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일자: 2024. 11. 12일
탐방지 : 대구달성군소재 곽재우장군 묘지
동행 : 나 홀로

우리나라 역사상 의병들의 구국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것은 전국 각지에서 의병들이 봉기해 일본군과 맞서 싸운 임진왜란 때일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조선이 일본에 패망하지 않은 것은 정규군이 강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조선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중국 명(明)나라의 참전, 이순신 장군의 연이은 승리, 그리고 의병의 저항 덕분이었습니다.
왜군(倭軍)보다 훨씬 적은 숫자의 청군(淸軍)이 침략한 병자호란에서 조선이 청나라에 맥없이 항복한 것은 임진왜란을 승전으로 이끈 3가지 승인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서라고 생각합니다. 병자호란 때는 이순신 장군에 필적할 만한 명장(名將)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김자겸은 봉화조차 제대로 올리지 못했고 임경업은 청군이 지나버린 뒤에야 조선의 침공을 알았습니다. 임진왜란 때는 후방에서 의병들이 들고 일어나 왜군을 괴롭혔는데, 병자호란 때는 청군의 후방인 평안도나 함경도에서 의병이 봉기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곽재우(郭再祐, 1552-1617) 장군을 높이 우러러보는 것은 임진왜란 때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워 이 나라를 지킨 의병장이어서입니다. 장군께서 경상남도 의령군에서 태어나 대구시 달성군에 묻히셨다는 것을 알고, 낙동강을 따라 걷는 길에 들를 생각에서 지도에서 생가와 묘지를 찾아보았습니다. 낙동강에서 의령군유곡면의 생가는 4Km가량 떨어져 있고, 달성군구지면의 묘지는 400m 정도밖에 안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낙동강을 따라 걷는 길에 장군의 묘지를 찾아갔습니다.
달성군의 구지오토캠핑장을 출발해 장군의 묘지에 이르기까지 낙동강을 따라 3시간 남짓 걸었습니다. 조선 전기의 유학자인 김일손과 정여창이 즐겨 찾은 조선시대 정자 이노정과 구지취수장을 차례로 지나 다다른 삼거리에서 잠시 자전거길을 벗어나 고갯마루에 오르자 왼쪽으로 홍의장군 묘역이 보였습니다.
홍의장군 묘역은 충익공 곽재우 장군의 증조부로부터 5대에 걸친 선영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묘역 안으로 들어가 여러 기의 묘지를 둘러본 후 주차장이 들어선 묘역 입구로 내려섰습니다. 묘역 입구의 안내도에서 장군의 묘의 위치를 확인한 후 다시 묘역 안으로 들어가 장군의 묘지를 찾아갔습니다.
장군은 임종에 즈음하여 예장(禮葬)을 하지 말라면서 "왜란 때 선왕의 두 능(陵)이 무너지고 불탔으니 신하된 자가 어찌 묘의 봉분을 쌓겠는가? 내가 죽거든 구덩이에 묻기만 하라.“ 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1717년 장군께서 별세하시자 후손들은 유언대로 봉분 없이 평장(平葬)을 했는데, 1731년 (영조 7년) 현풍현감 이우인(李友仁)이 장군의 묘소를 참배한 후, 실묘(失墓)가 염려된다면서 사림들을 설득해 봉분을 낮게 쌓았다고 합니다. 1732년 경상도 관찰사 조현명(趙顯命)은 장군의 유언을 존중하여 대제학 이덕수(李德壽)로부터 비문을, 좌의정 조문명(趙文命)으로부터는 글씨를 받아 소박한 장식의 자그마한 묘비로 세웠습니다. 장군의 묘는 정부인 상산김씨(商山金氏)와 합장묘이며, 장군께서 태어난 의령군의 유가면 가태리에는 불천위 사우(祠宇)와 예연서원이 있다고 안내판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명성에 비해 초라해 보이는 장군의 묘지를 참배한 후 자전거길로 복귀해 낙동강 따라 걷기를 이어가면서 충익공 곽재우 장군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장군은 조선 중기의 의병장이자 성리학자였습니다. 경상남도 의령군의 외갓집에서 태어난 장군은 남명 조식선생의 문하에서 수학했습니다. 선생은 상주 김씨 집안 출신인 만호 김행의 여식과 결혼했는데, 이 부인은 남명 조식의 외손녀였습니다. 장군은 동강 김우옹과 동서지간이 됨으로써 경상우도 사대부들과 쉽게 교유할 수 있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장군은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전쟁 발발 열흘이 지나지 않아 의병을 일으켰고, 의령 ᐧ 삼가 ᐧ 합천 등지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왜군의 수송선을 공격해 물러나게 하는 등 왜군의 호남진출을 저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붉은 옷을 입어 홍의장군(紅衣將軍)으로도 널리 알려진 장군은 전쟁이 끝나자 진주목사를 거쳐 경상 좌부사로 임명되어 영남지역의 군무를 총괄하다가 1600년 장계를 올리고 낙향했습니다. 장군은 일본과의 화의를 주장하는 장계를 올리고 왕명을 기다리지 않고 낙향해 버린 것이 문제 되어 유배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곽재우 장군이 제가 사는 경기도군포시에 소재한 고찰 수리사를 중건하고 여생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이 절의 안내판에서 읽은 바 있습니다. 경상도에서 의병을 일으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한 의병장 곽재우 장군이 이 먼 곳까지 와서 수리사를 중건하고 여생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안내판에 적힌 대로 불심이 돈독해 이 절을 중건하고 여생을 보냈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군포의 수리사가 장군의 고향에서 너무 멀어서 하는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선의 국왕은 의병장의 전공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그들을 멀리했다는 것입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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