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평화누리길 및 강화나들길/평화누리길 탐방기

평화누리길 탐방기17(도덕동사거리-하오터널-사창리터미널)

시인마뇽 2019. 12. 15. 02:35

                                                  평화누리길 탐방기17

 

 

                       *탐방구간:도덕동사거리-하오터널-사창리터미널

                          *탐방일자:2019. 12. 12()

                          *탐방코스:도덕동사거리-잠곡저수지-하오터널-광덕초등학교-사창리터미널

                          *탐방시간: 9시26분-16시8분(6시간42분)                          

                          *동행      :문산중 황규직/황홍기 동문

 

 

 

 

  조선조 영조 때 문신인 여암(旅菴) 신경준(申景濬, 1712-1781)선생은 그의 저서 도로고(道路考)에서 길은 주인이 없지만, 오직 그 위를 다니는 사람들이 주인이다(路者無主而唯在上之人主之)”라고 갈파했습니다. 풀이하면 길은 어느 특정인이 소유할 수 없고 오로지 그 위를 걷는 사람이 걷는 동안만 점유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아직 선생의 이 말씀만큼 길의 공공성을 잘 표현한 글을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자기 땅이라는 이유로 이미 나 있는 길을 가로막고 경고판을 세워 여기는 내 땅이니 저리로 돌아가라고 하는 것은 길의 공공성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을 일찍이 선생은 지적했던 것입니다. 이번에 평화누리길 종주 차 내내 463번 지방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저희 일행이 어느 누구에게서도 저지당지 않은 것은 우리 대한민국이 길의 공공성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지켜주는 법치국가여서 가능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암 신경준선생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 도로에 일련번호를 매긴 분이기도 합니다. 선생의 저서인 도로고에 따르면 팔도6대로는 의주제1, 경흥제2, 평해제3, 동래제4, 제주제5, 그리고 강화제6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도로의 출발점은 모두 조선의 수도인 경성이었습니다. 경성을 출발해 평양을 거쳐 압록강의 의주에 이르는 의주제1로는 도로의 거리가 1,085리이고, 금강산을 거쳐 두만강의 서수라보에 이르는 경흥제2로는 2,504, 대관령을 거쳐 동해의 평해에 이르는 평해제3로는 865, 대구를 거쳐 부산진에 이르는 동래제4로는 937, 나주와 관두량을 거쳐 제주에 이르는 제주제5로는 970, 김포를 거쳐 강화부에 이르는 강화제6로는 120리였습니다. 도로의 거리가 120리에 불과한 경성-강화 길을 제6로로 삼은  것은 전쟁이 나면 이 길이 국왕이 난을 피해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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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울터미널을 아침710분에 출발한 와수리행 버스가 1시간 40분가량 달려 철원의 신술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850분경이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김밥 집을 찾은 것은 이번 누리길 탐방이 한북정맥을 넘어 화천군의 사창으로 이어지는 한갓진 463번 지방도로를 따라 걷는 것이어서, 중간에 점심을 사들 만한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신장개업한지 얼마 안 되어 축하화분이 여러 개 눈에 띈 김밥집의 여주인이 기다리는 저희 일행에 연신 미안해하면서 정성들여 김밥을 마는 것을 보고 어려서 어머니에게서 보았던 한국의 여성상을 다시 보는 것 같았습니다.

 

   오전926분 도덕동사거리를 출발했습니다. 신술리에서 도덕동사거리까지는 뜸하게 다니는 버스를 기다릴 수 없어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도덕동사거리에서 463번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직진하다 이내 오른 쪽으로 꺾어 남쪽으로 걸어 오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잠곡저수지가 보였습니다. 누에 모양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잠곡저수지(蠶谷貯水池)로 이름 붙여진 이 저수지는 총저수량이 435만톤입니다. 소양강의 29억톤에 대비하면 0.15% 밖에 안 되는 작은 저수지로 산속 깊숙이 자리해 아늑하고 고즈넉했습니다. 이 저수지가 조선시대에 있었다면 은자(隱者)들이 들어와 숨어 살만도 했을 텐데, 실제로는 2003년에 준공되어 은둔지였던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대신에 도시생활로 피곤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복주산자연휴양림이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어 잠곡저수지가 이 휴양림과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싶었습니다.

 

   복주교를 건너고 노블레스캠핑장을 지나 오른 쪽 아래로 방화동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올라가다가 빨간 기와지붕 집의 굴뚝에서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연기를 사진 찍었습니다. 생수양어장에 이르자 잠곡저수지의 끝이 보였고 그 뒤 남서쪽 먼발치로 우뚝 솟은 광덕산과 상해봉이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 길 건너 동쪽에 위치한 복주산자연휴양림으로 들어서는 입구를 지났습니다. 양지 바른 길가에 멈춰 서서 샌드위치로 요기를 한 후 다시 누리길을 이어가 대전차방호벽도 지났습니다. 얼마 후 하오터널 앞에 이르자 머리 위에  한북종주 차 두 번 지났던 하오현 고개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한북정맥이란 백두대간이 지나는 북한 땅의 분수령에서 시작하여 파주의 장명산에 이르는 전장 250Km의 긴 산줄기를 이릅니다. 한강 북쪽 유역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진 한북정맥이 북한 땅에서 시작하여 전 구간을 종주할 수는 없습니다. 이에 한북정맥 종주는 남한 땅의 대성산과 복계산 사이에 자리한 가장 깊숙한 안부(鞍部)인 수피령에서 시작합니다. 저 또한 200455일 수피령에서 첫 구간을 시작하여 복계산을 들른 후 복주산을 지나 하오터널 위 하오현에서 종주를 마무리하고 왼쪽 아래 화천 땅의 번암리로 내려가 사창행 버스에 올랐었습니다.

 

   하오현 고개는 한북정맥에 자리한 해발800m대의 꽤 높은 고갯마루이자 안부입니다. 고개는  이번처럼 산줄기를 넘을 때는 고갯길에서 가장 높은 고갯마루이지만, 산줄기를 따라 걸을 때는 가장 낮은 안부가 됩니다. 어떤 방향으로 지나느냐에 따라서 고갯마루도 되고 안부도 되는 고개는 산줄기 양쪽 아래 마을들을 이어주는 고갯길이 지나 산 능선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들이 소통한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오터널은 강원도철원군의 근남면과 화천군의 사내면을 이어주는 전장 1,532m의 꽤 긴 터널입니다. 차가 지날 때는 엄청 시끄러웠지만 지나는 차량이 드물어 견딜 만했습니다.  터널안으로 들어선지 얼마 안지나 터널 끝이 훤히 보여 갑갑함을 면했습니다. 철원/화천의 경계점을 지나 터널을 빠져 나오자 화천 땅으로의 진입이 실감됐습니다. 길 건너 오른 쪽에 세운 

 6.25전쟁 전투현장알림판국방부유해발굴사업안내판을 사진 찍은 후 다시 길을 건너 왼쪽 구도로로 들어섰습니다. 이내 조그만 밭뙈기에서 길이 끊겨 463번 도로로 이어지는 길을 찾고자 능선으로 올라섰으나 끝내 찾지 못해 길이 끊긴 밭으로 돌아갔습니다. 햇볕이 따사롭게 비춰 밭가에서 자리잡고 김밥을 꺼내 든 후 왔던 길로 되돌아가 463번도로에 합류했습니다.

 

   더 이상 질러가는 구도로를 찾지 않고 오로지 463번 도로를 따라 남진한 것은 또 다시 길을 잃을 까 두려워서였습니다. “화이트힐 팬선표지석을 지나고,  20분 남짓 걸어 내려가 광덕리평화영성원아래 파릇파릇한 보리밭을 보자 잠시 겨울에서 비껴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왼쪽으로 명월리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계속 남쪽으로 단조롭게 이어지는 463번 도로를 따라걸었습니다. 사태골버스정류장을 지나서도 372번도로와 만나는 맹대리의 삼거리에 이르기까지는 20분이 걸렸습니다. 명대교를 막 건너 한 음식점의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 후, 광덕계곡의 천변을 따라 이어놓은 463번 도로를 따라 걷기를 계속했습니다. 화악산과 응봉의 산마루가 확연하게 조망되는 곳을 지나 맹대유원지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여기서 다리를 건너 광덕계곡의 천변길을 걸었다면 지나가는 차량들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 놓고 걸었을 것을 그리하지 못한 것은 혹시라도 중간에 길이 끊기지 않을까 걱정되어서였는데, 물이 맑은 천변 길은 75번도로와 만나는 광덕초교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463번도로가 끝나는 광덕초교에서 이번 탐방의 끝점인 사창리까지는 75번도로로 이어졌습니다. 군부대를 지나 두 개의 새빨간 철제문이 회색의 지붕 및 순백색의 벽과 강하게 대조를 이루는 개천 건너 아담한 한 민가가 길 건너 버려진 슬레이트 지붕의 폐가와 극명하게 대비되었습니다. 싯누런 갈대가 개천 양쪽으로 밭을 이룬 광덕계곡 하류의 냉랭한 시냇물에서 도도한 겨울을 보았습니다. 사창리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누리길탐방을 마친 것이 1558분이었으니 약17Km 거리의 이번 탐방에 걸린 시간은 6시간 반 가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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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년의 평화누리길 탐방은 화천 땅 사창리에서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이번에 걸은 길이 평화누리길 16코스가 될지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이는 평화누리길15코스가 철원의 신술리에서 끝나고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번에 걸은 길을 평화누리길이라고 적는 것은 이 길 말고는 신술리에서 사창리로 평화누리길을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해서입니다. 화천의 사창리에서 고성의 통일전망대로 이어지는 나머지 누리길은 겨울이 끝나고 새봄이 오는 길목인 내년 3월에 재개할 뜻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