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평화누리길 및 강화나들길/평화누리길 탐방기

평화누리길 탐방기19(구은교 사거리-토고미마을-화천대교)

시인마뇽 2020. 4. 11. 10:47

                                               평화누리길 탐방기19

 

 

                        *탐방코스:구은교사거리-토고미마을-화천대교)

                   *탐방일자:2020. 4. 9()

                   *탐방코스:구은교사거리-장촌리-토고미마을-화천대교-화천시외버스터미널

                   *탐방시간:1235-17시정각(4시간25)

                   *동행      :나홀로

 

 

 

 

 

 

평화누리길 탐방 차 열여드레 만에 다시 찾아간 강원도의 산하는 봄기운이 역력했습니다. 짙푸른 소나무 숲을 보고 건강한 강원도의 힘을 읽었고, 하천가 버드나무의 연초록색 가지들에서 38도선 이북의 화천에도 이미 봄이 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10년 전 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과의 출석수업을 받던 중 4계절의 보다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고 배운 적이 있습니다.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돋아나고 겨우 내내 동면에 들어갔던 개구리가 잠을 깨고 활동을 시작하는 등 만물이 움직이기 시작해 한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다시 보이는 계절이 바로 이라는 것입니다.

 

   「보다에서 유래된 것이 사실이라면 봄의 확인은 두 눈이 있어 가능한 것입니다. 35년간 한반도를 강점했던 일본제국도 이 땅에 봄이 오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은 아무리 막강한 힘을 갖고 통치를 해도 조선인 이천만 명에게서 두 눈을 모두 빼앗아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제가 강점했던 암흑기에 활동한 시인 이상화(李相和, 1901-1943)선생께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지어 심금을 울린 것은 일제에 빼앗긴 조선의 산하에 과연 봄이 올 수 있겠는가를 물은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는 봄이 오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므로 일본제국이 아무리 강해도 한반도를 찾아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자연의 섭리를 따라 찾아온 봄을 보지 못하게 하려면 이천만 조선인들 모두를 장님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이는 턱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선생께서는 보다에서 왔다는 어원을 벌써부터 아셨기에, 한반도를 다시 찾아온 봄을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시면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지었으리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중국발 코로나도 이 땅에서 봄을 빼앗아가지 못했습니다. 통제 불능의 코로나 바이러스도 경북과 대구의 신규확진자 0이라는 기적을 일궈낸 우수하고 열정적인 우리나라 의료진이 쳐놓은 방어벽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미증유의 코로나 난리도 조만간 평정되리라는, 그래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기대가 마침내 실현되는 날이 멀지 않다는 희망적인 징조가 보이기 시작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음에 저는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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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의 강원대도서관에 오래 전 빌린 도서를 반납하고 나서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한 것은 화천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였습니다. 1030분 화천행 버스가 코로나로 결행되는 바람에 50분을 기다려 1120분이 되어 버스에 올랐습니다. 이 버스는 생각보다 빨리 달려 1230분이 채 안되어 도착했지만, 구운리행 시내버스가 이미 1140분에 터미널을 출발해, 별 수 없이 12천원을 들여 택시를 타고 지난번에 탐방을 마친 구은교로 향했습니다.

 

   1235분 구운천을 가로지르는 구은교 앞 사거리를 출발해 북진했습니다. 군부대를 오른쪽으로 끼고 5번지방도를 따라 걸어 나지막한 고개를 넘으면서 38도 이북의 화천은 제가 살고 있는 경기도 군포시보다 확실히 공기가 냉랭해 손끝이 서서히 시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갯마루에서 얼마 안 내려가 삼거리에서 파포리로 이어지는 직진 길을 버리고 오른 쪽으로 꺾어 장촌리로 내려갔습니다. 다온요양원과 장촌리건강관리실, 그리고 마을회관을 차례로 지나 장촌교를 건너자마자 5번국지도 대신 오른 쪽 천변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파포천은 수량이 적어 수중보에 물이 가득 차지 않고 여기저기서 모래톱이 보였습니다. 시멘트 둑길은 길지 않아 10여분 후 5번국지도를 만나, 이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화천7Km’ 전방지점을 지나고 유목교를 건너 조금 더 국지도를 따라 걷다가 십 수분 후 이 차도를 버리고 왼쪽 파포천변 둑길로 자리를 옮긴 것은 덤프트럭들이 계속해서 쌩쌩 달려서였습니다. 둑길 아래 파포천의 수중보에는 앞서 본 것과 달리 물이 가득 차 보기에 좋았습니다.

 

   1421분 토고미마을로 연결되는 신대교를 건넜습니다. 지난번에 구운천을 따라 걸었던 만산동로와 5번국지도가 만나는 사거리에서 신대교를 건넌 것은 토고미마을을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서였습니다. 신대교를 건너자마자 마을 주민에 길을 물어 천변의 둑길이 화천시내까지 이어지는 것을 확인한 후 오른쪽 둑길로 들어섰습니다. 트랙터를 실은 꽤 큰 차량이 지나갈 만큼 시멘트 둑길은 넓었습니다. 이 길을 따라 걷다가 잠시 멈춰 서서 평온해 보이는 토고미마을을 사진 찍었습니다.

 

   토고미마을은 겉보기와는 달리 홈페이지를 운영할만 큼 활기찬 마을입니다. 행정안전부가 정보화마을로 선정한 이 마을은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에 위치한 청정마을로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마을로 알려져 있습니다. 강원도 청정지역의 아름다운 자연과 우리의 식탁을 지키겠다는 각오로 우렁이농법인 유기농으로 생산하는 이 마을의 특산물은 토고미쌀, 서리태, 백태, 감자, 고구마 등이 있습니다. 씨뿌리기, 거두기, 별보기, 새끼 꼬기 등 철마다 다른 농촌체험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고, 체험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는 토고미자연학교는 12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팬션을 보유하고 있다 합니다. 기름진 옥토가 많아 부자가 많이 살았는데, 농사일에 품을 팔면 꼭 쌀로 품삯을 받았다는 데서 유래한 토고미(土雇米)’가 오늘의 마을 이름으로 정착한 것은 어귓마을, 토고미, 느릅제기, 작은 토고미 등 네 마을이 합쳐진 1956년의 일이라고 토고미마을의 홈피는 적고 있습니다.

 

   신대사거리에서 구운천의 물을 받아들인 파포천은 수량이 몰라보게 많아져 두루미들이 한가롭게 노니는 모습이 정겨워보였습니다. 길가 정자에서 햄버그를 꺼내들면서 2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노란 현호색꽃이 탐스럽게 피어 있는 둑길이 제법 길어 중간에 편히 쉴 수 있도록 네 곳에 정자가 세워져 있습니다. 비록 그늘이 없어 땡볕을 피할 수 없는 한 여름에도정자가 있어  걸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중보를 지나 데크다리를 건너면서 수중보 위와 아래가 확연하게 다른 모습을 사진 찍었습니다. 위로는 하천에 물이 가득 차 있었지만, 아래는 흐르는 물의 양이 확 줄어들어 연초록의 버드나무와 줄기에 아직 물이 안 올라 지난 가을의 황색이 그대로 유지된 달뿌리가 하천을 거의 다 덮고 있었습니다.

 

   데크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평화누리길(?)로 들어선 시각은 152분이었습니다. 산 밑의 데크 다리를 건너 바로 둑길이 아스콘으로 포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다리에서 북한강과 만나는 화천교까지의 천변길이 화천군에서 조성한 신풍리-평화로(4.9Km)’구간의 평화누리길이 틀림없습니다. 상수원을 보호하고자 길가에 쳐놓은 가드에 평화누리길을 알리는 표지리본을 걸어놓을 만도 한데, 경기도의 평화누리길을 걸으면서 자주 보았던 어떤 종류의 표지물도 이 길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는 우선 급한 대로 자전거 길로 조성해서가 아닌 가 싶은데, 실제 그러한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리를 건너자 저 만치 앞쪽으로 군 비행장이 보였습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군 비행장 왼쪽 옆길로 지나갔습니다. 비행장을 한참  지나가 내려다본 파포천이 유달리 파래보인 데는 상수원보호구역이어서 물이 오염되지 않은 것도 한 몫 했을 것 같습니다. 신대교에서 천변 길과 갈라진 5번국지도와 다시 만난 지점은 화천터널을 지나는 춘천행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용신교 쪽으로 조금 더 가서 자리한 군부대 앞입니다. 이 지점에서 평화누리길은 차도 아래에 따로 낸 시멘트 천변길로, 내달리는 차량들을 피해 걸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1545분 합수점 조금 아래 용신교를 다리 밑 천변 길을 지났습니다. 신대교에서 따라 걷기 시작한 구운천은 용신교 바로 아래에서 화천천에 합류되어 북한강까지 한 줄기로 흘러내려 갑니다. 다리 건너 건영 아모리움아파트와 한국생명공학연구소 사이로 난 461번 국도는 북쪽의 신읍리로 이어집니다. 용신교 바로 아래 보에 담긴 물이 많아서인지 무려 10마리의 두루미가 떼로 모여 놀고 있어, 그 정경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화천천을 따라 낸 천변의 시멘트 길에서 차도로 올라가 화천시내를 오른쪽으로 끼고 도는 강변로를 따라 걸으면서 만개한 벚꽃의 화사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화천천 천변을 따라 부설한 단선의 철도는 레일바이크용인 듯한데 평일이어서인지 오가는 레일 바이크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화천천 위에 놓은 출렁다리와 봅슬레이/하늘가르기구조물, 그리고 얼곰이성정자를 지나 화천천이 북한강과 만나는 합수점 위에 놓은 데크다리에 이르렀습니다. 이 다리로 화천천을 건넜다가 북한강 위에 놓인 화천교로 돌아오면서 화천천과 북한강을 모두 돌아본 후 원추형의 뾰족한 탑이 높이 솟은 화천대교앞 로터리에서 평화누리길19코스 탐방을 마무리 했습니다. 시내버스터미널을 거쳐 가까운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은 17시 정각이었습니다.

 

이번 탐방 길은 약 10Km 남짓한 비교적 짧은 길로, 왼쪽 어깨에 느껴지는 통증의 강도가 지난번보다 훨씬 약해 걸을 만 했습니다. 1740분발 춘천 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춘천역에서 하차해 ITX로 갈아타 지난번보다 훨씬 이른 시간인 밤9시경에 산본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이번 탐방 길에서 만난 화천군의 하천은 구운천, 파포천과 화천천으로, 이 모두 한강의 지류여서 부연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상서면의 구운리 하만산동에서 발원한 구운천은 하천길이가 9Km, 신대사거리에서 파포천에 합류하는 한강의 제4지류입니다. 상서면의 봉오리하접실에서 발원한 파포천은 하천 길이가 21.5Km, 용신교 인근에서 화천천에 합류하는 한강의 제3지류입니다. 상서면의 마현리상평동에서 발원한 화천천은 하천길이가 29.2Km로 화천교 아래에서 한강의 제1지류인 북한강에 합류하는 한강의 제2지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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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원을 알고 단어를 배우면 흥미가 더해지는 것은 스토리가 있어서일 것입니다. 국민들이 집단적으로 기억하고 싶거나 기억해야하는 것이라면 이 스토리는 역사로 승화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언어가 어느 한 민족이 태동할 때부터 공유해온 것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보다에서 유래했듯이 여름은 꽃이 결실한 열매를 뜻하는 우리말인 열음에서, 그리고 가을은 수확한 것을 저장하는 갈무리에서 유래했다고 배웠습니다. 겨울의 어원을 까먹어 우리나라 사계의 이름을 어원에 근거해 스토리로 엮어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인터넷을 뒤져 스토리를 엮을 수 없는 것은 겨울의 어원이 꽤 많이 소개되어 이것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가 꺼려져서입니다.

 

   긴 겨울을 내고자 갈무리해온 김치의 원말이 딤채라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널리 쓰인 딤채가 언제부터인가 한양을 중심으로 해서 김치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지방의 양반 댁들이 딤채가 뭔가 모르게 촌스럽다며 한양에서 쓰기 시작한 우아헤 보이는 김치로 바꿔 썼다 합니다. 모회사에서 김치냉장고의 브랜드를 딤채로 지어 광고한 것은 탁월한 전략입니다. 이 상품은 지금도 여전히 잘 팔려 성공한 브랜드로 평가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김치의 역사가 이렇다는 것을 알고 나서 김치가 더 맛나졌다는 스토리가 이어지기를 희망하는 것도 38도선 이북의 화천 길을 걸으면서 봄기운을 느낀 나머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춘심이 동해서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