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명소 탐방기3(지촌천-산소(0₂)길 )
*탐방일자 : 2020. 5. 1일(금)
*탐방코스 : 사창리터미널-지촌천 곡운구곡-오탄자연학교-상규교
-지촌삼거리-연꽃마을-산소길-원천낚시터-하남면사무소
*탐방시간 : 9시26분-19시12분(9시간46분)
*동행 : 문산중 14회 황규직/황홍기 동문
이번에 중학교동창 두 명과 함께 걸은 길은 평화누리길이 아닙니다. 작년 12월 강원도 화천의 사창터미널에서 탐방을 마친 평화누리길을 화천읍내 화천대교까지 생각지 못한 중국발 코로나 발발로 저 혼자서 진행했습니다. 사창터미널을 출발, 만산고개-구운천-구은교-장촌삼거리-토고미마을-용산교를 차례로 거쳐 화천대교에 이르는 평화누리길은 두 번으로 나누어 걸었습니다.
이 친구들과 반 년 만에 다시 나선 탐방코스를 사창터미널-곡운구곡-지촌삼거리-연꽃마을-동구레마을-붕어섬-화천대교의 남쪽 길로 정한 것은 지난 번 혼자서 북쪽 길을 이어가, 이번에는 남쪽 길로 가보고 싶어서였습니다. 화천군의 평화누리길이 혼자 걸은 북쪽 길로 확정된 것은 아직 아닙니다. 언제고 평화누리길이 확정되어 완전히 개설되면 그때 가서 정식으로 다시 걷기로 하고, 이 번에는 지촌천과 북한강을 수변 길로 이어 걸을 생각으로 남쪽 길로 탐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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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9시26분 사창터미널을 출발했습니다. 터미널 출발 25분이 지나 일광교를 건너자 북쪽에서 흘러내려오는 사창천이 지촌촌에 합류되는 합수점이 바로 옆에 보였습니다. 도마치봉(?)에서 발원한 지촌천은 굽이진 계곡을 따라 흐르는 것이 구불구불 뱀이 기어가는 형상과 닮은 사행천입니다. 지촌천의 빼어난 경관에 인문학이 더 해져 만들어진 것이 조선 후기의 사대부 김수증이 경영했던 곡운구곡으로 그 거리는 5Km 정도 됩니다. 작년 8월 혼자서 제1곡부터 9곡까지 순서대로 탐방하고 「화천명소탐방기2(곡운구곡)」이라는 이름의 기행문을 작성해 제 블로그에 올려놓았습니다. 이번에는 지촌천을 따라가며 9곡부터 시작해 역순으로 탐방했습니다. 첫 번 째 들른 제9곡 첩석대는 8곡 용의연과 함께 러브팜 캠핑지 안의 지촌천변에 자리해 있었습니다. 코로나의 빠른 전파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느라 뜸했던 바깥나들이가 코로나가 진정세로 접어들자 가족과 함께 온 젊은이들로 러브팜 안이 북적댔습니다. 지촌천을 따라 걸으며 7곡 명월계, 6곡 와룡담, 5곡 명옥뢰, 4곡 백운담을 차례로 들렀으나 작년 8월에 와보아서인지그때만큼 감흥이 일지 않았습니다.
11시40분 곡운구곡의 제3곡인 신녀협 쉼터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곡운구곡의 유일한 쉼터인 신녀협에는 지촌천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가 놓여 있고, 정자도 세워져 있어 쉬어갈 만 합니다. 김밥으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가게에서 막걸리와 맥주를 사들어 입가심을 하고나자 몸이 나른해져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출렁다리를 건너며 내려다 본 지천촌의 반석에 움푹 파진 포토 홀(pot hole) 여러 개 보였습니다. 포트 홀이란 암반으로 이루어진 하천의 바닥에 하수의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원통모양의 구멍을 이르는 것으로, 돌개구멍이라고도 합니다. 제2곡인 청옥협을 거쳐서 다다른 제1곡의 방화계에 다다른 시각이 13시3분이었습니다. 방화계를 막지나 춘천 땅으로 들어선 지촌천은 계속해 동쪽으로 굽이져 흘렀습니다. 산 속 깊숙한 오지에서 지촌천이 맞이한 5월은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듯 활기찼습니다. 굽이져 흐르는 지촌천이 바위에 부딪치며 내는 물소리가 크게 들렀고, 진초록의 수목들이 뿜어내는 기운 또한 더할 수 없이 싱그러웠습니다. 방화계 출발 30분쯤 후 놀미계곡물이 지촌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곳을 막 지나 만월고개로 향한 것은 남쪽으로 멀어지는 지촌천을 따라 난 길이 따로 보이지 않아서였습니다.
14시27분 만월고개에 올라섰습니다. 만월고개 쉼터에서 남쪽을 조망하자 오탄3리와 오탄2리를 가르며 굽이져 흐르는 지촌천이 저만치 낭떠러지 아래로 아주 작게 보였습니다. 장수마을 오탄2리와 언덕쉼터를 차례로 지나 지촌천을 다시 만난 곳은 15시경에 건넌 상규교였습니다. 상규교를 건너 지촌천과 같은 방향으로 걸은 것은 10분 남짓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북쪽으로 흐르는 지촌천과 다시 헤어져 56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진행해 오탄교회를 지난 시각이 15시26분이었습니다. 잔잘고개에서 56번 도로를 따르지 않고 지름길인 왼쪽 샛길로 내려갔습니다. 오탄교에 조금 못 미친 곳에서 5번 도로를 따라 걸어 지촌삼거리에 도착한 시각은 16시30분이었습니다. 현지사 쪽으로 진행하다가 이내 왼쪽 마을로 내려가 논둑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천변에 이르자 강폭이 눈에 띄게 넓어졌는데, 이는 지촌천이 이 곳에서 북한강에 합류되어서입니다.
17시2분 지촌천과 북한강의 합수점 위에 놓인 시멘다리를 건넜습니다. 다리 건너 남쪽으로 조금 걸어가 연꽃 단지로 들어섰는데, 아직은 철이 일러 연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강둑 너머 북한강의 풍광이 참으로 볼만했던 것은 눈앞에 펼쳐진 북한강이 생각보다 훨씬 넓어서였습니다. 이는 말고개 너머 춘천 땅에 축성된 북한강댐이 물을 담고 있어서일 것입니다. 주변의 산들이 높아 북한강을 자연의 강으로 고스란히 남겨두었다면 그윽하기는 했을지 몰라도 이토록 가슴이 확 트이는 듯한 느낌은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연꽃 단지를 지나 강변에 설치된 데크길로 올라서는 것으로 화천이 자랑하는 산소(0₂)길로 들어섰습니다. 연꽃 마을에서 시작되는 산소(0₂)길은 붕어섬을 지나 화천댐에 이르기까지 강변길로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원천리까지만 걷고 나머지는 다음에 한 번 더 걸으면 산소(0₂)길은 끝까지 다 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데크 길로 들어서자 동행한 한 친구가 힘들어 하는 기색이 역력해, 일단 동구레마을까지만 걸어가고, 거기에서 택시를 부르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틈틈이 사진을 찍으면서 진행했습니다. 데크 길은 왼쪽으로 확 꺾이어 북쪽으로 이어지면서 강폭이 좁아졌습니다. 저녁 햇살이 소리 없이 내려앉은 북한강의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노라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금광굴을 지나 동구레마을에 도착한 것은 18시20분으로 어둠이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19시12분 화천군의 하남면사무소가 위치한 원천리에 도착해 5만보가 넘는 장거리 걷기를 마쳤습니다. 동구레마을에 도착해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북한강의 수변길이 포장도로임을 확인하고 택시를 부르려하자 힘들어 했던 친구가 걸을 만 하다고 해 그냥 걸었습니다. 견물생심이라고 도로 변의 깔끔한 아쿠아틱 리조트를 사진 찍고 나자 하룻밤 묵어가고 싶은 마음이 동했습니다. 저는 이제껏 거의 모든 나들이는 철저하게 계획을 세워 떠났기에 어디가 참으로 좋다고 해서 가던 길을 멈추고 하루를 쉬어 간 적이 없습니다. 이는 1대간9정맥을 대부분 혼자서 종주하면서 굳어진 습관이어서 이제 와서 고칠 수도 없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여행을 다녀오고, 또 여행기도 쓰지 말자고 마음을 다져 먹은 일이 여러 차례 있지만, 실제로 그리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원천 낚시터를 지나 면사무소로 질러가는 마을길로 들어섰습니다. 가옥과 길, 울타리가 하도 깨끗해, 농사를 짓는 시골마을이 이리 깔끔해도 되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둠보다 조금 빨리 원천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는데, 거리가 조성되어 있지 않고 음식점도 보이지 않아 면소재지로는 너무 초라해 보였습니다. 인근 슈퍼에서 빵과 술을 사들며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다가 밤8시15분 경 춘천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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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 고즈넉한 강변길을 걸으며 마음의 평정을 얻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복을 받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짬을 내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걸으며 주변 풍광도 마음껏 즐기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칠십을 훌쩍 넘긴 적지 않는 나이에 그래도 먹고 살만 하고 건강을 잃지 않아 가능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들 합니다. 제가 북한강변을 걸으며 흡족해 하는 이면에는 알게 모르게 지불한 비용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름 해서 점심 값이라 불러도 좋은 비용과 대비해서 편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에, 춘천댐을 막았을 것입니다. 높이 40m, 길이 453m, 총저수용량 1.5억톤, 시설발전용량 57,600Kw 규모의 춘천댐 건설로 얻어지는 이익이 농경지 유실과 원래 환경 파괴에 따른 손실보다 컸기에 완공 55년이 지나도 별 문제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댐이 건설된 1965년에는 살림 형편이 넉넉지 못해 기대하지 못했을 관광효과도 이제는 먹고 살만해 따져볼 만 할 것입니다.
모든 강은 원래의 자연 상태로 보존해야 한다는 환경지상주의자들의 주장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시인 김용택님 덕분에 그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진 섬진강을 따라 걸으며 확인 한 것은 댐은 하나 밖에 안 되지만 보는 수 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섬진강에 손을 대지 않았다면 그래서 보를 설치하지 않았다면 주변 평야에 물을 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섬진강이 온통 잡목과 갈대로 덮여 강둑에서도 물 흐름이 거의 보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섬진강댐을 건설해 저장한 물을 산을 뚫고 김제평야로 보내지 않았다면 호남이 과연 곡창지대로 자림 매김 했을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강 속의 모래톱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강의 대부분에 물이 충분히 흘러 모래톱이 드물게 보일 때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경험한 바로는 제 고향 문산천에 물이 충분히 흐르지 않아 큰비가 오지 않으면 징검다리로 물을 건넜습니다. 당연히 보가 설치되지 않아 인근 논에 물을 댈 수 없었고, 그래서 소출이 적어 배를 곯려야 했습니다. 그런 것이 낭만적이고 자연이 잘 보존된 것이라고 칭찬할 뜻이라면 농업용수가 부족해 모를 낼 때 마다 물싸움을 하는 것을 시골의 미풍양속이라고 주장해야 옳을 것입니다.
강을 어떻게 보존하고 어느 정도 손을 댈 것인가는 전문가들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이지만, 이 또한 진영논리에 갇혀 서로 반대만 일삼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답은 보존이냐 개발이냐의 양 극단에 있지 않고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저 같은 문외한들을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해서 결정할 일이 아닌 것은 이런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도 전문가들의 역량과 소신을 믿고 있어, 중간에 그 과정이 매끄럽게 진행되지는 못해도 종국에는 잘 해결되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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