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황산대교- 성당포구- 웅포 곰개나루
탐방일자: 2023. 2. 4일(토)
탐방코스: 황산대교- 용두양수장-성당포구-웅북초교폐교지-웅포대교
-곰개나루 -웅포보건지소
탐방시간: 9시44분-16시46분(7시간2분)
동행 : 나 홀로
강경(江景)은 금강 천리 길 최고의 내항입니다. 강경은 강경천과 논산천이 금강으로 흘러드는 지점에 발달한 천혜의 내륙항으로 1930년대까지는 금강 하구의 관문 역할을 톡톡히 해낸 곳입니다. 위키백과사전에 따르면 강경은 조선시대에는 국내 2대포구, 3대시장의 하나였습니다.
“17세기 말엽에 열린 강경천 주변의 하시장이 개설되었고, 19세기 말에 들어와서 대시장으로 크게 부각되었다. 1870년에 옥녀봉 동쪽 기슭에 상시장이 설시되면서 2대포구, 3대시장으로 발전하였다. 강경포에 형성된 시장은 대구, 평양의 시장과 함께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리며 '1평양, 2강경, 3대구'라는 표현을 만들어냈다. 강경포구는 전국 3대 시장으로서 조선시대부터 4일과 9일장이 열렸다.”
한때 강경은 상주인구가 3만 명, 유동인구 10만 명에 이른 적이 있었고, 1920년대에는 충남 전체에서 제일 먼저 전기가 들어온 도시였습니다. 일본인들이 강경포로 대거 진출, 1910년대 초반에 한일은행 등 금융건물이 세워졌고 강경시장에는 각종 상점들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강경이 오늘날 얼마라도 옛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해마다 가을이면 젓갈축제가 열려온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엄청 큰 여객선을 금강 변에 옮겨 놓아 문을 연 ‘강경젓갈전시관’은 향후 강경의 명소로 자리매김해 나갈 것 같습니다.
강경은 기차를 타고 몇 번 지난 적이 있지만 시내를 걸어보는 것은 나흘 전이 처음이어서 그때 주마간산 격으로 지나쳐버린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면 언제 다시 와보랴 싶어 작심하고 강경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의 명소 몇 곳을 들렀습니다.
제가 하차한 강경역은 1911년 호남선의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유서 깊은 기차역입니다. 1957년 강경역에서 연무대역을 이어주는 강경선이 개통되었다는 것은 역사 안의 안내문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현재 역사는 1987년에 지어졌는데 벽돌색이 회색에 가까워서인지 무척 오래된 건물 같았습니다.
강경역에서 택시를 타고 찾아간 명소는 지금은 강경역사관으로 쓰이는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건물입니다. 1905년 한호농공은행 강경지점으로 설립된 이 은행은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이었다가 해방 후 한일은행 강경지점을 거쳐 마지막으로 충청은행 강경지점으로 바뀌면서 강경지역의 상권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금융기관으로 자리 잡았다고 안내문은 적고 있습니다. 빨간 벽돌의 은행 건물은 6.25전쟁 때 일부 파손된 것을 원형을 살려 복구한 것이라 합니다.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에서 자리를 옮겨 찾아간 곳은 금강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 죽림서원(竹林書院)입니다. 조선의 인조4년(1626)에 세워진 이 서원의 첫 이름은 황산서원이었는데, 현종5년(1665년) 사액서원이 되면서 죽림서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조광조, 이황, 이이, 성혼, 김장생, 송시열 선생 등 쟁쟁한 유학자들을 배향해 육현서원(六賢書院)으로도 불리는 이 서원은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들어가 보지 못했습니다. 바로 뒤 죽림정에 올라 내려다본 죽림서원은 강당과 서재 및 사우 등의 배치가 다른 서원과 다르지 않았으나, 집터가 좁아 육현 분들이 답답해할 것 같았습니다.
죽림서원 뒤 언덕에 자리한 임리정(臨履亭)은 1626년 사계 김장생 선생이 지은 정자로 정자 이름 임리(臨履)는 시경의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두려워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하는 것처럼 하며, 엷은 얼음을 밟는 것처럼 하라)”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거실이 들여진 이 정자의 앞마당에 세워진 임리정기비(臨履亭記碑)에 실린 글은 김상현 선생의 작품입니다. 고색창연한 임리정 뒤쪽의 공원으로 올라서자 어깨를 활짝 편 거목의 느티나무 한 그루가 눈을 끌었습니다. 송시열 선생이 임리정에서 150m가량 떨어진 가까운 곳에 팔괘정을 건립한 것은 스승 김장생 선생에 대한 추모의 염(念)이 대단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강경의 명소는 4층 높이의 전망대였습니다. 건물 안쪽에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좁은 계단을 따라가 전망대에 올라서자 전망이 일품이었는데, 오랫동안 유리창을 닦지 않아 금강이 희뿌옇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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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내려가 강변길로 들어서자 꽁꽁 얼어붙은 금강이 눈앞에 펼쳐져 오늘이 정말 봄이 시작되는 입춘(立春)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전9시44분 황산대교를 출발했습니다. 금강하구둑까지 36Km를 남겨놓은 황산대교는 다리 밑으로 지났습니다. 다리 밑을 지나자 견공 3마리가 꼬리를 치며 제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강 건너 개들도 저를 보고 짖어대는데 어인일인지 여기 견공들은 꼬리를 치며 호의를 표해 기특하고 고마웠습니다. 자전거길을 따라 걷다가 공사장을 만나 둑길로 올라서자 서쪽으로 곧게 뻗어나가는 제방길의 소실점이 보였습니다. 제방에서 왼쪽으로 조금 떨어진 화산에 자리한 교회가 1845년 김대건 신부께서 중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조선 땅에 발을 디딘 나바위성지인 것 같은데 갈 길이 멀어 들르지 못했습니다. 넓은 들판의 상포와 중포 두 마을을 차례로 지나 중심천에 이르자 용두산절개지 상부 임야에 균열이 생겨 왼쪽으로 돌아가라는 안내판이 보였습니다. 가능하면 강가를 걷고 싶어 절개지 가까이에 다가갔는데 자전거를 타고 위험하다는 길을 지나는 사람이 보여, 안심하고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데크 길을 걸어 용두양수장에 이르자 강 한가운데 얼음이 녹아 있는 곳에 수많은 물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뒤로 강물로 에워싸인 하중도의 풍광 또한 정감어려 보여 잠시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11시10분 용안제에 올라섰습니다. 용두양수장에서 5-6분 거리의 용안제에 다가가자 색색의 바람개비들이 저를 반겼습니다. 이내 오른 쪽 갈대밭으로 내려가 강변에 바짝 붙여 낸 흙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흔히들 포장도로는 오래 걸으면 자연의 흙길보다 쿠션감이 떨어져 쉽게 피곤해진다고 말합니다. 제가 경험한 바로는 요즘은 운동화 자체가 충격을 흡수하는 기능을 갖고 있어 바닥이 울퉁불퉁한 흙길보다 바닥이 고른 포장도로를 걷는 것이 덜 피곤한 것 같습니다. 강변 흙길을 얼마간 따라 걷다가 다시 제방 길로 올라가 성당포구를 향해 서진을 계속했습니다. 제방길에서 내려다본 오른 쪽 강변의 갈대밭은 제가 이제껏 보아온 어떤 갈대밭보다 훨씬 넓어 보였습니다. 제방을 경계로 왼쪽은 백색의 비닐하우스가 빽빽이 들어선 들판이고 오른 쪽은 갈대수피아로 불리는 황금빛 갈대밭으로, 양쪽의 색대비가 선명했습니다. 법성배수장을 지나 용안생태습지공원으로 내려가 잠시 쉬었다가 다시 제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제방길에 일정 간격으로 이엽송의 곰솔(해송?)을 심어놓은 것은 한 여름에 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그늘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다 싶어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13시6분 성당포구에 이르렀습니다. 용안제의 제방 길이 끝나는 곳에서 산북천 위에 놓인 데크다리인 난포교를 건너자 자전거 길은 마을 쪽으로 나 있었습니다. 잠시 자전거길에서 벗어나 산북천을 따라 금강과의 합류점까지 가보았으나 더 이상 길이 나있지 않아 성당포구금강체험관으로 되돌아가 자전거길로 복귀했습니다. 성당포구마을 지나고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 다다른 장원목장 앞 사거리에서 북쪽 길로 들어서야 남당들의 제방길로 올라설 수 있는데 깜박하고 그대로 직진해 한참 돌아가야 했습니다. 706번 도로를 만나 이 길을 따라 서진해 상제마을에 이르자 3층 건물의 교회가 보였는데, 이 교회가 바로 3.1독립운동발상거점지로 한국기독교사적 제19로 지정된 제석교회입니다. 제석교회와 웅포초교 폐교지를 차례로 지나 삼거리에 이르자 오른 쪽으로 제방으로 가는 시멘트포장도로가 나 있어, 그 길로 들어섰습니다. 꽤 큰 우사(牛舍)를 지나 제방 길로 올라서자 길을 잘못 들어 빼먹은 제방 길이 꽤 길게 보였습니다. 바로 옆 산수배수장을 지나 먼발치로 보이는 웅포대교를 향해 남진했습니다. 전북익산시의 웅포면과 충남부여군의 양화면을 이어주는 웅포대교를 눈앞에 두고 왼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갈렸습니다. 웅포대교를 건너 충남 서천쪽의 금강하구둑으로 이어지는 이 자전거길은 하구둑까지 거리가 20Km로 군산쪽의 하구둑으로 가는 직진길보다 1.5Km가 더 멀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었습니다.
15시13분 전장800m의 웅포대교를 밑으로 지났습니다. 다리 앞 정자에서 배낭을 풀어놓고 따끈한 커피를 꺼내 마시면서 십여 분 쉬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웅포대교를 밑으로 지나자 곰개나루까지 이어지는 제방길이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남쪽으로 곧게 뻗어나가는 제방 길 왼쪽에 가로수로 식재된 벚꽃나무가 촘촘하게 들어서 있어 벚꽃이 만개하는 봄철에 이 길을 걷는다면 단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방 길 오른쪽의 강변은 바이오억새단지가 끝났고, 이어지는 습지에는 버드나무 등의 습지 수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강변의 습지가 끝나자 눈앞에 펼쳐진 금강이 엄청 넓어보였습니다. 어느새 금강의 얼음이 다 녹아 강바람에 물결이 일었고, 그 물결에 조사되는 석양 빛도 같이 너울거렸는데, 때 마침 하늘에는 겨울철새들이 떼 지어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어 모두를 완상했습니다.
16시46분 웅포보건지소 앞에서 29차 금강 따라 걷기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제방 길은 단조로워 이정표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 탐방기에서 배수장이나 양수장이 자주 언급되는 것은 제방 길에는 이것들을 빼놓고는 이렇다 할 이정표가 없어서입니다. 몇 곳의 자전거쉼터를 지나 고창배수장을 지난 시각은 15시52분이었습니다. 이 배수장을 지나자 강물의 움직임은 더욱 커져 파도가 제법 크게 일었습니다. 제방을 가운데 두고 오른 쪽은 얼음이 완전히 녹아 강물이 출렁거리는데 왼쪽 아래 도랑물은 얼음이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 그 까닭이 궁금했습니다. 한강처럼 하구에 둑이 없다면 바닷물이 한강에 유입되어 소금물의 농도가 높아지고, 그만큼 빙점이 내려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금강은 하구에 둑을 쌓아 바닷물이 유입될 수 없기에 한강처럼 어는점이 내려갈 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강물은 얼음이 다 녹았는데 제방 건너 도랑물은 여전히 얼음이 남아 있는 것에 대해 제 지식으로는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웅포 앞 금강이 엄청 넓어보였던 것은 직진해 흐르는 금강이 웅포에 이르러 오른 쪽으로 휘어 흐르기 때문이 아닌 가 싶습니다. 골프장을 지나 웅포 포구에 이르자 이 겨울에도 야영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여럿 보였습니다. 선착장을 지나 나지막한 구릉에 자리한 용왕사(龍王祀)와 금강정(錦江亭)을 둘러본 후 웅포보건지소 앞으로 내려가 택시를 불러 함열역으로 이동하는 것으로써 7시간 남짓 걸린 금강탐방을 끝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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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포는 강경만큼 크지 않아 택시를 타지 않고 걸어서도 인근의 명소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웅포의 곰개나루가 승지(勝地) 일 수 있는 것은 금강과 낙조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웅포관광지의 캠핑장을 지나 강변의 구릉에 자리한 정자 용왕사(龍王祀)에 올라서자 금강이 꽤 넓어 보였고, 강 건너 서천 쪽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겼습니다. 일몰을 시간 반 정도 남긴 시각에 바라다본 금강 수면은 저녁 햇빛이 조사되어 황금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더 머물러 해넘이를 지켜본다면 그 광경은 아름다움을 뛰어넘어 장엄할 것 이 분명할 텐데 그리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 해 못내 아쉬웠습니다.
강 건너 보이는 산줄기가 충남장항의 왕대산과 보령의 백월산을 이어주는 금북기맥이라면, 저 산줄기는 금강에 물을 대는 둘레산줄기가 됩니다. 금강의 유역을 이루는 둘레산줄기의 총 길이는 약 730Km 가량 되는데 그중 제가 아직 종주하지 못한 산줄기는 전장 70Km 가량의 금북기맥과 전북 완주의 왕사봉에서 군산시의 장계산에 이르는 전장 97Km가량의 금남기맥 등 167Km나 됩니다. 이 두 산줄기는 금강 따라 걷기를 마친 후 더 나이 들기 전에 종주할 생각입니다만, 몸이 따라줄지 걱정도 됩니다.
용왕사 바로 옆에 서 있는 진포대첩지 안내판을 보고서야 곰개나루가 진포대첩지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고려 말기인 1380년 여기 금강하구의 진포에서 왜군을 격퇴한 진포대첩(鎭浦大捷)이 자세히 소개되었습니다. 왜선 500여척을 타고 쳐들어온 왜구들이 대부분 죽고 패잔병들이 충북 옥천으로 도주한 것으로 보아 여기 익산의 웅포, 함열, 용안 등을 거쳐 간 것이 틀림없다면서 안내판에는 진포의 위치를 곰개나루로 비정했습니다. 곡창지대가 배후지인 여기 웅포에 5백여척의 왜선이 상륙했을 만큼 큰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을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저의 무지가 부끄러웠습니다.
용왕사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자리한 금강정(錦江亭)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자로 난간이나 벽이 없어 사방을 둘러보기에 좋았습니다. 용왕사가 군산으로 흐르는 금강을 조망하기에 적합한 곳이라면, 금강정은 바로 아래 푸르른 대나무 숲 너머로 멀리 보이는 웅포대교에서 걸어온 금강의 강줄기가 시원스레 한 눈에 잡혀 볼만했습니다.
금강 따라 걷기가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이 창대할 것이라는 것은 다음 탐방 때 군산의 금강하구둑에서 확인하고자 합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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