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구간:차돌배기-깃대배기봉-태백산-화방재
*산행일자:2005. 6. 19일
*소재지 :강원태백/경북봉화
*산높이 :태백산1,561미터
*산행코스:화방재-태백산-깃대배기봉-차돌배기-신선봉-곰넘이재
-참새골-진조동
*산행시간:11시2분-18시32분(7시간30분)
*동행 :송백산악회
고생대의 지층이 습곡작용으로 횡압력을 받아 융기해 만들어진 태백산은 그 생성된 역사의 깊이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이 산하에 뿌리박고 살아온 우리 조상들과 교감하며 이 땅을 지켜왔기에 어느 산 못지않게 수많은 산객들로부터 존경받는 성스러운 산입니다. 강원의 태백과 경북의 봉화를 어우르는 해발 1,568미터의 태백산은 한반도의 등뼈인 백두대간 상에 자리한 하늘아래 명산으로 신라시대부터 하느님께 제사를 올려왔던 유서 깊은 산이기도 합니다. 보다 가까운 곳에서 하느님께 제를 올리기 위해서 산을 찾아 제단을 세웠다면 지리산이나 한라산에 세워야 마땅한 일인데 이곳 태백산에 제단을 차린 것은 이곳이 성지로서 요건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이에 더하여 태백산은 정상부근이 비좁은 암봉이 아닌 넓고 고른 평원으로 되어 있어 제례를 치르기 용이하고 항상 시원하게 불고 있는 바람이 세속의 풍진을 날려버려 하느님이 그 자락을 드리워도 좋을 만큼 청정하기에 다시 제단을 세워도 손색이 없을 듯싶습니다.
어제는 9년 만에 송백산악회원들과 함께 민족의 영산 태백산을 올랐습니다.
1996년 여름 고교동창인 경동OB산악회의 함기영 회장과 처음으로 올라 정상에서 집사람에게 무사안착을 보고하며 휴대폰의 위력에 고마워했던 기억이 새롭게 났습니다. 태백산의 명성이 한차분의 손님을 더 모아 총 4대의 버스가 아침 7시에 잠실을 출발, 그 4시간 후에 이번 산행의 기점인 화방재에 도착했습니다. 산악회에서 대원들이 산행을 끝내고 계곡에서 냉탕을 할 수 있도록 차돌배기-태백산-화방재의 대간 구간을 역순으로 코스를 잡았기에 화방재에서 종주를 시작했는데, 이번 종주로 올 상반기에만 조령산의 이화령에서 소백산을 거쳐 태백산의 이곳 화방재에 이르기까지 멀고 먼 대간 길을 밟게 됩니다.
오전 11시2분 해발 940미터의 화방재에서 산 들머리로 들어섰습니다.
버스4대가 실어 나른 대원들이 비좁은 산길로 들어서면 대오가 상당히 길 것 같아 선두대열에 끼어서 출발하고자 채비를 서둘렀습니다. 화방재 출발 10분 후에 고랭지 채소밭이 끝나는 지점의 사길령 매표소를 통과했습니다. 이곳에서 산령각까지 20분 가까이 산 오름을 계속했는데, 한 두 방울 비를 뿌리다가 이내 거두어들인 하늘이 구름으로 해를 가려주어 그리 더운 줄 모르고 산을 올랐습니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 산령각이 세워져 있었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급하게 꺾인 등산로가 유일사 쉼터로 이어졌습니다. 이 등산로를 따라 몇 개의 작은 봉우리를 옆 지르고 능선을 타는 중 태백산의 정상에서 좌우로 뻗은 산줄기가 분명하게 한 눈에 잡혀 근처의 석탑과 함께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12시 5분 매표소에서 2.4키로를 걸어 다다른 유일사 쉼터에서 잠시 짐을 풀고 식수로 목을 축였습니다. 삼거리 안부인 쉼터 오른 쪽의 유일사 방향으로 짐을 실어 나르는 곤돌라 비슷한 것이 설치된 것으로 보아 안부에 자리 잡은 이 작은 가게가 제법 장사가 되는 모양입니다. 안부에서 1.7키로 떨어진 천제단으로 이어지는 계단길은 여러 곳이 흙이 패여 나가 산객들이 나른 흙으로 복구 작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화방재에서 쉼터까지는 비교적 길이 제대로 보전되어 있는 편인데 유일사에서 이곳 쉼터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길이 많이 훼손되었는데 다른 산들과는 달리 태백산은 겨울철에도 전국에서 손님들을 불러 모아 치르는 눈꽃 축제로 쉬지를 못해 복원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단 길을 20여분 걸어 주목군락지로 올라섰습니다.
수령이 600년을 넘었다는 딱 벌어진 주목나무를 배경으로 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30분 가까이 능선을 걸으며 이 평원에 자리 잡아 관목들을 제치고 솟아 오른 주목들이 바로 태백을 지켜온 주인 나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0년생 주목나무 한 그루에서 암 환자 한 명을 치유할 수 있는 항암물질을 추출해 낼 수 있는 것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끈질긴 생명력 덕분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해발 1,410미터의 망경사 갈림길에서 해발1,561미터의 천제단에 이르기 까지 0.7키로 구간의 넓은 평원에 거칠 것이 없어 시공을 넘나들며 불어대는 바람이 태고의 음향을 저희들에 전해주어 반갑고 흐뭇했습니다.
12시55분 태백산의 최고봉인 해발 1,567미터의 장군봉에 올라서 장군단을 돌아본 후 바로 천제단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시대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이곳에 천제단을 설치했다는데 이 제단이 그 높이가 24미터이고 둘레가 27.5미터로 방금 지나온 장군단과 바로 밑의 하단 등 모두 3기의 제단 중 가장 장대해 많은 산객들이 이 천제단에서 절을 올렸습니다. 민족의 성지인 이곳 천제단에서 신장염으로 고생하는 실비아님에 전화를 걸어 산오름의 기쁨을 전하면서 그님의 몸이 좋아지면 제가 나서서 길잡이가 되어 산으로 안내할 뜻을 굳혔습니다. 몰아치는 바람을 피하고자 바로 밑의 하단으로 내려서서 다른 분들이 준비해온 상추쌈과 산나물로 모처럼 점심을 맛있게 들었습니다.
13시25분 10분여 짧은 시간의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대간 종주를 이어갔습니다.
해발 1,547미터의 부소봉을 바라보며 얼마고 오르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트레파스를 했는데 단군의 아들인 부소왕이 여기 부소봉을 오르내렸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풀숲을 헤치며 나아가다 낯 설은 꽃들과 인사를 나누며 10여분간의 부소봉 옆지르기를 끝내고 만난 길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깃대배기봉으로 향했습니다. 정상에서의 번잡함은 완전히 사라지고 한 낮의 이 시간에도 새들과 바람이 깨지 않는다면 태고의 정적과 고요함이 그대로 지켜졌을 오지의 대간 길로 들어섰습니다. 태백산 정상에는 주목이 이 산의 으뜸가는 주인이라면 이 오지 대간 길의 주인은 단연 야생화 털쥐손이입니다. 막 내린 빗물을 머금고 있는 이 야생화는 이제껏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희귀한 꽃으로 다소곳한 모습이 청아하게 보여 오랜 세월 기억될 것입니다.
14시24분 해발 1,370미터의 깃대배기봉을 지났습니다.
부소봉에서 이곳 깃대배기 봉에 이르는 4키로의 능선은 정말 환상적인 길이었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처음 만난 야생화 털쥐손이의 청아함에 매료된 저는 고귀한 자태를 어렵사리 내보이는 하얀색의 산목련에도 똑같은 찬사를 보내고자 합니다. 이에 더하여 1시간에 4키로를 뛸 만큼 경사가 완만한 부드러운 흙길도 이 구간을 밟는 대간꾼들에 이 길을 환상적인 길로 각인시켰을 것입니다. 비가 점점 드세져 배낭을 방수가리개로 덮고 미끄러운 길을 조심해 내려서야 했습니다. 이 산의 주인인 양 짖어대던 새들도 비가 내리자 숨소리를 죽여 온 산이 조용했습니다.
15시31분 차돌배기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대간 구간은 차돌배기에서 끝나는데 산악회에서 지난번에 이곳에서 애당리로 하산했기에 이번에는 신선봉을 올랐다 곰넘이재로 내려서 진조동의 참새골로 하산하기로 코스를 잡아 바로 신선봉으로 향했습니다. 차돌배기에서 북서쪽의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산길은 산죽을 가르고 나 있었습니다. 제 키를 넘는 산죽들이 길을 덮고 있어 마치 경남 백운산의 산죽터널을 지나는 듯싶었습니다. 비가 그치자 숨죽였던 산새들이 다시 나타나 울어대기 시작했습니다. 까마귀보다는 홀딱벗고 새의 울음소리가 더욱 애절하게 들렸습니다.
16시22분 해발 1,305미터의 신선봉에 올랐습니다.
10여분 간 마지막 깔딱고개를 할딱거리며 올라서자 먼저 오른 대원들이 수박을 건네주며 반겨주어 고마웠습니다. 신선봉 정상에 자리 잡은 “처사경주손공 영호지묘”가 제가 아는 한 한반도 남단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소가 아닌가 싶습니다. 지리산 덕평봉 밑의 선비샘은 해발 1,500미터는 실히 되기에 그 위의 묘지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 단연 최고의 산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 터인데 일화만 전해질 뿐 실제 산소가 남아 있지 않으며, 무등산 서석대의 산소나 치악산 옆의 매화산의 산소도 모두 1,100미터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산소란 문자 그대로 산에 있는 묘이기에 높은 산에 있을수록 명당임에는 틀림없겠지만 멧돼지가 휘 집고 다닌 것을 손보아 줄 자손들이 아무도 찾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명당자리이겠는 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7시 정각에 곰넘이재에 다다랐습니다.
차돌배기에서 이 고개까지 걸어 온 6 키로를 다시 걸어 내려가면 참새골에 다다른다 하니 아직도 갈 길이 요원한 듯싶어 쉬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차돌배기-애당리 코스보다는 내리막길의 경사가 완만하고 임도여서 길이 넓어 하산 길이 순조로웠고 동행한 몇 분들과 돌아가는 현 정세를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하산하느라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주차장 100미터 전방에서 계곡으로 내려가 15분여 몸을 닦고 나자 온몸이 개운했습니다.
18시32분 진동리의 주차장에 도착해 7시간 30분의 대간 종주를 마쳤습니다.
집행진에서 준비한 육개장으로 배를 채운 후 상경해 밤11시에 잠실로 돌아 왔습니다. 아침7시에 출발하여 대략 8시간을 산행에 , 나머지 8시간은 버스에서 보내 16시간 만에 출발지인 잠실로 되돌아 온 셈입니다. 오가는데 걸리는 시간이나 오르내리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거의 같아져 배꼽이 배만큼 커진 격이 된 강원도의 대간 길을 밟는 얼마간은 자정 전에 과천 집에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역시 백두대간을 완주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더 보람 있을 대간 종주를 끝까지 해내겠다고 다짐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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