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고방산정류장-동면교회-임당2리삼거리
*탐방일자: 2020. 11. 26일(목)
*탐방코스: 고방산정류장-도고터널-동면교회-임당초교
-월운저수지-임당2리삼거리
*탐방시간: 9시36분-14시25분((4시간49분)
*동행 : 나홀로
강원도의 양구 땅은 해방 후 북한 땅이었다가 한국전쟁 때 되찾은 수복지구입니다. 수복(收復)이란 잃었던 땅을 되찾는 것이어서 전쟁 없이 평화롭게 수복하기란 실로 기대하기 어려운 지난한 일입니다. 파주-연천-철원-화천-인제-속초-고성으로 이어지는 휴전선 인근의 땅은 거의 다가 6.25전쟁 때 수복한 땅으로 남북이 모두 피 흘려 싸운 격전장이기도 합니다.
이번 평화누리길을 탐방하는 길에 양구군동면의 월운리에 자리한 ‘피의능선 전투전적비’를 찾아가 참배했습니다. 피의 능선이란 양구군 북방의 983고지, 940고지, 773고지를 잇는 능선을 이릅니다. 1951년 8월 몇 차례의 격전 끝에 이 능선을 쟁취했는데 이 전투를 취재한 종군기자들이 적군과 아군의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피의 능선’으로 불렀고, 이 능선에서 벌어진 전투를 ‘피의 능선 전투’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피의 능선(Blood Ridge) 전투'에 관한 내용은 안내판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한국전쟁의 휴전에 대비하여 중요 요충지를 확보할 목적으로 캔자스선 북방10-20Km 지역에 위치한 수리봉 일대를 확보고자 1951년8월28일에사 9월7일까지 열흘간 벌였던 치열한 전투를 이릅니다. 미 제2사단에 배속된 보병 제5사단36연대는 북한군 제2군단 및 제5군단 예하 4개 사단과 치열한 공방전 끝에 적군1,480여명을 사살, 70명을 생포하여 탈환에 성공했습니다. ’피의 능선 전투전적비‘는 양구군백두산부대 참전전우회가 2001년6월2일 이곳 월운리에 이전해 세운 것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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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36분 고방산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고방산정류장에서 두타연을 거쳐 임당2리삼거리로 이어지는 평화누리길은 코로나19로 출입이 금지되어 언제 탐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이 길은 나중에 친구들과 함께 걷기로 하고, 이번에는 저 혼자 남쪽의 동면교회 쪽으로 돌아가 다음 구간이 시작되는 임당2리삼거리까지 길을 이어놓을 생각으로 산본의 집을 나섰습니다. 양구터미널을 출발할 때만 해도 안개가 잔뜩 끼어 차도를 따라 걷는 것에 신경이 쓰였는데, 햇살이 퍼지면서 안개가 가셔 다행이었습니다. 지난 번 긴 시간을 따라 걸었던 수입천은 고방산교를 건너면서 갈라졌지만, 언제고 두타연 길을 걸을 때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도고터널을 향해 460번 평화로를 따라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다 길가에 설치된 양구지진관측소를 보았습니다. 간성과 철원, 그리고 양구에 지진관측소를 세운 것은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 발생하는 인공지진의 강도를 보다 가까운 곳에서 측정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굽이진 길을 걸어올라 햇살이 퍼진 뱅이골공원에 도착한 시각은 10시28분으로, 이 공원에서 잠시 쉬면서 따끈한 커피로 속을 데운 후 주변 풍광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1시16분 전장600m의 도고터널을 통과했습니다. 뱅이골공원에서 도고터널로 이어지는 굽이진 길을 걷노라니 대학교에 입학해 한 학우에게서 배운 동요 ‘꼬부랑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한태근 님이 가사를 짓고 곡을 만든 이 노래의 길지 않은 가사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고 있네/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고개는 열두 고개/ 고개를 고개를 넘어 간다” 의 핵심어는 여덟 번이나 나오는 ‘꼬부랑’입니다. ‘꼬부랑’이라는 단어가 상징하는 것은 자연스러움과 비효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나이 든 할머니가 허리가 굽어져 꼬부랑 할머니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평지가 아닌 산에다 낸 고갯길이 꼬부랑길인 것도 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꼬부랑길을 걸어 열 두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 정감 있어 보일지는 모르지만, 꼬부랑 할머니에게는 너무나 고된 비효율적인 길입니다. 이 길을 효율적인 길로 바꿔 놓은 것이 직선의 고가도로와 터널입니다. 이렇게 해서 꼬부랑 고갯길은 곧게 펴졌지만, 꼬부랑 할머니의 등은 여전히 굽어 있습니다. 누가 꼬부랑 할머니의 굽은 등을 펴드릴 수 있다면 마음 편히 ‘꼬부랑 할머니’ 노래를 부를 수 있을 텐데 그렇지 못해 못내 아쉽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등도 굽기 시작해 십 수 년 후면 꼬부랑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됩니다.
도고터널과 멀지 않은 높은 곳에 자리한 음식점 ‘두타연가는길’이 제법 큰 것으로 보아 도고터널을 지나는 차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도고터널 아래로 새 터널을 내는 공사가 끝나면 문을 닫게 될 것이 확실한 이 음식점을 사진 찍은 후 전장600m의 도고터널을 통과했습니다. 도고터널 아래로 터널을 새로 내는 공사장을 오가는 덤프트럭이 자주 지나 갓길이 없어진 차도를 따라 내려가는 길이 매우 조심스러웠습니다. 터널 위 고개가 ‘학령’이었음을 알려주는 표지석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자 맞은편 멀리 길게 뻗은 능선이 엄청 높아 눈길이 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삼거리에서 양구읍으로 향하는 직진 길을 버리고 왼쪽 동면교회 가는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12시35분 언덕 위에 자리한 우뚝 솟은 동면교회를 지났습니다. 삼거리에서 동면교회로 가는 차도는 다시 포장한지 얼마 안 되어 마치 새로 낸 길 같았습니다. 군부대 정문을 지나 올라선 나지막한 고갯마루에 올라 한적한 곳에서 햄버그를 꺼내들어 점심을 먹었습니다. 고개를 넘자 터널을 지나 내려가며 보았던 늠름한 능선이 더욱 가까이 보였습니다. 왼쪽의 가칠봉에서 오른 쪽의 대암산으로 이어지는 이 능선은 해발고도가 1,000m를 오르내리는 고봉들이 여럿 있어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위용이 느껴졌습니다. 강원레미콘 공장을 지나 덕곡2리 마을 입구에 이르자 태양광설치를 결사반대 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마을주민들이 집단으로 반대하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 대단위의 태양광발전단지가 들어설 모양입니다. 오른쪽으로 남면 길이 갈리는 덕곡2리삼거리의 중심 되는 건물은 단연 동면교회로 규모에서는 웬만한 도시의 교회에 뒤질 것이 없겠다 싶어보였습니다. 덕곡2리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31번 도로를 따라 북진하다가 길가에 자리한 슬라브 지붕의 제분소 건물을 보았습니다. 하얀 벽에 금이 갔지만 언뜻 보아 가동 중이 아닐까 하고 착각할 정도로 외관이 깔끔했습니다. 이 제분소의 연륜을 말해주는 ‘황금제분소’ 간판에 녹이 잔뜩 슬은 것으로 보아 문을 닫은 지가 꽤 오래된 것이 확실합니다. 덕곡2리삼거리에서 동면의 면사무소까지 1.4Km를 걸어가는 데 40분가량 걸린 것은 하얀 눈이 쌓인 도솔산을 사진 찍고자 자주 발걸음을 멈췄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면사무소, 농협, 보건소, 치안센터와 우체국 등 공공건물이 몽땅 다 들어선 면소재지의 번화한(?) 거리를 지나 동면게이트볼장에 이른 시각은 13시14분이었습니다.
14시25분 임당2리삼거리에서 24번째 평화누리길 탐방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런 벽촌에 게이트볼장이 다 있을 정도로 복지시설이 갖춰진 것은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고 국민들이 먹고 살만해진 2000년 이후의 일로 알고 있습니다. 월운천변 소공원의 정자에 앉아 마지막 쉼을 가진 후 임당2교를 건너 월운천을 따라 걸었습니다. 4시간 가까이 차도를 따라 걷다가 천변 길로 바꿔 걸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진 것은 달리는 차들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서였습니다. 벽면이 새하야 산뜻해 보이는 소형교회인 원당교회를 지나 월운저수지 제방에 올라서자 산양증식복원쎈타로 가는 산길이 보였습니다. 이 길이 도솔산으로 이어지는 평화누리길인 것 같은 데 지난 달에는 이 길을 몰라 임당2리삼거리에서 453번 도로를 따라 걸어올라 돌산령터널로 산을 넘었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월운저수지를 둘러보고 왼쪽 차도 건너 .피의 능선 전투전적비'를 찾아갔습니다. '피의 능선 전투.에서 전사한 장병들의 넋을 기린 후 남쪽으로 내려가 임당2리삼거리에서 하루 탐방을 마무리하고 10여분을 기다렸다가 버스에 올라 양구터미널로 이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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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능선 전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캔자스선(Line Kansas)”을 알아야 합니다. 1951년 3월 미8군 사령관 리지웨이는 미국정부가 휴전회담을 제의하게 되면 8군이 지역방어를 해야만 할 경우가 발생할 수 있음에 유의하여, 8군이 38선을 넘어 되도록 북쪽으로 전선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언명했습니다. 철의 삼각지인 평강, 철원, 김화지역을 목표로 진격을 계속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먼저 임진강에서 화천저수지를 거쳐 양양으로 이어지는 “캔자스선(Line Kansas)"까지 진출하는 작전인 ‘Operation Rugged’를 수행할 뜻을 확실히 했다고 온창일박사는 저서 『한민족전쟁사』에 적고 있습니다.
'피의 능선 전투’는 국군과 연합군은 전사 130여명 등 800여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북한군은 약1만5천여 명을 잃은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국군과 연합군이 북한군에 대승한 전투입니다.
국군과 연합군은 캔자스선으로 그어 놓은 영양 북부보다 훨씬 북쪽인 속초와 고성 땅을 마저 수복했습니다. 이는 ‘피의능선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펀치볼 공격작전’ 등 양구 땅에서 치렀던 혈전에서 모두 승리한 덕분입니다. 국방부가 2000-2015년의 15년 동안 유해발굴사업을 벌여 수습한 681분의 유해를 국립현충원에 보내 모시게 한 것은 아주 잘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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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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