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해안면복지회관-평촌교-서흥1리버스정류장
*탐방일자: 2020. 10. 16일(금)
*탐방코스: 해안면복지회관-만대천침사지-가령촌교-다릿골시험장갈릴길
-평촌교-평화공원-서흥1리버스정류장
*탐방시간: 7시36분-15시33분(7시간58분)
*동행 :문산중14회 황규직/황홍기 동문
해뜨기 얼마 전 양구의 해안(亥安)은 거리에 차량이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적막감이 감돌았습니다. 해안을 둘러싸고 있는 드높은 산줄기 중턱에 새하얀 실안개가 걸쳐 있어 몽환적인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저 산 너머가 바로 북한 땅으로 최전방지역인 해안에서 두려움 대신 평온함이 느껴진 것은 굳건히 휴전선을 지켜주는 우리 국군장병들을 신뢰해서입니다. 해안시내 로터리에 세워진 해안재건지비(亥安再建之碑)에는 아래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랑캐를 무찔러 정의의 피를 뿌린 이 고장 쑥대우거진 옛 터전에 단기4289년 4월 헐벗고 굶주린 전체 농민 160세대가 삶의 보금자리를 찾아 도라 왔으나 한설과 염천과 폭우에도 몸 둘 곳조차 없어 신음하매 이에 6사단장병은 슬기로운 뜻이 뭉쳐 그들에게 주택80동과 학교1동 공공시설4동을 이룩하여 자유와 행복의 마을을 이룩하였다.
단기4289년8월5일 대한육군제6사단장 이백우“
저는 위 글에서 다음 몇 가지를 읽었습니다. 첫째, 70년 전 북한의 침략으로 발발한 한국전쟁 중 여기 해안에서 오랑캐, 즉 중공군과의 혈전이 벌어졌고, 그 전투에서 우리 국군이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그 전투가 다름 아닌 펀치볼전투입니다. 둘째, 해안은 한국전쟁에서 승전해 되찾은 수복지구로 휴전 후 3년이 지난 1956년(단기 4289년)에야 외지의 농민들이 이곳 민북마을에서 살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이들이 이주해와 정착하기까지 겪었을 고생이 눈에 선합니다. 셋째, 우리 국군이 정착민들에 주택과 공공시설은 물론 학교도 지어준 것입니다. 이는 대한민국정부가 의무교육을 얼마나 중시했는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짧은 글에서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고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데 있음을 재삼 확인했습니다. 대한민국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꾸준하고도 성실하게 실행해 온 덕분에 국민들이 안전하고도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즉 북한은 국가가 할 일을 망각하고 오로지 국민 위에 군림해 일당독재를 펴왔기에 북한의 주민들은 아직도 절대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밥과 고깃국을 먹을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침7시36분 해안면복지회관과 인접한 펀치볼황토민박집을 출발했습니다. 아침6시경 해안 시내로 나가 식사를 한 후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 평화누리길 탐방에 나섰습니다. 바로 앞 사거리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453번 해안서화로를 따라 걸은 지 3-4분이 지나자 눈에 익은 거구의 그리팅맨(Greeting Man)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해왔습니다. 작년 여름 시티버스로 양구일대를 관광할 때 들렀던 양구전쟁기념관에 도착해 거대한 조각물인 그리팅 맨과 인사를 나눈 후 탱크 등 야외전시물을 사진 찍었습니다. 다 자란 파들이 가지런히 줄을 이루어 길가 밭을 덮고 있는 것을 보고 타작이 막 끝난 후 볏 가마로 가득 찬 곳간을 보는 듯한 풍요로움을 느꼈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따라 흐르는 만대천이 소양강에 합수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가령촌교에서 소양강의 제2지류인 인북천에 합류되는 것은 나중에 지도를 보고 알았습니다.
8시25분 만대천 침사지에서 잠시 멈춰 뒤쳐진 두 친구를 기다렸습니다. 시래기의 특산지답게 여기저기 밭들을 무 잎사귀들이 파랗게 덮고 있어, 단풍이 잘 들어 울긋불긋한 인근 산과색상이 잘 대비되었습니다. 453번도로를 따라 굽이져 흐르는 만대천은 해안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에서 발원한 것으로 여기 침사지에 이르기까지 고랭지 밭 등에서 발생하는 흙탕물이 유입되어 수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주는가봅니다. 이에 당국은 여기에 흙탕물을 줄이고 수생태계의 건강성을 회복하고자 토사유출저감시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안내판에 적힌 대로 약 29.6천의㎡ 부지에 침사지면적은 약17천㎡이고, 침사지퇴사면적은 8.5천㎡로, 유입된 빗물을 세 곳의 침사지를 거치는 과정에서 흙탕물을 침전시킨 후 맑아진 물을 다시 만대천에 방류하는 방식으로 정화하고 있음을 현장에서 확인했습니다. 해발고도 416m의 침사지 앞 삼거리에서 만대천과 헤어져 왼쪽 위 나지막한 고개를 넘은 후, 물골쉼터 입구를 지나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forest genetic resource reserve)에 다다랐습니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산림유전자보호구역이란 산림에 있는 식물의 유전자와 종 또는 산림생태계의 보전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구역을 이르는 것으로 북부지방산림청장이 안내판을 세우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 뻔 했습니다. 고개를 넘어 오른 쪽 아래로 파란 물이 급하게 흘러내려가는 인북천과 나란한 방향으로 진행해 인제군의 서화면에 발을 들인 시각은 9시1분이었습니다.
9시57분 만대천이 인북천에 합류되는 가령촌교를 건넜습니다. 양구군/인제군 경계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453번 해안서화로를 따라 진행해 가전리를 지나며 간간히 인북천의 물 흐름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어느 지역이 청정하다함은 공기만이 아니고 물도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지나온 해안일대는 공기는 더할 수 없이 깨끗하지만 물은 고랭지 밭 등에서 발생하는 흙탕물이 만대천에 유입되어 여기 가전리의 인북천 만큼 청정하지는 못합니다. 서화 전방12Km지점에서 시작된 오름길은 해발410m 대의 고갯마루에 설치한 대전차방어벽을 넘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고갯마루에서 15분을 걸어 내려가 지도에 나와 있는 가령촌교를 건너면서 지도상의 제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하늘 내린 인제’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대전차방어벽을 지나 가령촌교를 건너자 만대천의 물을 받아들여 세를 불린 인북천은 하천 폭이 넓어졌고 수량도 늘어나 하천다운 면모를 비로소 갖춘 듯했습니다. 시간만 넉넉하다면 진정한 청정지역인 여기 가전리의 인북천의 물가에 앉아 만산홍엽의 가을 산을 바라보며 시간을 낚아도 좋으련만, 갈 길이 멀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10시54분 다릿골시험장 갈림길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가령촌교를 지나 굽이져 흐르는 인북천을 걸으며 떠올린 것은 지난봄에 걸었던 화천의 곡운구곡입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가는 차량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 여기 인북천에서 사행천의 진면목을 찬찬히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서화 전방8km 지점을 지나 10여분 후 다다른 삼거리에서 폐쇄된 오른 쪽 후덕리 길로 가면 지도에 나오는 후덕교를 건널 것 같은데 탐방 길은 삼거리에서 직진 길로 이어졌습니다. 5-6분을 더 걸어 국방기술품질원의 다릿골시험장 길이 오른 쪽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도착해 점심을 들면서 20분여 쉬었습니다. 인제군에서 걸어놓은 ‘대북전단살포 및 관련물품 운반, 사용금지’ 플래카드를 보고 제 눈을 의심한 것은 금지대상이 대남전단이 아니고 대북전단이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보복으로부터 군민들을 보호하고자 취한 조치인 것 같은데 그런 대남도발은 우리 군이 맡아 대응할 일이고 인제군이 미리 겁먹어 북한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 참 소식을 전해주고자 애쓰는 탈북민단체들의 대북전단살포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접경지역인 경기도 파주에서 낳고 자란 저의 생각입니다.
12시7분 서화천이 인북천에 합류되는 평촌교를 건넜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다릿골시험장을 출발해 군부대를 지나자 도로변에 다소곳이 피어 있는 오상고절(傲霜孤節)의 하얀 들국화가 눈을 끌었습니다. 왼쪽으로 가전리 행 426번 도로가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 서화 전방 5Km지점에 이르러 평촌교를 건넜습니다. 왼쪽 위에서 흘러내려오는 서화천을 받아들인 인북천은 방향을 확 틀어 남쪽으로 흘러내려갔습니다. 평촌교를 건너자 인북천을 따라 낸 제방 길이 인제군에서 조성한 평화누리길이어서 비로소 차도를 벗어나 천변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보를 설치해 하천 폭이 넓어졌고 유량도 늘어 이제껏 따라 걸어온 인북천의 한적한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인제천리길 4구간의 안개덕이길과 겹치는 평화누리길을 따라 30.5km를 더 걸으면 원통에 닿게 됩니다만 이번 탐방은 10Km 가량 걸어가 설파교에서 끝낼 뜻입니다. 넓은 터에 자리 잡은 태양광발전단지를 지나 심적교에 이르자 '원통27.4km/양구9.2Km'의 표지목 상단에 평화누리길 안내판이 붙어 있었고 표지리본도 달려 있어 경기도의 평화누리길을 걷는 것처럼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14시12분 평화공원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하늘내린 인제접경권 평화누리길’은 전장이 74.3km이고, 고성의 통일전망대로 이어지는 누리길은 64.5Km입니다. 이번에 약17Km 남짓 걸으면 인제군의 평화누리길은 47Km가 남습니다. 심적교를 지나 수도권의 식수원인 한강의 수질오염을 막고자 한강 본류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의 인북천 천변에 하수처리시설을 한 것을 보고 먹고살만해야 환경을 제대로 돌볼 수 있다는 부국환경론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서화교를 거쳐 넓은 천변의 들판을 지나자 간이정자가 보여 쉬어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넉넉지 않아 욕망을 억눌러야 했습니다. 간이 정자를 막 지나 돼지열병의 전파를 막고자 천변에서 야산으로 이어 설치한 철조망 펜스 앞에 이르렀는데, 출입문이 열려 있어 이 문을 지나 산자락을 깎아 낸 천변 길을 걸었습니다. 돌들을 비스듬히 쌓아 만든 보를 지나 다다른 평화공원에서 잠시 멈춰 쉬었습니다. 옹기종기 현대식건물들이 모여 있는 조금 떨어진 서화시내는 눈길만 주었을 뿐 들르지 못했습니다. 천변을 따라 걷다보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시내를 그냥 지나쳐 탐방 길이 단조롭다는 흠도 있습니다.
15시33분 서흥1리 버스정류장에서 26구간의 평화누리길 탐방을 마무리했습니다. 평화공원에서 서흥1리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던 것은 산자락 바로 아래 설치한 천변의 데크 길이 지난여름 폭우에 끊기어서였습니다. 평화공원을 출발해 453번 도로를 따라 얼마간 걷다가 다리를 건너 천도1리마을로 들어섰습니다. 인북천 서쪽 제방은 중간에 끊긴 곳을 이어주는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천변 길을 걷지 못하고 차도를 따라 걷다가 정자 아래에서 천변 길과 다시 만났습니다. 얼마 후 먼저 간 두 친구가 앉아 있는 것이 보고 길이 끊겼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지난여름 폭우로 데크 길 곳곳이 파손됐거나 떨어져 나가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통과할 수 없지만, 맨 몸으로 지나가는 것은 가능하겠다 싶어 제가 앞장서 걸었습니다. 데크 길이 끝나고 시멘트길로 이어지면서 길은 더 이상 파손되지 않았지만 수마가 휩쓸고 간 흔적들은 여기저기에서 보였습니다. '원통20.2km/양구16.4km' 지점의 용늪팬션을 지나 굽이져 흐르는 인북천변 시멘트 길을 걸으면서 길가의 곱디고운 모래밭을 보고서 지난여름 저 잔 모래들이 떠내려가지 않고 자리를 지킨 비결이 무엇인지 새삼 궁금했습니다. 후동교를 건너 453번도로와 다시 만난 곳이 서흥1리 버스정류장으로, 이곳에서 10여분 기다려 원통행 버스에 몸을 싣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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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의 해안에서 서화로 이어지는 453번 해안서화로는 다시 한 번 걷고 싶은 길입니다. 아침 일찍 해안의 둘레산줄기를 감싸고 실안개가 실오라기가 풀리 듯 서서히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면서 시인 조지훈님이 노래한 서정시 ‘승무’의 춤사위가 저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구군을 벗어나 인제군으로 발을 들이면서 만난 인북천을 따라 걷는 길은 청정지역은 이런 곳을 이른다 싶었습니다. 공기 좋고 물 좋기도 쉽지 않은데 지나가는 차량들도 거의 없어 소음으로부터도 거의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청정지역을 걸었습니다. 데크 길이 부서진 현장을 보면서 인간의 지혜가 아직도 막강한 자연의 위력을 관리할 만큼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가을이 농익은 만산홍엽의 해안서화로를 걷고나자 이토록 가슴 벅찬 길을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도록 건각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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