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평화누리길 및 강화나들길/평화누리길 탐방기

평화누리길 탐방기13(백마고지역-노동당사-오덕사거리)

시인마뇽 2019. 5. 16. 14:17

                                          평화누리길 탐방기13

 

 

                     *탐방구간:백마고지역-노동당사-오덕사거리(평화누리길 13코스)

                *탐방일자:2019. 5. 3()

                     *탐방코스:백마고지역-소이산-노동당사-도피안사-학저수지-오덕사거리

                *탐방시간:1335-1843(5시간8)

                     *동행      :문산중학교 황규직/황용기동문

 

 

 

 

 

  경기도의 평화누리길을 김포시의 대명항에서 시작해 연천군의 역고드름에서 마치기까지 모두 12번으로 나누어 걸었는데, 목적지에 이르지 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번에 강원도철원의 평화누리길인 쇠둘레길을 목적지인 칠만암에서 끝내지 못하고 2-3km전방인 오덕사거리에서 중단해, 목적지까지 이르는 데 처음으로 실패했습니다.

 

 

   이번 탐방의 실패는 전적으로 탐방거리를 잘못 계산하고 또 사전에 탐방코스를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저의 불찰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이번 탐방코스인 백마고지역-학저수지- 칠만암의 거리는 14km가 되는데, 한 안내판에 12Km로 잘못 적혀 있는 것을 그대로 믿고 평화누리길을 탐방 하기 전에 2시간반 가량 걸리는 안보관광을 먼저 다녀온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둘째, 사전 준비가 부족해 학저수지를 지나서부터는 표지리본이 제대로 달려 있지 않아 칠만암으로 가는 길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이번 실패로 그간 순조롭게 평화누리길을 탐방할 수 있었던 것은 곳곳에 표지판과 표지리본이 걸려 있었고, 경기도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준 덕분이었지, 제가 똑똑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1335분 강원도 철원의 평화누리길인 쇠둘레길 탐방에 나섰습니다. 오전10시반에 백마고지역을 출발하는 시티투어버스를 타고 제2땅굴, 철원평화공원, 월정역을 둘러보고 13시가 조금 지나 되돌아간 백마고지역의 그늘진 곳을 찾아 각자 싸온 음식을 꺼내 함께 들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3번도로를 건너 논 뜰 한복판에 낸 농로를 따라 동진했습니다. 논길이 끝나고 양 옆으로 방호벽이 쳐진 고개를 넘어 내려선 소이산 들머리에서 , 왼쪽으로 꺾어 봉수대가 자리했던 해발356m의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지그재그로 낸 시멘트 길을 걸어 소이산 정상의 2층 전망대에 오르자 넓은 철원 벌이 한 눈에 잡혔습니다. 멀지 않은 곳의 노동당사는 나무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오전에 평화전망대에 올라 조망했던 북한 땅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 소이산에 올라 북녘 땅을 바라보며 지은 글 중에서 안내판에 일부가 실린 시조시인 이은상(李殷相, 1903-1982)선생의 수필 피어린 육백리만한 글이 따로 있겠나 싶어 여기에 옮겨 놓습니다. 노산 이은상 선생이 1962년 민족의 비극을 울분에 차서 쓴 기행수필 <피어린 육백리> 중에서라는 부제로 소개된 선생의 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나는 지금 철원읍 폐허의 서쪽 소이산 마루에서 북쪽을 향하여 역사의 바둑판 위에 놓인 승부의 점과 점인 양 말없이 솟아있는 피어린 고지들을 바라본다. (중략) 남방한계선 위에 걸쳐 있는 산명호는 짓궂어도 나의 한가한 사정을 허락할 수 없었음인지 폭격에 둑이 터져 물 한 방울 없는 풀밭이 되었다 하기로 혀 한 번 차고 눈을 돌린다. 오른편으로 훨씬 떨어진 곳에 아이스크림 고지가 있는데 여기는 불란서군과 중공군이 대결하던 곳으로 낮과 밤을 따라서 주인이 몇 십번 갈렸었고 그래서 필경은 무수한 폭탄세례를 둘러씌운 곳이므로 제일 돈이 많이 든 고지라는 별명까지 붙었으며 지금도 허옇게 벗겨진 알몸뚱이 그대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넘어져 누워 있음을 본다.”

 

소이산에서 내려가 노동당사로 향하는 중 쇠둘레길의 코스가 그려진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백마고지역의 안내판에 15Km로 적힌 역고드름-백마고지역-칠만암까지의 거리가 2Km가 더 긴 17Km로 적혀 있는 것을 보고, 그렇다면 백마고지역-칠만암의 거리는 12Km가 아닌 14Km가 되겠다 싶어 발결음을 빨리 했습니다.

 

 

   소이산에서 멀지 않은 초소삼거리의 노동당사는 바람벽이 거의 다 없어지고 철근이 들어있지 않고 오로지 시멘트로 지은 골조만 남아 있어 마치 번영의 남한 땅에 쫄딱 망한 북한을 옮겨다 놓은 것 같았습니다. 이나마 폭삭 주저앉지 않고 골격이라도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1945년 건립되어 6.25전까지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쓰인 악명 높은 이 건물을 2002년에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22호로 등록하여 보호해서 가능했을 것입니다. 여기 철원 노동당사가 더욱 유명해진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1994년에 히트시킨 발해를 꿈꾸며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 알려지면서라고 합니다. “갈려진 땅의 친구들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망설일 시간에 우리를 잃어요라는 가사에서 반만년 우리 역사 중 가장 광활한 영토를 통치했던 발해제국의 고토를 되찾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없어 발해를 꿈꾸며라는 노래 제목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싶었습니다

 

 

   초소삼거리에 조금 못가서 금강산으로 가는 옛길을 따라낸 평화누리길이 오른 쪽 고개로 이어졌습니다. 고개 너머 넓은 논 뜰 한가운데 삼거리에서 땅바닥에 방치된 칠만암7.3Km/역고드름 7.7Km ’의 두 표지판을 맞춰보고 칠만암으로 가는 길이 왼쪽으로 이어짐을 알았습니다. 표지목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걸어 만난 둑길에서 오른 쪽으로 흐르는 대교천을 따라 진행했습니다. 대교천 곳곳에 설치한 시멘트구조물이 마치 탱크의 전진속도를 늦추기 위한 대전차 장애물 같기도 했는데 과연 그런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한다리교를 지나고 87번 도로 건너로 철원향교가 보이는 도피안교를 건너 도피안사에 도착한 시각은 172분이었습니다. 해떨어지기 전에 목적지인 칠만암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일주문 안으로 들어가 천년고찰 도피안사를 둘러보았습니다.

 

 

   철원의 도피안사(到彼岸寺)는 설악산 신흥사의 말사로 통일신라 경문왕5(865)에 도선국사가 여기 화개산 중턱에 터 잡아 창건한 절이라 합니다. “깨달음의 언덕으로 간다는 도피안사는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조상이 모셔져 있고 보물 제33호 삼층석탑이 세워진 명소라는 것을 여기 와서 처음 알았습니다. 대한제국 광무2년인 1898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했으며,  6.25전쟁 때 전소되어 폐사된 이 절을 우리 육군이 복원했다고 합니다. 넓지 않은 절터에 들어선 대적광전, 천불전 등 불당이 그리 크지 않고 가까이에 모여 있어 전체적인 분위기가 짜임새가 있고 아담해 보였습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수많은 연등이 걸려 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 해탈문과 연지를 차례로 지난 후 일주문을 빠져나가 오덕리에 위치한 학저수지로 향했습니다.

 

 

   도피안사에서 남쪽으로 1.1Km 떨어진 학저수지로 가는 길에 이 저수지의 남쪽 방죽을 먼저 들렀습니다. 외형이 사다리꼴에 가까운 학저수지는 오전에 철원평화전망대에 오르면서 내려다 본 동송저수지보다 훨씬 커보였습니다. 오른 쪽 수문 건너로 데크 길이 보여 그곳으로 옮겨 가다 한국농어촌공사의 학저수지 수문 아래 징검다리를 건넜습니다. 방류 시 유속을 줄이고자 엇갈리게 축조한 사면체의 시멘트구조물을 사진 찍고 수문 동쪽으로 올라가 앞서 본 데크 길이 북쪽으로 이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낙조가 일품이라는 학저수지를 이 데크 길로 한 바퀴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일었지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샌드위치와 과일로 시장기를 잠재운 후 수문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여기서 칠만암으로 이어지는 대교천 둑길을 따라 동쪽으로 진행해 463번 도로가 지나는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삼거리에서 칠만암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리본이나 표지판을 찾을 수 없어 화물차 기사분에 길을 물었습니다. 제가 지도에서 확인한 길과 기사분이 알려준 길의 방향이 모두 북쪽으로 나 있어 고맙다는 뜻을 전하고 새로 낸 북쪽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고개를 넘어가자 꼭 한 번 걷고 싶었던 데크 길이 나타나 진작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빙 돌아왔다 싶어 두 친구에 미안했습니다. 십 수분 간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다다른 마을 어구에서 덕고개1.2Km/학저수지(징검다리)”의 표지목이 가리키는 대로 오른 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집 몇 채를 지나 올라선 고갯마루에서 왼쪽 능선 길을 잠시 따라 오르다 오른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벌써부터 어둠이 감지되어 능선 길을 따라 오르다가는 해떨어지기 전에 이 산을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어 오른 쪽 길로 내려갔습니다. 십분 가량 내려가 다다른 길이 463번 도로인 것을 안 것은 집에 돌아와 꼼꼼하게 지도를 다시 살펴보고 나서입니다. 기사분에 물어 걸어간 학저수지 동쪽 도로는 최근에 난 길로 제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다는 것도 이때 알았습니다

 

 

   1843분 오덕사거리에서 평화누리길 13코스인 쇠둘레길 탐방을 마무리 했습니다. 463번 도로를 따라 동진하면서 더 이상 칠만암을 찾아가지 말고 버스를 탈 만한 곳에서 이번 탐방을 마쳐야겠다고 뜻을 모은 것은 최전방지역인 철원 땅에서 밤길을 걷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얼마 안 걸어 양촌교회의 십자가가 보였고, 이내 오덕사거리에 도착해 슈퍼마켓을 들렀습니다. 주인아주머니에 칠만암 가는 길과 서울 가는 교통편을 확인한 후 쇠둘레길탐방을 여기서 접었습니다. 동송 택시를 불러 백마고지역으로 되돌아가다가 중간에 코스를 바꾸어 대광리역으로 직진, 저녁을 사든 후 동두천 역으로 옮겨 전철에 오르는 것으로 하루 여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평화누리길 탐방은 이번으로 일단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한 여름은 쉬었다가 9월쯤에 오덕사거리를 출발해 고성의 통일전망대까지 함께 걸어볼 뜻입니다. 이제껏 잘 걸어온 평화누리길과 달리 길 안내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이번처럼 길을 잘 못 찾는 일이 잦으리라 예상됩니다. 남한 땅 백두대간의 1/29개 정맥의 전 코스를 저 혼자서 계획하고 종주한 바 있어 크게 걱정되지는 않습니다만, 나이가 70세를 넘자 겁이 부쩍 많아져 아무래도 추동력이 옛날만 못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합니다. 또 하나 올해부터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해 탐방준비에 짬을 내기가 옛날만큼 쉽지 않다는 것도 걱정됩니다. 그럼에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굳게 믿고 사전준비를 철저히 해 나머지 탐방 길에 임한다면 뜻을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이번 평화누리길 탐방이 동행한 황규직/황용기 두 중학교동창에도 좋은 추억이 됐으리라 기대합니다.  그간 졸고를 읽어주신 여러분께 고마움을  표합니다. 댓글로 격려해주신 소그미 님등  몇분께 특별히 감사의 뜻을 올립니다. 가을 쯤에 다시 뵙겠습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