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종주기33(비로봉-고치령)

시인마뇽 2007. 1. 3. 10:47
                                            백두대간종주기33


                        
*대간구간:비로봉-상월봉-마당치-고치령

                         *산행일자:2005.5.1일

                         *산행지  :충북단양/경북영주

                         *산높이  :국망봉1,420미터/상월봉1,394미터    

                         *산행코스:어의곡-비로봉-국망봉-상월봉-마당치-고치령-좌석리

                         *산행시간:5시7분-15시7분(10시간) 

                         *동행      :나홀로 

 

 

  소백산의 비로봉에 올라 백두대간을 종주하고자 밤 11시30분 청량리역을 출발하는 중앙선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교통이 불편하여 3박4일로 여정을 잡고 열차로 다녀왔던 소백산 산행이 이제는 사통팔달로 도로가 잘 나있어 대부분의 안내산악회가 당일코스로 다녀오곤 하기에 굳이 잠자리가 불편한 밤차를 타겠다는 산객들이 별로 없어 차안에는 빈자리가  많았습니다.


  제가 대학 4학년 때인 1971년 10월에는 절망과 공포의 분위기가 서울의 대학가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반정부 시위에 앞장섰던 서울의 대학들에 휴교령을 내리고 군부대를 파견하여 학생들의 출입을 막았기에 저는 숨 막히는 질곡의 서울에서 탈출하고자 한 산형과 함께 청량리 역에서 밤차를 타고 소백산으로 향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 풍기 역에서 하차, 인근 여인숙을 들러 잠시 눈을 붙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버스로  옮긴 배점리에서 산행을 시작, 죽계구곡과 초암사를 지나 석륜암에서 일박하고 그 이틑 날 국망봉을 거쳐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을 오른 다음 하산, 희방사에서 야영을 했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  약 8키로를 걸어 다다른 희방사역에서 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으로 돌아오기까지 차창밖에 비쳐진 10월의 우리 산하가 너무도 아름다워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서울로 돌아가는 일이 정말 내키지 않았던 34년 전의 추억을 반추하는 사이 어느새 기차는 단양 역에 도착해 짐을 챙겨 하차했습니다.


  어제 아침 5시7분 해발 400미터대의 충북단양의 어의곡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산악회에서 소백산의 상월봉-마당치-고치령구간의 대간종주가 예정되어 있어, 비로봉-국망봉-상월봉구간은 저 혼자 뛰고 상월봉-마당치-고치령 구간을 산악회에 합류해 비로봉-상월봉-고치령의 대간 길을 한번에 마치고자 그제 밤 청량리 역을 출발했습니다. 새벽 4시 20분에 어의곡에 도착했으나 프래쉬가 작동되지 않아 야간산행을 포기하고 40여분을 기다려 사방이 훤해진 다음 아침 5시 넘어 비로봉 행 들머리로 들어서자 이름모르는 나무의 흰 꽃 무리가 저의 산행을 반겼습니다.


  6시8분 계곡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서 숨을 골랐습니다.

일기예보와는 달리 날씨만 흐렸을 뿐 비가 뿌리지 않아 산행을 하기에 딱 알맞았습니다만, 요 며칠사이 갑자기 더워진 날씨로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습니다. 계곡을 따라 구비 구비 흐르는 물소리와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쉬지 않고 짖어대는 새들의 노래 소리가 이른 아침 산 속의 적막함을 깼습니다. 7-8분의 휴식을 끝내고 급경사의 나무계단을 올라 산등성이로 올라서자 산죽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얼마를 더 걷자 백화수로도 불리는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반가웠습니다. 산 오름을 계속해 대간 길에 들어서자 비로봉방향으로 펼쳐진 누런 잔디밭에 안개가 옅게 깔려 마치 수채화를 보는 듯한 잔잔한 감흥이 일었습니다.


  7시39분 아무도 없는 해발 1,440미터의 비로봉에 저 혼자 올라섰습니다.

표지석의 뒷면에 새겨진 서거정의 시처럼 하늘땅이 만든 형국이 억척인 소백산의 정상에서 맞은 이 아침의 평화를 깨지 않고자 새들도 노래를 멈추었고, 바람도 숨을 죽인 듯 조용했습니다.


     태백산에 이어진 소백산

     백리에 구불구불 구름사이 솟았네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하늘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잠시 후 비로사에서 출발했다는 영주의 젊은 한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눈 후 대간 길을 밟고자 국망봉으로 향했습니다. 비로봉에서 국망봉까지 3.1키로 구간은 많은 곳이 암릉 길이어서 아기자기 했습니다. 중간에 부글대던 뱃속을 비우자 산행이 한결 수월했습니다.


  9시7분 해발1,420미터의 국망봉에 다다랐습니다.

국망봉 300미터 전방에 오른 쪽으로 초암사로 이어지는 하산 길이 나 있었고, 이 갈림길에서 국망봉까지 잔디밭이 펼쳐져 비로봉에 되돌아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새벽 3시에 아침을 들어 시장기를 느꼈기에 준비한 김밥을 꺼내 들면서 모처럼 긴 시간 휴식을 취했습니다. 어느 산형과 함께 국망봉에서 연화봉까지의 능선 길을 걸으며 골바람에 속살을 내보인 황금빛 잔디를 보고 깊어가는 고산의 가을을 탐닉했던 1971년 10월의 소백산 등정이 떠올랐습니다.


  10시2분 1272봉에서 짐을 풀고 오렌지를 들었습니다.

국망봉 출발 십 수분 만에 산악회의 대간 종주가 시작되는 상월봉의 중턱에 다다라 왼쪽으로 길을 꺾어 상월봉을 우회했습니다. 물푸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능선 길을 지나 늦은맥이재에 도착하자 왼쪽으로 어의곡으로 하산하는 갈림길이 나 있었습니다. 늦은맥이재에서 5분가량 걸어 올라선 1272봉은 왼쪽으로는 신선봉, 오른 쪽으로는 마당치로 갈라지는 분기점이어서 이곳에서 신선봉을 다녀올 것인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되면 신선봉에 들러 그 비경을 맛볼 까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추워도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옛 선비들의 가르침대로 아무리 비경이라 해도 대간 길 외의 곁가지에 신경을 써 체력이 소모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곧바로 마당치로 향했습니다.


  11시14분 B코스의 연화동으로 빠지는 해발 1,015미터의 갈림길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비로봉-고치령 대간 길은 그 거리가 총 14키로로 비로봉에서 이곳까지 8.4키로를 걸었으니  정확히 60%를 마친 셈인데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고 길섶에 피어있는 야생화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느라 중간 중간에 쉬어서인지 전혀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2주전 고치령-늦은막이재의 대간 길을 뛸 때만 해도 겨울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어 봄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는데 신록의 5월이 막을 연 어제는 여러 종의 야생화가 그 특유의 청아함을 한껏 뽐내어 우리의 산하가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는가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양지꽃, 현호색과 얼레지 등의 야생화가 길섶을 화사하게 수놓았고 이제야 만개한 진달래꽃이 이 산속에서 절정의 봄을 맞고 있었습니다.


  12시34분 마당치에 도착했습니다.

연화동의 갈림길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헬기장을 지나자 빗방울이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몇 몇 곳의 능선에서 땅이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것을 보자 보다 큰비가 와주어 이 산하의 목마름을 하루 빨리 진정시켜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와는 반대방향으로 대간을 종주하는 부부 한 팀에 물었더니 이곳에서 고치령까지 약 1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답해와 더 이상 시간에 쫓기지 않을 것 같아 편히 쉬면서 절편을 들었습니다. 높새바람으로 건조해진 우리의 산하에 큰비가 내렸으면 했는데 어느새 비가 그치고 해가 나기 시작해 실망스러웠습니다. 마당치에서 20여분을 걸어올라 형제봉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다다랐는데 올 들어 처음으로 나풀거리는 하얀 나비를 만났습니다. 대개의 봄꽃은 향기를 내지 못해 나비와 벌을 불러들이지 못합니다만 그래도 노랑꽃은 색으로 이들을 불러 모으기에 길섶에 즐비하게 피어있는 노랑 색의 양지꽃이 이 하얀나비를 불러들인 모양입니다. 햇살로 데워진 지면에서 내뿜는 열기로 진땀을 흘리는  한 낮에 북쪽사면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이 시원스레 더위를 식혀주었지만 남쪽사면의 길을 걸을 때에는 후덥지근해 마치 여름을 가불한 듯 했습니다.


  13시53분 해발760미터의 고치령으로 내려섰습니다.

형제봉 갈림길에서 고치령으로 내려서기까지 곳곳에서 연분홍의 진달래 꽃나무들이 길 양옆으로 줄을 대고 있어 여기 저기 흩어져 있을 때보다 훨씬 아름답게 보여 좋았으며, 또 다른 곳에서는 산불로 그으러진 상처를 그대로 내보이며 서있는 나목들의 모습에서 지리산 고사목의 의연함을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이제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표지리본도 하도 많아 그 컨텐츠가 무엇이냐에 따라 주목도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1대간, 9정맥과 3기맥을 함께 했다는 한 부부의 표지리본과 고희의 나이에 아무런 지원 없이 대간 을 무사히 종주했다는 어느 노인 분의 표지리본이 제게 백두대간 종주의 꿈을 다시금 다지게 했습니다.


  15시7분 좌석리에 도착, 10시간의 종주산행을 마무리졌습니다.

고치령에서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좌석리까지 하산 길은 아스팔트에서 내뿜는 지열로 덥고 짜증났습니다. 신록의 5월이 계절의 여왕으로 첫날을 맞는 5월 초하루 저는 비로봉-고치령의 대간 길을 뛰어 온 몸으로 신록의 싱그러움을 맞이했습니다. 이번 산행에서는 아침 일찍출발을 서두른 덕에 다른 대원들보다 일찍 산행을 마치고 좌석리의 삼거리에 도착해 첫차로 집에 돌아와 한 주전 결혼한 큰아들부부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올리는 인사를 받을 수 있었는데 귀로의 차편을 이용할 수 있도록 주선해준 산악회에 감사드립니다.


  모처럼 만의 열차여행과 비로봉에서 고치령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야생화의 제전으로 어제 하루 산 나들이가 더 할 수 없이 즐거웠습니다. 다음 종주 산행 시  진달래의 자리를 물려받을 연달래의 꽃들의 향연을  기대해보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