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구간:가루고개-일락산-가야산-나분들고개
*산행일자:2006. 5. 7일
*소재지 :충남 서산/예산
*산높이 :가야산678미터/일락산521미터/상왕산309미터
*산행코스:가루고개-상왕산-일락산-석문봉-가야산-한티고개
-뒷산-나분들고개
*산행시간:9시-18시45분(9시간45분)
*동행 :나홀로
안흥진에서 북진을 하다가 태안의 붉은재에서 서북쪽으로 방향을 튼 금북정맥이 서산의 은봉산에서 방향을 바꾸어 남쪽으로 뻗어나가, 어제는 하루 종일 이 산줄기를 따라 남으로 남으로 내달렸습니다. 어제 걸은 정맥 길은 이제까지 비산비야를 지나온 것과는 달리 5-6백미터 대의 고봉들도 이어가 마루금이 분명했습니다. 정맥 길 양 밑으로 포진해 있는 크고 작은 저수지를 내려다보며 평화로움에 빠져들었고 푸르고 드넓은 목초지 몇 곳을 지나며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망이 일품인 암릉 길도 탔고 현호초와 양지꽃 그리고 연달래가 반기는 고즈넉한 임도와 샛길도 걸었습니다. 그리고 가야산 정상에 자리 잡은 TV중계소를 돌아 가다가 길을 잃어 고생도 좀 했습니다. 그래서 10시간 가까운 “나홀로산행”이 지겹거나 외롭지 않았습니다.
아침6시반 남부터미널에서 해미 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이틀 전 어린이날과는 달리 전혀 막힘이 없는 고속도로를 쌩쌩 달린 버스가 8시 즈음해서 해미에 도착했습니다. 해미에서 다시 8시 반에 운산가는 시내버스를 타고 이번 종주산행의 출발지인 가루고개에 다다르기까지 시간운행이 매끄러웠습니다.
9시 정각 소중1리 가루고개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금북정맥 종주 중 가장 이른 시각에 산행을 시작한 것은 가루고개에서 육괴정까지 산행거리가 만만치 않아 제 걸음으로는 최소한 10시간은 넘게 걸릴 것 같아서였습니다. 오른쪽의 들머리로 들어서 민가를 지나는 중 강아지는 저를 보고 연신해서 짖어대고 할머니는 누구에겐가 알아들을 수 없는 욕을 해대는데, 저 할머니처럼 혼자서 적적하게 사시는 분들에는 아무내용도 모르고 들어만 주는 강아지가 사람보다 스트레스를 안받으며 할머니의 심심함을 풀어주겠다 싶었습니다. 잠시 후 시멘트 길로 들어서 넓은 초원의 목초지를 내려다보며 20분 가깝게 걸어 축사와 한우들이 모여 있는 방목장을 지나 삼환목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역시 우공들은 견공들과는 격이 달랐습니다.
풀어 놓은 견공들이 떼를 지어 있는 곳을 지났다면 제 몸이 성하지 못했거나 귀청이 떨어져나갔을 터인데 우공들은 저를 보고 눈만 뻐금거릴 뿐이어서 그들의 점잖음이 한껏 돋보였습니다. 목에다 고유번호를 달고 있는 우공들을 보자 소등에다 불로 달군 쇠로 고유번호를 낙인찍은 데서 유래했다는 브랜드(brand)라는 단어가 연상됐습니다. 상품의 품질보다 어떤 브랜드이미지를 갖느냐가 더욱 중요해진 소비시장에서 요즈음은 브랜드이미지관리에 치중해 알맹이는 별 것 없는데 이미지만 잘 포장해 스스로를 띄우는 정치인들이 너무 많아 걱정이라는 세인들의 염려를 브랜드의 원조인 우공들이 듣는다면 한참을 실소할 것 같았습니다.
삼환목장을 빠져나와 건너 편 임도 길로 걸어가다가 왼쪽의 송전탑(No.115)이 서있는 무명봉에 올랐습니다. 다시 내려서 임도 길과 합류해 얼마고 걷다가 솔밭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산 오름을 시작했는데 벌써 5월의 신록이 불러들인 새들의 합창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단연 “홀딱벗고”새들의 노래 소리가 가장 크고 분명하게 들렸습니다.
10시3분 목장 울타리에 표지기가 가지런히 걸려있는 206봉에 올라섰습니다.
발 아래로 내려다보자 푸르른 목초지가 시원스레 보였고 동쪽으로 멀리는 팔봉산이, 가깝게는 서산시내와 성암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와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206봉에서 오른 쪽으로 비스듬히 방향을 틀어 남진 길에 들어섰습니다. 오른 쪽으로는 목축지와 들판이 보여 시원스러웠지만 왼쪽으로 눈을 돌리자 고풍저수지가 나무들 사이로 보일 듯 말 듯했고 공사장의 소음까지 겹쳐 답답하고 짜증스러웠습니다.
10시41분 해발 309미터의 상왕산을 올랐습니다.
206봉에서 산길과 임도를 걸어 송전탑(No.119)이 서있는 280봉에 이르는 동안 산길이 호젓한 산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해서인지 산새들이 도망가지 않고 가까이서 울어대어 처음으로 “홀딱벗고” 새를 제대로 보았습니다. 이름과는 달리 다른 새와 똑같이 털옷을 입고 있었고 비둘기만한 몸매에 꽁지 끝은 흰색이었습니다. 280봉에서 무명봉을 거쳐 오른 조그마한 바위의 상왕산 정상에 오르자 삼각점과 철쭉꽃이 저를 반겼습니다.
11시7분 부글거리는 속을 비우고자 두 번째 274봉에서 짐을 벗었습니다.
상왕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급경사의 바윗돌을 밟고 능선 길로 내려서자 부드러운 흙길이 시작되었습니다. 두개의 낮은 봉우리를 지나 소나무가 울창한 첫 번째 274봉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10분을 채 못 걸어 두 번째 274봉에 올랐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15분을 쉬는 사이 약간 떨어진 곳에서 뱃속을 비운 후 돌아와 사과와 물로 다시 빈속을 채웠습니다.
12시8분 소나무가지에 걸린 “가야산 서산 45호”의 긴급구조 안내판을 만났습니다.
서산시 최고의 명산인 가야산이 이곳에서 시작된다면 이제 길을 잃을 염려는 없겠다 싶어 조금 속력을 올렸습니다. 274봉에서 내려서 얼마고 걸은 후 철조망을 통과해 목초지안으로 들어서 새파란 풀밭을 걷자 땡볕을 피할 수 없어 덥기는 했어도 가슴이 후련했습니다. 목초지를 벗어나고 철조망이 끊어진 곳을 통과해 삼각점이 세워진 359봉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45호 긴급구조 안내판을 지났습니다. 호젓한 임도를 따라 계속 걸어 350봉을 지나서 오른쪽으로 개심사로 하산하는 넓은 공터의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13시13분 해발 521미터의 일락산에 올랐습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금북정맥의 어떤 산들보다 잘 나있는 임도를 걷는 분들이 계속 늘어나 일일이 인사를 나누기가 번거로웠습니다. 개심사행 갈림길에서 임도 따라 걷다가 잠시 정자가 세워진 한 402봉에 올라 이제껏 걸어온 마루금을 조망하고 내려왔습니다. 자갈이 깔린 넓은 도로를 지나 황락리와 보완사지터로 갈리는 삼거리에서 왼쪽의 일락산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20분여 산 오름을 계속해 다다른 일락산 정상에서 벤치에 앉아 점심을 들었습니다. 정상에 세워진 팔각정 정자는 한 산악회 회원들이 장시간 점유해 잠시라도 등을 눕혀 쉬어가겠다는 희망을 접어야 했습니다. 용현계곡 건너편에 옥양봉이 점잖게 자리 잡고 있었고 오른편의 석문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14시29분 해발 653미터의 석문봉에 올랐습니다.
23분간의 긴 휴식을 끝내고 일락산 정상을 출발해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오며 전망바위에서 오른쪽 밑에 위치한 일락사 사찰과 황락저수지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차 몇 대가 주차한 안부에 내려서자 왼쪽 아래 용현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왔습니다. 석문봉을 깃점으로 오른쪽으로 옥양봉으로 뻗어가는 산줄기와 왼쪽으로 일락산으로 내닫는 산줄기가 어우러져 빚어낸 용현계곡이기에 내려가 보지 않아도 수량이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안부에서 나무계단을 올라 604봉을 우회해 태극기가 펄럭이는 석문봉에 다다랐습니다. 해미산악회에서 백두대간 종주기념으로 세운 돌탑이 한 달 전에 대간을 마친 저를 반기는 듯 했습니다. 시야가 탁 트여 최고의 전망대로 손색이 전혀 없는 석문봉에서 조망한 가야봉, 옥양봉, 일락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모두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일락산보다 훨씬 많은 인파로 정상이 붐벼 후다닥 한서대학교와 상가저수지등 사진 몇 커트를 더 찍고 나서 바로 자리를 떴습니다.
15시33분 해발 678미터의 가야산에 도착했습니다.
가야산 최고봉인 가야봉 정수리에 들어앉아 마루금을 막고 있는 통신중계소 바로 앞에서 배낭을 벗고 잠시 쉬었습니다. 석문봉에서 가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처음 얼마간은 암릉으로 이어져 몇 개의 암봉 들을 옆지르기도 했습니다. 목덜미를 바로 쬐는 태양이 뜨거워 암릉 길의 날 능선을 타기가 어느새 부담스러웠지만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봄바람이 시원해 아직은 그리 덥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주차장으로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 암봉을 트레버스하는 동안 홍성에서 오셨다는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산객 한분을 만나 가야봉까지 동행을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가야봉 바로 앞의 철망이 쳐진 곳에서 왼쪽으로 하산하는 그분과 헤어지고 사과로 요기를 한 후 15시39분 왼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통신중계소 오른 쪽으로 난 길로 들지 않고 왼쪽으로 잘 못 내려가는 바람에 금북정맥 종주 중 최대의 알바를 경험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급경사의 왼쪽 길로 한참을 내려서도 표지기가 보이지 않아 불안했습니다. 10분을 내려가자 통신중계소가 들어앉은 가야봉이 너무 가파르게 보여 도저히 이 길이 아니다 싶어 얼마고 되돌아 올라오자 표지기 하나가 걸려있어 안심이 됐습니다. 다시 조금 더 가다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중계소 철조망을 만나 그 옆으로 난 희미한 길을 따라 왼쪽으로 전진했습니다. 25분간의 알바 끝에 간신히 시멘트포장도로로 올라서 중계소 쪽으로 올라가자 “원효봉중계소” 표지석이 보였습니다. KTF 중계탑을 지날 수 없어 다시 내려와 길을 찾는데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오르는 길이 보이지 않아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차도변의 낮은 봉우리에서 약주를 드시는 분들에 원효봉을 묻자 중계탑이 들어있는 봉우리라며 잘못 가르쳐주어 오히려 혼란스러웠습니다. 다시 원효봉중계소 표지석까지 올라 지도를 펼쳐놓고 찬찬히 위치를 확인했더니 중계소에서 동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고봉이 원효봉이었습니다. 이제야 마루금이 분명해졌습니다. KTF중계탑이 들어선 봉우리가 표지석에 적혀 있는 원효봉이 아니고 가야봉의 한 봉우리로 남쪽으로 뻗어 있는 산줄기가 정맥 길임을 확인하고 나서 마루금에 접근하는 길을 찾아보았는데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별 수 없이 절개면을 따라 무조건 통신탑 왼쪽의 철조망으로 바짝 붙고자 나무들을 헤치고 올라가자 다시 희미한 길이 보였습니다. 이 길을 따라 조심스럽게 왼쪽으로 계속해 이동해 오른쪽으로 난 제 길과 합류하자 정맥 길을 알리는 표지기가 여러 개 걸려 있었습니다. 이제 제 길로 들어섰음을 안도하고 시계를 보았더니 16시 35분이었습니다. 오른쪽 길로 제대로 왔다면 30분도 안 걸리는 길을 덤벙대고 원효봉으로 가는 왼쪽 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생고생을 하고나자 온 몸이 땀에 젖었고 맥이 풀려 쉬고 싶었습니다. 자칫 잘 못하면 나분들고개에도 해지기 전에 닿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어 643봉까지 그냥 내달렸습니다.
16시46분 나무들을 베어내 넓은 공터가 확보된 643봉에 올라 잠시 쉬며 운행을 점검했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2시간 정도여서 목적했던 육괴정까지 진출하는 것은 포기하고 덕숭산 바로 전의 나분들고개에서 산행을 마치기로 하고 내려놓았던 배낭을 챙겨 다시 매었습니다. 그리고 죽어라고 달렸습니다. 산불로 시꺼멓게 탄 죽어 있는 소나무밭을 지나고, 능선 양 밑에 자리한 올망졸망한 저수지를 내려다보며 잠시 숨을 고른 후, 또다시 내달려 한서대
바로 위의 능선을 지나서 643봉 출발 1시간 만에 넓은 공터의 한티고개로 내려서서 한 숨을 돌렸습니다.
17시50분 한티고개에 도착해 나무십자가 앞에서 건각을 주신 고마움에 답하고자 기도를 올렸습니다. 어둠이 색깔이 조금씩 감지되는 산중의 저녁시간에는 자연 마음이 급해져 서둘러 뒷산으로 향했습니다. 혹시나 멧돼지 발자국이 아닌가하는 흔적이 뒷산을 오르는 길에 계속 나있어 두렵기도 했지만 그 두려움 덕분에 산행이 빨라져 20분 만에 뒷산 갈림길에 올라 왼쪽으로 난 급경사 길로 내려설 수 있었습니다.
18시45분 45번 국도가 지나는 나분들고개에 도착해 9시간 45분간의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고려한식부페 음식점 마당의 평상에 걸터앉아 알바로 포기한 덕숭산을 바라보며 힘들었던 하루산행을 되돌아보았습니다. 한참을 쉬고 나서 출발할 때는 사전에 반드시 지도와 산행기를 점검해야 했는데 깜박 잊고 무심코 진행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해미 가는 막차가 이미 지나갔다 해 맥주 2병을 시켜 천천히 마신 후 음식점 차에 편승해 해미로 나가 저녁 8시23분 서울 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석문봉에 올라 남동쪽을 바라보자 태안반도를 관통해 북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제대로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저 산줄기가 서산시내를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며 여기까지 뻗어 온 금북정맥이라면 이 산줄기를 따라 걸어온 제가 새삼 대단하다는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저 산줄기에 제 땀이 배어 있고 또 꿈이 서려 있다고 생각하자 이 산하 이 국토가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알바를 무릅쓰고 또 다시 정맥 길 종주에 나설 것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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