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막동계곡입구-백석폭포-오대천/한강 합류점
탐방일자: 2023. 5. 2일(화)
탐방코스: 막동계곡입구-장구목이입구-숙암교차로-백석폭포-오대천/한강 합류점
탐방시간: 13시51분-18시4분(4시간13분)
동행 : 오대천 탐방팀 10명
(이상훈대장, 최돈형, 박인기, 이규성, 오종실, 안승열, 이규석, 서인수, 신진휴, 우명길)
한동안 잊고 지낸 오대산의 추억을 다시 일깨워준 것은 오랜 지우 이상훈교수가 주선한 ‘오대천 따라 걷기’ 프로그램입니다.
오대산이 등장하는 최초의 문헌은 일연 스님이 지은 『삼국유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에 실린 “오대산은 곧 백두산의 큰 줄기로 각 대(臺)에는 불보살의 진신이 항상 있었다고 한다.”라는 글은 오대산이 불교와 깊이 인연을 맺고 있는 산이라는 것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이 산의 최고봉인 비로봉을 중심으로 동대산, 두로봉, 상왕봉 및 호령봉 등 5대 고봉들이 연꽃처럼 피어오르고, 이 연꽃 한 가운데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신라시대의 고찰인 월정사와 상원사, 그리고 중대 사자암,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및 북대 미륵암등 5개의 암자들이 들어 서있고 많은 문화재들이 남아 있는 불교의 유적지이기도 해서 이 산을 찾는 불교신자들이 끊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대산은 물, 불 및 바람 등 3재가 침범하지 못하는 길지여서 이조 선조임금 때 실록각을 지어 왕조실록을 보관해왔던 5대사고지의 한 곳이기도 합니다.
이런 오대산을 처음 오른 것은 1972년10월24일입니다. 10월 유신이 선포되고 계엄령이 내려진 엄혹한 때에 공립중학교 교사 신분으로 결근을 하고 오대산 등반에 나선 것은 지금 생각해도 무모하기 짝이 없는 치기어린 짓이었습니다. 젊어 한 때 한창 산에 미쳐 있었던 데다 한 산형(山兄)과의 약속을 어떻게든 지키고 싶어 무리해서 오대산을 다녀왔는데, 때 마침 학교에서 토요일과 일요일을 끼고 사흘 연속 군민체육대회가 열려 수업을 빼먹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 네 번을 더 이 산을 등정했고, 2015년9월 한강기맥을 종주하는 길에 마지막으로 비로봉을 올라 총 여섯 번을 등정했습니다.
2015년의 비로봉 등정으로 오대산과의 인연은 끝났다 싶었는데, 이상훈교수가 ‘오대천 따라 걷기’를 주선해 다시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산의 서대사에 자리한 우통수는 오대천의 발원지로, 국토지리정보원이 태백산의 검룡소를 한강의 발원지로 인정한 1987년 이전에는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졌던 역사적 명소입니다. 작년 5월 오대산의 우통수를 올라 시작한 오대천 따라 걷기는 4회에 걸쳐 약61Km를 걸어 이번에 정선군나전면 나전리의 오대천/골지천 합류점에 다다르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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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에 서울역을 출발하는 ktx에 올라 11시35분경에 평창역에 도착했습니다. 일행들을 만나 인사를 나눈 다음 곧바로 장평으로 옮겨 이규성교수가 낸 점심을 들은 후 이번 탐방의 출발점인 막동계곡 입구로 이동했습니다. 막동계곡은 두 달 전에 다녀갔을 때 잔설이 남아 있었는데 이번에는 신록의 봄이 내려 앉아 싱그러웠습니다.
13시51분 막동계곡 입구를 출발했습니다. 막동교를 건너 오대천의 우안에 낸 59번 도를 따라 남동쪽으로 진행해 오른 쪽으로 장전계곡 길이 갈리는 장전교차로에 다다랐습니다.
평창의 향토사학자 정원대님은 그의 저서 『평창의 인문지리』에서 막동리와 장전리 사이에 마을사람들이 ‘성(城) 안’이라 부르는 산성이 있는데 문헌기록을 찾지 못해 편의상 ‘막동산성(幕洞山城)’이라 칭한다고 말했습니다. 장전리에는 맥국의 갈왕(葛王)이 난을 피하여 숨어살던 대궐 터가 있었고, 막동(幕洞)은 막(幕)을 치고 살았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합니다. 맥국의 수도는 지금의 강원도 춘천으로 알려졌습니다. 삼국사기에 신라의 3대 임금 유리이사금의 “즉위 17년 9월에 화려, 불내의 이현인이 공모연합하여 기병을 거느리고 북경을 침범하므로 맥국의 거수가 군사로써 곡하서쪽에서 이를 깨뜨리니 왕은 기뻐하며 맥국과 호의를 맺었다. 즉위 19년8월에 맥국의 거수가 금수를 사냥하여 왕에게 바쳤다.”고 적혀 있는데, 이 맥국이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춘천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갈왕은 춘천에서 이곳 막동산성에 이르는 꽤나 먼 길로 피난 왔던 것 같습니다.
장전리교차로에서 십 수분을 더 걸어 다다른 삼거리에서 장전터널을 지나는 59번 도로를 버리고 오대천을 따라 길을 낸 구도로로 들어섰습니다.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한적한 구 도로를 따라 반시간 가까이 걸으면서 모처럼 마음 편히 한 대학동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 친구가 중소기업을 창업해 튼실하게 키워 성공한 기업인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자기 사업 분야를 하나에서 열까지 꿰뚫고 있어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는 유아복사업에 관한 경험이 절대 부족해 시행착오를 겪다가 5년 만에 사업을 접은 저와 크게 다른 점이라 하겠습니다.
14시56분 평창군과 정선군의 경계인 장구목이 입구에 도착해 10여분 쉬었습니다. 이곳에서 해발고도가 1,561m인 가리왕산의 정상까지 산행거리가 4.1Km에 불과해 많은 등산객들이 이곳을 들머리 삼아 가리왕산을 오릅니다. 저도 2009년9월 고교동창들과 함께 여기 장구목이 입구를 출발해 가리왕산을 등정한 후 중봉을 거쳐 숙암분교로 하산한 적이 있습니다.
“경관이 수려하고 활엽수 극상림이 분포해 있으며 전국적인 산나물 자생지로 유명하다. 특히 백두대간의 중심으로 주목군지가 있어 산림유전자원보호림과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되는 등 경관, 생태적으로 가치가 큰 점에서 선정되었다. 동강(東江)에 흘러드는 오대천과 조양강의 발원지이며 석회암절리 동굴인 얼음동굴이 유명하다.”
산림청에서 세운 안내판에 사실과 다른 글이 적혀 있어 바로잡고자 합니다. 첫째, 가리왕산은 백두대간이 지나지 않아 백두대간의 중심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은 오대산의 두로봉까지만 이어집니다. 가리왕산은 두로봉에서 서쪽으로 분기된 한강지맥을 따라 걷다가 계방산 정상에 조금 못 미쳐 왼쪽으로 갈리는 주왕지맥을 따라 남진해 백석산을 거쳐 주왕산을 지난 후에야 다다를 수 있는 산으로 백두대간과는 한참 떨어져 있습니다. 둘째, 가리왕산은 동강에 흘러드는 오대천과 조양강의 발원지가 아닙니다. 오대천의 발원지는 오대산의 우통수이고, 조양강은 오대천과 골지천이 합류되는 정선의 나전리 합수점에서 지장천이 한강에 합류되는 정선초등학교 앞 합수점까지의 한강 상류를 이르는 것이어서 조양강의 발원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구목이 입구를 출발해 숙암교차로에 이르기까지 감입곡류의 오대천이 곳곳에 빚어낸 짙푸른 물빛의 담(潭)과 소(沼) 등 승경(勝景)을 완상했습니다. 또 20년 전에 평창으로 내려와 산다는 일행 한 분과 함께 걸으면서 귀농생활의 생생한 체험담도 잘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 분은 정년퇴직 후 전혀 알지 못했던 평창으로 귀촌해 잘 살고 있는데, 정작 경기도 파주의 벽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제가 낙향해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일지 않는 것은 학교 다닐 때 방학 때만 되면 아버지한테 이끌려 마지못해 논밭으로 나가서 일하고 겨울이면 산으로 나무하러 다니던 일들이 떠올라서였습니다.
15시52분 숙암교차로를 지났습니다. 왼쪽으로 단임과 벗밭 길이 갈리는 숙암교차로를 출발한지 5분쯤 후 오른 쪽으로 정선가리왕산케이블카 승차자장으로 가는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 이내 정선알파인레조트 앞에 이르렀습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대회의 알파인경기가 여기 가리왕산의 알파인경기장에서 열린 후 스키장을 찾는 손님들이 급격히 줄어들어서인지 썰렁해 보였습니다. 숙암리 경로당을 지나 백석폭포에 이르기까지 대화를 나눈 분은 1990년대에 과천에서 살다가 평창으로 이주해온 분으로 제 중학교 동창과 서울공대에서 학생운동을 같이했다고 합니다. 1970년대의 학생운동을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한 것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학생운동을 가르는 분기점은 바로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1980년대의 학생운동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그다지 곱지 못한 것은 1970년대의 학생운동에 비해 좌경화되고 북한의 주체사상에 경도된 것 같아서입니다.
16시50분 백석폭포에 이르렀습니다. 작년 봄 한강 상류의 골지천을 따라 걸을 때 여러 번 지났던 백석폭포는 인공폭포답게 외부에서 물이 공급되지 않아서인지 물이 전혀 흐르지 않았습니다. 이번 탐방의 끝점인 백석폭포에서 일행들은 평창으로 돌아가고, 저는 남은 구간을 마저 끝내려고 오대천과 골지천의 합류점인 정선군 나전면의 나전교로 향했습니다. 백석폭포부터 저 혼자서 이어가는 오대천 따라 걷기를 서둘러 진행한 것은 정선에서 동서울로 가는 마지막 버스가 저녁7시에 출발해서였습니다. 나전교까지 남은 거리는 약4Km에 불과하지만, 그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정선시내로 가야 서울 행 버스를 탈 수 있어 시간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오대천의 우안길로 이어지는 59번 도로를 따라 남진해 오일뱅크 주유소를 지나자 하천 건너로 철쭉꽃이 활짝 핀 졸드루야영장(?)이 보였습니다. 오대천이 굽이져 흐르면서 생긴 소(沼)는 수심이 꽤 깊어 물이 짙푸른 색을 띄었습니다. 나전3교차로를 거쳐 로젤리안 가든 앞에 이르자 오른쪽 산으로 이어지는 데크 길이 보였습니다. 나전2 교차로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 정선선을 철로 아래로 지나 바로 42번 도로가 지나는 나전1교차로 앞에 이르렀습니다. 오른 쪽으로 꺾어 만난 남평대교를 중간 쯤 가서 작년 봄 따라 걸었던 한강의 본류인 골지천의 물 흐름을 잠시 지켜보았습니다.
18시4분 정선군 나전면의 아랫나전정류장에 도착해 오대천 따라 걷기를 끝마쳤습니다. 오대천 위에 놓인 나전교를 건너며 오대천과 한강이 합류하는 합류점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전교를 건너 아랫나전 정류장에서 정선행버스를 기다리다가 차가 오지 않아 급하게 나전2리 교차로의 나전리정류장으로 자리를 옮겨 진부행 버스를 타고 진부역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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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발원지가 오대산의 우통수에서 태백산의 검룡소로 바뀐 것은 나전리의 오대천/골지천 합류점에서 우통수와 검룡소까지 거리를 측정한 결과 검룡소가 더 먼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우통수에서 발원한 오대천은 그 길이가 61Km인데 비해 검룡소에서 발원한 골지천의 길이는 94Km로 오대천보다 33Km나 더 깁니다. 이 때문에 바뀐 것은 한강의 발원지만이 아닙니다. 한강의 발원지가 우통수에서 검룡소로 바뀜에 따라 한강의 본류가 오대천에서 골지천으로 같이 변경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그동안 한강의 본류로 알려졌던 오대천은 한강의 제1지류로 내려앉았습니다. 이런 변경이 확정된 것이 1987년이니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닙니다.
이상훈 교수가 다시 이어준 오대산과의 인연도 오대천 따라 걷기를 마침으로써 다시 끊어질 것 같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더 나이 들기 전에 한 겨울에 눈을 밟으며 오대산의 주 능선을 걷고 싶은데 졸업논문 준비 때문에 1-2년 내로는 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 건강관리를 잘 한다면 그 후에도 거뜬하게 오대산을 올라 비로봉도 둘러보고 우통수도 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그리할 수 있도록 오늘의 체력을 유지하는데 힘쓰고자 합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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