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명소 탐방기2
*탐방일자:2019. 7. 20일(토)
*탐방지 :강원양구소재 박수근미술관/두타연/
양구선사박물관 및 양구근현대사박물관
*동행 :양구시티투어버스 동승객 다수
강원도 양구 땅은 해방 후 남북분단으로 북한에 귀속되었던 땅입니다. 조선을 35년간 강점했던 일본이 패망하고 미국과 소련이 북위 38°선을 경계로 하여 남북으로 나누어 진주할 때 소련이 진주한 땅입니다. 이런 양구 땅을 우리나라가 되찾은 것은 1953년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을 체결하고 나서입니다. 휴전을 얼마 앞두고 우리 국군과 유엔군이 한 평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수많은 희생자를 내고 치러낸 크리스마스고지 전투, 피의 능선 전투, 펀치볼 전투, 백석산 전투, 도솔산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가칠봉 전투, 대우산 전투와 949고지 전투 등 9대 전투에서 승리한 덕분에 양구 땅을 수복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용재총화>>를 지어 필명을 날린 성현(成俔, 1439-1504)선생이 양구를 이르기를 “하늘은 살찐 들을 열어서 버들의 산기슭(楊麓)을 안았고, 산들은 기이한 봉우리를 지어서 사방의 밝음을 떠 받쳤네”라고 했다고 양구근현대사박물관의 한 전시물이 전하고 있습니다. 성현 선생의 위 글로 보아 조선시대의 양구는 비록 벽지라 해도 사람들이 모여 살만했던 땅임이 분명합니다.
이토록 살만했던 양구의 주민수가 40천명에서 25천명으로 급감한 것은 화천댐건설로 많은 지역이 수몰된 1944년 이후의 일입니다. 2012년 7개의 터널 개통 이후 양구를 찾는 관광객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양구-춘천 간 소요시간이 버스로 2시간 반에서 40분대로 대폭 단축된 데다 한 번 찾아오면 10년이 젊어진다고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큼 빼어난 청정지역이어서 그러할 것입니다.
1.박수근미술관
오전10시30분 춘천역에서 양구시티투어버스를 타고 박수근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이번 양구나들이에 해설을 맡은 분은 양구의 50대여성분으로 지난 주 안보관광 때 동승했던 분이어서 반가웠습니다. 7개의 터널을 지나 11시30분에 양구읍내 박수근미술관에 도착했습니다.
박수근(朴壽根, 1914-1965) 선생은 1914년에 강원도양구군의 양구읍 정림리에서 6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집안이 가난해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진학을 포기한 선생은 독학으로 그림공부를 시작합니다.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수채화 「봄이 오다」로 입선한 후 이 전람회에 꾸준히 응모해 화가로서 기반을 닦아온 선생은 1952년 월남하여 작품 활동을 계속합니다. “나는 인간의 착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신 대로, 선생께서는 주변의 가난한 농가의 정경과 서민들의 일상적이고도 평범한 생활정경을 주로 그렸다고 민족문화백과대사전은 전하고 있습니다.
박수근 선생은 양구가 낳은 우리나라 최고의 서양화가로 널리 이름을 떨친 분입니다. 선생의 걸작 「빨래터」가 호당가격기준으로 우리나라 화가가 그린 서양화 중 최고가로 호가된다는 것은 선생의 명성에 힘입은 바 클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선생의 명성은 살아생전에 얻어진 것이 아니어서 끝내 곤궁한 삶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선생께서 얼마나 궁핍하게 살았는가는 소설가 박완서((朴婉緖, 1931-2011)의 작품 “나목”에서 핍진하게 그려졌습니다.
1962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심사 위원 자리에 오르셨지만, 선생께서 이룩한 회화 세계가 제대로 평가받은 것은 사후의 일입니다. 1965년 10월 중앙공보관에서 열렸던 유작전과 1970년 현대화랑에서의 유작전을 계기로 재평가되어 유화로서 가장 한국적 독창성을 발휘한 작가로 각광을 받았다고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일러주고 있습니다. 선생의 대표작으로는 「절구질하는 여인」(1952년)·「빨래터」(1954년)·「귀가(歸家)」(1962년)·「고목과 여인」(1964년) 등이 꼽힙니다. 몇 해 전 겨울에 덕수궁에서 열린 한 전시회에「빨래터」를 보면서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주 본 정감어린 풍경이다 했습니다.
박수근미술관은 생가 터인 양구읍정림리에 2백여평 규모로 양구군이 건립한 국립미술관입니다. 2002년에 개관하여 선생의 예술관과 인생관을 기리는 박수근미술관은 양구지역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인 박수근빌리지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매김한지가 오래입니다. 미술관에 발을 들이자 그림에 문외한인 저를 이런 저런 전시회로 끌고 가 명작을 감상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19년 전에 먼저 간 집사람이 생각났습니다.
화강암의 원형건물과 꽤 길게 늘어선 회색빛 벽이 이채로워 보이는 전시관을 둘러보는 중 눈길이 간 것은 “박수근선생과 김복순여사가 자녀들을 위해 그리고 쓴 「고구려이야기」”입니다. 큐레이터의 친절한 해설과 전시물을 통해 선생의 예술관과 인생관을 알게 되었다고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는 것은 선생의 너무도 인간적인 면모를 저로서는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다 싶어서입니다. 미술관을 한 번 휘 둘러보고 느낀 것은 선생의 작품이 워낙 고가로 판매되어 2002년에 개관된 국립미술관으로서는 소장가의 기증 없이는 진품을 전시하는 것은 앞으로도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마간산 격으로 미술관을 둘러보고 자리를 옮긴 곳은 선생의 묘소입니다. 박수근빌리지 안에 있는 선생의 묘소는 양구읍내를 관통하는 서천이 멀지 않은 구릉에 자리하고 있어 배산임수의 명당자리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묘 앞에 세워진 기념비에 그려진 아기를 등에 업고 서 있는 여인상에서 30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보는 듯해 가슴이 찡했습니다. 조금 떨어진 박수근파빌리온에서 제3회 박수근미술상을 수상한 이재삼화가의 수상작품전이 열리고 있어, 일행들과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미술관 탐방을 마치고 읍내 중심가로 이동해 점심식사를 한 후 버스를 타고 남방한계선과 멀지 않은 방산면의 두타연으로 향했습니다.
2.두타연(頭陀淵)
강원도 양구군의 방산면에 자리한 두타연은 양구 8경 중 첫 번째 명소로 휴전선에서 발원한 수입천 지류의 계곡을 이릅니다. 두타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에 의해 하방침식이 진행되어 만들어진 너른 연(淵)의 두타연이 천연기념물 열목어의 최대서식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두타연이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에 위치해 더할 수 없이 맑고 깨끗한 물이 오염되지 않아서입니다. 천 년 전에 두타사라는 절이 있었다는데서 그 이름이 유래된 두타연은 주변으로 20m높이의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하고, 활발한 침식작용에 의해 기암괴석이 발달하여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고 있다고 양구군은 자랑하고 있습니다.
휴전 이후 50여년간 통제된 두타연에 민간인의 출입이 개방된 것은 2004년입니다. 옛날에는 이틀 전에 신청해야 했었는데, 이제는 양구문화관광(www.ygtour.kr)으로 사전예약하거나 평화누리길로 이어지는 방산면의 이목정안내소나 동면의 비득안내소에서 신청하면 곧바로 출입이 허가되어 두타연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꽤 많아졌다고 합니다. 두타연은 금강산 가는 길목으로 금강산까지 거리가 32Km에 불과해, 통일만 된다면 관광객이 급증할 것은 분명합니다.
13시47분 이목정안내소에서 출입신고를 필하고 버스로 이동하다가 이목교를 건너고 나서 오른쪽 숲길인 소지섭길로 들어섰습니다. 수입천을 오른 쪽에 두고 천변 숲길을 따라 걷다가 합수점에 이르러 비경을 사진 찍을 수 있는 포토존 데크에 이르렀습니다. 때마침 걸려온 지인과의 전화통화가 길어져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계속 숲길을 걷던 중에 위가 베어진 나무줄기에 걸려 있는 녹이 잔뜩 슬은 철모를 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철을 맞은 흰색의 으아리꽃이 여기저기에 떼로 피어 있어 소지섭길의 운치를 더해주었습니다.
두타연 주차장에 도착하자 과연 양구의 첫 번째 명소답게 관광객을 실고 온 버스가 꽤 여러대 주차해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하차해 양구전투위령비를 먼저 찾아가 해설사 분의 제의에 따라 양구전투에서 산화한 유엔군의 영령에 묵념을 올리며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옆 자리 조각공원에서 만나본 산양은 열목어와 더불어 두타연과 함께하는 친구들로 사람들을 보고도 달아나지 않아 근접촬영을 했습니다. 해탈의 도장이었을 두타사가 터만 남기고 폐사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절이라 해서 생성되는 것은 언제고 소멸되는 자연의 이치를 뛰어넘어 모두 천년만년 남아 있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격적인 두타연 탐방은 징검다리를 건너고 나서입니다. 관찰데크에서 내려다 본 두타연은 폭포의 머리 위여서 폭포의 물 떨어짐을 관찰할 수 는 없었습니다. 출렁다리를 건너 건너편 관찰데크에 이르러서야 폭포의 전면과 그 아래 못을 사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두타연의 명성이 과연 명불허전이다 싶었던 것은 두타연의 관광안내팜플렛에 게재된 소개 글이 하나도 틀리지 않아서입니다. 조금 더 걸어 계곡으로 보다 가까이 접근해 두타연의 전모를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박수근 화백께서 자진 남하해 대한민국 최고의 화가가 된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거기에 더하여 유엔군과 국군이 혈전 끝에 두타연을 되찾아 온 것은 가슴 벅차도록 고맙고 다행스런 일임을 이번 탐방에서 알았습니다.
두타연 탐방을 마치고 옮겨 간 곳은 이번 탐방의 마지막 방문지인 양구읍내에 자리한 양구선사박물관과 양구근현대사박물관입니다.
3.양구선사박물관 / 양구근현대사박물관
양구읍내에 꽤 넓게 터 잡은 양구선사박물관과 양구근현대사박물관은 한 울타리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두 박물관을 연달아 둘러보고 나자 마치 시간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먼저 찾아간 곳은 양구근현대사 박물관입니다. 제1전시실은 ‘역사의 휘모리’와 ‘엽서/우표관’으로, 그리고 제2전시실은 ‘추억의 영화관’, ‘아리랑관’과 ‘창간호관’으로 구성되었는데, 제 눈을 끈 것은 ‘추억의 영화관’에 전시된 영화 ‘피아골’의 포스터입니다.
수년 전 지리산의 반야봉을 올랐다가 피아골로 하산하면서 이 골짜기가 한국전쟁 때 빨치산과 격전을 치른 곳이라고 어디선가 들은 것이 어렴풋이 생각났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내내 궁금했었는데 이번에 포스터를 보고 얼마간 풀렸습니다. 김진규, 이예춘과 노경희 등 세 배우가 호연한 이 영화는 6.25 전쟁의 휴전으로 지리산에 남겨진 빨치산 부대의 암울한 나날을 그린 영화로 1955년에 제작되었다 합니다. 기존의 반공영화와는 달리 빨치산만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캐릭터를 세밀하게 묘사한 이 영화는 휴머니즘 반공영화의 모델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빨치산을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상영이 금지되었다 합니다.
‘추억의 교실’과 ‘전통공예전시관’은 자료적 가치보다 방문객으로 하여금 어렸을 때의 추억을 되살리게 한 것만으로도 전시목적은 이루었다는 생각입니다.
‘역사의 휘모리관’에서 특정세력으로부터 존재가치를 부정당하고 있는 이승만/박정희 두 분의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자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건립하고 그 초석을 다졌고, 우리나라 경제를 발전시켜 반만년동안 지속된 가난에서 처음으로 벗어나게 한 훌륭한 업적을 이루고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두 분에 죄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양구근현대사박물관에서 100여m(?) 떨어진 양구선사박물관입니다. 임진강 유역과 금강 유역의 선사 고고유적은 이미 유적지와 박물관을 탐방한 바 있습니다만, 북한강유역의 선사고고유적은 비록 유적지가 아닌 박물관이지만, 탐방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양구선사박물관은 1997년 국내최초로 세워진 선사박물관으로 양구지역에서 발굴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시대 유물 등 650여점이 체계적으로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양구의 상무룡리유적과 만대리 유적, 그리고 관돌마을의 고인돌 유적뿐만 아니라 춘천의 유적들도 함께 볼 수 있어 이 박물관이 북한강유역의 선사박물관으로서 제 몫을 해내고 있다 했습니다. 고생대 화석의 수집가이자 연구자였던 고(故) 원달기 선생님의 가족들이 기탁한 화석자료로 꾸며진 삼엽충화석 전시실도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고생대의 캄브리아기에 생존하였던 절지동물인 삼엽충은 542백만 년 전 고생대캄브리아기 바다에 극적으로 등장하여 바다의 생태계를 지배하다가 후기 고생대 폐름기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고생대의 대표적인 화석인 삼엽충 화석의 실물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
두 번에 걸친 양구탐방은 시티투어버스 덕분에 저렴한 비용으로 편하게 이루어졌습니다. 해설사 분들의 열성어린 안내와 해설도 훌륭해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이번 탐방이 무엇보다 값진 것은 생판 몰랐던 양구에 대해 호감을 갖데 된 것과 안보에 대한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는 가을 친구들과 함께 양구의 평화누리길을 걸을 뜻입니다. 이번에 미쳐 못 본 것은 그때 보기로 하고, 미흡하나마 양구탐방기는 이만 맺습니다.
<탐방사진>
1)박수근미술관/양구읍시가
2)두타연
3)양구선사박물관 / 양구근현대사박물관
'XIII.시인마뇽의 명소탐방 > 국내명소 탐방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6.화천명소 탐방기1(파로호/평화의댐) (0) | 2019.08.23 |
---|---|
105.군포명소 탐방기4(덕고개 당숲/밤바위) (0) | 2019.08.12 |
103.양구명소탐방기1(을지전망대) (0) | 2019.07.19 |
102.연천명소탐방기4(고랑포) (0) | 2019.07.07 |
101.연천명소탐방기3 (연천 고구려3대성). (0) | 2019.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