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명소탐방기1(개심사)
*탐방일자:2020. 3. 28일(토)
*탐방지 :충남서산시소재 개심사
*동행 :서울사대 원영환/이상훈 동문
3월이 가기 전에 남쪽으로 내려가 봄을 맞고자 원영환, 이상훈 두 대학동문과 함께 봄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제가 사는 경기도 군포에는 개나리와 산수화가 만발해 이미 봄이 다가와 있음을 체감할 수 있지만, 아직은 나무에 물이 오르지 않아 파릇파릇한 나뭇잎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번 봄나들이의 최종 목적지는 제가 강줄기를 걷고 있는 섬진강의 옥정호입니다. 이 교수의 제안으로 하루 먼저 출발해 서산의 개심사를 둘러본 후 , 전라북도 고창으로 옮겨 무장에서 일박하고, 다음 날 섬진강의 옥정호를 에워싸고 있는 산길을 걷는 것으로 봄나들이 코스를 잡았습니다.
3월28일 아침10시 군포의 당정역에서 만나 이상훈교수 차로 충남서산의 명찰인 개심사로 향했습니다. 군포 출발 2시간이 채 안지나 서산 땅에 이르렀습니다. 드넓게 펼쳐진 나지막한 구릉에 넓게 자리한 목장을 보노라니, 14년 전 금북정맥 종주 때 서산의 한 목장을 지나면서 유유자적하며 노닐던 우공들을 지켜보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개심사 전방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몇 분을 걸어 상왕산개심사(象王山開心寺)의 일주문에 도착한 시각은 12시 정각이었습니다.
서산의 상왕산개심사(象王山開心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입니다.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14년인 서력654년에 혜감(慧鑑)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이 절의 원래 이름은 개원사(開元寺)였는데, 고려 충숙왕 2년(1350)에 처능(處能)이 중창하면서 개심사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조선 성종6년(1475)에 중창되었고, 영조16년(1740)에 중수한 개심사를 전면적으로 보수한 것은 65년 전인 1955년입니다.
일주문을 지나 시멘트로 포장된 넓은 산길을 따라 서서히 고도를 높여갔습니다. 개심사가 자리한 상왕산은 아직 겨울을 털어내지 못해 여전히 산색(山色)이 칙칙했습니다. 제가 걸어 오르는 길이 독고개에서 개심사를 거쳐 장승배기에 이르는 전장38Km의 '내포(內浦) 문화숲길'이라는 것을 안 것은 안내판을 보고나서입니다. 이내 돌계단 길로 들어선 후 7-8분을 걸어 오르자 작은 연못이 보였습니다. 연못을 지나 범종각(梵鐘閣)에 이르자 곧바로 서있지 못하고 S자 모양으로 휘어진 네 개의 기둥이 범종보다 더 눈길을 끌었습니다. 범종각의 휘어진 기둥을 보면서 잠시 착각해, 이 기둥들이 무거운 지붕을 받쳐내느라 휘어진 것이 아닌가 했습니다.
정면의 문루(門樓)에 ‘象王山開心寺’(상왕산개심사) 라는 큰 글자의 현판이 걸려 있는 5칸의 기다란 건물은 안양루(安養樓)입니다. 대웅전은 안양루의 오른편에 붙어 있는 자그마한 해탈문을 들어서야 보입니다. 대웅전의 중심선상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비껴 들어오도록 해탈문을 배치한 것은 일상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안마당 북쪽의 한 가운데 자리한 대웅전은 석가여래상을 모시는 이 절의 중심적인 전각입니다. 정면3칸, 측면3칸의 자그마한 맞배지붕 다포집인 대웅전은 규모가 작은 편으로 마당에 자리한 다소곳한 5층석탑과 잘 어울려 보기에 좋았습니다. 개심사의 대웅전 건물을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이 건물이 우리나라 사원의 건축사상(建築史上)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어서입니다. 고려시대까지 주로 지어진 건축술은 주심(柱心) 위에 공포(拱包)를 구성하는 주심포식 건축이었다고 합니다. 고려 말에 이르러 주심만이 아니라 기둥과 기둥사이에도 공포를 얹는 다포계(多包系) 건축이 새로이 등장하여 두 계통을 이루게 되고, 이 두 양식의 혼합도 나타났다고 합니다. 최완수님은 저서 『명찰순례 2』에서 개심사의 대웅전은 주심포식건물의 법식과 기법을 따른 전형적인 외형의 맞배지붕구조이면서도 공포(拱包)는 다포(多包)로 만든 절충식의 건축술로 지은 것이라 했습니다. 이와 같이 개심사의 대웅전이 건축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은 절충식 조형의식의 선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어서입니다. 참고로 공포(拱包)란 기둥 위에 얹혀서 건물의 천장을 높여주고 길게 뻗어나온 서까래와 치마의 하중을 받아 그 무게를 기둥에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는 복잡한 결구(結構)의 구조물로서, 건물의 역학적 구성상 중요한 부재를 이르는 것이라 합니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안양루와 대웅전 사이에 좌우로 들어선 건물은 심검당(尋劍堂)과 지금은 스님들이 수도하는 무량수각입니다. 성종15년(1485)년 중창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심검당은 본래 정면3칸, 측면3칸의 일자형 건물인데 여기에 'ㄱ'자형의 방을 이어놓아 종무소로 쓰고 있습니다. 심검당으로 소개하는 안내판에는 “구조는 기단석 위에 자연석의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이 가미된 둥근기둥을 세웠으며, 기둥가운데 공포를 쌓아올려 지붕의 무게를 모두 기둥에 받도록 한 주심포(柱心包)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적혀 있습니다.
명부전을 둘러본 후 경내를 빠져나가 백두산의 사스레나무보다 더 몸체를 비비꼰 커다란 배롱나무를 사진 찍었습니다. 볼록한 봉분의 깔끔한 묘를 지나 소나무 숲사이로 나있는 아스팔트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가면서 조금 아쉽다 싶었던 것은 철이 일러 벚꽃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중국발 코로나로 앞으로도 얼마간은 모임을 삼가는 등 움츠리고 살아야할 것 같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봄나들이에 나선 것도 너무 오래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는 마음조차 쪼그라드는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되어서였습니다. 서산의 명찰 개심사(開心寺)의 경내를 걸으며 모처럼 가슴을 활짝 열고 몇 번이고 심호흡을 했습니다. 혹시라도 인간의 오만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불러왔다면 겸손한 자연의 힘을 빌려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다음 행선지를 섬진강 옥정호 산길을 걷는 것으로 잡은 것도 같은 뜻에서였습니다.
개심사에 터를 내준 상왕산은 이 절 뒤편으로 십리 남짓 떨어진 곳에 솟은 봉우리를 지칭합니다. 가야산의 절반 높이의 상왕산 봉우리는 개심사 남쪽으로 석문봉과 이어져 가야사(伽倻寺) 옛터를 안고 있는 가야산의 주봉과 이어집니다. 저는 2006년 혼자서 금북정맥을 종주할 때 석문봉과 가야산을 잇는 능선 길을 지난 적이 있습니다. 가야산은 금북정맥이 서남으로 길게 내리뻗으며 서해바다로 빠져들다가 돌연 위쪽으로 치솟아 생겨난 산입니다. 이 산 동쪽 일대의 물은 모두 삽교천으로 모여듭니다. 이렇게 모여든 물은 북쪽으로 흘러 바다로 흘러들어갑니다. 최완수님의 저서 『명찰순례 2』는 이 물줄기를 한반도 유일의 북류수(北流水)라고 적고 있습니다. 유일한 북류수인 삽교천 유역의 내포(內浦) 일대에는 홍성, 서산, 예산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최영 장군, 성삼문 선생, 윤봉길 의사, 김좌진 장군, 한용운 스님 등 충의의 횃불을 높이든 애국지사들을 많이 배출한 것은 개심사를 품고 있는 가야산의 정기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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