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일자: 2025. 10. 28일(화)
탐방지 : 강원도원주시소재 거돈사 및 법천사 폐사지
동행 : 나 홀로

한강을 따라 걷는 길에 원주시 부론면에 소재한 거돈사와 법천사의 폐사지를 들렀습니다. 이번 한강 따라 걷기를 충청북도 충주시의 복여울교에서 시작해 1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남한강대교 동단의 원주시부론에서 끝낸 것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거돈사와 법천사의 폐사지를 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삼국시대에 중국을 통해 들어온 불교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국교로 자리 잡을 만큼 번창했습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천년고찰을 만나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삼국이 통일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가 마냥 평화로웠던 것만은 아닙니다. 13세기의 몽골 침입, 16세기의 임진왜란, 17세기의 병자호란, 20세기의 일제강점과 6.25전쟁 등을 겪으면서 사찰이 파괴되어 절터만 남아 있는 고찰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찰은 물론 이름조차 사라지고 절터만 남은 전국의 폐사지(廢寺址)는 2020년말 현재 5,738곳이라 합니다. 이 많은 폐사지 중에서 제가 다녀온 곳은 경주의 황룡사지, 감은사지, 분황사지와 부여의 정림사지, 익산의 미륵사지, 합천의 영암사지, 강화의 선원사지와 양주의 회암사지 등 모두 8곳입니다.
이번에 둘러본 폐사지는 원주시 부론면의 거돈사지와 법천사지로, 지장면에 자리한 흥법사지와 더불어 원주의 3대 폐사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 두 폐사지가 자리하고 있는 원주시 부론면은 강원도, 경기도와 충청북도가 만나는 곳으로, 한강의 제1지류인 운계천을 경계로 충청북도충주시소태면과, 한강의 본류인 남한강을 경계로 충주시앙성면과, 그리고 한강의 제1지류인 섬강을 경계로 경기도여주시강천면과 맞보고 있습니다.
한강과 섬강이 만나는 합류점은 강원도원주시, 경기도여주시, 충청북도충주시가 만나는 3도의 접점으로, 조운창인 원주 흥운창이 들어섰던 곳이기도 합니다. 흥원창은 원주·평창·영월·정선 횡성 등 강원도 영서지방 남부 5개 고을의 세곡과 강릉·삼척·울진·평해 등 영동지방 남부 4개 고을의 세곡을 수납, 보관하였다가 서울의 조창으로 운송하는 일을 맡아 한 곳입니다. 흥운창이 들어서면서 이 일대가 수운의 요충지가 되자 모여드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식견이 풍부한 사람도 늘어나면서 의론(議論)도 같이 많아짐에 따라 이 지역 지명이 부론(富論)이 되었다고 합니다. 부론 인근에 이름난 폐사지가 많은 것은 조운창이 들어설 정도로 물류가 활발했던 곳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원주 흥원창(興元倉)은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된 후 수운(水運)이 육운(陸運)으로 대체되면서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거돈사와 법륜사는 자취가 될 만한 유적을 남겼지만 흥원창은 자취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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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반경 충주시양성면의 복여울교를 출발해 남한강대교의 동단에 자리한 원주시부론면의 법천소공원에 다다른 것은 오후 3시가 조금 지나서였습니다. 거돈사지와 법천사지를 둘러보고 문막행 버스가 출발하는 오후 5시까지 여기에 다시 돌아오면 되겠다 싶어, 택시를 불러 거돈사와 법천사의 폐사지 탐방에 나섰습니다.
1.원주(原州) 거돈사지(居頓寺址)
탐방일자: 2025. 10. 28일(화)
탐방지 : 강원도원주시부론면정산리 소재 거돈사지
동행 : 나 홀로

택시에서 내리자 텅 빈 거돈사 폐사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폐사지는 원주시 부론면의 현계산 기슭을 안고 자리한 원주 거돈사의 절터로 그 넓이가 7,500평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림대학교 박물관에서 1989년~1992년까지 4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거돈사는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처음 지어졌고, 고려 초기에 확장 · 보수되어 조선 전기까지 유지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원주 거돈사는 지증대사 도헌, 원공국사 지종, 정각국사 지겸 등이 주석(駐錫)하였으며, 조선 중기 이후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전하고 있습니다.
거돈사지에서 돌아보 본 것은 금당사지, 삼층석탑, 원공국사탑비와 노거수 느티나무 등입니다.
1) 원주 거돈사지 금당지(金堂址)

거돈사의 폐사지는 약7,500평으로 황룡사나 회암사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꽤 넓어 보였습니다. 이 절터의 금당지(金堂址)에는 전면 6줄, 측면 5줄의 초석(礎石)이 보존되어 있어 본래는 20여 칸의 대법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초석의 배치로 보아 내부는 통층이고 외부는 2층 규모의 웅장한 금당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부처님을 모셨던 사찰의 중심 공간인 금당지 중앙에는 높이 약 2m의 화강석 불대좌(佛臺坐)가 자리하고 있고, 앞 쪽으로는 원주거돈사지 삼층석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2) 원주거돈사지 삼층석탑(三層石塔)

원주거돈사지 삼층석탑은 보물750호로 지정된 유적으로, 금당지 앞에 세워져 있습니다. 2단의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모습을 한 삼층석탑은 돌로 된 축대 안에 흙을 쌓고 그 위에 탑을 세운 점이 특이하다고 안내판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구성하였고, 5단의 밑받침을 둔 지붕돌은 두꺼우면서 경사면의 네 모서리가 곡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처마는 직선을 이루는데 끝부분에서의 들림이 경쾌하여 통일신라 양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는 네모난 받침돌이 있고, 그 위에 연꽃 모양의 보주(寶珠)를 얹어 놓았습니다. 탑의 조성연대는 2단을 이루는 기단구조와 기둥 모양의 새김, 5단의 지붕돌 받침 등의 수법으로 보아 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탑 앞에는 배례석(拜禮石)이 놓여 있었습니다.
3)원주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圓空國師塔碑)

보물 제78호로 지정된 원주거돈사지 원공국사탑비는 고려 시대의 스님인 원공국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공국사(930~1018)의 법명은 지종(智宗)이고, 세속에서 쓰던 성은 이씨인데, 비문에는 그의 생애와 행적, 그리고 덕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은 모습으로, 비몸이 작고 머릿돌이 큰 것이 특징입니다. 거북의 머리는 괴수 모양의 험한 인상을 한 용의 머리모양입니다. 등에 새긴 무늬는 정육각형에 가까우며, 육각형 안에는 卍모양과 연꽃무늬를 돋을새김 하였습니다. 머릿돌에는 구름 속을 요동치는 용이 불꽃에 쌓인 여의주를 두고 다투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매우 사실적이고 화려합니다. 고려 현종 16년(1025)에 세운 것으로, 당시 '해동공자' 로 불리던 대학자 최충이 글을 짓고, 김거웅이 글씨를 썼습니다. 비문에 새긴 글씨는 해서체인데, 중국 구양순의 서법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이는 고려시대의 여러 비에 새긴 글 중에서도 매우 뛰어난 것으로 중국에 비교하여도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4)노거수 느티나무

거돈사지에 도착하자 자연석으로 잘 쌓아놓은 석축이 먼저 보이며 그 가장자리에는 원주시가 보호수로 지정한 천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노거수의 수령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저 자리에서 거돈사의 영고성쇠를 지켜보았을 것이라 생각하자 새삼 미국의 국민시인 조이스 킬머(Joyce Kilmer, 1886-1918)가 나무를 극찬한 아래 시를 지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무(Trees)
나는 생각한다, 나무처럼 사랑스러운 I think that I shall never see
시를 결코 볼 수 없으리라고. A poem lovely as a tree
대지의 단물을 흐르는 젖가슴에 A tree whose hungry mouth is prest
굶주린 입술을 대고 있는 나무; Against the earth's sweet flowing breast
온종일 하느님을 보며 A tree that looks at God all day
잎이 무성한 팔을 들며 기도하는 나무: And lifts her leafy arms to pray
여름엔 머리칼에다 A tree that may in summer wear
방울새의 보금자리를 치는 나무; A nest of robins in her hair
가슴에 눈이 쌓이는; Upon whose bossom snow has lain
또 비와 함께 다정히 사는 나무. Who intimately lives with rain
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짓지만 Poems are made by fools like me
나무를 만드는 건 하느님 뿐. But only God can make a tree
2.원주(原州) 법천사지(法泉寺址)
탐방일자: 2025. 10. 28일(화)
탐방지 :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소재 법천사지
동행 : 나 홀로

거돈사지를 둘러보고 타고 온 택시로 법천사지로 이동했습니다. 기사분이 제가 법천사를 둘러보는 동안 다른 손님을 받았으면 해 40분 후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택시를 보냈습니다.
법천사지는 약3만평으로 거돈사지보다 조금 넓어 보였습니다. 법천사는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창건하여 법고사로 불렸으며, 고려 문종 때 지광국사가 머물면서 큰 사찰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합니다. 지리, 교통상의 장점을 배경으로 중앙정부와의 연결이 용이하였고, 중국으로부터 선진 불교사상을 수용하기에 적합했던 법천사는 마르지 않는 진리의 샘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치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안내전단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법천사지에는 거돈사지에서는 보지 못한 유적전시관이 있어, 그곳부터 먼저 들렀습니다.
1)법천사지 유적전시관

네모반듯한 2층 건물의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은 2001년부터 2024년까지 총 17차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층에는 17차에 걸친 발굴 유물과 법천사지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을 전시한 법천사지실과 개방형 수장고가 있으며, 2층에는 공양보살상실과 갤러리가 있는데 1층만 둘러보았습니다. 이 전시관에 전시된 대표 유물로는 금동연화문 원통형기, 청동불 입상, 철제은상감재갈, 경배 등이 있습니다.
이 유적전시관에 전시된 최고의 전시물은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입니다.
2)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은 고려 문종(재위 1046-1083) 대에 왕사와 국사를 지냈던 해린(984-1070)의 사리를 모신 승탑입니다. 990년에 원주 법천사에서 불교에 입문한 해린은 당시 법상종의 중심이었던 현화사에 있으며 제자들을 교육하였고, 국가의 중대 사업인 대장경의 판각을 주도하였습니다. '지광'은 해린의 입적 후 문종이 내린 시호이며, 지광국사탑은 지광국사 해린의 입적 15년 후인 1085년 (선종 2)에 법천사에 건립되었습니다.
11세기 여기 법천사에 건립된 지광국사탑이 이곳 전시실 안에 안치되기까지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 지광국사탑은 일본 오사카에 반출되었다가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위해 조선총독부 박물관 앞 정원으로 이전하는 등 십여 차례의 해체와 복원 과정을 거쳤습니다. 이 탑은 후에 반환되어 경복궁으로 옮겨졌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포탄을 맞아 탑신 이상이 대파되었다가 복원되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용산으로 이전할 당시 옮겨가지 않아 2013년 국립고궁박물관 우측 공터에 있다가 2016년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이동하여 보존처리가 진행되었습니다. 2023년 옥신석과 탑개석을 제외한 부재가 환수되었고, 현재 2024년까지 17차 발굴조사가 실시되었으며, 11월에 유적전시관 실내에 보존처리 및 복원이 완료되어 여기 법천사지유적전시관에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광국사탑은 당시 석탑들이 팔각형인 것과 달리 사각형으로 된 것이 특징이라 합니다. 또한 옥개석은 목조건축의 지붕을 표현한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광국사탑은 장막을 표현한 것 또한 특징이고, 탑신부는 남-북, 동-서가 대칭을 이룬 것이 특징이며, 일반적인 둥근 달을 조각한 것과 달리 초승달을 조각한 것이 특징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기단의 형태는 상층과 하층의 이중 기단이기는 하나, 하층의 기단석이 지대석을 포함한 2단으로 구성되어 있어 삼중기단으로도 볼 수 있는 특별한 구조라는 것이 안내전단의 설명입니다.
3)지광국사탑비

지광국사탑을 사진 찍고 전시실을 나와 폐사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전시실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동쪽 영당(靈堂) 구역에 자리한 지광국사탑비를 먼저 찾아갔습니다. 탑은 일제강점기에 외부로 반출되었다가 우여곡절을 겪은 후 2024년 이곳 법천사지유적전시관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지광국사탑비는 귀부이수형의 탑비이며 일반적인 탑비의 구성 형식과 마찬가지로 귀부 · 비신 · 이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체 높이가 5m에 달하며 비신 높이만 3m나 되는 대형 탑비인 지광국사탑비는 거돈사지 탑비나 흥법사지탑비에 비해 세련미가 더하고, 조각 수법이 섬세하고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탑비의 글씨는 당대의 명신 정유산(鄭惟産)이 지은 문장을 명필 안민후(安民厚)가 썼습니다. 글씨는 구양순체이며 부드럽고 단아하게 작성되었습니다. 지광국사현묘탑은 우리나라 단일 석조 조형물 중에서 가장 화려한 작품이라 평가받고 있는데, 지광국사탑비 역시 승탑과 마찬가지로 세련미가 강조되어 있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적고 있습니다.
4)기타

지광국사탑비를 둘러보고 그 아래 넓은 공터의 폐사지를 조망했습니다. 현재 절터에는 금당(金堂) 터의 북쪽인 탑비전지(塔碑殿址)와 1086년 건립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국보, 1962년 지정), 불상광배(佛像光背), 불두(佛頭), 연화문대석(蓮華紋臺石), 용두(龍頭), 석탑재(石塔材) 등이 있고 절터 남쪽 약 800m 지점에는 높이 280㎝로 완전한 형태의 신라시대 당간지주(幢竿支柱)가 남아있다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기술하고 있습니다.
지광국사탑비를 카메라에 옮겨 실은 후 아래로 내려가 서둘러 폐사지를 둘러보면서 당간지주와 별원도 들렀습니다. 주변 일대에 민가가 들어서거나 농경지로 변했지만 장대석 석축을 볼 수 있는 것은 옛 법천사 경내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약속시간에 맞추어 택시가 돌아왔습니다. 이 택시로 부론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문발로 이동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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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불렀다는 노래 「황성옛터」의 가사는 이러합니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이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
아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
끝이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있노라
나는 가리로다 끝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정처가 없이도
아아 한없는 이 설움을 가슴 속 깊이 안고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 있거라
이 노래를 들으면서 생각한 것은 「황성옛터」와 겨룰 만하면서 폐사지를 회상할 만한 대중가요도 몇 곡 작곡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탐방사진>
1)거돈사지







2)법천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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