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시인마뇽의 명소탐방/국내명소 탐방기

161. 제천 명소 탐방기1(의림지)

시인마뇽 2025. 11. 27. 11:41

탐방일자: 2025. 9. 6()

탐방지   : 충북 제천시 소재 의림지

동행      : 나 홀로

 

 

 

  이번 나들이가 가슴 설렜던 것은 오래전부터 별러온 제천의 제1명소 의림지(義林池)를 탐방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으로 제천 시내에 발을 들인 것은 모 회사에서 마케팅 임원이자 배드민턴 단장으로 일할 때인 1997년 여름입니다. 난생처음으로 제천 땅을 밟아 선수들을 격려한 후, 의림지를 들르려 했으나 짬을 내지 못해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28년이 지나 이번에 의림지를 탐방한 것은 마침 청풍명월의 고장 제천에 발을 들일 기회가 생겨서였습니다.

 

  제가 강원도 태백시의 검룡소에서 한강 따라 걷기를 시작한 것은 20233월의 일입니다. 그간 19번을 한강 탐방에 나서 지난달에 제천시의 청풍호반 선착장까지 진출했습니다. 이번에는 제천역에서 택시를 타고 가 의림지를 둘러본 후 제천역으로 돌아가 버스를 타고 청풍으로 가서 청풍호반길을 걸었습니다.

 

  이번에 의림지를 먼저 들른 것은 의림지가 제천역에서 멀지 않은 데다, 언제 다시 제천역을 찾아오랴 싶어서였습니다. 제천역에서 10분 남짓 달려 세명대학교에서 멀지 않은 의림지 입구에 도착하자 내리는 비를 마다하지 않고 온몸으로 맞고 있는 의림지 저수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삼한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인공 저수지 의림지(義林池)는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 일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밀양 수산제, 김제 벽골제와 함께 가장 오래된 저수지의 하나인 이 저수지는 세 저수지 중에서 관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는 유일한 저수지입니다. 의림지는 우륵이 축조했다는 설과 현감 박의림이 축조했다는 설도 있으나, 삼한시대의 저수지로 보는 것이 정설이라 합니다. 조선 세종 때와 세조 3년에 정인지가 둑방을 고쳤고, 1910년부터 5년간 다시 보수했으며, 1972년 홍수로 서쪽 둑방이 무너져 개축했습니다. 1972년 둑방 붕괴 때의 조사에서 의림지 바닥에 큰 샘이 있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국민족대백과사전은 적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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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 856분 의림지의 안산모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해 시계반대 방향으로 돌 뜻에서 북쪽 제방길로 들어섰습니다. 서쪽으로 얼마 걷지 않아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저수지 안에 다소곳이 자리한 아담한 섬입니다. 의림지섬으로 명명된 이 섬을 소개하는 글이 안내판에 실려 있어 여기에 옮겨 놓습니다

 

  “의림지 북쪽에 위치한 인공섬으로, 섬 주변에 순채가 많이 나 '순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 숙종 22(1696) 제천현감 홍중우(1661~1726)가 의림지를 보축할 때, 이를 기념하기 위해 김봉지 (1649-1675) 가 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순주에 대한 기록은 여러 곳에 남아 있는데, 김봉지의 <제천십육경>에는 '순주는 물에 잠기지 않고, 순채가 물에 가득하다.'고 하였으며, 김이만(1683-1758)은 <학고선생문집>에  '순주에서 의림지의 수심을 잰다.'고 하였다. 현재 순주는 각종 철새들의 안전한 서식처가 되고 있다.”

 

  길 건너 의림지파크랜드는 비가 내려서인지 드나드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북쪽 둑방길의 안내판에 실린 제천의림지와 제림이라는 제목의 소개 글을 꼼꼼히 읽고나자 의림지의 대강을 알 것 같았습니다.  

 

  “의림지는 산과 산 사이에 움푹 들어간 곳에 만들어진 것으로 고대 수리시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다. 충청도의 별칭인 호서(湖西)라는 말은 호수의 서쪽이라는 뜻으로 바로 이 의림지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또한 큰 둑이나 제방을 의미하는 여토(余吐), 내제(奈堤)라는 제천의 옛 이름도 의림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정된다. 의림지의 축조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세종실록지리지에 그 존재가 보인다. 또한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에서 실시한 제방남쪽하단부 발굴조사 결과 최소한 삼국시대에 만들었을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이후 1914~1918년에 수문 등을 보수하였고 1972년 정마 때 제방 일부가 파손된 것을 복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의림지는 제방길이 320m에 둘레는 약 1.8Km, 수심은 최대 1.8m에 달하며 저수면적보다 관개면적이 넓게 되어 있어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효율적인 관개시설이라 할 수 있다. 의림지 제방은 흙으로 쌓았는데 하부에서 발견된 부엽공법(敷葉工法)과 물이 새거나 흘러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기술 등은 고도로 발달된 토목기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한편 제방 위에는 소나무와 버드나무 숲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고 있어 예부터 제림이라 불려왔으며 주변의 정자와 누각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의림지와 제방은 조선 후기 화가 이방운(李昉運)이 그린 사군강산삼선수석(四郡江山蔘僊水石)에 나오는 명승지 8곳 중의 하나로 전통적인 경관지이다. 현재까지도 많은 농민들이 찾는 제천농업의 살아 있는 관개문화유산으로 제천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지금도 의림지 아래 넓은 들판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삼한시대에 축조된 것 중 지금도 쓰이고 있는 것이 여기 의림지 말고 또 무엇이 남아 있겠나 싶어 제가 걷고 있는 의림지가 참으로 소중한 유적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추폭포 유리전망대를 들른 후  관광안내소를 지나 데크 다리를 건너자 비에 젖은 노송들이 저를 반겼습니다. 길가에 서 있는 안내판에는 여기 의림지가 1972년 발생한 태풍 베티로 어떤 지경에 처했던 가를 알려주는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1972462mm의 강우량을 기록한 태풍 베티(Betty)로 인해 우리나라는 전국적으로 막대한 재산 피해와 인명피해, 그리고 문화재가 손상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819일 월류(越流) 위기에 처한 의림지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인공적인 배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수압을 견디지 못한 제방의 일부가 붕괴되었습니다. 그때 쏟아진 물줄기가 농경지였던 신월동과 하소동 일대를 덮쳤는데, 만약 의림지가 월류하여 남쪽 제방이 붕괴되었다면 청전 뜰을 따라 시가지로 흘러든 물로 인해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리 고장은 우리 힘으로 복구하자'는 마음으로 힘을 모았던 제천시민과 공무원, 군인, 학생 등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으로 의림지는 오늘과 같이 복구될 수 있었습니다. 의림지를 되살린 이날의 추억은 의림지의 살아있는 역사로 제천시민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카카오맵에서 의림지를 찾아 자세히 지도를 보고 나서야 위의 글이 제대로 이해되었습니다. 카카오맵에 따르면 비룡담저수지의 물이 남쪽으로 흘러 관광안내소를 막 지나 의림지로 흘러들어갔다가 용추폭포 유리전망대 아래에서 의림지에서 흘러나와 남서쪽으로 흐릅니다. 이름이 나와 있지 않은 이 하천은 하소천에 합류되고, 하소천은 장평천에 합류됩니다. 장평천은 제천천에 합류되고, 제천천은 제가 걷고 있는 한강에 합류됩니다. 1972년 태풍 베티로 의림지의 남쪽 제방이 붕괴되었다면 의림지에 저수된 물은 위 수로대로 흐르지 않고 곧바로 청천 뜰을 휩쓸고 제천시가지를 덮쳐 더 큰 피해를 보았을 것이라는 것을 지도를 보고서야 이해했습니다. 다만 의림지에 저수된 물이 하천을 따라 유입된것인지, 아니면  1972년 조사에서 의림지 바닥에 큰 샘이 있는 것이 밝혀졌다는데 그 샘에서 분출되는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노송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흙길로 들어서자 경호루(鏡湖樓)가 저를 반겼습니다. 1948년 목조와가로 지어진 경호루(鏡湖樓)는 정면 3, 측면 2칸에 2층 누각의 누정으로, 팔작집으로 단청이 되어 있었습니다. 경호루가 돋보이는 것은 그 앞의 선착장과 호수, 그리고 고풍스러운 노송들이 받쳐주어서일 것입니다.

 

  의림지에서 경호루와 쌍벽을 이루고 있는 누정은 남쪽 제방의 영호정(暎湖亭)입니다. 크기로는 경호루가 조금 크지만 만, 역사로는 경포대보다 세기 반 가까이 더 오래되었습니다. 의림지 남쪽 제방 위에 위치한 영호정은 1807년 이집경(李集慶)이 세운 후, 6·25 전쟁으로 파괴된 것을 그의 후손으로 3·1운동 때 제천의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한 이범우(李範雨)1954년에 개수했습니다. 화강암 주춧돌 위에 건축된 나무로 만든 단층의 정자로 팔작지붕에 정면 2,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습니다.

 

  의림지에 자리한 누정은 서쪽 제방의 경호루와 남쪽 제방의 영호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쪽 제방에 위치한 우륵정(于勒亭)은 우륵대(于勒臺)와 더불어 우륵이 의림지의 석양 노을을 바라보면서 고향을 그리워 하며, 가야금을 탔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륵대의 저수지 안쪽을 보면 이석조(李錫祚)라는 사람이 각서한 연자암(鷰子巖) 각서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929분 반 시간 남짓 의림지 둘러보고 출발지인 안산모버스정류장으로 돌아갔습니다. 몇 분 기다리지 않아 도착한 버스를 타고 제천역으로 돌아가 청풍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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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쪽 제방에  세워진  “농경문화의 발상지 의림지”의  의림지 비석에 실린 안내문이 의림지를 압축적으로 간략하게 잘 소개해 여기에 이기(移記)합니다.

 

  “삼한시대에 심()자형으로 축조된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저수지로 옛날 입금남의 수리 상에만 올렸다는 순채가 자생하였고, 겨울철에 잡히는 공어가 명물로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호수와 어우러진 노송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각종 수생생물이 서식하고 겨울철새가 도래하는 동 생태적 가치가 높아 충북의 자연환경명소 10010걸로 지정된 곳입니다. ”

 

  의림지 축조는 삼한 시대의 선조들이 했지만, 의림지를 보살피는 것은 후손들인 저희가 할 일이라는 것을 새기면서 이 글을 맺습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