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구간:늦은목이-선달산-도래기재
*산행일자:2005. 5. 15일
*소재지 :경북 봉화/영주, 강원 영월
*산높이 :선달산 1,236미터/옥돌봉1,242미터
*산행코스:도래기재-옥돌봉-박달령-1246봉-선달산-늦은목이재
-큰터골-생달리저수지(약18키로)
*산행시간:10시53분-17시3분(6시간10분)
*동행 :송백산악회
어제는 경북봉화의 옥돌봉에 올라 숙제만 한 아름 받아들고 하산했습니다.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옥돌봉을 중심으로 도래기재에서 박달령까지 정성 들여 숲을 가꾸었고 숲 속의 각종 나무에 그 이름과 특징을 간략히 적은 안내판을 세워 놓았습니다. 갈 길이 먼 저는 간신히 나무이름만 수첩에 옮겨 놓았는데 이제부터 제가 해야 할 숙제는 집에 돌아가 도감을 찾아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가를 알아내 정리하는 일입니다.
금강소나무, 개옻나무, 황벽나무, 노린재나무, 물박달나무, 음나무, 거제수나무, 물푸레나무,신갈나무, 당단풍나무, 박달물푸레나무, 딱총나무, 달피나무, 오미자나무, 층층나무, 팥배나무, 피나무 및 철쭉나무 외에 너무 많이 알려져 안내판을 세우지 않은 소나무, 낙엽송, 참나무, 전나무 등과 제가 미쳐 옮겨 적지 못한 또 다른 이름의 나무들이 이 숲을 이루고 있는 주인들인데 이중 자작나무과의 줄기가 붉으스레한 거제수나무와 황장목에 겨룰만한 금강소나무, 그리고 500년 수령의 철쭉나무가 단연 돋보였습니다.
아침 늦은 시간인 10시53분 해발778미터의 도래기재에서 남쪽으로 난 나무계단을 올라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어제는 산행 후 땀으로 흠뻑 젖은 몸을 씻을 수 있도록 계곡으로 하산하고자 늦은목이-선달산-도래기재의 대간코스를 역방향으로 탔습니다. 전국에서 일년 중 평균온도가 가장 낮다는 경북 봉화를 찾은 것은 대간 길에 오르기 위해서였는데 봉화는 역시 오지중의 오지였습니다. 7시10분 경 잠실을 출발한 버스가 풍기 I.C를 빠져나와 시골길을 한 시간 남짓 헤집고 달려 도착한 곳이 봉화의 도래기재였습니다. 도래기재에 철조를 아취모양으로 세운 것은 혹시나 인공터널을 세우고 그 위에 동물들의 통로를 만들고자 함이 아닌가 해서 기대되었습니다.
12시3분 도래기재에서 2.7 키로를 걸어올라 해발1,242미터의 옥돌봉에 섰습니다.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고 푸릇푸릇 돋아난 연초록의 나무 잎들이 싱그러워 힘든 줄 모르고 1시간 10분동안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영주국유림관리소에서 진달래와 철쭉나무의 군락지에 안내판을 걸어 놓았는데 만개한 꽃을 보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어제는 관리소에서 세운 안내판의 도움으로 처음으로 이 산의 주인인 나무들에 제 이름을 불러주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뻗은 금강송을 보고 한반도를 지켜온 소나무의 기개를 읽었고 먼발치서 훔쳐본 500년 수령의 철쭉나무에서 이 강산에 뿌리박은 우리민족의 은근과 끈기를 찾아냈습니다. 높은 산을 오르면 산 높이에 따라 계절의 변화가 달리 느껴지는데 동행한 어느 분의 말씀처럼 어제는 산행을 시작할 때는 초여름을 느꼈는데 천 미터가 넘는 능선에 오르자 나뭇잎들이 돋아난 지 얼마 안 되어 이제야 봄을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12시55분 박달령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능선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옥돌봉에서 200미터가량 고도를 낮추었다 다시 한 봉우리에 오르니 왼쪽으로 아침에 저희들을 실은 버스가 진땀을 흘리며 넘은 해발 750미터의 주실령으로 갈라지는 산줄기가 나타났습니다. 이 봉우리에 벤취를 설치해 놓아 쉬고 가기에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옥돌봉을 조금 지나서 4-5분을 쉰 터라 바로 오른 쪽으로 난 대간 길을 이어갔습니다. 어제 밟은 산 길은 그제 오른 이화령-조령산-조령제3관문의 대간 길에 비하면 말 그대로 페이브먼트였습니다. 오르내림이 별로 없는 흙 길의 편안한 길을 천천히 걷는 동안, 그동안 나 몰라라 방치했던 나무들에 제 이름을 불러주며 신경을 쓰느라 길섶의 야생화들에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점심을 들고나자 한 곳에 모여 있는 금강송 7그루가 보기에 좋았습니다.
13시8분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출발 12분만에 봉화군 춘양면에 소재한 해발 970미터의 박달령으로 내려섰습니다. 고개 마루에서 조금 떨어진 샘터로 내려가 페트병에 물을 갈아 채운 후 박달령으로 다시 올라와 산 오름을 시작했는데 물을 긷는 사이에 다른 분들이 다 가버려 제가 가장 후미로 쳐진 저를 기다려 동행을 한 후미 대장 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4시18분 박달령에서 완만한 오르막길을 따라 50분 가까이 산 오름을 계속해 다다른 해발 1,100미터대의 능선에서 짐을 풀고 목을 축였습니다. 남동쪽에 자리 잡은 아담한 크기의 저수지와 길섶의 제비꽃과 붓꽃을 바라보며 바테리가 다해 이 아름다운 정경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을 수 없어 아쉬움을 느꼈지만 가슴 한편으로 더 할 수 없이 마음 편함과 평화로움을 느꼈습니다. 평화란 어떠한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때 가슴에 와 닿나 봅니다. 산행 중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라 두려움을 느끼면 그 순간부터 마음의 평화를 잃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유다인이 무서워 문을 걸어 닫고 있는 제자들 앞에 나타나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인사하신 것은 제자들을 두려움에서 해방시켜 진정으로 평화를 얻게 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5시19분 해발 1,236미터의 선달산에 올라섰습니다.
어제 밟은 산줄기에서 가장 높은 1246봉의 능선을 지나자 군락을 이룬 노랑꽃의 피나물이 불러 모은 나비들이 날개 짓을 하며 팔랑거리고 있었습니다. 20분을 더 걸어 다다른 넓은 공터의 선달산 정상에서 이제껏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자 옥돌봉-박달령-선달산의 산줄기가 한 눈에 조망되었고 주위의 숲을 이루고 있는 단단하기로 이름난 물푸레나무와 적송처럼 줄기가 붉은 자작나무과의 거제수나무가 눈에 띄었습니다.
15시48분 해발800미터의 늦은목이재로 내려섰습니다.
선달산 정상을 출발한지 20여분만에 늦은목이재에 도착,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큰터골계곡을 따라 하산했습니다. 대간 길을 종주하느라 4주전에 이 길을 한번 밟았기에 눈에 익어 반가웠습니다. 실로 오랫만에 옷을 벗고 온몸을 계곡물에 담갔습니다. 발이 시려 잠시 밖에 머물러 있지 못했는데 그새 온몸의 피로가 눈 녹듯이 스르르 가셨습니다. 하산하면서 뒤를 돌아다 보자 도래기재에서 선달산까지 부채꼴 모양의 산줄기가 한눈에 잡혔습니다.
17시3분 생달리 저수지에 도착, 6시간 10분 걸린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제일 늦게 내려온 제가 포식을 하기가 준비하신 집행진분들에 조금은 민망스러웠지만, 그 맛이 일품인 걸쭉한 닭죽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자 시장기가 가셨고 그제야 비로소 저수지의 잔잔한 물결이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어제는 옥돌봉을 오르며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나무를 성찰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전적 의미의 나무란 줄기와 가지에 목질부분이 발달한 다년생 식물을 총칭합니다. 나무가 목재로 쓰일 수 있는 것은 줄기와 가지의 세포벽에 쌓이는 리그닌이 목질부분을 발달시켜 단단하게 만들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나무들이 병원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발산하는 방향족물질인 피톤치드의 살균작용 덕분입니다.
이토록 고마운 나무들은 과연 누가 만들고 있을 까 궁금했습니다.
1차대전 중 33세의 젊은 나이에 전사한 미국의 시인 조이스 킬머(Joyce Kilmer)는 “나무들(Trees)”이라는 시를 이렇게 맺었습니다.
시는 나와 같은 바보가 짓지만 Poems are made by fools like me
나무를 만드는 건 하느님 뿐 But God can make a tree
나무에 이름을 지어주고 특징을 요약 정리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면 서둘러 숙제를 마쳐야겠습니다.
'III.백두대간·정맥·기맥 > 백두대간 종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두대간 종주기37(차돌배기-화방재) (0) | 2007.01.03 |
---|---|
백두대간 종주기36(도래기재-차돌배기) (0) | 2007.01.03 |
백두대간 종주기34(고치령-늦은목이) (0) | 2007.01.03 |
백두대간 종주기33(비로봉-고치령) (0) | 2007.01.03 |
백두대간 종주기32(죽령-소백산비로봉) (0) | 2007.0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