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구간:고치령-1097봉-마구령-갈곶산-늦은목이
*산행일자:2005. 4. 17일
*소재지 :경북영주/봉화/충북단양
*산높이 :갈곶산 966미터
*산행코스:생달마을-늦은목이-갈곶산-마구령-1097봉-미내치
-고치령-좌석리연화1교
*산행시간:11시45분-18시32분(6시간47분)
*동행 :송백산악회
어제는 천 미터대의 대간 길을 걸으며 4월과 함께 했습니다.
아직 4월은 산 중턱에 머무르고 있어 고도가 높은 백두대간의 능선 길에는 회색의 겨울잔재 청소가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4월의 산하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노랑 색의 생강 꽃도, 연분홍의 진달래도 쉽게 눈에 띄지 않았고 늦은목이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조금 지난 골짜기에서 지난겨울의 마지막 잔흔인 얼음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경북봉화군의 물야면오전리 생달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어의곡리에서 상월봉으로 오르겠다는 계획을 수정해 풍기의 배점리 덕현마을에서 산에 오르고자 했으나 공익요원의 만류로 5월1일에 오르기로 한 고치령-마구령-늦은목이재의 코스를 역방향으로 타느라 출발시간이 예정보다 시간 반 이상 지체되었습니다. 산불방지를 위해 대부분의 들머리에서 입산을 통제하여 대간 종주가 순조롭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대안코스를 나름대로 준비한 집행진의 적절한 대처로 대간 길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산행기에 꼭 남기고 자 하는 것은 법과 질서를 지키려고 노력한 말단 공익요원의 투철한 책임의식과 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유혹을 뿌리치고 그의 만류를 선선히 받아들인 송백산악회원들의 수준 높은 시민의식으로 이 나라의 산불방지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었다는 점입니다.
11시45분 버스에서 하차하여 생달마을을 출발했습니다.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르며 뒤쳐지지 않고자 처음부터 속도를 내어 내달렸습니다. 다른 때 보다 출발이 늦은지라 한번 쳐지면 해안에 산을 빠져 나오기 쉽지 않을 것 같아 산행을 서둘렀습니다.
12시 38분 해발 800미터의 늦은목이 재에 올라섰습니다.
산행시작 반시간 후에야 시멘트길에서 벗어나 왼쪽의 샛길로 접어들어 아직도 녹지 않은 얼음판 위를 걸었습니다.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은 겨울이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었다는 미국의 시인 T.S. ELIOT이 라일락꽃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우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듯이 끝까지 겨울을 안고 가겠다는 이 얼음판에는 이 4월의 따뜻한 햇살이 최고로 잔인하게 느껴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길섶에 다소곳이 피어 있는 노랑제비꽃이 저를 반겨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올라선 늦은목이재에 오른 쪽으로 1.9키로를 전진하면 선달산에 다다르게 되고, 왼쪽으로는 비로봉이 28키로 떨어져 있고 5.9키로를 걸으면 마구령에 이를 수 있다고 친절하게 일러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13시5분 늦은목이재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 해발 966미터의 갈곶산에 올랐습니다. 북쪽으로 해발 1,236미터의 선달산이 눈에 잡혔고 남쪽으로 해발 819미터의 봉화산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점심을 들면서 취한 15분간의 휴식을 끝내고 서쪽으로 난 대간 길을 따라 마구령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14시14분 마구령을 2키로 남겨 놓은 헬기장을 지났습니다.
1057봉에서 짧은 암릉길을 지나 헬기장에 오르기까지 약 1키로의 대간 길은 어제 산행 중 오르내림이 비교적 심한 구간이었습니다만 흙 길이어서 걷기에 좋았고 양지꽃과 이름을 모르는 자주색의 야생화가 저를 반겨 더욱 좋았습니다. 헬기장에서 14분을 더 걸어 다다른 마구령 전방 1.5키로 지점의 894봉에서 짐을 풀고 5분 여 쉬면서 산밑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봄바람을 즐겼습니다. 그제 검단산-용마산을 이어 6시간 남짓 산행을 했으면서도 이번 산행이 그리 힘들지 않은 것은 능선 길이 이렇다 할 암릉 길이 거의 없고 발바닥으로 쿠션감을 느낄 수 있는 흙 길이어서 빨리 걸어도 무리가 가지 않아서였습니다.
15시 정각 마구령에 도착, 회장 분이 건네준 생수 1통으로 우선 목을 추겼습니다.
늦은목이재에서 5.9키로 떨어진 마구령을 2시간22분만에 도착했으니 이 속도라면 8키로의 고치령까지 3시간 안 밖으로 걸릴 것 같아 B코스로 빠지지 않고 풀코스를 완주하기로 결심, 바로 1,097봉으로 오르는 들머리에 들어서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15시 22분 1097봉 중턱에서 짐을 풀고 준비해 간 오렌지로 원기를 보충했습니다.
길옆에 자리한 몇 그루 소나무들의 푸르름이 아직도 겨울의 잔재를 떨구어 내지 못하고 새 잎으로 갈아입지 못한 벌거벗은 활엽수림과 대비되어 더욱 돋보였습니다. 이곳 쉼 자리에서 오르막길을 20분가량 걸어 춘양목 지대를 지나 늦은목이재-고치령의 14키로 전구간 중 가장 높은 1097봉에 올라서자 그동안 밟아온 능선길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헬기장이 들어 서있는 이 봉우리에 저보다 연배이신 먼저 오른 한 분에게서 건네 받은 사과 반쪽이 그리도 맛있을 수 있는 것은 그동안 흘린 땀과 건네준 분의 정성덕분이었다는 생각입니다.
16시29분 해발820미터의 미내치고개를 지났습니다.
고치령을 3.2키로 남겨 놓은 이곳 미내치고개에서 오른 쪽으로 하산하는 길이 나 있었는데 사람 다닌 흔적이 전혀 나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제 이 고개는 넘나드는 고개의 역할은 끝났고 잠시 쉬어 가는 안부로서의 역할만 남은 듯싶었습니다. 7-8분을 걸어 오른 무명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헬기장에서 이 봉우리까지 능선 길 양옆의 철쭉나무가 아직은 철이 일러 꽃을 피우지 못해 아쉬웠지만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편안한 흙 길이어서 발바닥이 즐거워했습니다.
대부분의 들머리가 입산통제로 묶여서인지 대간을 밟고 있는 산객들이 많지 않아 만나면 인사를 나눌 만큼 반가웠습니다. 어제 산행에서 처음으로 먼지와 햇볕을 차단하고자 얼굴전체를 가리는 백가면을 쓰고 있는 여성 산객 몇 분들을 만났는데 인사를 건네도 그냥 지나쳐 조금은 민망했습니다. 서울근교의 인파가 많은 산을 오르내릴 때 요긴하게 쓰여질 마스크를 먼지도 별로 일지 않고 날이 흐린 어제 대간 길에서 착용을 한 다는 것이 제게는 별로 곱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산에 오르는 것이 축복일 수 있는 것은 천연의 숲과 흙, 그리고 이 숲에 생명력을 제공하는 태양과 청정한 공기를 온 몸으로 맞을 수 있기 때문인데 얼굴을 몽땅 가린 화학섬유의 백가면을 쓰고 산행을 해 이 모든 것을 차단하고 거른다면 굳이 산에 오를 이유가 무엇인가 궁금했습니다.
잡목지대를 지나 평평한 능선을 따라 걸어 950봉에 올랐다 고치령으로 하산했습니다.
진달래가 아직도 꽃망울을 아직도 터뜨리지 못한 능선 길을 오르며 단단하기로 이름난 물푸레나무의 군락지를 지났습니다. 950봉에서 해발 800미터대로 내려서자 낙엽송림이 시작되었습니다. 푸르른 적송림을 지나 하산하는 중 야생화를 정성 들여 이리 찍고 저리 찍고 있는 한 회원 님을 만났습니다. 이 야생화는 저도 바로 전에 사진을 찍어 놓았는데 이 분을 통해 그 이름이 처녀치마임을 확인했습니다. 진사 수준을 뛰어넘어 사진작가로 불릴만한 이 분의처녀치마 꽃 사진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것은 찍사 수준의 저로서는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마지막 헬기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작년 10월 속리산에 시작한 7번의 대간 종주 중 회원들과 함께 사진을 남기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마음만은 벌써 전부터 남겨두었기에 그 분들과 함께 하는 산행이 즐거울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17시42분 해발 760미터의 고치령으로 내려서 14키로의 대간 종주를 마쳤습니다.
고치령에서 비운의 임금 단종과 단종복위를 꾀한 금성대군을 모시는 산신각과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근을 조각해 놓은 명물 장승을 카메라에 옮겨 놓았습니다.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좌석리로 하산하는 중 산색의 푸르름이 더해졌고 계곡의 물소리가 힘차게 들려 대간의 능선 길과는 달리 약동하는 봄을 몸 속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18시32분 좌석리 연화1교의 주차장에 도착, 7시간 가까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순두부로 요기를 한 후 대기중인 버스에 올라 밤 10시경 서울의 잠실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제는 야생화도감을 갖고 산에 올랐는데 어제는 뒤쳐져 완주하지 못할 까 걱정되어 집에 두고 왔습니다. 버스에서 저의 닉네임을 불러준 분에 제가 고마움을 느꼈듯이 야생화들에 올바른 이름을 불러준다면 얼마나 기뻐하고 고마워할까 생각하자 잠시 도감을 꺼내 야생화의 이름을 확인하는 것이 짐스럽게 느껴질 만큼 제 주행속도가 느린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움직인다는데 제 이름을 친절하게 부르는 것이 또 다른 칭찬이라면 야생화는 물론하고 때 맞춰 저를 반기는 산새들에도 제 이름을 불러줄 수 있도록 공부할 뜻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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