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금강 따라걷기

금강 따라 걷기30(최종회: 곰개나루-금강대교-금강하구둑)

시인마뇽 2023. 2. 14. 08:11

탐방구간: 곰개나루-금강대교-금강하구둑

탐방일자: 2022. 2. 11()

탐방코스: 곰개나루-원나포마을-나포십자들철새관찰소-금강대교

                  -금강습지생태공원-금강하구둑-동백대교

탐방시간: 1020-1649(6시간29)

동행       : 나 홀로

 

 

  금강의 마지막 탐방 길이 더욱 뜻 깊었던 것은 조금이나마 우리나라 새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금강을 따라 걸으며 가창오리 등 겨울 철새들이 금강에 떼 지어 모여 있는 것을 보았고 제법 살이 찐 철새들이 강가 논에서 모이를 찾고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생태공원과 철새조망대에 세워진 안내판의 글을 읽고 어떤 새들이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지를 배워 향후 강변에서 새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금강생태공원 안에 설치된 금강성산지구 조류관찰대 안내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372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거나 서식했습니다. 번식지와 월동지를 오가는 조류인 철새(migatory bird)에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생각할 때 가을에 북녘에서 번식하고 남하해 이동해 오는 종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겨울새, 이른 봄 남녘에서 날아와 우리나라에서 번식하고 겨울철 남녘으로 월동을 위해 다시금 남하 이동하는 여름새, 그리고 나그네새와 떠돌이새가 있습니다. 한국의 철새는 겨울새112, 여름새 64, · 가을의 나그네새 90종 등 모두 266종이고, 텃새는 48종입니다. 여기에 미종(迷種)이거나 이미 자취를 감춘 58종을 더하면 한국의 조류는 372종에 달합니다.

 

  금강을 따라 걸으며 가장 많이 본 새는 겨울철새인 가창오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러기목 오리과에 속하는 가창오리는 몸길이가 약 40cm로 청둥오리보다 작습니다. 하천, 호수, 습지, 만이나 매립지에 서식하는 이 새는 시베리아 중부에 번식하는 새들로 알려졌습니다. 여기 금강 변에서는 가창오리 외에도 11종의 겨울 철새를 만나 볼 수 있다는데, 흰뺨검둥오리, 큰기러기, 청둥오리, 고방오리, 댕기흰죽지, 큰고니, 쇠오리, 쇠기러기, 홍머리오리, 흰죽지, 청머리오리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가창오리와 큰고니로 대표되는 겨울철새들이 번식지로 돌아간다고 해서 금강에서 새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꾀꼬리와 물총새 등의 여름 철새도 있고, 소쩍새, 왜가리 같은 텃새도 있습니다. 북쪽 번식지로부터 남쪽 월동지로 이동하는 도중, 봄이나 가을에 지나가면서 잠깐 머무는 새를 일컬어 나그네새라고 부른다는 것과 금강에서 서식하고 있는 나그네새로 붉은어깨도요와 청다리도요 등이 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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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익산의 함열역에서 하차해 웅포까지는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웅포면행복센터에서 내려 지난번에 둘러보았던 용왕사(龍王祠)를 다시 들른 것은 금강 따라 걷기의 마지막 탐방을 유서 깊은 명소에서 시작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이곳 지형이 곰이 물을 마시고 있는 형상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웅포(雄浦, 곰개나루)의 강안(江岸)에 자리하고 있는 용왕사는 정월 대보름날이면 진포대첩에서 희생된 수중고혼을 위로하고 조운선의 안전운항과 풍어, 그리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용왕제를 올렸던 곳입니다.

 

  오전 1020분 곰개나루를 출발했습니다. 용왕사에서 강변으로 내려가 13Km 가량 남은 금강하구둑으로 향했습니다. 금강유람선 선착장에서 바라본 강 건너 강변의 갈대밭이 영화 JSA를 촬영한 신성리 갈대밭이라고 하는데 너무 멀어 갈대들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서쪽으로 뻗어나가는 제방 길을 걸으며 목도한 것은 떼 지어 모여 있는 가창오리(?)들이었습니다. 강 위에 오래 방치된 준설선(?) 명진호에 설사 선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더라도 배 위 곳곳에 진을 치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 모자라 배 뒤로 엄청 많은 오리 떼들이 새까맣게 강을 덮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어쩔 수 없이 이 배를 가창오리들에 넘겨주고 하선했을 것입니다. 제방길이 끝나고 이어지는 704번 도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 군산시로 접어들었습니다. 고개 너머 건설기계연구원 사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나포양수장이 자리한 강변으로 내려가 금강 물로 두 손을 씻는 마지막  세레머니를 마쳤습니다.

 

  1143분 원나포마을 공주의 집 쉼터 옆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나포양수장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제방 길을 따라 걸으며 왼쪽 들판의 파릇파릇한 풀들을 보자 성큼 다가선 봄이 느껴졌습니다. 공주산을 데크 길로 에돌아 군산에서 오셨다는 1945년생의 바이커(biker) 한분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방 길의 쉼터 옆 벤치에 앉아 햄버그를 꺼내 든 후 금강 탐방을 이어갔습니다. 제가 지난 원나포마을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은 쇠락한 마을이지만 조선조 숙종45(1720) 관영포구가 설치되고 조창이 들어서 니리포, 줄여서 나포로 불리기 시작하면서 한 때는 번창 했던 마을이라고 합니다. 고개를 넘어 다시 들어선 제방길은 금강대교에 조금 못 미친 원서포까지 거의 직선 길로 이어졌는데 전장이 4.7Km에 달해, 이 길을 걸으며 금강의 도도한 물 흐름을 원 없이 보고 또 보았습니다. 제방 왼쪽의 넓은 나포십자들은 원래가 강변의 갈대밭이었는데 여기에 둑을 쌓아 농지로 바뀌었고 그 뒤로  나포에 면사무소와 학교 등이 들어서면서 원나포마을보다 커졌다고 합니다.

 

  1333분 금강대교를 밑으로 지났습니다. 끝이 가마득하게 멀리 보이는 제방 길을 걸으며 바라다 본 금강이 엄청 넓게느껴진 것은 하구가 가까워서일 것입니다. 섬진강이나 영산강을 따라 걸으면서 보지 못했던 탐조회랑이 설치된 철새조망대에 이르렀습니다. 제방 길 중간쯤에 탐조회랑을 설치한 것은 제방을 쌓아 나포십자들이 논으로 바뀌면서 모여든 철새들을 탐조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합니다. 넓은 논에 내려앉은 오리들이 이제껏 보았던 어떤 곳의 오리들보다 살이 더 쪄 보이는 것은 북에서 떼로 이동해온 겨울철새들에게는 여기 나포들이 더할 수 없는 낙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망대에서 바라본 서천 쪽 강 위에 희미하게 보이는 검은 선()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 가창오리들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금강대교에 거의 다 가서 훨씬 더 넓은 면적에 훨씬 더 많이 모여 있는 새들을 보자 저 새들은 몇 마리나 될까 궁금했습니다. 텔레비에서 하늘을 새까맣게 덮은 철새들이 떼 지어 날아가는 것을 보여주며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비상하고 있다고 방송하는 것으로 보아 저기 앉아 있는 거창오리들도 수만 마리는 족히 될 것 같습니다. 난생 처음 본 진풍경에 감탄하면서 이 또한 금강탐방 길에 거둬들인 생각지 못한 수확이다 싶어 가슴 뿌듯했습니다.

 

  금강대교를 막 지나 뒤돌아서 무리지어 모여 있는 철새들을 다시 보았는데, 여전히 장관이었습니다. 전라북도 조정경기장을 지나고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 금강습지생태공원에 다다랐습니다.

 

  1529분 금강하구둑을 건넜습니다. 금강생태공원에 설치된 안내판을 보고 가창오리가 어떤 새인가를 알았습니다가창오리는 물 표면에 떠서 생활하는 수면성 오리로 낮에는 호수나 저수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해가 넘어간 후에 논으로 가 추수 후 떨어진 곡식 등 식물성 먹이를 먹기에 강과 주위에 넓은 농경지가 있는 곳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가창오리는 야행성조류여서 낮에는 넓은 호수 가운데서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고, 조도가 3백룩스(lux) 이하로 낮아지면 먹이활동을 위해 이동을 한다고 합니다. 가창오리가 이동을 시작하는 3백룩스는 해넘이의 조도인 4백룩스보다 더 어두운 것으로 해가 완전히 넘어간 후의 밝기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탐방 길에서 본 가창오리들은 떼 지어 잠을 자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 또한 좀처럼 보기 힘든 진풍경이다 싶어 이렇게 기록으로 남깁니다. 전 세계에 서식하고 있는 가창오리들은 30-40만 마리라고 합니다. 그 중 95%가 한반도를 찾아와 우리나라에서는 2021년에 이 철새를 멸종위기종에서 해제했습니다.

 

  금강생태공원에서 자전거 길이 끝나는 금강하구둑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군산 쪽의 하구둑사거리에 이르러 금강갑문교를 걸어서 건넌 것은 충남 서천의 장항읍내를 걷고 싶어서였습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장항에 첫발을 들인 것은 19702월이었습니다. 한 고교동창과 함께 겨울방학을 맞아 서천본가로 내려와 머물고 있던 또 다른 동창을 만나고자 장항역을 출발해 눈을 맞아가며 꽤 먼 거리를 걸었던 일이 기억납니다. 반세기가 더 지나 다시 발을 들였는데 그때 걸었던 거리가 어디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1649분 동백대교에 이르러 금강 따라 걷기를 모두 끝마쳤습니다. 사전 준비가 소홀해 채만식문학관이 군산 쪽 하구둑사거리에서 아주 가깝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이 문학관을 들러 장편소설 탁류라는 역작을 남긴 선생을 찾아뵙고 이 소설의 배경이 된 일제강점기 중 금강하구가  어떠했는가를 여쭤보고 싶었는데, 그리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습니다. 53년 만에 다시 들른 장항읍은 시내를 걷는 대신 장항 쪽의 하구둑사거리에서 동백대교까지 금강 서안의 강변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금강은 갑문이 설치된 하구둑에서 사실 상 강물의 흐름이 끝나고, 갑문 아래는 바닷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채만식 선생이 말씀한 탁류는 갑문 아래에서만 볼 수 있었는데, 이는 바닷물이 들락거려 생긴 갯벌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금강 서안의 장항 쪽에는 갯벌에 박혀 있는 배들이 여럿 보일만큼 갯벌이 선명하게 보였는데 건너편 군산 쪽은 거리가 멀어 확실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강안이 직선으로 되어 있고 꼼짝달싹 하지 않은 배들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갯벌이 형성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장항 쪽 하구둑사거리에서 길을 건너 내려선 김인전공원에서 동백대교까지는 자전거전용도로는 아니지만 인도가 따로 나있어 걷기에 좋았습니다. 곳곳에 들어선 여러 카페들을 그냥 지나쳐 오른 쪽으로 장항역으로 가는 길이 갈리는 원수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왼쪽 가까이의 동백대교 밑으로 이동해 앞이 훤히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을 활짝 폈습니다.

 

  바로 옆 에벤에셀모자원 정문 앞으로 택시를 불러 장항역으로 이동했습니다. 반세기 전에 내렸던 장항역에서 인적이 뜸한 지금의 장항역으로 역사를 옮긴 것은 2008년 군산역과 연결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이 역의 역사가 마치 조형예술물처럼 모던해 보여 거의 한 세기 전인 1930년에 개통한 오래된 역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십 수 년 만에 1723분에 장항역을 출발하는 장항선에 몸을 실어 수원으로 향하는 것으로써 30회에 달하는 금강 따라 걷기를 전부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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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후반 초등학교를 다닐 때 형님이 산에서 잡아온 때까치 새끼를 기르는 것으로써 저와 새들과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방아깨비 등을 잡아다 먹여 한 해 여름을 키우고 나자 초가을에는 밖으로 멀리 날아다닐 만큼 커졌습니다. 가을이 되자 몇 번 집밖으로 날아갔다가 돌아오곤 하다가 어느 날 집을 떠나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없이 어디론가 날아 가버린 그 새가 보고도 싶었고 밉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는 또 다시 새들에 깊은 정을 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백두대간과 정맥들을 혼자서 종주할 때는 새들과 대화를 나누고자 저 나름 애썼습니다. 나이 들어 산행이 뜸해지면서 새들을 만날 기회가 줄어들었고, 자연스레 새들을 거의 잊고 지냈습니다.

 

  한동안 잊고 지낸 새들에 눈길을 다시 주게 된 것은 강줄기를 따라 걸으면서 부터입니다. 이번에 탐방을 마친 금강에서 앞서 걸은 섬진강이나 영산강보다 더 많은 새들을 만났습니다. 수 만 마리의 겨울철새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전장 401Km의 금강을 따라 걸으며 겨울과 여름에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철새도 만났고 봄과 가을에 들르는 나그네새도 만났습니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텃새인 참새도 강가에서 만났습니다.

 

  30회에 걸친 금강 따라 걷기를 모두 마치고나자 제가 금강에 어떤 존재였던 가 새삼 궁금했습니다. 이번 탐방으로 금강을 다시 걷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에 금강의 텃새일 수는 없습니다. 태양이 작열하는 한 여름에는 땡볕에 쓰러질까 두려워 금강 따라 걷기를 쉬었으니 여름철새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강물을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혹한에는 강을 따라 걷는 일을 삼갔으니 겨울철새도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봄과 가을에 찾아오는 나그네새일 텐데, 그렇게 불린다 해도 제가 딴 소리를 할 수 없는 것은 나그네 역할도 이번 탐방으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등학교2학년 때인 1966년에 가수 최희준은 하숙생을 불러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곡도 훌륭하지만 가사 또한 들을수록 의미가 깊어져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전북 장수의 발원지를 출발해 군산의 하구둑까지 흘러내려간 것은 금강만이 아닙니다. 금강의 물 흐름을 쫓아 걸어간 제 인생도 같이 흘렀습니다. 나그네새라도 되겠다고 열심히 금강의 강물을 뒤따라간 저도 제 인생을 흘려보낸 것입니다. 그렇게 흘러간 제 인생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에 정이나 미련을 따로 둘 이유는 더욱 없었습니다.

 

  제게는 아직 뒤쫓아 갈 강이 더 남아있습니다. 설사 강을 따라 걷는 그 길이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이라 해도 멈출 수 없는 것은 아직은 강물에 실려 흘려보낼 인생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인생에 정도 미련도 함께 실어 흘려보내면 남은 인생이 훨씬 홀가분해질 것 같습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