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3)
*산행일자:2007. 3. 29일
*소재지 :서울서초/경기과천 및 의왕
*산높이 :618미터
*산행코스:양재화물터미널-옥녀봉-석기봉-매봉-인덕원
*산행시간:12시33분-17시56분(5시간23분)
*동행 :나홀로
관악산을 진산으로 좌청룡에 청계산과 우백호에 수리산이 좌정하고 있는 도시가 바로 정부종합청사가 들어선 과천이라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청계산은 청룡산으로, 수리산은 백호산으로 불렀답니다. 과천에서 14년을 살다가 재작년 8월 우백호 수리산이 빙 둘러싼 산본으로 이사 온 후 좌청룡의 청계산을 오르기는 어제가 세 번째였습니다. 과천에 살 때는 관악산과 번갈아가며 수시로 청계산을 올랐는데 산본으로 이사 온 후로는 대간 및 정맥종주에 몰두했고 그나마 남는 시간은 집에서 가까운 우백호의 수리산을 오르내리느라 좌청룡의 존재를 새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어제는 불현듯 소원했던 좌청룡의 근황이 궁금해 주중에 하루 날 잡아 해오던 정맥 종주를 쉬고 청계산을 찾았습니다. 도시근교 산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오르내리는 길에 지자체의 손이 많이 갔다는 점입니다. 계단을 만들어 놓고 쉼터도 조성하고 안내판을 이곳저곳에 세운 것은 청계산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양재 쪽에서 매봉에 이르는 등산로에는 부자 동네들인 서울의 서초구와 경기도 과천시가 경쟁적으로 손길을 주어 조금은 어지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원터골에서 샘터를 거쳐 매봉으로 오르는 나무계단 길은 스토리가 있는 길이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관내 주민이나 단체 및 업체로부터 기증을 받아 계단을 설치한 서초구청의 아이디어가 신선했고 계단에 새겨진 기증자의 촌철살인의 한마디가 어느 명구보다 훨씬 감동적이었습니다.
매봉으로 오르는 계단 길의 나무판 하나하나에 각각 써 놓은 “자유-아버지”, “평등-엄마”, 그리고 “박애-딸”의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자유와 평등은 모두가 소중한 가치지만 어느 것을 더 중시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서로 반목하고 대립해왔습니다.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자유와 평등이어서 자본주의의 시장원리에 충실한 보수파는 자유를, 양극화를 해소하고 부의 재분배를 통해 사회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애쓰는 진보파는 평등을 강조해왔습니다. 두 가치가 최고조로 갈등한 것이 바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었고,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소련이 붕괴한 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갈등이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두 가치의 대립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 둘을 조화롭게 융화시킬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박애정신이 아닐까 합니다. 더 가진 사람들의 사회적 책임회피와 못 가진 사람들의 사회적 증오 모두 박애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모든 생명체에 대해 박애정신을 갖고 있다면 얼마든지 자유와 평등을 같이 추구하면서 살맛나는 세상을 함께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넘어서는 안 될 선까지 넘어가면서 양 극단으로 치닫는 보수와 진보를 박애정신으로 일정거리 안에다 묶어놓고 시계추가 진자운동을 하듯이 그 안에서 자유와 평등의 양 가치를 왔다 갔다 한다면 그리해서 정반합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면 자유와 관용으로 팍스로마나(Pax Romana)"를 이루었듯이 자유와 평등과 박애로 팍스 코리아나(Pax Koreana)를 이룩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입니다.
12시33분 양재화물터미널을 출발했습니다.
스산한 날씨에도 연분홍 웃음을 잃지 않은 진달래꽃들이 오랜만에 이 산을 찾은 저를 반겼습니다. 화물터미널에서 옥녀봉 가는 길은 길섶의 안내판에 눈길을 주어도 될 만큼 오름 길이 완만했습니다. 이런 저런 안내판 중 청계산에서 살고 있는 동물사진 안내판이 제 눈을 끌었습니다. 오소리, 고슴도치 등 어려서 고향 산에서 보았던 산짐승들이 이 산속에 살고 있다는데 멧돼지는 보이지 않아 안심됐으나, 왕자팔랑나비, 네발나비등 제가 몰랐던 나비들이 팔랑거리는 이 산에 노랑나비가 없다하니 의아했습니다. 서초구에서 만들어 놓은 맨발황토길을 걸어 오르며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씁쓰레했습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녀서 맨땅이 되어 버린 산길을 배려해서 짧은 구간이나마 맨발로 걸어보라는 것이 아니라 황토 길을 맨발로 걸으면 이러저러해 건강에 좋다는 식의 안내판을 보고나서 사람들이 참 염치없는 존재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3시38분 해발 375미터의 옥녀봉에 올랐습니다.
구름이 잔뜩 끼고 날씨도 써늘한데 사람들도 별로 없어 옥녀봉 공터가 허전해보였습니다. 이제껏 걸어온 솔 숲길은 옥녀봉에서 끝났고 원터골로 내려서는 깊숙한 안부삼거리까지는 떡갈나무길이 이어졌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옛골 길이 갈리는 삼각점 봉우리에 다다르는데 모두 897개의 나무계단이 놓여있었지만 약 70%의 나무계단에 기증한 사람들의 짧은 메시지가 적혀있어 이를 읽느라 천천히 올라가 힘든 줄 몰랐으며 어느 한 가족의 “자유, 평등, 박애”와 또 다른 분의 “산사랑, 책사랑” 메시지들에 오래 눈이 갔습니다. 매봉에 오르기 조금 전에 돌문바위를 세 바퀴 돌면서 “아무것도 빌 것이 없도록 해주십시오.” 하고 소원을 말 한 후 오른 쪽으로 비껴 있는 충혼탑을 들러 25년 전에 이 산에서 숨진 53명의 공군들에 명복을 빌었습니다.
14시48분 해발583미터의 매봉에 올라섰습니다.
방금 들러온 매바위가 이 봉우리보다 전망이 뛰어나 북한산과 도봉산 그리고 맞은편의 불암산 및 수락산이 한눈에 잡혔고 이 산들의 계곡 물을 받아 서해로 나르는 한강의 거대한 물줄기도 시원스레 보였습니다. 정상인 망경봉에는 군부대가 들어있어 오를 수가 없기에 많은 분들이 여기 매봉까지 오르고 옛골이나 원터골로 하산해서인지 망경봉 바로 아래 혈읍재로 이어지는 길은 한가했습니다. 아직 들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한 청계산에 집꽃을 옮겨 심은 이름모르는 어느 한분의 정성은 갸륵한데 아무래도 집 꽃은 화사하기는 해도 청아한 멋은 들꽃에 비할 바가 못 되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설퍼 보였습니다.
15시31분 해발608미터의 석기봉을 올라 망경봉을 못 오르는 서운함을 달랬습니다.
십자안부 혈읍재에서 윈드자켓을 꺼내 입고 곧바로 오르다가 오른 쪽으로 꺾어 철조망을 따라 망경봉을 에도는 20분 동안이 가장 짜릿한 시간이었습니다. 종합청사 뒤에 자리한 관악산은 암봉으로 이루어진 보기 드문 악산이지만 그 건너편의 여기 청계산은 편안한 육산이어서 연세든 분들도 즐겨 찾는데 망경봉을 우회하는 이 코스만은 바위위에도 올라서고 군부대에서 쳐놓은 철조망을 따라 심하게 오르락내리락해야 해 청계산 제2의 고봉인 석기봉을 오르는 산객들이 그리 많지 않은 듯싶습니다. 관악산의 연주대와 청계산의 망경봉은 신생 이씨조선의 조정에 나서기를 거부하며 이미 붕괴한 고려조를 그리워하는 옛 송악 신하들의 마음의 고향이었겠다 싶어 다시 한번 둘러보았습니다.
16시11분 왼쪽으로 청계사 길이 갈리고 오른 쪽으로 서울대공원의 철망울타리가 길을 막은 안부삼거리를 지났습니다. 얼룩무늬 그물망으로 훈련 중인 포신 몇 문을 은폐해놓은 헬기장에서 또 다른 헬기장으로 내려섰다가 왼쪽으로 이수봉이 갈리는 절골능선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조금 걷다가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고도를 낮추며 청계사갈림길 능선삼거리까지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여기 삼거리에서 안부삼거리를 거쳐 헬기장에 이르는 20분 남짓한 능선 길이 오르내림도 거의 없고 솔밭 사이로 난 부드러운 흙길이어서 이번 산행에서 가장 편안한 길로 생각됐습니다.
16시47분 해발368미터의 과천 쪽 매봉에 도착해 커피를 꺼내 들며 7-8분을 쉬었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10분을 걸어 도착한 넓은 헬기장에서 한참을 걸어 임도로 내려섰다가 얕은 봉을 다시 올라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이번 산행을 과천서 마칠 뜻이면 굳이 매봉을 오르지 않고 오른 쪽으로 에도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여름에는 숲이 울창하고 더덕냄새가 진하게 나 심산유곡에 들어선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내려설까 잠시 머뭇거리다가 인덕원으로 내려가기로 정하고 단숨에 매봉을 오르자 의자에 걸터앉아 과천 쪽을 바라보며 쉬고 있는 한 여인의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여느 때와 달리 이 분외에는 아무도 없어 한산하고 스산했습니다. 과천에 살 때는 이 봉우리를 자주 올라와 책을 읽으며 오랜 시간 머물렀기에 표지석과 소나무, 그리고 송전탑 모두 다 눈에 익었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날머리인 이미마을까지 3Km 밖에 남지 않아 앙증맞은 박새들과 길을 같이하며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17시56분 이미마을의 비닐단지 길로 내려서 5시간 남짓한 한나절 산행을 마쳤습니다.
매봉에서 이미마을로 이어지는 산길을 경계로 의왕시와 과천시가 갈리는데 매봉을 지나자 과천시는 빠지고 의왕시가 길 안내를 도맡았습니다. 매봉을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능선 길에서 삼각점을 만났는데 삼거리도 아니고 봉우리도 아닌 곳에 왜 삼각점을 설치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이내 비가 뿌리기 시작해 비옷으로 갈아입고 참나무 거목들이 길을 가로질러 비스듬히 서있는 넓은 길을 걸었습니다. 매봉 출발 40분이 다되어 마지막 과천 길이 오른 쪽으로 갈리는 안부사거리에 닿아 혹시라도 하는 심정으로 돌무더기를 찍고자 카메라를 꺼냈으나 바테리가 없다며 카메라가 매몰차게 제가 열어놓은 셔터를 재빨리 닫아버렸습니다. 안부에서 3-4분을 걸어 오른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얼마고 진행하자 다시 삼거리가 나타나 왼쪽 길을 버리고 직진을 했습니다. 조금 후 야트막한 산속에 낸 차로를 건너 나지막한 능선 길을 걷는 동안 빗줄기가 더욱 거세져 막판에는 서둘러 걸었습니다. 종전에 음식점으로 내려섰던 제 길은 이제 보니 바로 전의 왼쪽 길이었고 제가 내려선 직진 길은 등산로가 아니어서 날머리에 아무런 표시가 없었습니다. 비닐단지사이로 난 길을 따라 4-5분을 걸어 포장도로로 나오자 종전에 지났던 안양본갈비집이 보여 인덕원으로 가는 제 길임을 확인했습니다.
상의만 입은 우의로는 작심하고 쏟아지는 봄비를 가리기는 역부족이어서 엉덩이부분이 축축하게 젖어들기 시작했습니다. 날머리 출발 15분 후 인덕원사거리에 다다라, 비를 가릴 수 있는 역 안으로 내려갔습니다. 올 봄 들어 산행 중에 비다운 비를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 비가 사흘 후면 4월을 맞는 우리의 대지를 폭신하게 적셔주어 새 생명의 출현을 촉진시켜 준다고 생각하자 이 비에 감사는 못 할망정 비를 좀 맞는다고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계산(2)
*산행일자:2005. 11. 10일
*소재지 :경기 수원,성남,과천,의왕/서울 서초
*산높이 :청계산630미터/광교산581미터/백운산567미터/바라산428미터
*산행코스:경기대-형제봉-광교산-백운산-바라산-하오고개
-청계산 -옥녀봉-양재화물터미널
*산행시간:8시10분-19시15분(11시간5분)
*동행 :나홀로
수원의 경기대에서 시작하여 광교산-백운산-바라산-청계산을 연이어 오른 다음 서울 양재의 화물터미널로 하산하는 길고 긴 산줄기를 종주하고자, 올 들어 백두대간을 혼자 뛰며 보강한 체력도 테스트할 겸해서 어제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금년 1월1일 모락산-백운산-광교산을 종주하고 경기대로 하산했고, 1월30일에는 백운산-바라산-청계산을 밟은 다음 양재 화물터미널에서 산행을 마쳤기에 이번 산행에는 길을 잃고 알바할 염려가 전혀 없었고 제 주력으로도 10시간 정도이면 넉넉할 것 같다는 계산에서 아침을 서둘렀습니다.
어제의 종주산행은 뜻하지 않은 알바로 능선 길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고 제 시간에 끝내지 못해 매끄러운 산행은 못되었지만 실패한 산행으로 생각지 않는 것은 난생 처음으로 차들이 질주하는 터널 안을 10여분 간 걸어 산줄기를 땅 속으로 횡단했고 1시간 넘게 저 혼자 밤을 뚫으며 힘들게 산행을 해 어찌했던 경기대 출발 11시간 만에 목적지인 양재에 도착했기 때문입니다.
아침 8시10분 경기대 정문에서 솔밭으로 들어서 종주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휴일인 정월 초하루에는 형제봉에서 경기대로 하산하는 길이 수많은 등산객으로 붐볐고 먼지가 펄펄 날렸었는데 평일인 어제는 더러 더러 낙엽이 길을 덮어 먼지도 일지 않았으며 아침 산책길에 나선 몇 분들만 산을 올라 비교적 한산했습니다.
9시23분 해발448미터의 형제봉에 다다랐습니다.
대부분이 산보객들이 형제봉을 목적지로 하기에 이곳까지 산을 오르며 여러 분들을 만났지만 도시의 산에서는 서로 인사를 나누지 않아 고개를 들고 걷기가 민망했습니다. 경기대 출발 반시간 만에 이번 산행 중 첫 번째 고개인 문암재를 만났는데, 지지대고개에서 백운산을 거쳐 문암재를 지나는 한남정맥은 이 고개 직전의 322봉에서 오른쪽으로 난 산줄기를 따라 안성의 칠장산까지 이어집니다. 형제봉을 오르내리며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평생”을 만날 수 있다면 그는 이미 표지판에 새겨진 박 재삼님의 시 “산에서”를 수 없이 읽어 우리네 인생을 관조할 만한 분이겠다 싶었습니다.
형제봉에서 나무계단을 따라 경사진 길을 내려서 만난 두 번째 고개 양지재에서 왼쪽 양지농원으로 하산하는 길이 폐쇄된 것은 백만이 넘는 수원시민의 안식처인 광교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치로 여겨졌습니다. 양지재에서 가파르게 오른 비로봉의 정자가 이 봉우리를 전망대로 자리매김하게 했고, 비로봉에서 내려다 본 산 밑의 하광교소류지와 고속도로를 경계로 마주한 광교저수지가 오누이처럼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비로봉에서 6-7분 내려서 세 번째 고개인 토끼재를 지났습니다.
10시32분 광교산 정상인 해발 581미터의 시루봉에 올라섰습니다.
형제봉에서 시루봉까지 등산로는 한적했습니다. 시루봉에서 오른쪽으로 손골성지길이 나있고 북서쪽에 자리 잡은 백운산 통신대가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노루목대피소를 지나 갈대밭에 이르자 벤취에 앉아 쉬고 있는 아주머니 몇 분 들이 제게 따끈한 차와 방울토마토를 권해와 고맙게 들었습니다. 그분들의 “할아버지”하며 저를 칭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집에 돌아가면 머리부터 물들여 제 나이를 되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11시20분 해발 567미터의 백운산에 올랐습니다.
다음 주면 지나게 될 지지대고개에서 이곳 백운산까지의 한남정맥 길을 휘둘러보았으나 희뿌연 매연으로 잘 보이지 않았으며, 지난번에 올랐을 때 제대로 조망됐던 청계산, 수리산과 관악산도 그 윤곽만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백운동에서 불어올라 오는 골바람을 가슴에 안고 빨간 열매가 탐스럽게 열린 산수유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8분간의 휴식을 끝내고 바라산으로 향했습니다. 네 번째 고개인 고분재로 내려서는 길은 30분을 걷는 동안 200미터 이상 고도가 낮아지는 내리받이 길이었습니다.
12시21분 해발 428미터의 바라산에 다다랐습니다.
십수그루의 소나무가 지키고 있는 정상에 올라서자 비로소 청계산의 산줄기가 눈에 들어왔고 왼쪽 산 밑의 백운저수지도 한 폭의 그림처럼 평화롭게 보였습니다. 바라산재로 내려서는 길이 백운산에서 고분재로 하산 하는 길보다 거리는 짧았으나 경사가 더욱 심한 비탈길이었습니다. 다섯 번째 고개인 바라산재로 내려서자 오른 쪽 가까이에 들어선 민가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13시11분 425봉에서 짐을 풀고 목을 축였습니다.
바라산재에서 400봉에 이르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고즈넉해 “나홀로 산행”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는 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걷는 동안 마침 옛골에서 출발했다는 40대 후반의 남자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425봉에서 잠시 쉬면서 방금 만나 인사를 나눈 남자 분을 떠올리며 공연히 걱정을 한 것은, 얼마 전 등산객에 젊은 남자가 다가와 어디를 가느냐고 물은 다음 휴대폰으로 공범들에 알려 산객들의 소지품을 갈취하는 강도일당들이 바라산에 출몰하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어느 분의 산행기를 “한국의 산하”사이트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게 행선지를 물어온 앞서 지난 젊은 분이 절대로 그런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면서도 일단은 빨리 여기를 빠져 나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서둘러 하오고개로 내달렸습니다.
이 서두름이 알바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이 쉼터에서 왼쪽으로 꺾어 KBS송신탑으로 향했어야 했는데 한참을 직진한 후 왼쪽으로 꺾어 진행했기에 40여분을 걸어 엉뚱하게 성남시 석운동으로 내려섰습니다. 앞서 다닌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한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한적한 길을 걸으면서 중간 중간 혹시나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하면서도 성남시 환경녹지과에서 매달아 놓은 성남시계등산로 표지기가 길을 따라 연이어 나타났고 강도를 만나지 않으려면 빨리 이산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린 것이 알바의 주원인이었습니다. 조림한지 얼마 안 된 듯한 잣나무 단지를 지나며 잣나무보다 키가 훨씬 큰 활엽수가 떨쳐 낸 낙엽들이 잣나무사이로 난 길을 수북하게 덮고 있었습니다. 푸르른 생명을 겨울 내내 이어가는 잣나무의 잎들과 이 가을에 온몸을 불살라 장엄미를 보여줬던 낙엽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평화로운 이 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카메라에 옮겨 담아 왔습니다.
14시2분 휴업중인 레스토랑 들꽃토방으로 내려섰습니다.
인근의 신축공사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에 물어 이곳은 성남시 석운동이고 계속해 내려가면 용인시로 들어섬을 알았습니다. 그 분들이 가르쳐준 대로 아스팔트길을 따라 북쪽으로 되올라갔더니 20분후 쯤 왕복2차선의 차도가 나타났습니다. 이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차도를 따라 500미터 가량 올라가 만난 운중터널을 걸어서 빠져나가기까지 10여분 동안은 질주하는 차들이 내는 소음으로 귀가 찢어 질 것 같았던 공포의 시간이었습니다. 터널에서 10여분을 내려가자 길 건너 정신문화원이 가깝게 보였고, 성남-안양 간 신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서 하오개 고개로 올라서기까지 잠시 딴 생각하다 길을 잃고 알바를 해 공연한 사람을 오해한 죄 값을 단단히 치렀습니다.
15시22분 하오고개 차도를 건넜습니다.
지난 1월 425봉에서 하오고개까지 55분이 걸렸는데 이번에는 2시간 11분이 걸렸으니 1시간 16분이 알바로 추가된 셈이기에 양재에 도착하는 시간도 그만큼 늦어지면 19시 넘어야 산행이 끝나게 되는데 이번에는 야간산행을 해서라도 목적지까지 가겠다고 결심하자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16시28분 해발 540미터의 국사봉에 올랐습니다.
하오고개 차도를 건너 지난번에 점심을 든 묘지로 올라섰습니다. 묘지에서 반시간 가까이 걸어 오른 393봉에서 늦은 점심을 들었는데 알바로 고생해 시장해서인지 밥맛이 꿀맛이었습니다. 393봉에서 멀리 보이는 백운저수지가 석양에 반사되어 붉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393봉 출발 22분만에 국사봉에 올라 잠시 숨을 고른 후 석기봉으로 내달렸습니다.
17시24분 해발 595미터의 석기봉에 다다르자 어둠이 감지되었습니다.
헤드랜턴을 머리에 꺼내 차고 오르내림이 험한 길을 무사히 통과하여 혈읍재에 다다르자 사방이 캄캄해졌지만 그동안 워낙 청계산의 이길 저 길을 많이도 오르내렸기에 저 혼자 밤길을 걸어도 무섭거나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18시33분 해발 375미터의 옥녀봉에 다다라 벤취에서 잠시 쉬며 호흡을 조절했습니다. 40분전에 들른 매봉에서 내려다본 과천시의 야경은 아름다웠습니다. 몇 달 전 산본으로 이사하기까지 14년을 살면서 산위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과천시의 야경을 어제 뜻하지 않게 보고나자 아들 둘을 탈 없이 잘 키운 이 도시가 고향처럼 다정다감하게 느껴졌습니다. 매봉에서 원터고개로 내려서기까지 원터마을로 하산하는 몇 분들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목소리가 들려와 반가웠습니다.
서초구청에서 잘 다듬어 놓은 편안한 길을 걸어 화물터미널로 하산하는 동안 마지막 여덟 번째 고개인 죽바위고개를 지났습니다. 광교산의 문안재, 양지재, 토끼재, 백운산의 고분재, 바라산의 바라산재, 그리고 청계산의 혈읍재, 원터고개와 죽바위고개 모두가 차들이 지날 수 없는 작은 십자 안부의 고개들입니다. 옛날에는 이 고개들이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넘나드는 통로였다면 이제는 산줄기를 따라 종주하는 산 꾼들이 쉬어가는 안부로 그 역할이 달라졌습니다. 알바로 정신을 뺏겨 아름다운 이 고개들 중 몇 곳은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아쉬웠습니다.
19시15분 양재의 화물터미널로 하산, 밤길 산행을 마쳤습니다.
알바만 아니었다면 10시간 정도면 끝났을 이번 산행을 11시간 5분 만에 끝내고 나니 힘은 들었어도 잘 해냈다고 제 스스로가 대견스러워보였습니다. 알바에 굴하지 않고 야간산행을 무릅쓰며 끝까지 해낸 것은 시인 박 재삼님이 산이 겪는 사철 속에 아른대는 우리 인생을 보았듯이 저는 산에서 겪는 알바에서 인생의 여정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다시 한번 알바 없이 이 코스를 제대로 뛰어보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청계산(1)
*산행일자:2006. 11. 10일
*산행코스:경기대-광교산-백운산-청계산-양재화물터미널
*나홀로
청계산(1)
*산행일자: 2004. 4. 15일
*소재지 : 경기과천/의왕/성남/서울서초
*산높이 : 618미터
*산행코스: 청계동-국사봉-이수봉-석기봉-매봉-양재화물터미널
*산행시간: 8시34분-15시30분(6시간56분)
*동행 :나홀로
오늘은 17대 국회의원을 뽑는 날이어서 휴일을 하루 덤으로 얻은 기분입니다.
아침 6시10분 투표를 마치고 청계산에 오르고자 산행준비를 했습니다. 이번 선거에 상당한 유감이 있습니다만, 여기서 언급하는 것이 산행기에 어울릴 것 같지 않아 생략하고 딱 한가지만 말한다면 지역갈등에 더하여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인들의 작태를 이번 선거에서 심판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지난 일요일 북한산을 종주하고 산행기를 새롭게 썼듯이 오늘도 청계산을 종주하고 산행기를 새로 쓰고자 준비를 단단히 했습니다. 카메라와 며칠 전에 구입한 야생화도감을 배낭에 넣어 갔습니다. 지난 주 북한산을 오를 때 어느 한 분이 노란 꽃을 노랑패랭이꽃이라고 가르쳐 주었는데 제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틀린 것 같아 현장에서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은 하산 후 교통편을 감안, 청계동에서 시작하여 국사봉-이수봉-석기봉-매봉을 거쳐 양재의 화물터미널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화물터미널에서는 과천행 버스가 수시로 다니는 데 반하여 청계동으로 하산 시에는 20여분을 걸어나와 아주 드물게 있는 버스를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기에 오늘은 거꾸로 인덕원에서 청계동의 명운농원까지 택시로 이동한 후 3-4분 걸어서 8시 34분 청계산 들머리에 들어섰습니다. 청계산은 관악산과는 달리 육산이어서 흙 길이 포근하고 경사도 심하지 않아 1시간을 넘게 쉬지 않고 올랐습니다.
9시 42분 330미터의 봉우리에서 첫 쉼을 가졌습니다.
진달래와 벚꽃이 만개해, 제대로 봄이 찾아오지 않은 북한산을 산행할 때와는 또 다른 감흥을 느꼈습니다. 겨우 내내 움츠렸던 미물들이 활동에 들어간 듯 하루살이가 땀 흘린 얼굴을 분주하게 맴돌았고 왕벌이 둔하게 날아다녀 그 모습을 찍고자 했으나 카메라가 그 속도를 잡지 못해 실패했습니다. 오늘은 느긋한 나홀로 산행이어서 “세일즈 바이블”이라는 책을 갖고 올라와 쉬는 짬에 틈틈이 읽어 나갔습니다. 얼마후 국사봉을 향해 자리를 떴습니다. 하오개 갈림길을 지나 국사봉에 오르는 중 청계산에 자생하는 둥굴레 풀이 여기 저기 산재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산중에 산개한 벗 꽃들을 어느 한 곳에 모아 터널을 만든다면 더할 수 없는 명소가 될 수 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10시40분 해발 540미터의 국사봉에 올랐습니다.
들머리에서 국사봉에 이르기까지 눈 여겨 찾아보았으나 소위 노랑 패래랭이 꽃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국사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이수봉으로 방향을 틀어 전진했습니다. 오늘따라 인근의 청계사에서 전해오는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듣기에 좋았습니다. 11시 2분 450미터 고지에서 두 번째 쉼을 가졌습니다. 청계산은 워낙이 편안한 육산이라서 대략 1시간 걷고 나서 쉬는데도 그리 힘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산 속의 공기가 차갑지 않아 한번 앉은자리에서 20-30분 책을 읽어도 냉기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11시 30분 석기봉으로 내다랐습니다.
조선의 연산군 때에 정 여창이 이곳에 칩거, 사화를 피할 수 있어 2번이나 생명을 건졌다하여 불리는 이수봉을 지나 과천 행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내려가니 넓은 헬기장이 나타났습니다. 왼 쪽으로 내려다보이는 대공원과 저수지를 카메라에 담고, 이수봉에서 매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도 함께 담았습니다.
12시 17분 해발 608미터의 석기봉에 섰습니다.
청계산 최고봉인 해발 618미터의 망경대는 석기봉과는 바로 인접해 있으나 군사기지여서 접근이 금지되어 청계산을 오를 때에는 석기봉을 오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이조의 개국공신인 조준의 아우 조견은 그 형과는 달리 망해 없어진 고려에 대한 충절이 남아, 바로 밑의 마왕굴에서 샘물로 목을 추긴 후 봉우리에 올라 송악을 바라보았다 하여 그 봉우리를 망경대라 부른답니다. 망경대를 오른쪽으로 트래파스하여 혈읍재에 이르기까지 산행코스가 청계산산행의 백미입니다. 지난 11월에 오를 때보다는 땅이 얼지 않아 오르내리기가 수월했습니다만, 언제와도 아기자기하고 스릴도 있어 저는 이 길을 즐겨 탑니다.
12시 42분 혈읍재에 조금 못 미쳐서 자리를 잡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여럿이 둘러앉아 들 때는 그 음식이 무엇이든 감칠 맛이 나는데 나홀로 산행 시에는 영양보충을 위해 의무방어전을 치르듯이 먹습니다. 혈읍재 바로 밑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무더기를 만났습니다. 도감을 찾아 자주색 꽃은 현호색, 노랑색 꽃은 복수초 그리고 흰색의 꽃은 개별꽃으로 확인하고 그 꽃들을 모두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정말 뜻하지 않은 횡재를 만난 셈입니다. 매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오가는 이들이 하도 많아 먼지가 풀풀 날랐습니다. 비가 좀 내려 땅이 축축해지고 활엽수의 잎들이 제 모습을 갖추어야 청계산은 비로소 제격인데 아직은 이른 것 같습니다.
13시 39분 해발 583미터의 매봉을 지났습니다.
원터골이나 옛골에서 올라오는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여기 매봉까지만 올랐다 내려가 그 북새통은 시장바닥과 겨룰 만 했습니다.쉴 자리가 여의치 않아 그냥 지나쳐 하산하는 중 어느 여성분이 산밑에까지 얼마나 걸리는 가를 재어 보아야겠다고 말하자 뒤따라오는 남편 분이 그냥 좋은 공기를 마시면 되지 쓸데없이 무엇 하러 시간을 재느냐고 핀잔을 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국의 교육학자 쏜다이크(Thorndike)는 "모든 것은 양으로 존재하며, 따라서 측정이 가능하다"고 설파했습니다. 덕분에 우리 인간에 내재하는 인성도 재고, 적성도 재며, 지능도 측정하여 그 지수를 교육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다가는 이 세상이 측정만능주의에 빠져 우리 인간의 영혼도 측정하여 그 순수도를 계수화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쌩택쥐베리도 그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남의 얘기를 믿지 못해 꼭 계산을 하고 따져서 계수화해야 직성이 풀리는 어른들의 속 좁음을 꼬집었습니다.
남편 분의 말씀을 듣고 나서 저 자신도 스스로를 되돌아보았습니다.
지난 가을부터 산행기를 쓴답시고 이리재고 저리 재어 미주알 고주알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미 동네방네 방을 낸 터라 내년 봄에 산행기를 책으로 낼 때까지만 부지런히 재고 기록하되, 그 후에는 제 자신이 산의 일부가 되어 산과 더불어 호흡할 뜻이며, 더 이상 측정하고 기록하는 일은 멈추고자 합니다.
14시 28분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해발 390미터의 옥녀봉에 다다랐습니다.
원터재를 지나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옆에 낙엽송이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가지에서 돋아난 초록색의 새싹들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옥녀봉 또한 붐비기는 매봉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울근교에 이러한 산마저 없다면 이 많은 분들이 어떻게 휴일을 보낼 까 생각해보니 설사 붐비고 또 붐빌망정 이 산들이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닙니다.
화물터미널로 향하는 등산로는 잘 닦여진 페이브먼트같아 맨발로 걷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 흙 길에서 발은 땅의 기를 받고, 입과 코는 병균이나 해충들로부터 스스로 보호하고자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들이마시고, 눈은 이제 막 돋아나는 연녹색의 풀잎을 바라보며, 귀는 뭇 새들의 지저귐을 들을 수 있기에 저는 즐겨 온 몸으로 산을 찾습니다. 능선왼쪽으로는 추사 김정희가 말년에 머물렀다는 주암동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대대로 농사를 지어 온 그린밸트 지역의 개나리 골이 있습니다. 주암동은 살아 있는 기무사부대가 들어 온다하여 돌아가신 추사를 걱정하고 있고, 개나리 골은 죽은 사람들을 모시는 서울시의 납골당이 들어선다 하여 살아 있는 주민들이 결사 반대를 외치니 세상사 모두가 어지럽게만 느껴집니다.
옥녀봉에서 화물터미널로 내려가던 중 드디어 길섶에 피어있는 소위 노랑패랭이꽃을 찾아냈습니다. 제가 의심한대로 그 꽃은 노랑패랭이꽃이 아니고 양지꽃이었습니다. 양지꽃은 4월에 피는 봄꽃이지만 패랭이꽃은 여름에 피며 노랑꽃이 없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라는 공자님의 말씀이 가슴속 깊이 와 닿았습니다.
15시 30분 화물터미널에 도착, 7시간 동안의 청계산종주를 전부 마쳤습니다.
선거로 얻은 덤의 휴일을 이렇게 산 속에서 보내고 나니 온 몸이 상쾌해 졌습니다. 제게는 역시 산이 제격인 듯 싶습니다. 관악산과 도봉산, 그리고 수락산도 조만간 올라 새롭게 종주기를 쓸 뜻입니다. 그리고 오늘처럼 야생화를 만나면 그 청초한 자태를 카메라에 담아 둘 것입니다. 이렇게 모아갈 자취들이 제 삶의 편린들이기에 소중하게 보관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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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A)
*산행일자:2006. 10. 29일
*산행코스:원터골-청계산매봉-원터골
*동행 :서울대AFB 김인경,전문환,최영기,김미숙,이진순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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