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오대산 우통수-상원사-상원사탐방센터
탐방일자: 2022. 5. 3일(화)
탐방코스: 상원사탐방센터-중대사/서대사갈림길-우통수-중대사/서대사갈림길-상원사-주차장
탐방시간: 12시32분-16시12분(3시간40분)
동행 :이상훈대장 등 오대천탐방팀원 10명
작년에 평창강 따라 걷기를 성공리에 마친 친구들이 다시 찾아 나선 물줄기는 한강의 제1지류인 오대천입니다. 강원도평창군진부의 오대산 우통수에서 발원한 오대천은 유로길이가 57.8Km로, 해발고도가 천m를 넘는 고산들을 이어주는 산줄기들로 빙 둘러싸여 있습니다. 북쪽의 오대산(1,563m)을 중심으로 동쪽의 황병산(1,407m), 용산(1,028m), 두타산(1,391m), 백석봉(1,238m) 등과 서쪽의 백적산(1,181m), 백석산(1,365m), 가리왕산(1,562m) 등이 포진해 있는 이 산줄기들은 오대천에 물을 대주는 저수고(貯水庫)입니다. 우통수를 발원지로 하는 오대천은 좌우의 여러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하천의 물을 받아 세를 불려가며 남쪽으로 내달아 정선군의 북평에 이르러서야 한강의 본류로 합류됩니다.
이번에 찾아 나선 오대산의 우통수(于筒水)는 한강의 역사적 발원지로 알려진 곳입니다. 강의 발원지란 하구에서 유로길이가 가장 긴 곳을 이르는 것이어서 측량기술의 발전에 따라 발원지가 달라질 수 있는데, 한강이 바로 그러합니다. 『세종실록지리지』 등 여러 고문헌들이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지였다고 적고 있듯이 조선시대에 어엿하게 한강의 발원지로 인정받은 곳은 여기 오대산 서대사의 우통수였습니다. 조선총독부가 한강의 길이를 측량해 발원지를 삼척의 하장면(지금의 태백시 창죽동)로 바꾼 것은 1918년의 일입니다만, 우리 국민들이 받아들인 한강의 발원지는 여전히 우통수였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새롭게 계측한 결과에 따르면 태백시 창죽동 금대산 자락에 위치한 검룡소(儉龍沼)가 오대산 우통수보다 한강 하구에서 좀 더 먼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룡소가 한강의 발원지로 인식되고 있다."고 적고 있는데, 한강의 발원지가 공식적으로 평창군진부면 오대산의 우통수에서 태백시창죽동 금대봉의 검룡소로 바뀐 것은 1987년 국토지리원(오늘의 국토지리정보원)이 검룡소를 한강의 발원지로 공식 인정하고 나서입니다. 이로써 우통수는 지형적발원지로서의 지위를 잃고 역사적 발원지로만 남게 된 것입니다.
1972년 처음으로 오대산을 오른 후 일곱 번을 더 다녀왔음에도 이제야 우통수를 찾아 나선 것은 그동안 산줄기 따라 걷기에 골몰해서였습니다. 9년 전 백두대간과 휴전선 이남의 9개 정맥을 모두 걷고 나자 제 가슴 속에는 우리나라 강줄기도 한번 걸어보자는 욕망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산은 강에 물을 대주는 어머니일진데 산만 오르고 강을 외면한대서야 어찌 우리 국토를 안다고 말할 수 있으랴 싶어 두 해전에 큰맘 먹고 섬진강 따라 걷기에 나섰습니다. 영산강에 이어 한강 따라 걷기에 나선 것은 평창에 살고 있는 이상훈 동문이 주선해 한강의 제1지류인 평창강을 탐방하면서부터입니다. 작년 한해 평창강 따라 걷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이번에 한강의 또 다른 제1지류인 오대천을 따라 걷는 것도 이상훈 동문이 앞장서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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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오대천 따라 걷기에 나선 사람들은 이상훈 대장 등 모두 열 명입니다. 그중 7명은 작년에 평창강을 함께 걸었고, 3명은 이번에 처음 함께한 새내기분들입니다. 이중 특별히 초빙된(?) 50대의 새내기 여성 한 분이 앞으로 저희 팀의 의료를 맡아주어 오대천 따라 걷기가 보다 안전하고 즐거운 나들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2시32분 상원사탐방센터를 출발해 우통수로 향했습니다. 진부 시내에서 새내기 한 친구가 낸 점심으로 배를 불린 후 상원사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해발고도가 820m대인 상원사 주차장은 지대가 높아서인지 공기의 차갑기가 서울의 4월을 방불했지만, 연초록의 나뭇잎들이 가지마다 돋아나 온 산이 싱그러웠습니다. 청량한 공기에 재잘대는 새소리, 그리고 리드미칼한 계곡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선경(仙境)에 들어선 듯했습니다. 바닥에 깔린 박석(?)을 밟으며 우통수를 찾아 오르는 기분이 조선시대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는 영남의 유생들이 박석을 밟으며 문경새재를 넘을 때의 설렘과 다르지 않았겠다 싶었습니다. 몇 분을 걸어 상원사 입구를 지나자 왼쪽으로 희미한 길이 나 있었습니다. 직진하면 중대사와 적멸보궁을 거쳐 오대산의 정상인 비로봉으로 오르는데, 이 길을 버리고 서대암을 거쳐 호령봉으로 오르는 왼쪽 오솔길로 들어섰습니다. 이틀 전 답사를 마친 이상훈 대장이 말한 대로 이 길은 우통수로 가는 외길로 경사가 급한 된 비알 길이어서 천천히 걸어 오르다 잠시 쉬어가곤 했습니다.
첫 쉼터에서 선 채로 쉬면서 숨을 돌린 후 이내 산 오름을 계속한 것은 발걸음이 느려 쉬는 시간을 줄이지 않으면 일행에 뒤쳐질까 걱정해서였습니다. 경사가 완만한 길에 들어서자 얼레지, 피나물, 바람 꽃등의 봄꽃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잎도 꽃도 깔끔하기 이를 데 없는 피나물이나 치마를 들어 올리고 고혹적인 자태로 유혹하는 얼레지 꽃 등은 경기도 가평의 국망봉에서도 군락지를 본 적이 있어, 우리나라 곳곳에 분포한 대표적인 봄꽃이 아마도 이 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꽃들과 달리 오대산 같은 거산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두세 아름은 족히 됨직한 쓰러진 고목들이었습니다. 저리 누운 지가 꽤 오래되었다 싶은 것은 허리가 두 동강이가 난 거목들이 수피가 다 벗겨진 채 누워있어서였습니다.
두 번째 휴식을 마치고 몇 분을 더 걸어가 해발1,200m 대에 자리한 서대사 앞 공터에 다다랐습니다. 이 공터에서 이제껏 가슴 속에 품어온 우통수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나자 가슴이 뛰었습니다. 우통수 앞에 세워 놓은 표지석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유래했다면서 아래와 같이 이 발원지를 소개했습니다.
“이곳은 漢水의 發源地로 물빛과 맛이 特異하고 물의 무게 또한 무거워 우통수라 불리며 속리산 삼파수와 忠州 달천과 함께 朝鮮 三大名水로 전해지고 있다. 五臺 信仰을 정착시킨 新羅의 寶天(寶川의 오기인 듯) 太子가 水精庵에서 수도할 때 이 물을 길어다가 문수보살에게 공양하였다고 한다.”
덮개를 열어 우통수의 우물물을 직접 보고 사진을 찍은 후, 옆자리의 서대사를 들러보고자 했으나 참선 정진중이어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안내문이 보여 그냥 하산했습니다.
왕복 산행에서 하산길은 올라갈 때 익힌 학습효과와 중력의 도움으로 등산길보다 훨씬 힘이 덜 듭니다. 단조로울 수 있는 하산길이 이채로웠던 것은 새내기 한 분의 선 그라스 분실사건과 한 친구의 ‘흥부가’ 열창이었습니다. 선글라스를 분실한 것이 태양을 잃은 것은 아니고 글라스만 잃은 것이어서 되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새내기 한 친구가 선글라스를 줍고 또 한 새내기가 이를 전해주고, 이렇게 찾은 선글라스의 주인도 이번 나들이의 새내기여서 마치 세 명의 새내기들이 각본을 짜고 꾸민 연극 같았습니다. 이 연극(?)은 주인 분이 상원사의 청량다원을 들러 차를 대접하는 것으로써 끝났습니다. ‘흥부가’의 주인공이 마음껏 여행을 즐긴 제비일 수 있다는 것은 이번에 판소리를 듣고서 처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노래를 열창한 친구는 우리나라 큰 산줄기인 대간과 정맥의 산들을 소재로 하여 가사를 지어 불러보는 것도 좋겠다는 뜻을 표했는데, 잘하면 제비의 여행을 묘사한 ‘흥부가’에 버금갈만한 대작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대산의 모든 새들과 온갖 꽃들도 경청하며 환호했을 판소리를 바로 옆에서 들을 수 있도록 열창한 친구가 고맙기 그지없었습니다.
16시12분 상원사탐방센터로 돌아가 첫 번째 오대산 따라 걷기를 마쳤습니다. 예정했던 선재길 일부는 다음에 걷기로 하고 월정사를 빠져 나가 한강시원지체험관을 들렀습니다. 이 체험관에서 한강발원지로서의 우통수의 위상을 가늠할 만한 전시물을 살펴본 후 길가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또 한 친구가 낸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것으로써 하루 여정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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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통수를 보기 전까지는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의 여러 고문헌에 한강의 발원지로 소개된 역사적 명소를 직접 본다 싶어 가슴이 설렜습니다. 막상 가서 보고나자 이런 설렘이 끝내 감격으로 이어지지 못해 많이 아쉬웠는데, 이는 우통수의 초라함이 시골마을의 우물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였습니다.
표지석의 안내문을 무색하게 만든 것은 우통수의 관리형태였습니다. 우통수 바로 위에 높이 1m가량의 사각형 격자를 설치하고 그 위에 덮개를 씌워 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덮개 중간쯤에 설치된 여는 것을 찾아 간신히 열고나서야 우통수의 물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규모나 깊이가 제 고향마을 우물보다 못한 우통수의 물이 다른 물보다 빼어난 것은 물빛과 물맛 때문이라 하는데, 정작 우통수의 물은 빛이 제대로 비치지 않아 고운 물빛을 볼 수 없었고, 두레박으로 물을 길을 수 없어 맛난 물맛도 맛볼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덮개를 해 씌운 데는 그 나름 이유가 있었습니다. 해발 약 1,200m대의 높은 곳에 자리한 우통수의 물은 지하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이 아니고 암석에 생긴 절리를 따라 주변 바위에서 흐르는 물이 고이게 되면서 생긴 우물물이라 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 “지금은 나무덮개로 덮여 있으며 식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검룡소에서 솟아오르는 물의 양에 비해 우통수에서 흐르는 물의 양은 매우 적다. 법정 탐방로가 아닌 곳에 자리하고 있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왔다. 또한 우통수의 역사·문화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보전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가치를 잃어 간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고 적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덮개를 덮어 우통수를 가두어 둘 것이 아니라 지붕을 해 씌워서라도 우물물이 보이도록 해야 하지 않나 싶어 사족을 달았습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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