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시인마뇽의 명소탐방/국내명소 탐방기

108.파주명소 탐방기6(칠중성/덕진산성)

시인마뇽 2019. 11. 11. 09:49

                                                          

                                                      파주명소탐방기 6

 

 

                                         *탐방일자:2014. 7. 31()/2019. 11. 2()

                                        *탐방지   :경기파주 소재 칠중성/덕진산성

                                        *동행      :큰아들 우종원/도마산초교 허정숙 동문,

                                                           문산중이영호, 황규직, 황홍기동문

 

 

 

 

 

                          

     임진강이 역사적으로 격전의 전쟁터였음은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 때만은 아니었습니다. 고구려, 백재와 신라가 한강유역을 확보하고자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임진강 또한 삼국시대에 전략적 요충지여서 한강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임진강변 곳곳에 성()을 쌓은 것도 각국이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임진강의 성()은 크게 나누어 강북쪽의 성과 남쪽의 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임진강 북쪽의 성은 주로 고구려가 백제나 신라의 북침을 저지하기 위해 축조한 것이고, 남쪽의 성은 백제 또는 신라가 고구려의 남침을 저지하고자 쌓은 것인데, 임진강 북쪽의 성으로는 덕진산성-호로고루성-당포성 등이 있고, 남쪽으로는 오두산성-봉서산성-칠중성 등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탐방한 임진강변의 성은 5년 전 큰 아들과 함께 찾아간 칠중성(七重城)입니다. 연천 땅을 차로 지날 때마다 임진강변 위 산성을 바라보면서 한 번 직접 가서 보고 사진도 찍고 싶은 마음이 일었습니다. 그동안 줄곧 탐방을 별러오다가 마침 하계휴가 중인 큰 아들에 부탁해 찾아갔습니다. 그후 몇 년 간 잊고 지내다 지난 봄 평화누리길 탐방 길에 연천의 당항성을 들른 것이 계기가 되어, 짬을 내어 호로고루성과 은대리성을 다녀왔습니다. 임진강 북쪽 강변의 덕진산성(德鎭山城)은 민통선 너머에 있어 탐방을 미뤄오다가 이번에 통일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초교동창의 도움으로 중학교동창 몇 명과 같이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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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칠중성(七重城)

*탐방일자: 2014. 7. 31일(목)

*탐방지   : 경기도파주시적성면구읍리 476-2 소재 칠중성

*동행      : 큰 아들 우종원 

 

 

 

 

 

   하계휴가 중인 큰 아들에 부탁해 아들 차로 파주와 연천 일대 명소 몇 곳을 다녀왔습니다. 산본 집을 출발해 연천의 경순왕릉과 고랑포를 먼저 들른 후, 파주로 옮겨 적성에 있는 칠중성을 탐방했습니다. 고랑포를 출발해 연천과 파주를 이어주는 장남교를 건넌 다음 적성시내 못미처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진행했습니다. 이내 만난 삼거리에서 37번 도로를 따라 왼쪽으로 꺾어 백학 쪽으로 향하다  큰 길에서 벗어나 적성향교로 향했습니다.

 

   이번 탐방의 목적지인 칠중성 바로 아래 위치한 적성향교는 조선전기에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적성시내에서 얼마간 떨어진 여기 시골에 조선시대 일종의 공립고등학교에 해당하는 향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앞에 명륜당을, 그 뒤로 사당을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으로 배치한 적성향교는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회를 위해 창건되었다고 안내판에 적고 있습니다. 팔작지붕의 대문이 굳게 잠겨 들어가 보지 못하고 담 밖에서 발돋움해그 안의 명륜당만  겨우 사진 찍었습니다.

 

   아들은 향교에서 기다리고 저 혼자서 해발148m의 중성산을 오른 것은 칠중성의 실체를 보기 위해서였는데 군부대가 파놓았을 교통호만 보이고 산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옆의 풀숲으로 자리를 옮겨 찾아보았지만 끝내 찾지를 못하고 허탕 치었습니다다시 중성산 꼭대기로 돌아가 북쪽을 바라보자 먼발치로 임진강이 보였습니다. 풀꽃들로 가려져 있는 산성터의 자그마한 돌무더기를 찾는데 성공했지만,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폭염의 한 낮에 내리쬐는 땡볕을 참아내기 힘들어 더 이상 찾기를 포기하고 향교로 되돌아가면서 사전에 자료조사 없이 탐방을 한 것이 못내 후회되었습니다.

 

   칠중성이 축조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1982년 지표조사를 실시한 동국대조사단은 이 성이 축조된 시기를 한성백제 시기 즉, 4~5세기 사이에 축성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이기환 님은 그의 저서 분단의 섬 민통선에 적고 있습니다만, 위키백과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북방변경의 요충지인 칠중현에 축조됐다고 적혀 있습니다

 

 

   칠중성에 대한 상세 자료는 위키백과에 잘 나와 있습니다.

 

   “칠중성은 해발 147m의 중성산 정상부와 그 남서쪽에 위치한 해발 142m의 봉우리를 연결하여 축조한 퇴뫼식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603m이고 남북 폭은 198m, 동서 폭은 168m이다. 전체 높이는 북동쪽이 가장 높고 서벽에 비해 동벽 부분이 현저히 낮은 형태를 보이고 있다.       -(중략)-   임진강 중류의 남쪽 연안에 위치하고 있어 관서지방과 한강유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 삼국시대에 많은 전투가 있었다. 신라와 고구려의 전쟁이 이 성을 중심으로 시작되었고, 신라의 삼국 통일 전쟁시 나당연합군에 의한 고구려 침공 때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에는 신라와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그 역할이 매우 컸던 산성이다.”

 

   제가 조사한 바로는 칠중성이 우리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선덕여왕 7년인 638년의 일입니다. 이 해에 고구려 군이 대대적으로 이 성을 공격했지만 신라의 알천이 고구려군을 격퇴합니다.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66011월 고구려는 백제의 원수를 갚겠다며 이 성을 공격했으나 당군의 요동쪽 침략으로 물러납니다. 667년 여름 당 고종은 고구려침공을 위해 신라에 대징발령을 내렸고, 신라는 평양으로 뚫기 위해 칠중성을 공격합니다. 6752월 당의 유인궤 군은 칠중성을 지키던 신라군을 공격해 상당한 전과를 올렸으나 점령하지 못하고 끝내 퇴각합니다. 당 고종은 유인궤를 불러들이고 이근행에게 군사20만명을 주어 신라 섬멸전에 나섭니다. 당군은 말갈 /거란의 군사를 이끌고 신라의 칠중성을 공격하여 성을 점령하고 성주를 죽이는 등 타격을 입혔으나 결국 퇴각합니다.

 

   삼국 통일 이후에도 칠중성 일대는 우리역사에 주요 전장으로 기록됩니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던 1950에는 625 ~ 628사이에 북한군의 기습남침에 한국군이 속수무책으로 궤멸당한 고랑포 전투가 있었고 이듬해 1951 4적성 전투에서는 영국군이 주축이 된 제29보병여단이 3만명의 중공군의 도강을 저지하기도 했었다고 위키백과는 적고 있습니다. 영국군은 중성산고지를 캐슬고지(일명148고지)라고 불렀습니다.

 

   2000-2001년 중 실시된 지표조사 결과 문지 3개소, 건물지 5개소, 우물지 2개소 등이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으며, ()자명의 평기와와 고구려, 백제, 신라시대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는 등 우리나라 고대사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사적·학술적으로 중요한 유적지로 밝혀져, 2002129일 사적 제437호로 지정됩니다.

 

   칠중성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한 탐방이어서 다시 한 번 찾아가 볼 뜻입니다

 

 

 

2.덕진산성(德津山城)

*탐방일자:2019. 11. 2()

*탐방지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구암로 665 소재 덕진산성

*동행      :도마산초교 허정숙동문, 문산중 이영호, 황규직, 황홍기 동문

 

 

 

 

   덕진산성은 임진강북쪽 민통선 너머에 있어 군부대의 허가를 득해야 출입이 가능합니다. 한 달전  초교동창모임에서 만난 허정숙동문이 통일촌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자기를 따라가면 별도로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112일자의 탐방을 안내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문산역에서 일행 다섯명이 모여 운전을 맡은 이영호동문의 차를 타고 덕진산성 탐방 길에 나섰습니다. 통일대교를 건너 군 초소에 주민등록증을 맡긴 후 허정숙동문의 인솔 하에 농장을 들러 김밥과 막걸리로 요기를 했습니다. 과수원으로 이동해 달콤새콤한 파주사과를 한 봉지씩 사들고 주인이 무료로 제공하는 사과즙을 한 봉지씩 마셨습니다. 먼저 조선시대 최고의 명의인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 선생의 묘를 둘러본 후 해마루촌을 들러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바로 찾아간 곳이 이번 탐방의 목적지인 덕진산성(德津山城)입니다. 아스팔트 포장도로에서 벗어나 서쪽으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 나지막한 구릉위의 덕진산성 주차장에 이른 시각은 오후 2시 정각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려 산성 초입에 세워진 안내판에 적힌 안내문과 안내도를 눈여겨보았습니다. 안내도에 따르면 덕진산성은 내성과 외성, 그리고 전투를 벌일 때 지휘소로 쓰이는 장대지, 한 곳의 우물, 덕진당(德津堂), 본성에 덧대어 쌓은 여섯 곳의 치()에 더하여 네 곳에 문지(門地)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삼국시대 때 고구려가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성은 규모 면에서 연천의 호로고루성이나 당포성보다 훨씬 작아 보이지만, 그 둘레는 1,384m(내성 600m)나 된다고 합니다. 이 성의 내성은 최고봉인 해발85m 봉우리를 중심으로 산 능선을 따라 표주박 형태로 구축되어 있습니다. 외성에는 두 개의 문지(門地)가 완연하게 남아 있고 성위에 담을 낮게 쌓았던 부분이 두 군데 있습니다. 봉우리는 낮지만 임진강의 북쪽 강안에 쌓은 성으로 높은 산이 없어 동쪽으로 초평도와 임진나루 일대, 남쪽으로는 수내나루와 문산읍 장산리 일대 잘 보여 풍광이 빼어날 뿐 아니라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는 안내문을 읽고 나자 과연 그러했겠다 싶어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성벽의 견고성을 높이기 위해 내성에 보축과 계단식 석축공사를 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성의 외성은 토축성으로 축조했고, 그 외부에 목책 같은 방어시설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외성은 조선조 광해군 때 전쟁위기가 고조되면서 급하게 쌓느라 내성보다 성벽이 치밀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파주의 덕진산성은 연천의 호로고루성, 당포성, 은대리성과 임진강 북쪽의 강안에 설치된 강안평지성으로 삼국시대의 주요한 성곽 중의 하나였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외성을 확장, 수축하여 사용했다고 합니다.

 

   주차장을 출발해 가드 선이 쳐진 능선 길을 따라 서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지난 4월 평화누리길 탐방 차 들른 장평도에서 임진강을 내려다보면서 감탄했던 초평도가 강 건너 북쪽에다 덕진산성을 숨기고 있다는 것은 이번에 비로소 알았습니다. 산성 바로 아래로 흙탕 물의 임진강이 흐르고 그 너머로 넓게 자리한 초평도의 숲이 보여 그 전경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군 훈련 중에 불이 나기도 해 고통 받았던 초평도의 동/ 식물이 훈련중지로 무탈하게 잘 자라고 있어 생태계의 보고가 된 것은 여러 해전의 일입니다. 표주박 모양으로 나 있는 능선 길을 따라 한 바퀴 돌면서 제 고향 파주 땅에 이런 비경이 있었음을 이제껏 몰랐다 싶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전곡선사박물관에서 발간한 『전곡선사박물관』에  "연천군내 황산리, 전곡리, 남계리, 원당리 유적 등이 분포하고 있으며, 파주시 관내에는 사적지로 지정된 가월리-중월리 유적을 지나 파주 동파리, 금파리, 장산리에 이르기까지 구석기 유적이 다수 분포되어 있다"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보아  여기 덕진산성 일대에도 구석기유적이 분포되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우평님은 그의 저서 한국지형산책에서 약70만 년 전에 북한의 평강 남서쪽에 위치한 해발415m의 오리산에서 분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용암이 남쪽으로 흘러내려가면서 지금의 철원평야 일대를 메우고 구 한탄강 유로를 따라 임진강 하류의 문산 동파리까지 흘러 갔는데 그 길이가 무려 96Km나 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했습니다.   성을 따라 걸으면서 다공성의 현무암을 만나본 것은 오리산의 용암이 여기를 거쳐 바로 옆  동파리로 흘러왔음을 증거하는 것이어서  반가웠습니다

 

   이 성에서 가장 높은 구릉에 올랐어도 미세먼지 때문인지 시야가 탁 트이지 못하고 강 건너 감악산이나 파평산이 희끄무레해 보여 조금은 답답했습니다. 농지와 구릉의 숲, 그리고 주택 외에 이렇다 할 산업시설이 없어 청정지역일 수밖에 없는 여기 민통선 안에도 중국 발 미세먼지를 피해갈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늦가을 시골 특유의 한가로움을 느낄 수 있었지만 청량함과는 거리가 먼 듯해 못내 아쉬웠습니다

 

   안내문에는 20128월에 시작된 파주덕진산성학술발굴조사는 금년 12월로 끝나는 것으로 적혀 있습니다. 학술발굴조사가 성공리에 마무리된다면, 곧 이어 복원이 뒤따라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성곽이 제대로 복원되고 스토리가 부여된다면 파주에서 이만한 관광지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민통선 안의 고성(古城)과 그 아래를 휘돌아 흐르는 임진강, 생태계의 초평도와 그 옆의 넓은 논 뜰, 여기에 초평도가 인조반정군의 본거지였다는 역사적 일화가 보태진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1623313일 인조반정을 막지 못한 광해군은 도망가고자 창덕궁의 담을 넘습니다. 장단부사 이서(李曙, 1580~1637)가 이끄는 반정군은 이 덕진산성에서 비밀리에 군사훈련을 받아오다 전날인 312일에 한양으로 진격해 인조반정을 성공으로 이끄는데 한 몫을 단단히 해냅니다. 이날 밤 2(9~11) 홍제원에 모인 반군은 무기를 잡아보거나 전투를 치른 적도 없는 오합지졸이어서 이서의 장단군(長湍軍)이 합류하지 못했다면 인조반정은 실패로 끝났을 것입니다. 광해군을 축출하겠다는 서인의 모의는 1620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장단부사 이서는 1622년 무렵 덕진산성을 개축하고 본격적으로 반정군을 훈련시키며 때를 기다렸기에 인조반정은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덕진산성에 터가 남아 있는 덕진당((德津堂)에는 인조반정과 이서의 부인이 관련된 가슴 아픈 사연이 남아 있습니다. 이 사연을 담은 구전설화를 이기환 님은 그의 저서 분단의 섬 민통선하얀 깃발에 몸을 내던진 사연이라는 소제목을 달아 소개했습니다. 이야기인즉 요약하면 이러합니다. 이서는 반정군을 끌고 출전하기 직전 부인에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온다면서, 거사가 성공하면 돌아오는 나룻배에 붉은 기를 달고 실패하면 흰 깃발을 달겠다고 약속합니다. 열흘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이 한달 여가 흘러서야 돌아오는데, 노를 젓는 사공이 더위를 참지 못해 흰옷을 붉은 깃발에 걸어놓았다고 합니다. 이를 본 부인은 임진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는 애달픈 이야기로 이서는 아내의 원혼을 위로하고자 덕진당을 지었으며 이후 임진강 어부들은 풍어를 기원하고 수재를 막기 위해 덕진당에 제를 올렸습니다. 이 구전설화만으로도 덕진당을 복원해야 할 이유는 충분할 것입니다.

 

   1시간 가까이 쉬엄쉬엄 산성을 둘러본 후 통일대교를 빠져나와 문산역에서 커피를 사 마신 후 헤어지는 것으로 덕진산성 탐방을 모두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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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가보지 못한 임진강 일대의 산성은 파주의 관미성과 봉서산성, 그리고 연천의 매소성등입니다. 관미성이 자리한 오두산 통일전망대와 봉서산성이 들어선 봉서산은 벌써 다녀왔지만 성을 탐사하지는 못했습니다. 연천군 청산면 대전리에 소재한 매소성은 신라 문무왕 15년인 675년에 신라와 당 사이에 격전이 벌어진 성입니다. 언제고 짬을 내어 마저 다 들러볼 뜻입니다

 

 

                                                                        <탐방사진> 

 

1.칠중성

 

 

 

 

 

 

 

 

 

 

 

 

 

 

 

 

 

 

 

 

 

 

 

 

 

 

 

2.덕진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