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금북정맥 종주기

금북정맥 종주기8(까치고개-생미고개)

시인마뇽 2007. 1. 3. 22:31
                                                  금북정맥 종주기 8


                                 *정맥구간:까치고개-일월산-신성역-생미고개

                                 *산행일자:2006. 5. 31일

                                 *소재지  :충남 홍성

                                 *산높이  :일월산(백월산)394미터/남산222미터

                                 *산행코스:까치고개-일월산-하고개-남산-신성역

                                                 -갈마고개-생미고개

                                 *산행시간:8시33분-18시(9시간27분)

 



   힘들고 탈진하는 것 이상으로  알바의 더 큰 문제점은 자신감을 잃는 것입니다.

정맥 길의 산들은 대체로 그리 높은 편이 아니어서 길을 잘 못 들어 한참을 엉뚱한 곳으로 빠져도 대간 길을 종주할 때처럼 아예 산행을 포기하는 일은 없겠지만 제 길을 찾기 위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일은 엄청 맥이 빠지고 힘이 들어 땡볕이 내리 쬐는 한 여름에는 자칫 탈진상태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탈진 이상으로 더 큰 문제는 알바를 하고나면 자신감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혹독한 알바를 겪고 나면 갈림길마다 신경이 쓰이고 그래서 몇 번이고 지도를 보고 산행기를 다시 읽어보느라 산행이 한없이 더디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과연 선택한 이 길이 맞는지 확신을 잃게 되어 조금 진행을 하다가 표지리봉이 보이지 않으면 공연히 불안해져 다시 원위치하기가 일쑤입니다. 그러다보면 점점 소심해져 산행을 끝내고 일상생활로 되돌아와서도 그 여파가 부정적으로 작용해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두려워지게 됩니다.


  어제는 이렇다할 알바 없이 예정대로 홍성군 장곡면의 생미고개에서 9시간이 넘는 종주산행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알바를 감안하여 다른 때보다 한 시간 일찍 산행을 시작했는데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인지 순조롭게 마루금을 이어가 저녁 6시에 하루산행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최근 두 번의 정맥종주에서 연거푸 된 알바를 몇 번 치르고 나자 자신감을 많이 잃었는데 이번의 성공적인 산행으로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은 것이 무엇보다 기뻤으며 그래서 귀가 길이 한결 가벼웠습니다.


  아침8시33분 까치고개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안양역에서 아침5시49분 장항선 열차에 몸을 실고 2시간가량 기차여행을 즐겼습니다. 8시가 다되어 홍성역에서 하차, 6천원을 들여 택시로 홍성군 쓰레기소각장에 가까이 있는 까치고개로 옮겼습니다. 금북정맥을 종주하면서 처음으로 9시전에 일찍 들머리에 들어선 것은 서두르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넉넉한 산행시간을 확보하여 이번만은 알바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싶어서였습니다.


  9시57분 해발394미터의 일월산 정상에 올라 주변을 조망했습니다.

홍성역내 자판기에서 빼 마신 커피가 속을 뒤집어 놓아 산행시작 20분 후에 도착한 삼거리에서 짐을 내려놓고 으슥한 곳을 찾아 속을 비웠습니다. 삼거리에서 무속인들이 갖다놓았을 장군과 여인상의 인형 두개가 놓여진 큰 바위가 서있는 봉우리까지는 30분가량 오름길이 계속되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코스였습니다. 곳곳의 날 등을 오르며 지난번에 고전했던 홍동산과 덕숭산을 되돌아보았는데 저를 고생시킨 것이 미안해서인지 모습들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옆의 팔각정에 올라 땀을 식히느라 10분을 편히 쉬었습니다. 산신각 뒤 봉우리를 올라 주위를 조망한 후 3분을 더 걸어 산불감시탑이 세워진 정상에 다다르자 홍성산우회에서 세운 백월산으로 적힌 낮은 키의 매끈한 정상석이 확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 젊은 어머니가 한자로 적힌 백월산을 자월산으로 읽은 이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만한 어린 아들에 백월산으로 고쳐 읽어주는 모습을 보고 어디서고 자식교육은 엄마 몫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상에서 3분을 머무른 후 구항면사무소 방향으로 길을 잡고 살포쟁이고개로 향했습니다. 헬기장을 두 번 지나 숲길로 들어서자 본격적으로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되었고 얼마고 내려서서 윗부분만 잎이 돋아난 반쯤은 죽은 듯한 시꺼먼 소나무밭을 지났습니다. 더러는 초록의 넝쿨이 시커먼 소나무들의 줄기를 휘어 감고 올라가 그나마 죽어있는 소나무의 보기흉한 몰골을 감싸주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320봉을 올랐다가 안동장공지묘를 지나 정상 출발 30분 후인 10시34분에 왼쪽은 시멘트로, 오른쪽은 자갈로 길을 덮은 살포쟁이고개로 내려섰습니다.


  11시14분 29번국도가 지나는 하고개를 지났습니다.

살포쟁이고개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3기의 묘를 지났습니다. 고도가 높은 대간 길에서 만나는 묘는 그 수가 아주 드물어 이정표로 삼기에 안성맞춤이지만 고도가 낮은 정맥 길에는 마루금 가까이에 묘들이 많이 들어서 이정표로 쓰기에는 오히려 혼란스럽고, 한여름에 수많은 묘 자리를 지나게 되면  햇빛을 가릴 나무들이 없어 땡볕을 그대로 쬐어야하기에 짜증이  나기도 하는데 이번 산행에서도 그런 기분이 들 정도로 산소를 여러 번 지났습니다. 여러 마리의 까치들이 낮은 산을 휘젓고 날아다니자 “뻐국”, “뻐꾹”하며 제 박자를 지켜온 뻐꾸기가 위협을 느껴서인지 별안간 “뻐뻐꾹”, “뻐뻐꾹”하며 숨 가쁘게 울어댔습니다.  얼마 후 68번 송전탑을 지나 벌목지에 이른 후 136봉에 올라서서 뒤를 돌아 일월산을 조감했습니다. 136봉에서 임도를 따라 내려오는 중 길섶의 제법 큰 소나무를 베어내느라 톱질을 하고 계시는 연로하신 할아버지 한분을 뵈었는데 그렇게 베어낸 나무를  허리가 저렇게 구부러진 할아버지가 길옆에 서있는 저 지게로 제대로 지어 나를 수 있을 까 걱정되었습니다. 임도에서 길 위에 홍주병오의병주둔유지비가 서있는 29번 국도로 내려선 다음 길 건너 밭가를 걸쳐 공사 중인 넓은 도로를 건너  절개면을 따라 올라 다시 숲길로 들어섰습니다. 임간도로를 따라 편안한 산 오름을 즐기며 송전탑을 거쳐 묘지를 지났습니다. 다시 전의이공지묘와 63번 송전탑을 차례로 지나 맞고개로 내려선 후 바로 포도밭을 지나 두 번째 휴식을 취한 것은 하고개 출발 40분 후인 11시54분이었습니다.


  13시 정각 해발222미터의 남산 정상에 세워진 팔각정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맞고개의 포도밭을 출발해 140봉에 올랐다가 오른 쪽으로 2-3분을 하산을 하는 중 엉겅퀴 꽃밭을 만나 사진을 찍고 나서 다시보자 길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다시 올라와 왼쪽 길로 내려서자 표지기가 보여 안도했습니다. 잠시 후 수리고개로 내려서 숨을 돌린 후 남산으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남산 갈림길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마루금은 이어졌지만 남산 꼭대기가 그리 멀지 않아 삼거리에 왼쪽으로 올라 팔각정에 다다르자 가벼운 운동을 즐기고 있는 여인네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팔각정에 오르자 동쪽으로 홍성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고 한참 멀리 남에서 북으로 뻗은 금북정맥 산줄기가 흐릿하게 잡혔습니다. 13분을 쉰 후 꽃조개고개로 거의 다 내려와  커다란 장송들이 가득 들어선 만남의 숲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여기저기 나무의자에 걸터앉은 많은 분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음식을 들고 있는 만남의 숲 속에 세워진 돌탑 10기가 이채로웠으며 숲 왼쪽으로 충령사가, 오른 쪽으로 만해 한용운 선사상이 세워져 있어 이 모두를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13시34분 꽃조개고개를 지나는 21번 국도를 아파트 앞 지하통로로 건넜습니다.


  14시15분 신성역에서 시원한 정수기 물로 페트병을 가득 채웠습니다. 

지하통로로 21번 국도를 건넌 다음  마온아파트 뒤로 난 산길로 들어서 아파트와 나란한 방향으로 잡목을 헤치고 나가 무명봉에 올랐습니다. 무명봉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 몇 기의 묘를 지난 후 마지막으로 왼쪽으로 확 꺾어 밭을 지나 마을로 들어섰습니다. 다른 동네라면 개한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온 동네의 개들이 따라 짖어대어 시골마을 한가운데로 지나기가 민망했었는데 이 마을의 개들은 저를 보고 조금 짖다가 이내 멈추어 고마웠습니다.  마을 한 끝의 시골역사를 지키는 신성역 역무원 한분에 철로를 건너기 위해 양해를 구하고 사무실로 들어가 정수기의 시원한 물을 들이켰습니다. 철로를 건너 느티나무가까이의 대나무 숲 옆길로 들어섰더니 산행기에 나오는 묘지는 모두 이장되고 묘 자리가 무질서하게 파헤쳐져 길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간신히 봉우리에 올라 표지기를 확인하고 마루금을 이어가 인삼밭을 지나 14시51분에 54번 송전탑을 지났습니다.


  16시 정각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마고개에 도착했습니다.

54번 송전탑을 조금 지나 만난 삼거리에서 오른 쪽의 완만한 길을 따라 올라 나무들이 베어지고 잡풀이 무성한 162봉에 오르자 아직도 땡볕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아 목덜미가 따가웠습니다. 가지가 시커먼 소나무 밭 사이로 난 길로 하산하여 아스팔트 도로를 건넌 다음 절개지를 올라 밭을 지나자마자 바로 임도 길에서 10분간 휴식을 취한 후 15시33분 다시 종주산행을 이어갔습니다. 황토밭을 만나 왼쪽 길로 내려서야 할 것을 직진하여 이동통신 안테나를 지나고 한 참을 더 내려가 길을 잘 못 들었음을 알고 나서 원위치 하느라 15분은 까먹었습니다. 축사를 거쳐  다다른 갈마고개 마루에서 아스팔트 도로를 건너 밭 가장자리로 걸어 임도로 올라섰습니다. 임도를 따라 걷던 중 꽃이 활짝 핀 큰 떼기의 감자밭을 지나며 자주 감자로 끼니를 때웠던 어린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감자는 쌀, 밀과 옥수수 다음으로 많이 드는 식용작물로 어디서나 재배가 용이해 굶주린 배를 달래기에는 이토록 좋은 작물이 없을 듯싶습니다. 김 정일 정권이 핵개발 비용을 옥수수와 감자 재배에 돌린다면 충분히 북한 주민들의 배를 골리지 않을 수 있을 텐데 그리하지 않는 그를 지도자로 섬겨야하는 북한주민들이 한없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얀 가건물을 만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조금 더 걷자 잘 굽어진 소나무 옆에 아담한 초록색지붕의 집 한 채가 그림같이 들어서 있어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6시45분 “아홉골 중원마을” 화강암비가 세워진 아홉골 고개에 다다랐습니다.

새빨간 장미꽃 몇 송이가 피어 있는 초록색지붕의 아담한 집을 지나 만난 “열녀난향의 묘”에서 왼쪽의 임도로 들어서 한참을 걸어 사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사거리에서 직진하여 인삼밭을 지나고 축사를 지나 아홉골고개에 다다르자 길 건너로 “상원마을 방죽골” 방향으로 정맥길이 나 있었습니다. 시멘트 길을 계속 걸어 “미생물환경자원이용연구(주)”를 지나자   마자 왼쪽 길로 들어서 사슴목장을 지났습니다. 마루금을 따라 논밭 위를 지나며 밭에서 일하시는 할머니에 여쭈어 정면으로 보이는 높은 산이 오서산임을 확인했습니다.


  18시 장곡면의 생미고개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시멘트 길을 따라 오서산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홍광농장을 지나 만난 오거리에서 비포장길로 진행해 광천감리교회 공동묘지를 지나 도재고개에 도착했습니다. 도재고개에서 오른 쪽으로 시멘트길을 따라 올라 기미삼일운동 기념비가 들어선 3.1운동기념광장을 지나 96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생미고개로 내려섰습니다. 생미고개에서 왼쪽의 장곡면소재지로 이동해 어느 한분의 자가용차에 편승해 어렵지 않게 광천역으로 나가, 기차로 귀가했습니다.


  이번 종주산행은 조금은 색달랐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자주 만난 것들은 찔레꽃과 소나무 밭, 꿩들의 비상과  뻐꾸기 울음소리, 마루금 따라 들어선  묘들과 밭떼기, 그리고 시멘트 길 등이었습니다.  새하얀 찔레꽃은 시꺼먼 소나무 가지와 흑과 백의 대비를 이루었고, 숲 속에서 몸을 감추고 울어대는 뻐꾸기 또한 풀 속에 숨어 있다 사람들이 지나면 후닥닥 날아만 갈 줄 알고 노래는 전혀 부를 줄 모르는 꿩들과 잘 대비되었습니다. 마루금 가까이에 꽤 많은 산소가 자리 잡고 있었고 개간은 되었으나 일손이 닿지 않아 내 팽개쳐진 밭떼기도 자주 눈에 띄어 안타까웠습니다. 고도를 100미터 이하로 낮춘 마루금을 따라 시멘트길이 나 있어 아홉골고개를 지나고 나서부터는 걷기도 지루했습니다.


  9시간을 넘긴 이번 산행에서 이렇다할 알바를 하지 않아 귀가 길이 가벼웠습니다.

비록 산행 속도는 더뎠지만 잃어버린 자신감을 되찾은 소중한 산행이었음을 기록하며 여덟 번째  금북정맥 종주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