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명소 탐방기1
*탐방일자:2019. 8. 17일(일)
*탐방지 :강원화천소재 파로호/평화의댐/
동구래마을/토속어류생태체험관
*동행 :화천시티투어버스 탑승객
강원도의 화천(華川)은 문자 그대로 천변(川邊)의 고을입니다. 화천군간동면구만리에 북한강의 협곡을 막아 화천댐을 건설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44년의 일입니다. 화천댐의 축조로 저수용량이 약10억톤에 달하는 인공호수 파로호가 생긴 덕에 화천이 물의 고을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화천이 천변의 고을이 된 것은 화천댐건설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고구려 때 지어진 화천의 원래 이름은 생천군(牲川郡) 또는 야시매(也尸買)였다고 합니다. 삼국이 통일되고 나서 낭천(狼川)으로 고쳐 부르다가 조선조 고종39년인 1902년 화천(華川)으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그간 생천(牲川)-낭천(狼川)-화천(華川)의 순으로 이름을 변경하면서도 ‘천(川)’을 그대로 남겨둔 것은 지존천, 화천천, 사내천 등 크고 작은 계곡물이 유입되는 북한강이 화천을 동서로 관통해 흐르고 있어 물이 항상 넉넉해서였을 것입니다.
화천하면 무엇보다 먼저 화천수력발전소가 연상되는 것은 1950년대 후반기에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남북한 통틀어 가장 큰 발전소는 압록강의 수풍발전소이고 남한에서는 북한강의 화천수력발전소라고 배워서입니다. 댐 높이 77.5m의 낙차를 이용해 10만8천KW를 발전할 수 있는 화천수력발전소는 해방 후 남북분단으로 북한 땅에 귀속되었다가 1953년 휴전협정 후 되찾은 것이어서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화천을 처음 찾아간 것은 1998년입니다. 그해 여름 모회사에서 배드민턴 단장 직을 겸직하고 있을 때 하계 전지훈련 중인 선수단을 격려하기 위해 집사람과 함께 찾아갔었습니다. 선수단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읍내에서 하루 밤을 묵은 후 다음 날 집사람과 둘이서 평화의댐을 관광하면서 화천의 몇 곳을 들르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21년 만에 다시 찾은 화천이 많이 변화했다 싶은 것은 수변관광프로그램이 다양한데다 산천어 축제, 토마토축제 등 화천군만의 특색 있는 축제가 열려와서입니다.
1.동구래마을
오전 10시30분 춘천역에서 대기 중인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화천으로 이동하면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북한강의 강변풍경을 감상했습니다. 화천군에 들어선 시티투어버스는 화천대교를 건너 북한강변 북쪽 길을 따라 서진했습니다. 북한강의 명소인 붕어섬과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조정장을 지나 지존천이 북한강에 합류되는 동구래마을에 도착한 시각은 11시20분이었습니다.
화천군의 하남면에 소재한 동구래마을의 ‘동구래’는 동그란의 어원에서 유래된 것으로 모든 사물의 시작인 씨앗과 꽃을 상징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우리 꽃이 숨쉬는 동구래마을에서의 산책은 ‘화천23신선과 함께하는 동려이십삼선로(同侶二十三仙路)’의 제4선로(仙路)인 ‘금 캐러가는 물위 야생화길’을 걷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원추리와 나리꽃, 뒤집어 놓은 독, 분재, 야생란, 꼬마상의 조각 등 볼거리가 다양해 사진 찍기에 바빴습니다. 수면이 연잎으로 뒤덮인 아담한 연못은 옆으로 퍼진 낮은 키의 소나무와 잘 어울렸습니다. 앙증맞은 종들이 꽤 많이 걸려 있는 나무문을 나와 산소(O2)100리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산소(O2)100리길이란 서오지리연꽃단지에서 화천댐까지 큰 원 형태로 총42.2Km길이의 북한강 수변트레킹코스를 이릅니다. 바닥이 보일 것 같은 맑은 물을 따라 걷는 산소 길의 끝자리에 해당될 북한강의 지존천변 길을 걸으며 서진하다가 햇볕을 쬐러 나온 뱀을 본 해설사님이 그만 돌아가자고 해 물동이를 이고 가는 어머니와 행여 놓칠세라 치맛자락을 잡고 따라가는 어린 아들을 형상화한 모자상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는 곳으로 동구래마을 탐방을 마쳤습니다.
시티투어버스로 화천읍내로 이동해 점심식사를 한 후 파로호관광길에 올랐습니다.
2.파로호(破虜湖)
이번에 탐방한 파로호는 1944년 북한강 상류에 화천댐을 축조해 조성된 거대한 인공호수입니다. 화천군과 양구군에 걸쳐 있는 파로호의 유역면적은 3,901㎢이고, 만수위 때의 수면면적은 382㎢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착공해 1943년에 준공된 화천댐은 높이가 86.5m, 길이가 435m나 되는 대형 댐으로 댐의 높은 위치 차를 활용해 발전하는 화천수력발전소의 발전용량은 약10만kw나 됩니다.
파로호는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적고 있는 대로 국민 관광지로 지정된 관광 명소로서 호반에 짙은 산림으로 둘러싸인 일산(日山)ㆍ월명봉(月明奉)ㆍ병풍산(屛風山)등이 솟아 있어 경관이 수려하고, 전국적인 담수어 낚시터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화천읍내에서 화천대교를 건너 도착한 파로호남쪽 수변의 구만리선착장에서 하차해 관광선인 파로호(破虜號)에 승선했습니다. 오후2시 정각에 선착장을 출발한 관광선 파로호는 파로호의 파란 호수 물을 가르며 동진했습니다.
후덥지근한 선실에서 나와 회랑에 기대어 바라보는 파로호는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데다 바다처럼 파도가 거칠게 일지 않아 참으로 안온해 보였습니다. 이 안온한 파로호에 중공군이 수장된 것은 58년 전의 일입니다. 6ㆍ25동란이 한창이던 1951년 4월과 5월에 걸쳐 유엔군의 지원을 받은 한국군 보병 제6사단과 해병 제12대 연대 장병들이 중공군 제10ㆍ25ㆍ27군 병력을 격파했습니다. 이승만대통령은 1955년 이 전승을 기리기 위해 대붕호였던 옛 이름을 폐기하고 파로호로 이름을 지어 내려주었다고 합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중화인민공화국, 즉 중국과의 관계가 개선되어 파호호를 찾는 관광객이 많아졌습니다. 파로호의 내력을 듣고 간 중국인관광객의 진정으로 중국정부가 파라호의 이름을 옛 이름인 대붕호로 고칠 것을 요구해와 개칭여부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우리 땅의 이름을 우리가 지은 것을 고치라 말라 하는 것은 분명 내정간섭일진데 일부 친중세력은 중국의 요구를 들어주어 관광객을 늘이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듣노라면 한심하다 못해 참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저만 그런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선착장을 출발한 파라호관광선이 40분 남짓 동진하다가 모일에서 방향을 바꾸어 북진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일에서 시작되는 호수 왼쪽의 수변길이 수동 - 모일 한뼘길로 수동까지 이어지는데 그 길을 걷는 등산객들이 여러분 보였습니다. 벽촌의 수동마을에서 끝나는 한뼘길을 비수구미마을로 이어주는 길이 비수구미트레킹코스로 단풍들 즈음의 가을철에 짬을 내어 꼭 한번 걸어보고자 합니다. 관광선이 방향을 바꾼 모일에서 동쪽으로 직진하면 양구읍내에 이르게 되는데 이 코스도 관광선이 운항되는 줄은 알고 있지 못합니다.
호수폭이 좁아지는 가 했더니 어느새 평화의댐 선착장에 도착해 하선했습니다. 15시28분 평화의댐 선착장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반 가량을 배를 타고 유람하고나자 파로호 호수가 참으로 넓다고 느껴졌습니다. 지난 2월 인천에서 서해의 섬 백령도를 가는데 걸린 시간이 4시간 가량임을 감안하면 내륙의 호수에서 시간 반 가량 관광선을 타고 유람할 수 있는 호수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배를 타고 유람하면서 파라호의 유역면적이 3,901㎢이고, 만수위 때의 수면면적은 382㎢라고 수자로만 파악했는데, 그 숫자의 실제 면적이 얼마나 넓은 것인지 처음으로 실감했습니다.
3.평화의댐
평화의댐이란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과 양구군 방산면 지역에 걸쳐 있는 높이 125m, 길이
601m의 저수용 댐을 이릅니다. 이 댐의 총 저수용량은 국내 2위인 26.3억톤으로 다목적댐인 1위의 소양강댐의 29억톤보다 2.7억톤이 적습니다.
1986년 전두환 정권 당시 북한의 금강산 댐(임남 댐)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으로 축조하기 시작한 평화의댐 1단계 공사는 1987년 2월 시작되어 1988년 5월에 완성되었습니다. 1992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댐건설이 전두환정권이 정권안보차원에서 조급하게 과잉 대응한 것이라며 2단계 공사를 중단했었습니다. 김대중 정권 때인 2002년 1월 북한이 임남댕의 물 3.4억톤의 물을 방류해 평화의댐 증강공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다시 일었고, 그해 9월에 2단계공사를 시작해 노무현정권 때인 2006년12월에 완공해, 평화의댐은 그 높이가 125m로 높아졌습니다. 이명박정권 말기인 2012년 11월에 3차로 시작한 치수능력증대공사가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다음해인 2018년 10월에 완공된 것이 오늘의 평화의댐입니다.
선착장에서 하선해 올려다본 평화의 댐은 벽면 한 가운데 ‘통일로 나가는 문’이라는 초대형트릭아트(trick art)벽화가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높이93m, 폭60m 규모로 기네스세계기록(4775.7m²)에 등재된 이 벽화는 댐 중앙이 뚫려 있어 하천의 물이 남과북을 자유롭게 흐를 수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고 화천군안내팜플렛은 전하고 있습니다. 먼저 와 대기 중인 버스를 타고 세계평화의 종공원으로 올라갔습니다. 4명이 한 조가 되어 세계평화의 종을 타종한 후 그 아래 평화의 댐을 조망했습니다.
이 댐의 건설목적이 북한의 임남댐을 통한 수공에 대비한 것이어서 물을 거의 채우지 않은 것은 경기도연천군의 군남댐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나 다른 것은 댐 왼쪽 하단에 배수로를 설치한 것 같은데 군남댐에 배수로가 설치됐는지는 미처 확인하지 못해 과연 다르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1998년 탐방 때는 댐 위를 걸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댐 위를 걷는 것이 불허되어 사진만 찍어왔습니다. 퍙화의댐 물문화관으로 자리를 옮겨 전시물을 일별한 후 안내팜플렛을 한 부 받아왔습니다. 그 아래 비목공원은 시간이 없어 내려가서 보지 못하고 위에서 사진 몇장만 찍고 버스에 올라 춘천으로 향했습니다.
4.평화의댐-화천읍-춘천역
평화의댐을 출발한 시티투어버스는 평화의댐 북쪽의 북한강을 따라 북진했습니다. 군부대 초소에 이르러 신상파악절차를 마친 후 계속 북진하다 안동철교를 건너면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양의대습지의 설명을 해설사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서진을 계속해 군부대초소에 다다르자 초병이 올라와 인원파악을 한 후 통과시켜 주었습니다. 버스가 민통선을 벗어나 서진하다가 한목령(?)을 넘어 남진하면서 차창 밖으로 북한강과 면해 있는 딴산폭포의 물 떨어지는 폭포를 보았습니다.
북한강 위 작은 다리를 건너 토속어류생태체험관을 둘러본 후 다시 다리를 다시 건너 461번 도로로 들어섰습니다. 북한강변을 따라 화천읍내로 향해 가다가 북한강을 건너는 꺼먹다리와 강 건너 화천수력발전소를 차창을 통해 보았습니다. 화천댐이 생기면서 건설한 다리로 나무로 만든 상판에 검은색 콜타르를 칠해 이름 붙여졌다는 꺼먹다리는 교량사연구에 좋은 자료로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11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944년 북한강의 협곡을 막아 축조한 화천수력발전소는 발전용량이 10만8천KW로 이 나라의 근대산업을 이끈 전초기지였습니다. 발전소입구에 한국전쟁 때 화천전투의 승리로 되찾은 발전소탈환을 기념하는 전공비를 세운 것은 이 나라 후손들을 위해 참 잘한 일이다 싶습니다.
먼발치에서 차창을 통해서 화천발전소는 보았지만 화천댐을 보지 못해 못내 아쉬웠습니다. 화천읍을 지나 도착한 춘천역에서 화천명소탐방을 모두 마치고 서울 가는 전철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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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못지않은 수변 고을 화천을 한두 번은 더 찾아가 볼 뜻입니다. 산소(O2)100리길, 수동 - 모일 한뼘길, 비수구미트레킹코스 모두 강변길로 꼭 한 번 걸어보고 싶습니다. 이번 파로호의 선상유람은 바다의 그것과 색다른 맛이 있어 만산홍엽의 가을철에 다시 한 번 즐기고 싶습니다.
<탐방사진>
1)동구래마을
2)파로호
3)평화의댐
4)평화의댐-화천읍-춘천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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