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평화누리길 및 강화나들길/평화누리길 탐방기

평화누리길 탐방기22(평화의 댐-오천터널-오미 종점)

시인마뇽 2020. 11. 5. 17:26

*탐방구간: 평화의 댐-오천터널-오미 종점

*탐방일자: 2020. 10. 9()

*탐방코스: 평화의 댐-칠천교-천미리중대입구-오천터널

-오미 종점

*탐방시간: 1130-16(4시간30)

*동행  :문산중14회 황규직/황홍기 동문

 

 

  이번 평화누리길 탐방이 의미 있는 것은 이 길보다 먼저 생긴 평화의 댐에서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지난 612일 어룡동마을입구에서 시작한 21구간 탐방을 마친 곳이 평화의 댐이었기에 넉 달 만에 다시 찾은 셈입니다.

 

  제가 평화의 댐을 처음 찾아간 것은 1998년 여름입니다. 집사람과 함께 찾아간 평화의 댐을 보고 그 규모에 놀랐었는데,  지금은 규모가 더 커져 댐의 높이가 80m에서 125m로높아졌습니다. 국내 제1위인 소양강댐은 저수용량이 29.0억톤인 다목적댐이고, 제2위인  평화의 댐은 26.3억톤을 담을 수 있는 홍수조절용댐입니다.

 

  평화의 댐은 북한의 수공에 대비하고자 축조한 댐으로 3단계 공사를 거치는 동안 일곱 번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1단계 공사는 전두환대통령이 집권한 19872월 시작되어 19885월에 완공되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의 집권이 끝나고 1992년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전두환정권이 정권안보차원에서 조급하게 댐을 건설한 것은 과잉대응이었다며 2단계 공사를 중단했습니다. 김대중 정권 때인 20021월 북한이 임남댐의 물 3.4억톤을 방류해 평화의댐 증강공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다시 일었고, 그해 9월에 2단계공사를 시작해, 노무현정권 때인 200612월에 완공,  댐 높이를 80m에서 125m로 높였습니다. 이명박 정권 말기인 201211월 북한의 임남댐이 담수를 시작하면서 흙과 자갈로 만들어진 사력댐인 평화의 댐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시멘트 댐으로 강화하는 3단계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다음해인 201810월에 3단계 공사를 완공한 것이 오늘의 평화의 댐입니다.

 

  1130분 평화의 댐을 출발했습니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가을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은 날씨가 화창해서였습니다. 길이가 짧은 평화터널을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양구 전방40Km 지점의 양화터널 앞에 이르렀습니다. 이 터널을 빠져나오자 어서 오십시오 양구군라는 글이 새겨진 커다란 표지석이 저희를 반겨 맞았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댐하류공원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 460번도로인 평화로를 따라 북동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칠천교를 건너며 내려다본 천미천의 계곡물이 하도 맑아 물고기들이 살 수 있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460번 평화로는 북한 땅에서 흘러내려오는 천미천을 거슬러 올라가다 새터교를 지나고 천미교를 건너서야 더 이상은 들어갈 수 없는 천미천과 헤어졌습니다. 천미교에서 방향을 확 틀어 정남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면서 고도를 서서히 높여 갔습니다. 평화의댐 직원숙소를 지나자 어린 시절 고향마을에서 자주 보았던 아주까리가 길옆에 열려 있어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137분 양구 전방35Km 지점을 지났습니다. 460번 평화로를 따라 계속 고도를 높여가다 왼쪽으로 천미리중대로 가는 길이 갈리는 산중턱의 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가을 한낮의 감미로운 햇살과 새맑은 공기에 온 몸을 맡기고 같이 간 동창들과 환담을 즐겼습니다. 아스팔트 차도를 따라 걸어올라 양구 전방 35Km지점을 지나면서 올려다 본 하늘은 드문드문 떠 있는 흰 구름도 시샘을 할 만큼 쾌청했습니다. 이번 탐방의 끝점인 직연폭포를 12Km 남긴 지점을 통과한 시각은 145분으로 서둘러야 해 안에 다다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코로나만으로도 힘든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 Swine Fever)까지 발병해 입산을 금지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것을 보자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1448분 오천터널을 지났습니다. 전장1,296m의 오천터널을 통과하는데 20분이 걸렸으니 시속3.9Km의 빠르기로 걸은 셈입니다. 이토록 빨리 걸을 수 있었던 것은 터널 길이 경사가지지 않고 평평한데다 차가 지날 때면 소음이 엄청 커 서둘러 빠져나왔기 때문입니다. 평화누리길을 걸으면서 적설관측기가 설치된 것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본 계측기에서 측정되는 적설자료는 대설피해예방기초자료로 활용되오니 시설물보호에 협조하여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문이 실린 '적설관측 및 CCTV설치안내판에 세워진 것으로 보아 여기 양구군이 다른 지역보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것 같습니다. 양구터널에서 직연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완만해 주변 풍경을 돌아보면서 여유롭게 걸을 만 했습니다. 양구지역에 산양이 서식하고 있는 것은 길가의 철조망에 걸어놓은 이 지역은 천연기념물 제264호로 지정된 산양의 서식지입니다."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보고 알았습니다.  꽤 오래 산을 다녔는데도 십수년전 금수산에서 딱 한 번 만났을 정도로 산양은 희귀한 동물입니다.

 

  16시정각 오미 종점에 도착해 평화누리길 22구간의 탐방을 마쳤습니다. 1970년대만 해도 10월초쯤이면 단풍을 보러오는 사람들로 설악산이 북적댔는데 460번 평화로를 걸으면서 사방을 둘러보았는데도 단풍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1950년대 후반 초등학교를 다닐 때 위도가 36도선인 대구가 사과의 특산지라고 배웠는데, 이제는 38도선과 아주 가까운 제 고향 파주의 통일촌에서도 사과가 재배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간 지구온난화가 꾸준히 진행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높이가 20m이고 둘레가 3m나 되는 수령 200년의 소나무를 사진 찍으면서 높은 바위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소나무의 독야청청함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고도를 낮춰 오미리로 내려가면서 밭에 세워진 비닐하우스 터널(?)을 보았습니다. 양구 전방 31Km 지점을 지난 시각이 159분으로 4Km를 걷는데 2시간이 걸린 것은 오천터널을 빠져나와 점심식사를 하느라 반시간여 쉬어서입니다. 오미리버스종점에 다 내려와서 작은 논배미를 가득 덮은 황금빛의 벼를 보고나자 양구 땅에도 가을이 이미 왔다 싶었습니다. 직연폭포에서 탐방을 마치겠다는 계획을 바꾸어 오른 쪽으로 남밭/밤성골 길이 갈리는 오미리 삼거리에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한 것은 계속 진행하다가는 양구읍내를 저녁 630분에 출발하는 서울행 버스를 탈 수 없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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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 평화의 댐이 서울 및 경강지역의 홍수피해를 줄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대부분의 국민들은 모르고 지나쳤습니다. 섬진강이나 낙동강에서 제방이 무너져 홍수피해가 컸던 것은 널리 보도되어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한강 수역에서는 이렇다 할 큰 홍수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어느 누구도 한강 최상류에 축조된 평화의 댐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여름에는 평화의 댐도 만수위까지 물이 찼을 만큼 엄청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다시 말해 북한에서 내려오는 물을 이 댐이 만수위에 이르도록 다 받아낸 덕분에 그 아래 화천댐, 춘천댐, 의암댐, 청평댐이 월류를 시키지 않아 물난리를 피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평화의 댐이 임남댐에서 방류한 물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방류했다면 파주의 통일전망대 앞에서 한강에 합류되는 임진강이 거세진 한강물에 막혀 더 이상 흘러내려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되었다면 파주, 연천 등 임진강 일대도 홍수가 범람해 물난리를 겪었을 것이 자명합니다.

 

  평화의 길을 걸으면서 만난 두 개의 홍수조절댐인 화천의 평화의 댐과 연천의 군남댐 덕분에 물난리를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은 이념을 달리한 정권이 몇 번 자리바꿈을 했어도 국가의 중요사업을 중단 없이 지속해 마무리한 덕분이 아닌가 싶어 새삼 대한민국이 자랑스럽습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