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시인마뇽의 명소탐방/국내명소 탐방기

156. 철원명소 탐방기5(용양습지)

시인마뇽 2025. 4. 24. 11:07

탐방일자: 2025420()

탐방지   : 강원도철원군김화읍암정리 소재 용양습지

동행      : 나 홀로

 

 

 

  강원도 철원의 용양습지는 몇 년 전만 해도 민간인들이 탐방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용양습지는 민통선 너머 DMZ 남방한계선 사이에 자리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었는데, 2016년에야 DMZ생태평화공원의 탐방코스로 개방되면서 저 같은 민간인들도 출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용양습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탄강 따라 걷기를 계획하면서부터입니다. 한탄강은 발원지가 북한의 평강군에 있어 한탄강 따라 걷기를 발원지에서 시작할 수 없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북한 땅의 한탄강을 따라 걷지 못하는 것은 철원군김화읍도창리에서 한탄강에 합류하는 남한 땅의 화강(남대천)을 따라 걷는 것으로 대신할 뜻에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화강 역시 북한 땅에서 발원하지만, 발원지에서 남방한계선까지 거리가 짧고, 군부대에서 용양습지를 개방해 남방한계선에서 화강탐방을 시작할 수 있으며, 이 강을 20Km 남짓 따라 걸으면  한탄강과의 합류점에 다다르므로 곧바로 한탄강 따라 걷기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철원DMZ생태평화공원방문자센터에 전화를 걸어 DMZ생태평화공원의 탐방에 관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습니다. 매일 10시와 14시에 방문자센터를 출발해 후방CP-고라니쉼터-십자탑-숲속쉼터-후방CP로 이어지는 십자탑코스와 용양습지주차장-용양습지남방한계선-금강산전기철도-용양습지주차장으로로 연결되는 용양습지코스를 탐방할 수 있는데, 현지 사정상 십자탑코스는 개방되지 않아 탐방할 수 없고 용양습지코스만 탐방할 수 있다는 것과 매주 화요일은 휴무이며, 출발 30분전에 도착해 신고서를 작성해 제출하고 탐방에 필요한 안내를 받아야 한다는 답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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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일찍 서둘러 동서울터미널에서 철원의 와수리터미널로 향하는 725분 버스에 올랐습니다. 1시간40분가량 달려 도착한 와수리터미널에서 택시로 갈아타 930분이 조금 못 되어 철원DMZ생태평화공원방문자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신고서를 제출하고  동영상을 관람한 후 김화이야기관으로 옮겨 김화군과 김화역,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선인 금강산전기철도에 관한 전시물들을 보았습니다

 

  오전 10시 방문자센터를 출발했습니다. 단체예약이 취소되어 저 혼자 용양습지 탐방길에 오르게 되어 해설사분께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나이가 갓 30세라는 해설사 분이 운전하는 승합차를 타고 가다 검문소를 지나 일제 때 김화역이 들어선 역사터를 보았습니다. 역사터는 어떤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들판이어서 해설사분이 일러주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얼마 후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주차해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암정교를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1917년 일제 때 건설된 암정교는(巖井橋)는 교량 길이가 142m, 폭이 5.5m, 높이가 7m나 되는 철원 지역 최초의 근대식 교량으로, 한때 번성했던 김화군의 상징이었다고 합니다. 디지털철원문화대전이 적고 있는 바와 같이 암정교의 아름다움은 당시로는 보기 드물게 빼어났던 것 같습니다.

 

콘크리트 라멘조의 구조적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다리로 3개의 기둥이 한 조가 되어 아래의 기초 부분과 함께 교각을 이루며 부재가 만나는 곳에는 가새를 대 대각선으로 콘크리트를 보강하였다. 교각(橋脚)을 보면 교각 자체를 한 틀에서 뽑아내 부재를 조합한 듯한 격자무늬를 형성하였다. 상부 난간은 전통적으로 다리를 놓는 수법인 아치 모양이 이어지는데 당시로서는 가장 우아하고 웅장한 형태였다.”

 

  암장교는 김화군에서 화천군이나 춘천시로 가는 길목에 건설되어 중요한 교통로였는데,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중간 부분이 무너져 내려 교량으로서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파괴된 옛 암정교는 그대로 두고, 김화주민의 염원을 담아 화강 하류 쪽으로 50m가량 떨어진 곳에 길이 171m, 9m, 높이 15m의 제2 암정교를 건설한 것은 1988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한국전쟁 때 북한 쪽으로 전체 면적의 2/3가량이 넘어가 군()의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고 철원군의 한 읍인 김화읍으로 남게 된 옛 김화군의 주민들에게는 제2암장교 건설로 얼마간 위로를 받았을 것 같습니다.

 

  암장교를 사진 찍은 후 용양습지주차장으로 이동해 차에서 내리자 한 사병이 저희 일행을 맞아 앞장섰습니다.

 

  이번에 찾아간 용양습지는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용양리에 있는 용양보의 건설로 형성된 습지로 그다지 넓은 편은 아닙니다. 한국전쟁 이후 60년간 사람의 발길이 차단되어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된 용양습지는 왕버들 군락이 분포하는 습지로, 두루미, 고니, 가마우지 등 다양한 철새가 찾아오는 도래지입니다. 2018년 환경부 조사로 여기 용양습지에서 서식하는 것이 확인된 분홍장구채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급 식물입니다. 이 식물은 강원도 영월에서부터 압록강까지 분포하는 북방계 식물로, 주로 가파른 절벽의 바위틈에서 자라며, 가는장구채 등 다른 장구채속과 달리 10~11월에 분홍색 꽃을 피운다고 디지털철원문화대전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용양습지는 그 풍광이 참으로 고혹적이었습니다. 남방한계선에 접해 있는 최전방지역에 자리해 생태계가 잘 보존된 데다 이 날따라 탐방객이 저 혼자로 사방이 고요하고 고즈넉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 것은 용양보 중앙에 자리한 출렁다리였습니다. 병사들이 건너다녔던 출렁다리는 지금은 교각과 상부의 철선만 쳐진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이 출렁다리에 거무스름한 민물가마우지가 꽤 많이 앉아 있는 모습이 현실 세계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조금은 몽환적으로 보였습니다. 용양습지 둘레길을 걸으며 물속에 하반신을 들인 수 많은 버드나무를 보자 김기덕 감독의 영화 ,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 나오는 경북 청송의 주산지가 생각났습니다. 여기 용양습지가 주산지보다 더 신비로워 보이는 것은 여기 용양습지의 버드나무들이 잔해만 남아 있는 출렁다리와 어울려 빚어내는 풍경이 더욱 그윽해서였습니다.

 

  이번 용양습지 나들이는 단순한 관광을 넘어선 안보교육의 장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었습니다. 용양습지 길가에 지뢰 MINE” 글귀가 적힌 역삼각형의 경고판을 보자 제가 남방한계선에 접해 있는 최전방지역을 걷고 있다는 것이 실감됐습니다. 해설사분은 해발 471m의 성제산 정상(?)에 자리한 GOP(General Outpost)가  GP(Guard Post)OP(Outpost)와 어떻게 다른 가를 설명하면서, 20189·19 군사 합의에 따라 남북이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감시 초소(GP) 일부를 철수시킬 때, 남한이 훨씬 많은 GP를 설치한 북한과 동수로 철수시켰다고 말했습니다. 길옆의 깎아지른 암벽에 흰색으로 표시한 구멍이 보였는데 이 구멍들은 안에 다이너마이트가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적시에 암벽을 폭파해 적군의 전차가 전진하는 것을 막거나 지연시키는데 사용하고자 넣어두는 것이라 했습니다. 용양습지의 서안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남방한계선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서 155마일의 휴전선 정중앙에 위치한 승리전망대와 천 개의 암봉들이 불상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천불산을 조망했습니다. 해설사 분이 덧붙여 설명한 것은 저격능선전투였습니다. 저격능선전투란 1952년 김화지역에 배치된 국군 제2사단이 중공군 제15군과 맞서 주 저항선 전방의 전초진지를 빼앗기 위해 수행한 고지전을 이릅니다. 저는 저격능선의 영어 표기가  Sniper's  Ridge 라는 것과 이 전투에서 백마고지전투보다 더 많은 국군이 전사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화강을 건너 금강산 철로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용양습지 한 가운데 나 있는 철로는 일제 때 금강산 전기철도가 다니던 길 중 800m(?)”를 관광용으로 복원한 것입니다. 철로 끝머리에서 당시 운행하던 전기열차를 본뜬 모형물과 철원-김화-내금강의 표지목을 보자 11년 전 서울에서 고성으로 이동해 하루를 묵은 후 버스를 타고 다녀온 금강산의 늦가을 풍광이 선명하게 기억났습니다. 1931년 총연장 116Km의 금강산 전기철도가 완공된 후로는 경원선 환승역인 철원역에서 출발해 김화역을 거쳐 내금강까지 이 철도가 운행되었다고 합니다. 원래 이 전기철도는 창도지역의 유화철 반출을 위해 건설했는데 내금강까지 연결된 후로는 금강산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것으로  주가 바뀌었습니다. 당시 철원에서 금강산까지는 4시간 반가량 걸렸고, 매일 8회 운행하였으며, 요금은 당시 쌀 1가마 값인 756전에 이를 정도로 비쌌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습니다.

 

  용화습지탐방의 마지막 코스는 금강산전기철도의 철교를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오늘날에도 이 철교가 중요한 것은 교각을 이용해 용양보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건설된 용양보 덕분에 김화벌에 농업용수 공급이 가능해졌고, 상류쪽으로 용양습지가 만들어져 희귀종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가 조성되었으며, 수많은 내방객들이 마음 편히 용양습지의 매혹적인 풍광을 완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싶자 이 다리가 고맙고 또 고마웠습니다. 또 하나 특기할 것은 이 다리에서 민물가마우지의 쉼터인 출렁다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철교를 건너 용양습지를 사진찍은 후 주자장으로 이동해 철원DMZ생태평화공원방문자센터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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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에 금강산에 가려면 서울에서 철원을 거쳐서  김화를 지난 후 금성, 창도를 거쳐 단발령을 넘어야 했습니다. 일제 때에는 기차를 타고 금강산을 다녀올 수 있었는데, 이는 1914년 서울-철원-원산 간의 경원선이 개통되고, 1931년 철원-김화-내금강 간에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철도인 금강산선이 완공된 덕분입니다. 김화군의 전성기는 금강산선이 운행된 후부터 1945년 해방되기까지가 아닌가 합니다. 김화읍과 11개면으로 이루어진 김화군의 인구가 1945년 기준 92,622명이었다고 하니 일제 때에 김화군의 군세가 어떠했는지 가히 짐작됩니다.

 

  김화군의 중심지는 김화읍으로 1944년 기준 인구는 11,887명이었다고 합니다. 김화읍은 19458·15 광복 후 38°선 이북 지역으로 북한에 속했다가, 19537월 휴전협정 체결의 결과로 휴전선 이남 지역이 된 수복지구로, 철원군에 편입된 것은 1961년 이후입니다.

 

  이번에 탐방한 용양습지에서 김화군의 군청소재지였던 김화읍까지는 화강으로 연결됩니다. 김화읍의 생창리마을회관을 출발해 도창리검문소까지 화강을 따라 걷는 길에 김화읍내 시가지를 걸었습니다. 차들은 더러 보였지만 시가지가 너무 한산해 스산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2025331일 기준 김화읍의 총인구수가 3,017명으로, 1944년의 11,887명에서 거의 1/4로 줄어들었으니 거리가 한산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싶었습니다.

 

  민물가우지마가 거의 다 파괴된 출렁다리에 떼지어 앉아있는 모습이 조금은 을씨년스럽다 했는데, 한때 번성했던 김화읍에서 조용한 시가지를 걸으며 스산하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영고성쇠를 피할 수 없는데, 김화읍인들 무슨 수로 피해갈 수 있었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단 한명의 관광객을 위해 열심히 해설을 하고 길을 안내해준 젊은 해설사 분께 감사말씀 올립니다. 이번에 탐방한 용양습지는 손주들을 데리고 다시 찾고 싶은 승지임을 부기하며 이 글을 맺습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