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시인마뇽의 명소탐방/국내명소 탐방기

110.철원명소탐방기3(삼부연폭포)

시인마뇽 2019. 12. 29. 11:40

                                    *탐방일자:2019. 9. 21()

                                          *탐방지 :강원도철원군소재 삼부연폭포

                                          *동행    :나 홀로

 

 

 

 

 

 

   누군가와 함께 간 곳을 세월이 한참 지난 후 혼자서 다시 찾아가노라면 자연 같이 간 사람이 생각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그 생각의 깊이나 넓이가 그동안 흘러간 세월의 길이에 비례할 수 있는 것은 함께한 사람이 다름 아닌 23년을 같이 살다 먼저 간 집사람이어서 그러합니다. 이번에 다시 찾아간 삼부연폭포는 집사람과 함께 1996년 여름 차를 몰고 한수이북을 여행하는 길에 가보았으니, 23년 만에 다시 찾은 셈입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1996년은 참으로 고된 한 해였습니다. 11일자로 모회사의 충호남영업부장으로 발령을 받고 혼자 대전으로 내려간 것은 큰 아들이 고교 3년생이어서 그리 했습니다. 다행히 과천 집에서 2시간이 채 안 걸려 주말에는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올라와 가족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영업부장이라는 자리가 항상 영업목표에 시달려 스트레스를 받는 자리여서 주말에도 마음 편히 쉬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여름휴가도 단 사흘 밖에 안 되어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집사람과 상의해 12일로 한수이북지역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과천 집을 나섰습니다. 자유로를 따라가다 제 고향 파주의 문산에 이르러 임진강변길인 37번 도로로 바꿔 타 적성쪽으로 향했습니다. 파평면의 샘내에서 점심을 사들고 적성으로 가서 감악산 아래 영국군전적지를 둘러본 후 난생 처음으로 연천 땅에 발을 들였습니다. 백학, 전곡과 연천을 차례로 거쳐 차를 멈춘 곳이 재인폭포였습니다. 평지에서 경사진 길을 따라 얼마간 내려가 사진을 찍으면서 이 폭포에 얽힌 비극적인 설화를 되새겼습니다. 재인폭포를 출발해 철원땅으로 접어들자 넓은 벌이 시원스레 펼쳐져 강원도 땅이라는 생각이 안들었습니다. 비포장도로를 지나 깜깜한 밤이 되어 도착한 고석정에서 모텔을 잡아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아침 일찍 서둘러 고석정의 절경을 둘러본 후 김일성교를 거쳐 여기 삼부연폭포를 탐방했습니다. 포천 땅으로 자리를 옮겨 이동과 일동을 차례로 거친 후 현리에서 청평쪽으로 차를 몰아 가평 땅으로 들어섰습니다. 청평에서 북한강변길로 따라 달려 서울로 들어갔습니다. 집사람이 모임을 갖는 강남의 이름난 불고기집을 들러 때늦은 점심식사를 한 후 저녁 무렵 과천 집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12일의 한수이북지역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몇 해 후 암으로 먼저 떠난 집사람과의 추억을 보듬고자 그때 미처 기록하지 못한 한수이북여행기를 짧게나마 작성해 이렇게 남깁니다.

 

    

 

   혼자서 철원의 한탄강주상절리길 탐방하는 길에 짬을 내 삼부연폭포를 찾아갔습니다. 삼부연폭포(三釜淵瀑布)는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의 용봉산(해발374m) 중턱에 자리한 한탄강 유역내의 소()를 이릅니다. 신철원버스터미널에서 하차하여 삼부연폭포까지는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택시기사분의 전언에 따르면 용화천을 따라 낸 4번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거리는 약2Km에 불과하지만 교통이 불편해 이 폭포를 찾는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삼부연폭포를 지나는 4번 도로는 폭포 바로 옆 터널을 지나 용화저수지까지 이어집니다.

 

   터널 앞에서 하차하여 기사분에 추가요금을 드릴 테니 10분만 기다려 달라고 청하고, 길을 건너 전망대에서 삼부연폭포를 조망했습니다. 맨 아래 소()의 물이 짙푸른 색깔을 띠고 있는 것은 삼부연폭포 좌우의 암벽이 회백색의 말끔한 화강암이 아니고 표면이 울퉁불퉁한 검은 색의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그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길옆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이 폭포는 중생대쥐라기(17천만년전)에 암석을 뚫고 들어온 마그마에 의해 만들어진 복운모화강암이 발달하여, 암석의 절리(Joint)를 따라 폭포의 방향이 3단으로 바뀌면서 형성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맨 아래 소에서 위쪽으로 눈을 옮기자 20m 높이의 3단 폭포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위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인지, 기암절벽의 계곡에서 떨어지는 물기둥이 바위에 부딪쳐서 꿈틀거리며 용솟음치는 물거품이 일대장관을 이루고 있다는 안내문의 묘사가 조금은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 중의 한 분으로 숭앙받는 겸재 정선(정선, 1676-1759)선생이 금강산 유람 후에 그린 해안전신첩에 삼부연도를 담았을 만큼 경관이 뛰어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이 폭포가 철원8경으로 지정되었고, 국가지질공원의 지질명소로도 인증되었을 뿐만 아니라, 2013년 미국의 CNN에서 이 폭포를 한국의 아름다운 40곳 중의 한 곳으로 선정했을 것입니다.

 

   데크 계단을 따라 내려가 소의 물에 손을 담가보면서 궁예가 철원을 태봉의 도읍으로 삼을 때 이 소에 살던 용 세 마리가 승천했다는 전설을 떠올렸습니다. 장마철이 지나서인지 용 세 마리가 살았을 만큼 소가 깊지도, 넓지도 않아 보였지만, 산위에서 물이 계속 흘러내려오는 것으로 보아 지난 천년 동안 아무리 가뭄이 심하게 들어도 한 번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마냥 헛소리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심하게 가물면 이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내온 것도 위 전설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소에서 도로로 올라가 3단 폭포의 전경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기다리는 택시를 타고 승일교로 이동하는 것으로 삼부연폭포 탐방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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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가본 폭포 중의 가장 큰 것은 북미의 나이애가라 폭포입니다. 이 폭포의 거대함에 입이 딱 벌어졌고, 물 떨어지는 소리가 하도 커서 크게 소리를 질러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폭포수에 걸쳐 일곱 가지 색을 발하는 무지개의 영롱함은 규모가 턱없이 작은 우리나라 폭포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폭포와 관련된 전설 중에 애잔한 비화와 관련된 것이 많은 것은 그 규모가 작아서일 것입니다. 슬픈 사연을 안고 떨어져 죽기에 좁지 않을 정도의 규모만으로는 폭포를 보고 웅대한 기상을 느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나마 백두산에 장백폭포가 있고, 설악산에 토왕성폭포가 있어 우리민족의 불굴의 기개가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이어져나가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백두산의 장백폭포는 1999년 집사람과 함께 다녀온 곳으로, 그것이 둘이서 다녀온 마지막 해외나들이였습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