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누리길 탐방기16
*탐방구간:와수리터미널-자등리-도덕동사거리(평화누리길15코스)
*탐방일자:2019. 11. 21일(목)
*탐방코스:와수리터미널-와수천-자등리-신술터널-도덕동사거리
*탐방시간:9시58분-16시7분(6시간9분)
*동행 :문산중 황규직/황홍기 동문
강원도의 가장 서쪽 지방인 철원(鐵原)은 이름 그대로 철이 많이 나는 들판이었다고 합니다. 신철원고 교가가 “쇠둘레 기름진 벌 유서 깊은 터전에 ...”로 시작하는 것이나, 평화누리길 13코스를 “쇠둘레길”로 부르는 것은 철원이 철이 많이 나오는 들판이었음을 일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가야가 신라와 백제의 틈바구니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철이 많이 나서였듯이, 궁예가 일찍이 철원을 도읍지로 삼은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철이 많이 나 한 나라의 수도가 되었던 철원이 배출한 역사적 인물은 그 누구일까 궁금해 철원군 홈피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홈피에 소개된 철원의 인물은 왜군을 물리치고 공민왕을 충성스레 보필한 고려의 명장 최영, 일제 때 미국에서 이승만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박용만, 조선 조 광해군 때 도원수 강홍립을 따라 후금 정벌에 나섰다가 전과를 올리고 전사한 장군 김응하, 광복군의 독자성 회복을 위해 헌신하다 해방을 맞아 임정의 뒤처리를 맡아 처리하느라 끝내 귀국하지 못하고 죽은 염온동 등 모두 네 분으로 그 수가 너무 적어 못내 실망스러웠습니다.
제가 한 분을 추가한다면 월북 문인 이태준입니다. 철원의 김화출신인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 1904~1970)은 “시대일보”에 ‘오몽녀’를 발표하면서 등단했습니다. 정지용, 이병기 등과 함께 잡지 『문장』을 주관한 이태준은 ‘까마귀’, ‘달밤’, ‘복덕방’ 등의 단편 소설에서 허무와 서정을 추구하며 완결성 높은 구성을 보여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우유체, 간결체, 강건체 등 6개의 문체도 이태준의 『문장강화』에 실려 있어 학교에서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국 전쟁 때 자진 월북하여 북한에서 활동한 이태준의 작품들이 다시 읽힌 것은 1988년 해금조치 이후의 일입니다. 서울의 성북동에 있는 이태준의 생가는 단아한 한옥의 저택으로, 지금은 외증손녀가 「수연산방」이라는 이름의 전통찻집으로 운영한다고 합니다. 해방이 되자마자 38선 이북이라는 이유로 북한에 편입되었던 철원의 주민들은 한국전쟁 때 이 땅이 수복되어 자유대한민국의 품안으로 돌아왔는데, 월북작가 이태준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일제 때 발표한 작품에서 공산주의 찬양의 기미를 찾아볼 수 없었는데도 해방이 되자 마자 좌익진영에서 활동하다가 이윽고 월북해버린 공산주의자 이태준의 작품들이 이 땅에서 다시 읽힐 수 있는 것은 자유대한민국이 북한과의 경쟁에서 확실하게 승리한 데서 비롯된 포용정책 덕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아침 10시16분 와수천변에 도착해 평화누리길15코스를 이어갔습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중학교동창들을 만나 오전 8시10분발 와수리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1시간 50분가까이 달려 포천의 일동과 이동, 철원의 자등리를 거쳐 와수리터미널에 도착한 버스에서 하차, 택시승강장을 지나서 지난번에 탐방을 끝낸 와수천 천변길에 이르기까지 7-8분가량 걸었습니다.
오전10시6분 15코스 끝점인 신수리까지 9.5Km 남은 와수천에 이르러 남쪽으로 이어지는 동쪽 천변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 겨울 혹한의 날씨가 방송에서 나올 적마다 인근의 대성산이 언급됩니다. 서울과 달리 여기 와수천 변 논고랑의 물이 다 얼어 있는 것을 보아도 철원지역에서 겨울을 내기가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운기는 충분히 지나갈만한 천변의 시멘트 길을 따라 걸으면서 갈대가 거의 다 하천을 덮은 와수천의 새파란 물이 좁다랗게 굽이져 흐르는 것을 보자 화강에서 느끼지 못한 소박한 맛이 절로 감지되었습니다. 날렵한 현대식 건물의 그림자가 드리운 와수천이 더 정겹게 느껴진 것은 청둥오리 여러 마리가 유영하고 있는 한가로운 모습이 포착되어서입니다. 와수천 건너 단아한 외관의 이층집들이 이 시골에 자리한 것을 보고 저희 세대가 지난 몇 십 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은 결실이다 싶어 가슴 뿌듯했습니다. 농업용수 확보를 위한 몇 개의 보는 물막이가 높이 설치되지 않아 이 겨울에도 물이 넘쳐 흘러내려가고 있지만, 붙잡아 둔 물도 적지 않아 보를 가득 채운 새파란 물이 잔잔히 물결치어 이를 보는 제가 푸드득 날개 치며 비상하는 두루미들보다 더 평온하다 싶었습니다.
하송동교를 건너 서쪽 천변을 따라 걸었습니다. 한참 동안 이어진 아스팔트길을 걸으며 먼지가 안나 좋겠지만 뭔가 좀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는데 이 길은 개천 건너 군부대로 이어지는 시멘트 다리 앞에서 끝났습니다. 하천 위쪽 산에 놓은 데크길의 추락방지용 가드 벽이 너무 높게 설치되어 바로 아래 와수천의 물 흐름을 내려다 볼 수 없어 답답했습니다. 산 중턱을 지나는 데크 길을 따라 오르내려 다시 천변 길로 복귀하고 나서 가드 벽을 높게 설치한 것이 건너 편 군부대 안이 내려다보이는 것을 막고자 한 조치이다 싶어 이해가 됐습니다. 서쪽 천변길을 따라 걷다가 오른 쪽 언덕에 백골부대 상징인 백골의 조형물을 보고서야 아침에 와수리로 이어지는 47번 도로를 지나면서 버스 안에서 본 것이 생각났습니다. 신수리 끝점을 4.6Km 남겨놓은 지점에서 송동교를 건너 동쪽 천변 길로 옮겼습니다.
다리 건너 동쪽 천변길로 들어서 '도창리16.7Km/신수리4.5Km'의 평화누리길 안내판을 사진 찍으면서 이 길을 조성한 강원도와 철원군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먼발치로 광덕산과 자등현 그리고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한북명성지맥의 산줄기가 확연하게 눈에 들와 한 겨울에 그 길을 혼자 걸었던 십 수 년 전의 제 모습을 떠올리면서 잠시 추억에 빠졌습니다. 건너편 천변에 수직한 바위 위 소나무의 독야청청함과 이를 받쳐주는 와수천이 어우러져 빚어낸 한 폭의 그림자 같은 평화로운 정경을 사진 찍다가, 바로 위에 적의 전차들이 전진하는 것을 막고자 설치한 시멘트 기둥의 장애물을 보고 어떤 평화든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것을 우리 모두가 너무 오래 잊고 지낸 것이 아닌가 싶어 여기 평화누리길 15코스 걷기를 참 잘했다며, 제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지막한 산을 데크 길로 오른 쪽으로 에돌아 오른 쪽으로 석현교 다리가 놓인 43번 도로를 건너 동쪽 천변 길을 이어갔습니다.
신수리 끝점까지 2.6Km 남았음을 알리는 석현교 옆 ‘평화누리길15코스’ 안내판에서 “화강은 각종 철새의 도래지이며 토종민물고기인 쉬리, 납자루, 다슬기 등 동식물의 보고이다. 화강수변에 조성된 쉬리공원은 여름에는 다슬기 축제와 겨울에는 얼음 마당 축제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고 적힌 글을 보았는데, 지난번에 다녀온 화강을 찬할 뿐 이번에 걷고 있는 와수천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전장이 21.2Km인 15코스의 45%를 점하는 와수천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싶어 이 글에서라도 와수천의 풍광을 상세하게 그려보고자 나름 애쓰고 있습니다, 천변 길 왼쪽 논고랑 물은 꽁꽁 얼었지만 와수천 물은 얼지 않아 흰 두루미 여러 마리가 물 위에서 노닐다가 저희가 지나가자 물을 박차고 하늘로 비상하는 천변 정경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름다리를 지나 47번 도로를 따라 남진하다가 자등교차로 앞에서 자등리 시내를 오른 쪽으로 에도는 천변 길로 다시 들어섰습니다.
천변 길의 하천 쪽 바로 아래에 파놓은 참호들은 대전차장애물과 함께 저희가 걷고 있는 철원 땅이 휴전선과 면해 있는 최전방 지역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싯누런 갈대로 뒤덮여 물흐름이 잘 보이지 않는 와수천의 천변길을 따라 걸어 공병교를 지났습니다. 2-3분 후 다다른 자등리의 천변공원에서 “편리한 자전거, 안전모 착용은 기본입니다”라는 글이 실린 철원군평화누리길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이 안내판이 15코스 끝점을 알리는 안내판임을 안 것은 집에 돌아와서 여러 사진을 본 후였습니다. 자등리 시내에서 부대찌개로 점심식사를 마친 후 다시 돌아가 천변 길을 따라 신술교까지 200m가량 걸어가 더 이상 천변 길이 나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후 15코스 탐방을 마무리했습니다.
신술교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이른 사거리에서 동쪽으로 직진해 육단리로 이어지는 56번 도로로 들어섰습니다. 차도를 따라 걸어 오르며 커다란 백골모양의 조형물도 보았고, 더 올라가 길이가 610m인 신술터널을 지났습니다. 초입에서 바로 끝이 보일 정도로 길지 않은 터널을 지났는데도 차량들이 지나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습니다. 다음에 지날 하오터널은 신술터널보다 몇 배는 더 길어 소음이 정말 대단할 것입니다. 자등리에서 4.6Km를 걸어 내려선 도덕동사거리에서 택시를 불렀습니다. 자등리로 돌아가서 곧 바로 16시10분에 와수리터미널을 출발한 동서울터미널 행 버스에 오르는 것으로 16번째 평화누리길 탐방을 모두 마쳤습니다.
이번에 탐방한 평화누리길은 15코스 중 지난번에 걷고 남은 9.5Km의 와수천 천변길과 향후 누리길로 개통될(?) 자등리-신술터널-도덕동사거리 사이 4.6Km 길이의 56번 지방도로입니다. 다음에 철원의 거의 끝점인 도덕동사거리를 출발, 하오터널로 한북정맥을 넘으면 화천 땅으로 들어가게 되어, 철원 땅의 평화누리길 탐방은 사실 상 이번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이에 철원 땅의 평화누리길 탐방을 계획하는 분들이 궁금해 할 코스를 간략하게 안내드립니다. 안내판을 참조해 작성한 철원의 평화누리길 13, 14, 15코스는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13코스: 역고드름-백마고지역-노동당사-도피안사-학저수지-칠만암/17Km
(쇠둘레길)
*14코스: 칠만암-양지사거리-이길검문소-민통선-도창검문소-도창리/18.9Km
(두루미 머무는 길)
*15코스: 도창리-남대천교-화강-김화교-와수리-와수천-신수리/21.2Km(화강길)
많은 분들이 13코스는 12코스에 이어서 걸어 비교적 익숙한 길이기에 설명을 생략합니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어도 찾지 못해 애먹은 14-15코스는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14코스 중 이길검문소-민통선-도창검문소 구간은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군부대의 허가를 득하지 못하면 걸을 수 가 없습니다. 제가 양지사거리에서 신철원과 가까운 문혜리를 거쳐 15코스의 남대천교로 빙 돌아 간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14코스의 남은 구간 도창검문소에서 도창리까지는 길이 열려 있어 민간인도 걸을 수 있다고 합니다. 칠만암에서 양지사거리에 이르기까지는 협곡인 한탄강을 내려다 볼 수 있어 풍광이 특이합니다.
15코스는 도창리에서 시작되어 화강과 와수천을 거쳐 신수리에 이르는 길로 남대천교, 장수교와 김화교를 차례로 지나는 화강의 천변 길이 제게는 고혹적이었습니다. 김화교를 지나 화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와수천의 천변 길도 겨울이어서인지 고즈넉했습니다. 14코스를 문혜리 쪽으로 우회하느라 15코스의 들머리인 도성리에서 남대천교에 이르는 짧은 구간은 걷지 않고 바로 남대천교에서 시작해 두 번에 나누어 걸었습니다. 첫 번째는 남대천교에서 시작해 화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장수교와 김화교를 지나 화강과의 합수점을 조금 지나 와수천을 건너 와수리시내에서 마쳤고, 두 번째는 와수리시내에서 와수천으로 다시 가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천변 길을 따라 걸어 현지 이름이 신수리인 자등리에서 15코스 따라 걷기를 마쳤습니다.
14코스의 민통선 안 길을 걷지 못한 것을 빼고는 철원 땅 평화누리길 13, 14, 15코스는 길 찾기에 별반 어려움이 없는 길입니다. 경기도의 평화누리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지기가 걸려 있지 않고 길 안내판도 드물게 있어 신경이 좀 쓰였지만 코스를 제대로 이어가기에 문제될 것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탐방사진>
'XII.평화누리길 및 강화나들길 > 평화누리길 탐방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화누리길 탐방기18 (사창리터미널-만산령-구은교 사거리) (0) | 2020.03.25 |
---|---|
평화누리길 탐방기17(도덕동사거리-하오터널-사창리터미널) (0) | 2019.12.15 |
평화누리길 탐방기15(문혜사거리-화강-와수리터미널) (0) | 2019.11.16 |
평화누리길 탐방기14(오덕사거리-칠만암-문혜사거리) (0) | 2019.10.14 |
평화누리길 탐방기13(백마고지역-노동당사-오덕사거리) (0) | 2019.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