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백제교-석성천합류점-황산대교
탐방일자: 2023. 1. 31일(화)
탐방코스: 백제교-부여교-현북양수장-봉정양수장-석성천합류점
-강경산소금문학관-황산대교-강경역
탐방시간: 10시28분-17시12분(6시간44분)
동행 : 나 홀로
금강(錦江)이 꽁꽁 얼어붙어 물 흐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주전 금강을 따라 걸을 때에는 얼음이 얼지 않아 유람선과 수륙양용버스가 백마강을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는데, 이번에는 요 며칠 영하15도를 오르내렸던 강추위로 금강이 얼어붙어 어디에서도 배가 운항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금강의 강물이 액체 상태의 물에서 고체상태의 얼음으로 바뀐 것은 외부조건에 따라 상태가 쉽게 변하는 물(H2O)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물처럼 온도에 따라 상태가 고체, 액체, 기체 등으로 분명하게 바뀌는 물질은 흔치 않습니다. 1기압 하에서 온도가 섭씨 0도 이하로 내려가면 물이 얼어 얼음으로 바뀌고, 섭씨0도 이상에서는 얼음이 녹아 물이 됩니다. 100도 이상에서는 물이 끓어 수증기로 변하고 100도 이하로 내려가면 수증기는 응결되어 물이 되는 등 물의 상태는 수시로 바뀝니다. 액체상태의 물이 반드시 섭씨 100도 이상이 되어야 기체상태인 수증기로 변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100도가 되기 전에도 표면에서 증발이 일어나 물이 수증기로 바뀌는 것은 일상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면 금강의 얼음도 녹아서 바다로 흘러내려갈 것입니다. 이렇듯 물은 외부조건의 변화에 따라 물이나 수증기, 얼음의 3가지 상태로 존재하는데, 이를 물의 삼태(三態)라 합니다.
물의 중요한 특징은 삼태(三態)가 바뀌면서 순환한다는 것입니다. 강물이나 바닷물의 일부는 표면에서 증발이 일어나 수증기로 바뀝니다. 공기 중의 수증기는 고도가 높아지면 아주 작은 물방울이나 얼음알갱이로 변하여 구름이 됩니다. 구름은 비나 눈이 되어 지상으로 낙하하고, 이렇게 내린 비나 눈은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내려갑니다. 강물과 바닷물의 일부는 표면에서 증발이 일어나 수증기가 되어 구름으로 변합니다. 이렇듯 물은 순환하면서 상태를 바꿔가 삼태 간의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물이 이루는 삼태의 균형은 항상 고정된 정적 균형이 아니라 변화 속에 균형을 되찾는 동적 균형입니다. 한발과 폭우, 혹서와 혹한, 태풍과 우박 등 기상의 급격한 변화는 물 삼태의 균형이 일시 깨진 것으로, 얼마고 지나면 균형상태로 다시 돌아갑니다. 불균형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는 기상의 변화가 아닌 기후의 변화일 것입니다. 작금의 기상이변을 기후변화의 징조로 해석해 미리 대처하자는 움직임이 구체화 된 것이 탄소제로 운동이 아닌가 합니다. 기상이변은 치산치수로 대응할 수 있지만, 기후변화는 생활방식의 혁신 없이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기상이변은 나라마다 대처하는 길이 다르겠지만, 기후변화는 전 세계가 참여해 해결해야하는 지구적 과제여서 과제선정부터 인류의 지혜가 모아져야 답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탄소제로운동이 기후변화에 적절한 대책인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광합성에 필수적인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적극 억제하는 것이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장애가 될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이산화탄소의 온실효과가 기온상승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미미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 가에 대해 회의적인 과학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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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오산역 환승센터에서 부여로 가는 버스에 오른 시각은 아침 7시20분이 다 되어서였습니다. 2시간 반 가량 달려 도착한 부여터미널에서 하차해 택시를 타고 정림사지로 이동해 오층석탑을 사진 찍은 후, 백제교를 건너 수북정을 들렀습니다. 금강 서안의 구릉에 자리한 수북정에 올라 금강을 조망한 후 다시 다리를 건너자마자 택시에서 내려 금강탐방을 시작했습니다.
오전 10시28분 백마교를 출발해 금강 동안의 자전거길로 들어섰습니다. 표지목에 신동엽선생의 시비로 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어 따라 갔으나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들르지 못했습니다. 강변에 낸 자전거 길은 제방과 수로 사이에 있어, 이 길을 따라 한참 걸으면 뭔가 갇혀 있는 것 같아 제방 길을 따라 걷곤 합니다. 자전거길을 따라 걸으며 올려다 본 제방의 4층 건물이 독특해 보여 사진을 찍어 왔는데, 그 건물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인터넷에서 두루 찾아보았으나 확인하지 못했습니다.제가 걷고 있는 자전거길이 ‘백마강 은빛물결 억새길’이라는 것과 이 길이 ‘꽁냥꽁냥길’, ‘토닥토닥길’과 ‘쓰담쓰담길’ 등 세 길로 나뉜다는 것은 종합안내판을 보고 알았습니다.
부여교를 밑으로 지나자 하얀 색의 ‘백마강 억새’ 다섯 글자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미로원입구를 지나 갈대밭에 들어선 전망대를 들렀습니다. 나선형의 데크 길을 따라 전망대에 올라서자 이제껏 보아온 어떤 갈대밭보다 더 넓은 황금 빛 갈대밭이 펼쳐졌습니다. 잠시 쉬면서 햄버그로 요기를 한 후 자전거 길로 돌아가 저 멀리 보이는 소실점을 향해 직진했습니다. 하천이나 강변의 환경개조로 개체수가 줄어들어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야생동물1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수염풍뎅이의 서식지를 지나 직선의 자전거길이 휘어지는 곳에 이르자 ‘부여무인비행장치 상설교육체험장’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길이 하도 곧게 나 있어 유사시 비행장으로 써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드론 교육장으로 쓰이는 것으로보아 사람들 보는 눈이 크게 다르지 않구나 했습니다.
12시24분 부여나성 입구에 이르렀습니다. 드론교육장을 지나 염창천에 이르자 갈대에 가려 한동안 보지 못한 금강이 오른 쪽 가까이에 보여 반가웠습니다.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 강둑에 올라서자 부여나성 안내판이 보였습니다. 사적58호로 지정된 나성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를 방어하기 위해 서력 538년 전후에 쌓은 중요한 외곽방어시설이었습니다. 일직선의 제방이 끝나는 곳에서 현북교를 건너 임강사지 입구에 이르렀으나 들르지 못하고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한국농어촌공사 현북양수장을 막 지나자 금강 동안에 설치된 데크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며 바로 아래 꽁꽁 얼어붙은 금강을 바라보자 제 마음도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짧지 않은 데크 길이 끝나자 바로 아래 카약선착장(?)이 보였는데, 제 철이 아니어서인지 카약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국농어촌공사 봉정양수장을 지나 6Km 남짓한 석성산성 등산로의 봉정리쪽 들머리에 다다른 시각은 13시53분이었습니다.
15시6분 부여군을 지나 논산시에 발을 들였습니다. 석성산성 등산로의 봉정리 쪽 들머리를 지나 봉두정배수장에서 시작된 제방 길은 5.6Km나 곧게 이어져 그늘이 전혀 없는 이 길을 여름철에 지났더라면 땡볕을 피할 수 없어 고생깨나 했겠다 싶었습니다.
동쪽의 너른 논뜰은 온통 비닐하우스 천지였습니다. 이 지역의 농지에서 다른 농법보다 농업용수를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온실재배가 가능한 것은 제방 건너 쪽에 금강이 항상 흐르기 때문입니다. 보를 부수지 말고 존치해야 한다고 현지의 농민들이 플래카드를 내 걸은 것은 보에 물이 가득 차 있어야 지하수를 쉽게 얻어 저렴한 비용으로 온실재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봉두천을 막 건너 논산 땅에 발을 들이고 나서는 하천부지에 낸 자전거 길을 따라 걷다가 다시 제방길로 올라섰습니다. 쉼터를 지나 다시 강변으로 내려가 얼음이 조금 녹은 곳에서 차디찬 물을 손으로 떠서 씻음으로써 이제껏 해 온 금강과의 만남 세레머니를 빼먹지 않고 이어갔습니다.
16시 정각에 봉두정 나루(?)를 지났습니다. 금강 물로 손을 씻고 나서 10여분을 더 진행해 강변에 작은 배가 정박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기가 지도에 나와 있는 봉두정나루 같은데 배가 매여 있는 것 빼고는 어떤 흔적도 찾지 못했습니다.
금강 한 가운데 타원형으로 물이 녹아 있는 부분이 꽤 크게 보였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강물이 얼어 보이지 않던 물오리(?) 들이 얼음이 녹아 있는 주위에 새까맣게 모여든 장면을 보고나서입니다. 이 장면을 보고 비로소 깨달은 것은 강물이 얼면 새들이 사라지는 것은 추워서가 아니고 얼음 속에 숨은 고기를 잡아먹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철새들이 거처를 옮기는 것은 따뜻한 곳을 찾아서가 아니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저 물오리들도 강물이 얼면 먹이를 찾아 어디론가로 거처를 옮겨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고난을 이겨내고 유지해온 것이기에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저 만치 아파트와 강다리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번 탐방의 끝점인 강경의 황산대교가 멀지 않아 보였습니다. 제가 걷고 있는 제방 길은 논산시와 강경읍에 걸쳐 있는 논강평야와 금강을 가르는 길로, 이 길은 논산천에 이르러 끝났습니다.
16시55분 금강좌안의 황산대교에 이르러 28차 금강 따라 걷기를 마쳤습니다. 논산천을 막 건넌 저를 반갑게 맞은 것은 박범신 선생의 소설 「소금」에서 이름을 따온 「강경산 소금 문학관」이었습니다. 외관이 날렵해 그 뒤 강경산(옥녀봉)에 뿌리내린 고목들과 분명하게 대비되는 이 문학관도 시간이 넉넉지 못해 그냥 지나쳤습니다. 다리 건너 논산시강경하상구장을 지나 차도로 올라서자 작년 10월12일-16일 동안에 열린 ‘강경젓갈축제'를 홍보하는 철지난 광고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길가에 큼직한 유선형의 폐선을 옮겨 놓은 강경젓갈전시관과 죽림서원을 지나 황산대교에 이르렀습니다. 시멘트 건물의 3층 정자 금강정을 올라 금강을 조망하고 싶었으나 꾹 참고, 1Km 가량 떨어진 강경역으로 내달려 17시15분발 수원행 열차에 탑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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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가 낳은 시인 신동엽(申東爗, 1930-1969) 선생을 제가 알게 된 것은 선생의 시 「껍데기는 가라」를 읽고 나서입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는 선생의 절규가 제 가슴을 뛰게 한 것은 60대까지였습니다. 70줄로 접어들자 “동학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는 민족적 순수만으로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세상으로 바뀐 지가 그 언제인데, 아직도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쇠붙이는 가라고 반외세를 외치는 시인을 민족적 순수를 지킨다하여 마냥 칭송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이 이 시를 쓸 때는 껍데기는 가라는 외침이 시대정신의 구현일 수 있었지만, 그 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도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는 것은 세상을 외눈으로 보라는 외침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나이가 듦에 따라 세상을 보는 제 눈이 변했음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 누가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자는 것이 아님을 말씀드립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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