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산 산행기
*산행일자:2007. 2. 20일
*소재지 :강원 홍천
*산높이 :1,051미터
*산행코스:역내리자연휴양림입구-매표소-홍천고개-가리산정상
-은지사입구삼거리-물노리선착장
*산행시간:8시40분-15시15분(6시간35분)
*동행 :나홀로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름 있는 산이라면 거의 다가 잘 다듬어진 자연휴양림이 들어앉은 것 같습니다. 강원도 홍천의 가리산을 오르는 길에 자연휴양림을 지나면서 혼탁한 도시에서 사느라 찌들대로 찌든 몸과 마음을 되살리는 데는 자연휴양림이 최고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가족이 하룻밤 묵고 가는 데 드는 비용도 저렴하고 오염된 폐부를 씻어낼 만한 맑은 공기와 물을 공급해주는 숲이 함께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에 더하여 편안하게 산행을 할 수 있도록 적당한 거리의 산행코스가 있어 온 가족이 함께 산을 오를 수 있는 것도 자연휴양림의 돋보이는 점입니다. 명승지 나들목의 여기저기에 마구 지어놓아 자연을 손상시킨다고 비난을 받고 있는 팬션을 가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연휴양림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가리산 정상을 저와 함께 오른 부부두 팀이 구정 차례를 마치자마자 팬션을 찾지 않고 여기 자연휴양림으로 달려와 통나무집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산행 길에 나섰을 것입니다. 뭇 사람들에 괴롭힘을 받고 있는 우리의 자연도 이곳 휴양림에서 얼마고 쉬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 8시40분 44번 도로가 지나는 역내리에서 하차해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홍천시내에서 하루에 3대밖에 없는 가리산행 버스 대신 거의 시간당 1대 꼴로 다니는 원통행 시내버스를 잡아타고 30분을 달려 역내리에 도착했습니다. 산행채비를 마친 후 북서쪽으로 약 4키로 떨어져 있는 가리산의 자연휴양림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지나가는 제게 시비라도 걸듯이 사납게 짖어대는 견공들만 없었다면 어린 시절의 아스라한 추억을 되살리기에 딱 좋은 아침의 시골 길을 오랜만에 걸었습니다.
9시30분 자연휴양림 매표소에 당도했습니다.
잘 꾸며진 휴양림 초입에 여러 수종의 나무들이 명찰을 달고 반갑게 저를 맞았습니다. 물푸레나무, 느릅나무, 갈참나무, 층층나무, 고로쇠나무 등의 활엽수와 주목과 소나무 그리고 스토로브 잣나무 등의 침엽수가 그들이었습니다. 숲을 만들어 청정한 물과 공기를 공급해주는 이들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숲 속에 지어놓은 통나무집 이름들을 비둘기, 딱따구리, 꾀꼬리 등 새 이름으로 정한 것도 먼 옛날부터 이 숲 속의 주인은 하룻밤 묵어가는 과객들이 아니고 바로 이들 새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7080시대를 풍미한 포크송처럼 길섶의 오래된 명시들이 가슴에 찡하게 와 닿았습니다. 오늘 날의 젊은이들에는 벌써 잊혀졌을 노천명 님의 “사슴”, 이육사 님의 “청포도”, 그리고 소월 김정식 님의 “진달래 꽃”등 오래된 시들도 분명 이 자연휴양림의 한 식구였습니다.
10시19분 합수점 삼거리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됐습니다.
통나무집들을 조금 지나가 서있는 “가리산등산로 5키로지점”의 표지석에서 여기 삼거리까지 산 오름길이 대체로 완만해서 얼음장 밑으로 물이 흐르는 계곡을 끼고 20분 가까이 걸었어도 등에서 땀이 나지 않았습니다. 합수점 삼거리에서 왼쪽의 무쇠말재 길을 버리고 오른 쪽의 가삽고개 길로 들어섰습니다. 10분간 따라 걸은 또 다른 계곡과 헤어지고 지능선으로 올라선 다음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935봉과 정상을 잇는 주능선으로 향했습니다. 고도가 높아지자 한점의 흐트러짐 없이 곧바로 치솟은 낙엽송을 뒤이어 참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옛날 사방공사의 흔적으로 보이는 흐릿한 계단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김형수님의 “한국400산 산행기”에 소개된 광산이 폐광된 후 사방공사를 해서 참나무들을 심은 것이 아닌 가 했습니다.
어느 산이 명산(名山)으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 중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은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첫째 산 전체가 어둡지 않고 밝은 명산(明山 )이어야 합니다. 산에 발을 들이면 온 몸이 개운하고 마음이 상쾌해지는데 그렇지 못한 산들도 더러 있습니다. 뭔가 모르게 음습하고 을씨년스러워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산은 아무리 거하고 깊더라도 명산으로 대접받기는 힘들 것입니다. 설사 응달진 곳이라도 전망이 좋고 바람이 잘 통하는 그런 밝은 산이 명산의 후보감입니다. 둘째 새들이 찾아들어 노래할 수 있는 명산(鳴山 )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산이 높다 해도 나무가 없어 새들이 노래할 수 없는 불모지의 산이라면 명산 축에 끼지 못할 것입니다. 그랜드캐넌을 우리나라로 옮겨 놓는다면 협곡으로서는 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어도 명산으로 이름을 날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세 번째는 자기 몸에 상처를 내지 않고 온전하게 목숨을 지켜가는 명산(命山)이어야 합니다. 한남정맥의 많은 산들이 개발의 이름으로 허리가 잘려나갔습니다. 칼 댄 자국이 역력해 옛 산의 모습을 지켜내지 못한 산까지 명산으로 부를 수는 없으며 오랜 시간 치유해 상흔이 사라진 뒤에야 명산여부를 따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정선의 명산 가리왕산이 폐광의 상처를 오랜 세월 치유한 후 100대 명산에 들어갔듯이 여기 가리산도 광산자리를 다듬고 나무를 심어 상흔을 지워냈기에 명산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11시17분 표지봉에 홍천고개로 이름이 잘 못 적힌 가삽고개를 올랐습니다.
영춘지맥이 지나는 주능선에 자리한 가삽고개에서 왼쪽으로 0.9키로를 더 가면 커다란 암봉들이 좌우로 높이 솟은 정상에 다다르게 됩니다. 주능선의 산길은 해토로 질퍽한 지능선 길과는 달리 아직도 잔설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김형수님의 개념도에 따르면 가삽고개나 홍천고개 모두 영춘지맥에 자리하고 있지만 가리산 정상에 가까운 고개가 가삽고개이고 홍천고개는 매봉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어 이번 산행 중 올라선 고개는 가삽고개가 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가삽고개에 오르자 자연휴양림에서 하룻밤을 묵었다는 부부 두팀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12시10분 해발1,051미터의 정상봉인 제1봉에 올라섰습니다.
남북으로 이어지는 가리산의 주 능선은 높낮이가 별로 차이나지 않아 완만한 데, 제1, 2, 3봉은 낟가리를 쌓아놓은 것처럼 우뚝 솟아 있어 어느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암봉입니다. 가리산의 이름이 낟가리에서 따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산 최고의 명소는 단연 이 암봉들입니다. 1,2,3봉 바로 아래 삼거리갈림길에서 오른 쪽의 2,3봉을 포기하고 정상봉인 제1봉만 오른 것은 물노리선착장에 제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1봉에 오르는 길이 아주 가파른데다 눈이 그대로 쌓여 있어 안내판에 쓰인 대로 노약자들이 오르기에는 결코 쉬운 코스가 아닐 듯싶었습니다. 일망무제의 정상에 올라서자 영춘지맥을 따라 펼쳐지는 겹겹의 산줄기들이 장관이었습니다만 이름난 산들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12시56분 정상봉 서쪽 바로 아래 영춘지맥 능선에 올라섰습니다.
정상에서 남쪽의 샘터로 내려서는 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철판으로 만든 손바닥만한 스탠스를 밟아가며 돌아 서서 내려오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부부두팀이 일러준 대로 1,2,3봉이 갈리는 갈림길까지 되돌아가 개념도를 꺼내보니 물노리 가는 길은 이 길이 아니고 다시 돌아가 샘터에서 정상봉 왼쪽으로 우회하는 것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잠시 고민 후 지도를 따르기로 하고 내려온 길로 되돌아가 샘터에 이르렀습니다. 식사 중인 한 분에 다시 물었더니 부부두팀이 일러준 길을 다시 알려주어 또 다시 고민됐습니다. 물 한 모금을 떠 마신 후 그래도 지도를 따라가겠다고 결심하고 샘터를 떴습니다. 조금 후 물노리행 안내판이 보였지만 정상봉을 에도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우선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거의 없는데다 음지라서 겨우 내내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있어 등산화가 푹푹 빠지는 눈밭을 가로 질러 정상봉을 우회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영춘지맥에 올라서자 시야가 트이고 북동쪽 아래로 마을이 보였습니다.
14시29분 물노리의 합수점삼거리에 내려섰습니다.
정상 바로 아래 서쪽 능선에서 지맥 길을 따라 운행한 시간은 한 시간이 안 되었지만 제가 걸은 정맥의 어느 길보다 힘들었던 것은 사전에 영춘지맥 자체를 몰랐고 가리산의 진달래를 모두 이 길에 옮겨 놓은 듯 수많은 진달래가 좁은 길을 가로막아서였습니다. 산행 중 힘들고 긴장은 되었어도 낡은 롯데트레킹 등 표지기가 가끔 길 안내를 해주고 산길 전체가 청정해 영월의 태화산에서 시작하여 춘천의 새덕봉에서 끝나는 270여키로의 영춘지맥을 언제고 한번 뛰어보겠다는 욕심이 일었습니다. 꽤 여러 봉우리를 넘고 또 넘어 오른 삼각봉에서 지형을 관찰해보니 오른쪽의 북쪽으로 뻗은 지능선 길에도 표지기가 붙어있어 이 산줄기를 타고 내려가면 물노리 마을로 하산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한참을 내려가 묘지에 이르러서 이제는 길을 잃을 염려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서서 쉬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지능선이 끝나는 합수점까지 한참을 더 걸어 내려갔습니다. 몇 기의 묘를 더 지나 은지사 입구의 합수점삼거리 큰 길로 들어서 왼쪽 전방의 하얀 석불입상을 카메라에 실었습니다.
15시16분 물노리선착장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합수점 삼거리에서 선착장으로 가는 시골 길이 정겹게 느껴졌습니다. 도솔사를 지나 40대의 이 동리 남자 분에 선착장까지 얼마나 걸리겠는가를 물었더니 한 20분 걸리며 15시40분에 출발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알려주어 안심됐습니다. 표지석이 세워진 물노리 마을 입구에서 오른 쪽 산위로 난 아스팔트길은 홍천시내로 나가는 길이고 선착장 가는 길은 강가를 따라 똑 바로 난 비포장 길이었습니다. 얼마 후 접안시설이 전혀 없는 강가의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15시40분 정원 12명의 아주 작은 쾌속선이 물노리 선착장을 출발했습니다.
물노리 길을 알려 준 부부두팀도 이 배를 같이 탔습니다. 이 분들은 제게 알려준 길을 따라 먼저 내려왔는데 앞서 지나간 발자국이 하나도 없어 제가 길을 잃었나 하고 걱정했다 합니다. 역시 그분들이 가르쳐준 길이 제 길이었고 제가 걸은 길은 돌아가는 길로 험하고 길어 권해볼 뜻이 전혀 없습니다. 쏜 살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소양강물을 가르는 쾌속선이 소양감댐에 도착하기까지는 2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소양강과 이 강을 둘러싸고 있는 수려한 산세를 한껏 즐겼습니다. 정맥 종주 차 산줄기를 오르내리다 가끔은 일망무제의 전망바위에 올라 겹겹이 펼쳐지는 산 그리메를 보며 감탄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강 가운데서 배를 타고 산줄기를 바라보노라니 그 멋과 맛이 달랐습니다. 망망대해를 흐르는 바닷물도 물길이 있듯이 강물도 바다로 향하는 물길이 있습니다. 이 강물이 강을 만든 산줄기를 넘어 물길을 낼 수 없음은 너무도 자명한 것이기에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른 다는 산자분수의 이치를 강물을 가르는 배 안에서 이 강을 에워싸고 있는 산줄기를 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배에서 내려 뒤를 돌아보자 가리산의 거대한 암봉 들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리산 산행은 제게는 일석삼조의 산행이었습니다.
가리산 정상을 오른 것이 그 첫 째고, 처음으로 영춘지맥에 발을 들인 것이 두 번째이며, 마지막으로 소양강을 가르는 배를 탔다는 것이 세 번째입니다. 일석삼조의 가리산 산행을 일찌감치 마치고 저녁 9시가 채 안돼 산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몇 년 안에 영춘지맥을 종주할 때 낟가리의 풍성함이 와 닿는 가리산을 다시 오르기로 마음먹은 후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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