥을 들면서 4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이 친구가 오른 쪽 가까이에 자리한 MBC송신소를 보고 송신소와 중계소가 무엇이 다른 가를 제게 설명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제대 후 줄곧 KBS에서 근무한 덕분일 것입니다. 한강의 지류인 대장천에 내려앉은 백로와 청둥오리(?)가 자리를 다투지 않고 같이 노는 것을 보고 저런 것이 평화다 했습니다.
이번에 동행한 황규직 친구와는 인연이 남 다릅니다. 30리 남짓 떨어진 광탄의 벽촌에서 학교를 오가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3학년에 오르면서 곧 바로 학교 옆 동네에 방을 하나 구해 자취를 했던 것은 54년 전의 일입니다. 심학산 아래 산골에 살았던 이 친구도 같은 집의 아랫방을 얻어 할머니와 함께 자취를 했는데, 저와는 달리 할머니가 매끼 끼니를 차려주시는 것을 보고 참으로 부러워했습니다. 지금도 이 친구를 보면 반찬 마련이 마땅치 않아 점심을 거르는 제게 자주 반찬을 건네주신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이 친구는 같은 교정의 문산종고로 진학했고 저는 서울의 경동고등학교로 올라가, 더 이상 같이 자취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 후에도 계속 만나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번 평화누리길 탐방은 1/3 이상이 고향 땅 파주의 임진강을 따라 걷는 것이어서 이 친구에 같이할 의향이 있는가를 물었는데 흔쾌히 동참하겠다고 해 이번 동행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13시45분에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걸었습니다. 왼쪽으로 신평배수펌프장이 가까이 보이는 원능친환경사업소를 지나 71번 도로를 따라 일산의 도심으로 향했습니다. 이 도로 왼쪽 숲 속에 낸 흙길의 평화누리길을 걸으며 호수공원이 얼마 안 남았다 했는데 이내 호수교에 이르렀습니다. 이 다리 아래로 내려가 호수 공원으로 들어선 후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호수 왼쪽 길을 걸었습니다. 단풍이 막 들기 시작한 공원 안의 나무들과 꽤 넓게 자리한 새파란 호수 물에 내려앉은 저녁햇살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호수공원의 정경이 서럽도록 정겹게 느껴진 것은 먼저 간 집사람과 20년 전쯤 이 공원길을 같이 걸은 것이 기억나서입니다. 다른 나라 공원들을 널리 둘러본 것이 아니어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여기 호수공원만한 공원을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아 이 도시를 설계한 분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선인장/다육식물 판매장을 지나 4코스의 끝점에 이른 시각은 16시4분이었습니다. 이곳에서 탐방을 마치겠다는 뜻을 접고 5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동패지하차도까지 가겠다고 마음을 바꿔먹은 것은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 앞으로 두 주는 평화누리길 탐방을 이어갈 수 없어서였습니다. 해가 남아 있는 시간은 두 시간 밖에 안 되는데 새로 시작되는 5코스의 길이가 8Km나 되어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호수공원을 벗어나 도심 길을 걸으며 참으로 모던해 보이는 한화아쿠아플라넷, 킨텍스와 종합운동장 등의 날렵한 건물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의 건축 기술이 참으로 대단하다며 감탄했습니다. 인공암장을 지나고 고양생태공원 오른 쪽 차로를 따라 걷다가 대화1교를 건너 가좌지구로 들어섰습니다.
가좌근린공원을 지나 동패지하차도 1.4Km 전방의 사거리에 이르자 해가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발걸음을 빨리해 다다른 또 다른 사거리에 동패지하차도가 1.8Km 남았다는 표지목을 보고 어리둥절했는데, 이 지역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친구가 동패지하차도가 멀지 않다고 말해 안심했습니다. 고양시를 막 벗어나 파주시의 동패지하차도에 도착한 시각은 18시2분으로 해가 막 넘어가 아직은 어둡지 않았습니다. 동패지하차도 위에 설치된 스탬프 보관박스를 배경으로 5코스종주 완료의 인증사진을 찍고나서, 택시를 부르려다 마침 한 젊은이가 끌고 온 화물차를 만났습니다. 이 차로 일산 시내까지 편하게 이동해, 대화역 인근의 한 음식점에서 친구가 내는 보쌈을 맛있게 들었습니다. 동패지하차도에서 시작되는 6코스 탐방 길은 두 주를 쉰 후 11월 7일(수요일)에 이어가기로 하고 각자 집으로 향하는 것으로 고양시를 관통하는 4-5코스 탐방 길을 마무리했습니다.
꼭 40년 전인 1968년 대학에 입학해 교양과목으로 영어를 수강했었습니다. 그때 배운 영어교재에 실린 글의 내용이 인상적이어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도 오래 전에 읽은 것이어서 제 기억이 정확하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만, 이야기의 요지는 대략 이러합니다. 2차 대전 중 독일군의 공습을 받아 부상당한 영국군이 런던 시내에 소재한 이를테면 ‘국군통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합니다. 부상자를 모두 수용할 만큼 병실이 많지 않아 상당수의 부상병들이 복도와 운동장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영국의 주요매체들이 아무리 전시라지만 어찌 대영제국의 국군통합병원에서 부상병들을 아무데서나 치료할 수 있느냐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합니다. 그렇다고 별안간 병실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병원장은 고심 끝에 병원의 이름을 ‘국군통합병원’에서 ‘야전병원’으로 고쳤다 합니다. 그랬더니 비난을 퍼부었던 주요 매체들이 ‘국군통합병원’이면 절대 안 되겠지만 ‘야전병원’이라면 복도나 운동장에서 치료할 수도 있겠다면서 모두 비난을 거두어 들였다는 것입니다.
10년 전이나 이번이나 도시 속을 걷기는 마찬가지인데도 이번에 도심 길도 걸을 만 하다고 생각한 것은 한북정맥 종주가 아니고 평화누리길 탐방 차 걸은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 또는 사건에 적합한 이름을 붙여 준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새삼 상기한 것이 이번 도심 길 걷기의 생각지 못한 수확이다 싶어 위 글을 덧붙입니다.
<탐방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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