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2)
*산행일자:2007. 7. 29일
*소재지 :강원 원주
*산높이 :1,288m
*산행코스:행구동-곧은치-971.2봉-원통재-입석사갈림길
-입산통제소 -계골길-세렴폭포-구룡사-주차장
*산행시간:9시25분-16시27분(7시간2분)
*동행 :송백산악회원
미친 듯이 쏟아 붓는 폭우와 이 산의 거목들을 뿌리 채 들어낼 듯이 불어대는 광풍에 겁먹어 치악산 정상봉인 비로봉을 바로 앞에 두고 왼쪽 계곡으로 내려섰습니다. 지난 4월 구룡사에서 비로봉을 오른 후 남대봉으로 남진해 상원사와 영원사를 차례로 찾아 둘러본 다음 금대리로 하산한 제가 불과 3개월 만에 이 산을 다시 찾은 것은 그 때 렌즈에 이상이 생겨 찍지 못한 이 산의 속살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였는데 이번에도 예상보다 훨씬 난폭한 폭풍우로 이 산의 연봉들과 계곡들을 사진 찍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나마 산행 초반 짙은 안개에 개의치 않고 이런 저런 꽃들이 눈에 띄는 족족 셔터를 눌러대지 않았다면 아예 빈손으로 돌아갈 뻔 했습니다.
치악산이 폭풍우를 불러 내친 것은 제 욕심이었습니다.
시작부터 짙은 안개로 두텁게 치마를 두른 치악산에 속살을 내보여달라고 조르는 것이 아니었는데 눈치 없이 계속해서 카메라를 들이대자 화가 치민 이 산이 주위 산들의 비구름을 모두 불러 모아 쏟아 분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누구라도 감추고 싶은 것이 있고 감추고 싶은 때가 있는 법입니다. 당연 치악산도 그러한 때가 있었을 터인데 어제가 그런 날이었나 봅니다. 여름 장마가 축축하고 구저분하다는 이유로 여름 산에 아무 쓸모가 없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동안의 오랜 목마름을 해갈하고 초가을 가뭄에 대비해 물 비축이 필요한 이 산들에 여름장마는 더할 수 없이 고마운 것입니다. 이런 고마운 장마 비가 이제 끝이 난다는 소식을 접한 치악산이 예의를 다해 환송하고자 조신해서 장마 비를 기다리고 있는데 눈치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속살을 내보여달라며 졸라대는 제가 밉살스러워 응징한 것입니다. 응징의 시간은 시간 반이 넘지 않았지만, 응징의 강도는 대단했습니다. 저를 날려버릴 듯한 광풍이 비로봉의 접근을 막았고 항아리로 쏟아 붓는 듯한 폭우가 제 안경을 벗겨냈습니다. 눈앞의 비로봉 등정을 포기하고 북쪽 아래 계골길 계곡으로 들어선 후 희뿌옇게 습기가 가득 찬 안경을 벗어들고 하산했습니다. 착지가 불안해서 거의 기다시피 내려오느라 자연 맨 뒤로 쳐졌습니다. “네 죄는 네가 알렸다.”하며 저를 벌한 이 산이 뒤늦게 저의 방자함이 잘못임을 깨닫고 카메라를 집어넣은 후에야 치악산이 노여움을 풀고 다시 하늘을 열어주었습니다. 이 산이 벌하고자 했던 것은 제가 아니고 바로 저의 욕심이었기에 욕심을 접은 저를 보고 비로소 계곡과 폭포를 내보여주었습니다.
아침9시25분 행구동에서 하차해 치악산 탐방 길에 올랐습니다.
관음사행 좁은 길을 지나는 차들을 피해 오르느라 곧은치매표소에 다다르기 10분 동안 신경이 쓰였습니다. 가녀린 야생화 영아자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안개가 세를 더해가 산속이 어두웠지만 길 아래 계곡의 작은 폭포로 떨어지는 하얀 물줄기가 볼만 했습니다. 첫 번째 나무다리를 건넌 후 20분을 더 올라 합수점의 세 번째, 네 번째 다리를 연이어 지났고 다시 얼마를 더 올라 마지막 다섯 번째 다리를 건넜습니다.
10시51분 해발860m의 십자안부 곧은치에 다다랐습니다.
마지막 다리를 건너 3-4분을 걸어 오르자 계곡물소리가 잦아드는가 싶었는데 이내 계곡이 끝났고 경사가 가파른 산 오름으로 이어졌습니다. 산 중턱의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 후 16분을 더 걸으며 몇 개의 고개 마루를 지나 곧은치에 올라섰습니다. 안개가 짙게 끼어 사진이 잘 안나올까 걱정됐지만 오뉴월 땡볕을 피할 수 있어 산행하기에는 딱 좋았습니다. 먼저 오른 몇 분들이 반갑게 저를 맞으며 좁쌀 꽃 등 몇 가지 산꽃들을 가르쳐주어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이 산의 대표 봉인 북쪽의 비로봉과 남쪽의 남대봉을 잇는 주능선을 곧바로 넘어서면 부곡리로 내려가는 십자안부 곧은치 고개 마루에서 왼쪽으로 꺾어 4.8km 떨어진 비로봉으로 향했습니다. 굵지 않는 통나무계단을 걸어 오르기가 불편했던 것은 통나무와 통나무사이에 흙이 빠져나가 움푹 들어간 곳이 꽤 있어 자칫 통나무를 잘못 디디어 발목을 삘까 보아서였는데 이 정도의 경사라면 계단설치가 쓸 데 없어 보였고 굳이 해야 한다면 널판계단이었으면 했습니다. 헬기장에 다다르자 안개비를 머금은 연노랑 달맞이꽃이 청아했습니다. 능선 길에 자리 잡은 수많은 야생화들의 이름들을 꿰뚫고 계신 꿈향기 님이 일러주는 대로 머릿속에는 이름을, 카메라 속에는 실체를 옮겨 넣느라 대모산님과 제가 모두 바빴습니다.
12시1분 오른쪽의 촛대봉 길이 갈리는 비로봉 2.1Km 전방 봉우리삼거리를 지났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삼각점이 세워진 971.2봉에 오르기까지 10분 동안 주홍색의 동자꽃과 핑크색의 이질꽃이 즐비한 능선 길을 걸었습니다. 971.2봉을 출발해서 얼마 후에 앞서 지나간 대장 한분이 무전기로 알려준 대로 비로봉3.4Km 전방 지점을 막 지나 길섶에 피어 있는 천마를 찾아내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비바람을 가려줄 잎파랑이 하나 없이 줄기만 댕그라니 남아 있는 천마가 이 높은 곳에 곳곳하게 서서 꽃을 피우는 강인함이 바로 야생화의 생명력이라는 생각이 들자 다시 한번 눈길이 갔습니다. 지형도에 샘터가 나오는 원통재를 언제 지났는지 모르고 가파른 능선 길을 올라 봉우리삼거리에 올라서자 바로 옆의 KTF 시설물이 짙은 안개로 아주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산길을 가득 메운 안개가 이번만은 나무 대신 이 산의 주인으로 나서 속살을 드러내는 사진 촬영을 더 이상은 용납 않겠다는 태세로 온 산을 두텁게 에워쌌습니다.
13시2분 비로봉0.5Km 산불감시초소에 다다라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안개의 극성이 최고조에 달해 땅거미가 진 직후보다 더 어두웠지만 이 상태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2시27분 후드득 떨어진 굵은 빗방울은 폭풍우가 바로 뒤에 와 있음을 알려주는 P파였습니다. 재빨리 방수카바를 씌우고 우의를 갈아입어 비 막음을 했는데 등산화만은 어찌 하지를 못해 어느새 시뻘건 흙탕물이 콸콸 흘러내려 수로가 되어버린 산길을 걷느라 흠뻑 젖어버렸습니다. 단순히 굵은 빗줄기로 시작된 이번 비가 7분 후에 해발1,130m의 비로봉 전방 1.3Km 지점으로 왼쪽의 입석대로 갈리는 봉우리삼거리를 지나자 천둥을 불러내더니 이내 번개까지 동원해 보통사람들 만큼은 죄를 짓고 사는 제게 겁을 잔뜩 주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기 얼마 전부터 불기 시작한 태풍에 버금가는 폭풍이 통제소에 다다랐어도 잦아들지를 않아 산행대장께서 경사가 급한 암릉 길의 사다리병창코스가 위험하다며 비로봉을 오르지 말고 바로 왼쪽 계곡으로 내려설 것을 권해왔습니다. 철계단 길을 내려선 후로는 안경 안에 뿌옇게 김이 서려 별 수 없이 안경을 벗고 하산했습니다. 안전하게 착지할 곳을 찾아 발을 내딛느라 신경을 너무 써 나중에는 골이 띵하고 눈도 아파왔지만, 그저 치악산의 분노가 어서 빨리 삭으러들기만을 기다리며 말없이 발걸음을 옮겨 놓았습니다. 감시초소 출발 20분 후에 세렴폭포 2.0Km 전방 지점을 지나자 광란의 바람은 삭으러들었지만 빗줄기는 여전했고, 잠시 멈춰 서서 헤드랜턴을 꺼내 찰까 할 정도로 하산 길은 여전히 어두웠습니다.
14시45분 세렴폭포에 내려섰습니다.
계속되는 돌 가닥 길을 안경을 벗고 조심조심 걸어내려 가느라 후미로 한참 쳐졌습니다. 계곡을 가로 질러 놓은 첫 번째 나무다리를 지나서 빗줄기가 가늘어지기 시작하면서 계곡 길의 조도가 조금씩 높아지자 광란의 비바람으로 마음 졸였던 저도 어느 정도 안심이 됐습니다. 저의 하산 길을 안내한 계골길 계곡은 세렴폭포 조금 못 미친 합수점에서 상류부터 몰고 내려온 물줄기를 큰골계곡에 넘겼습니다. 비로봉을 다녀오느라 늦어진 대모산님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계골길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가 사다리병창길 갈림길에서 합수점 다리를 건너 통제소에 다다랐습니다. 오른 쪽으로 100m를 옮겨 세렴폭포에 도착, 짐을 내려놓고 빗물로 흥건히 젖은 양말을 벗어 빨았습니다. 바지가랑이에 옮겨 붙은 흙들을 흐르는 물로 씻어 낸 후 대모산 님이 준비해온 수박으로 시장기를 달랬습니다. 집중호우를 쏟아낸 먹구름이 가시고 하늘이 조금씩 열려 햇빛이 나기 시작하면서 세렴폭포가 온전하게 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반시간 가까운 휴식을 끝내고 통제소로 내려가 구룡사로 향했습니다.
16시27분 구룡사입구 매표소 한참 아래 대형차량 주차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통제소에서 야영장을 거쳐 구룡사로 내려가는 데 반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이제 다 내려왔다는 생각이 들자 넓어진 산길과 계곡이 시원스레 보였습니다. 치악산 최고의 폭포인 구룡폭포와 구룡소에 잠시 눈길을 준 후 구룡사 경내를 둘러보았습니다. 이제까지 아홉 구의 구룡사로 알아온 이 절 이름이 거북 구의 구룡사임을 확인하고 나서 어느 누구도 보이는 것을 모두 보았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아는 것만큼 볼 수 있다는 얘기인데 이 점에서 불교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대모산님이 부러웠습니다.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 길에 버금 갈 치악산 구룡사의 황장목 길 가까이로 큰 골 계곡이 흐르고 있어 매표소까지 힘든 줄 모르고 걸었습니다. 매표소를 빠져나가 차도와 나란한 방향으로 설치한 널판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 주차장에 다다랐습니다. 폭우로 건너 뛴 점심은 산악회에서 준비한 오징어덮밥으로 대신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여름휴가를 맞은 피서객들 차량으로 귀경길이 군데군데 막혔습니다.
내가 아니고 다른 이들 때문에 길이 막힌다고 남들을 탓하면서 나들이를 나서는 한 즐거운 여행길이 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모처럼 나선 나들이 길이 차들로 막혀 마냥 늦어진다고 아무리 속을 태워봤자 부질없는 일이기에 기왕에 나선 나들이 길이 불쾌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었습니다. 집중적인 폭풍우로 혼쭐이 난 이번 산행도 언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으랴 생각하자 아름다운 추억거리가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여름피서를 떠나는 분들 중에 가족들과 함께 산을 오르는 분들을 위해 산신령께 다음과 같이 기도를 올리오니 편안한 나들이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산신령이시여, 오늘 같은 응징은 저 하나로 충분합니다.
저들은 매주 산을 찾는 저와는 달리 일년에 몇 번 밖에 오르지 않는 분들이어서 저처럼 자주 령님을 진노케 할 일이 없는 자들입니다. 혹시나 그런 일이 있다하더라도 저처럼 알면서 저지르는 것이 아니고 전혀 몰라서 하는 실수이기에 오늘처럼 항아리로 빗물을 쏟아 붓는 벌을 내려서는 아니 됩니다. 비나오니 령님이시여, 저기 두 부부와 애들이 편하게 산행을 할 수 있도록 그늘을 만들어 주시고 폭풍우를 막아주시어 이들 모두가 집에 돌아가서도 령님의 고마움에 감읍하게 해주소서. 그리고 또 다시 산을 찾게 해주소서.”
<산행사진>
치악산(1)
*산행일자:2007. 4. 18일
*소재지 :강원 원주/횡성
*산높이 :1,288미터
*산행코스:구룡사매표소-사다리병창-비로봉-향로봉-남대봉
-상원사-여원사-금대리야영장-금대2리버스정류장
*산행시간:8시55분-19시35분(10시간40분)
*동행 :나홀로
32년 만에 혼자서 오른 치악산이 그리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오다가다 여러 번 주능선을 보아왔고, 구한말 이인직의 “치악산”을 태동시킨 이 나라 신소설의 고향 같은 산인데다 젊어 한 때 이 산을 오르며 지인들과 우정을 돈독히 하고 사랑을 나누었기에 산행 중 내내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아스라함이 가슴 속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세렴폭포-비로봉의 가파른 사다리병창길이 치를 떨며 오르는 고통스런 길이 아니었고, 비로봉-남대봉을 잇는 장장 10Km의 주능선이 악을 쓰며 걷는 지루한 종주길이 아니었습니다.
1966년인가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처음으로 치악산을 만났습니다.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를 쓴 이인직의 “치악산”이 교과서에 실린 덕에 다른 어느 산보다 치악산을 일찍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만난 치악산이 똑 같이 책에 나오는 정비석의 수필 “산정무한”의 금강산처럼 수려한 산은 아니었습니다. 험준하고 뭔가 모르게 어두운 산으로 기억되는 것은 이 산이 음흉한 줄거리의 배경으로 나온다는 점 외에도 매국노 이완용의 비서로 일한 작가의 어두운 경력이 투영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찌됐든 다른 산과는 달리 실체보다 먼저 이미지로 이 산을 만났기에 40년이 지난 지금에도 치악산하면 이인직의 치악산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1970년 11월 제가 다닌 대학의 화학과 친구들 셋이서 1박2일로 다녀온 것이 실체로서 치악산과의 첫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청량리 역에서 기차를 타고 원주로 내려가 버스로 갈아타 구룡사까지 들어가 절 앞 계곡 가에다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현실과 야망의 틈바구니에서 고민해온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11월 한 밤의 추위를 이겨낸 후 이튿날 아침 주지스님의 배려로 아침 한 끼를 구룡사에서 맛있게 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치악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이어서 요즘처럼 구룡사를 찾는 손님들도 많지 않았고 사천왕전 앞에다 복전 함도 설치하지 않았던 때여서 산사의 아침이 부산하지 않았습니다. 여신도 한분이 절밥은 그냥 먹고 가는 것이 아니라고 계속 눈치를 주어 값을 치를 만한 형편이 안 된 저희들로서는 엄청 민망했었습니다.
1975년 10월 제가 근무했던 한 지방 중학교의 여선생 등 셋이서 치악산을 오른 것이 두 번째 산행이었습니다. 마장동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원주를 가서, 택시를 타고 구룡사로 들어갔습니다. 한 밤에 텐트를 치느라 애를 먹었고 낮 동안에 내린 비로 땅바닥이 축축해 잠자리가 불편했지만 모처럼 만에 맛보는 일상에서의 탈출이어서 감수할 만 했습니다. 치악산을 오르는 중 동행한 여선생에게서 산골짜기를 흐르는 옥류보다 더 맑은 품성과 산등성이의 단풍보다 더 붉은 열정을 지켜보았기에 2년 후 주저하지 않고 그녀와 결혼했습니다.
아침8시55분 입장료 2천원을 내고 구룡사매표소를 통과해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6시15분에 강남터미널을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1시간 반쯤 달려 원주고속터미널에 에 도착한 다음 택시를 잡아타고 원주역으로 옮겨 20분 넘게 기다린 끝에 구룡사행 41번 버스에 올랐습니다. 40분가량 지난 후 구룡사입구 종점에서 하차해 얼마 후 매표소에 다다랐습니다. 골짜기를 흐르는 수량이 충분하고 물소리도 제법 커 치악산이 거산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구룡사의 대웅전은 37년 전 그대로인데 앞에 새로 세워진 사천왕문은 그 규모가 너무 커 대웅전에 안치된 부처님이 답답해하실 것 같았습니다. 사천왕문 앞에 설치된 복전 함이 그동안 이 절이 얼마나 세속화되었나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은 속 좁은 저만의 편견이기를 바랍니다. 흐르는 물의 역동적인 모습을 살려보고자 계곡으로 내려가 몇 커트 사진을 찍고 나자 카메라가 작동이 안 되어 두 바위사이를 급하게 떨어져 폭포를 만든 구룡소의 초록색 옥류와 두 바위 위에 자리 잡아 폭포를 지켜보는 진달래꽃들의 다소곳한 자태를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10시6분 사다리병창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장송들이 들어선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 해발고도가 400m인 야영장에 다다르기까지 여러 수종의 나무들을 보았습니다. 그 중 꽃 모양과 색상이 거의 같은 산수유와 생강나무를 함께 만나보아 산수유는 그 수피가 조금은 벗겨지고 거친데 비해 생강나무는 나무껍질이 매끈하다는 차이를 알게 된 것이 나름대로 작은 수확이었습니다. 합수점 왼쪽 계곡에서 2단으로 낙하하는 세렴폭포를 들러보고 바로 아래 통제소로 되돌아가 다리 건너 왼쪽 계단 길의 사다리병창길에 발을 들여놓아 본격적인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초반의 계단 길이 길고 가팔라 산꼭대기까지 계속해서 계단 길로 이어진다면 과연 오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얼마 안지나 계단 길이 끝나서 적지 아니 안심됐습니다.
10시44분 사다리병창을 지났습니다.
세렴통제소를 출발해 사다리모양을 한 암벽 군이 병풍처럼 펼쳐 있다하여 이름 붙여진 사다리병창에 이르는 동안 목판계단, 철판 계단, 돌계단, 통나무계단과 나무뿌리 계단(?)등 여러 종류의 계단 길을 걸어올라 마치 야외의 계단박물관을 둘러본 듯했습니다. 쾌청한 날씨에 화답이라도 하듯 연신 지저귀는 이름모르는 새들의 활기찬 노래 소리를 때 마침 상공을 나는 비행기의 굉음이 먹어 삼켰습니다. 사다리병창 암벽군을 왼쪽으로 에돌아 만난 능선에서 쓰레기를 한 백 가득히 주운 자원봉사 중이라는 노인 분들을 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심산유곡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정작 버리고 가야할 잘못된 양심은 버리지 않고 챙겨서 하산하는 똥고집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머리 위의 비로봉은 좀처럼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발아래 학곡저수지의 파란 물색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12시13분 매표소에서 5.9Km를 걸어 정상봉인 해발 1,288미터의 비로봉에 올라섰습니다.
사다리병창을 지나 얼마 안 되어 꿩 한 마리가 이 산이 꿩의 산인 치악산임을 일깨워 줄 뜻인 양 후다닥 날아갔습니다. 비로봉 전방 400m 쯤에서 비로봉 정상까지 이어진 가파른 계단 길이 2.7Km 병창 길의 마지막 깔딱 길이었는데 정상 전방 1km가 조금 못되는 지점에서 5-6분을 쉬며 쵸코렛을 먹어 둔 것이 산 오름에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상 가까이에 올라 마지막 겨울을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잔설의 지저분한 몰골을 보고 자연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계절 변화에 뒤쳐지는 않는 것이 본연의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싶었습니다. 3개의 돌탑을 쌓아놓은 비로봉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매화산과 남대봉만 어림잡아 그 위치를 가늠할 수 있을 뿐 맑은 날이면 볼 수 있다는 용문산과 오대산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32년 만에 오른 정상에서 구룡사 쪽을 내려다보면서 양쪽 계곡사이로 난 능선의 사다리 병창길이 참으로 오묘한 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시18분 비로봉을 출발해 남쪽으로 10.5키로 떨어진 상원사로 향했습니다.
오른 쪽 계곡으로 내려서는 안부 삼거리의 산불감시소 앞에서 잠시 고심을 하다가 그대로 직진했습니다. 비로봉 출발 반시간이 채 안되어 오른쪽의 입석사로 갈리는 봉우리 삼거리에 다다르기 직전에 물푸레나무 군락지에서 다소곳이 피어있는 한 떼의 노랑꽃 괭이눈(?)을 만났지만 하필 이 때 고장이 나 카메라에 옮겨 담지 못했습니다. 입석사 갈림길의 봉우리에서 산죽 길로 내려선 후 편안한 능선 길을 10분여 걸어 상원사8.4Km 지점에 도착해 점심을 들었습니다. 산 아래 계곡에는 물소리도 크게 났고 나뭇가지에 연 초록 새싹들이 푸릇푸릇 돋아나 봄이 내려앉았음이 분명한데 양지꽃이나 괭이눈을 보지 못했다면 봄이 이 산을 피해 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능선 길 활엽수들은 벌거벗겨진 채 아직도 봄옷을 차려입지 못했습니다.
13시48분 삼각점이 서있는 971.2봉을 지났습니다.
10분 만에 점심을 다 들고 나서 상원사 8.4Km 지점을 떴습니다. 4-5백m으로 간격으로 세워진 표지목이 길안내를 잘 해주어 먼저 오른 분들의 산행기를 꺼내보지 않고도 알바 없이 종주 길을 이어갈 수 있는데다, 카메라가 고장 나는 바람에 생각지 않게 사진 찍는 시간이 절약되어 산행시간을 줄일 수 있었습니다. 상원사7.1키로 지점을 지나서 왼쪽 아래로 낙엽송 숲이 자리 잡고 있었고 길섶에는 이름모르는 하얀 꽃들이 앙증맞게 피어있었습니다. 971.2봉에 오르자 떼를 지어 노랑꽃을 피운 양지꽃이 벌들을 불러들여 윙윙대는 소리가 크게 났습니다. 잔디밭의 넓은 공터에 들어선 헬기장으로 내려섰다가 편안한 능선 길을 걸어 곧은치로 내려갔습니다.
14시56분 해발1,042미터의 향로봉에 올라섰습니다.
철로길 받침목으로 만든 계단 길을 걸어 내려가 비로봉-남대봉 주능선의 안부 중 가장 낮은 해발860미터의 곧은치에 다다라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왼쪽의 부곡에서 오른 쪽의 곧은재로 넘는 길이 이 재를 지나는 십자안부 곧은치를 출발해 헬기장을 지나서 경사가 별로 나지 않은 능선 길을 걸을 때는 편했는데 가파른 된비알 길을 뒤이어 오르기가 힘들었습니다. 오른 쪽으로 국형사 갈림길이 나있는 1020봉을 향로봉으로 잘 못 알고 오렌지를 까먹으며 몇 분을 편히 쉬었는데 이 봉우리에서 7-8분을 더 걸어 봉우리에 오르자 해발1,042미터의 향로봉 표지봉이 서있어 뒤늦게 엉뚱한 곳에서 쉬었음을 알았습니다. 향로봉에 오르자 호국산성으로 알려진 영원산성의 안내판이 서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1,041미터의 삼각점을 찾아냈습니다.
16시37분 해발1,181미터의 남대봉에 도착했습니다.
비로봉에서 향로봉까지 5.9Km의 능선 길은 육산의 비교적 평평한 길이어서 편안했는데 향로봉에서 남대봉까지 3.9Km의 산줄기는 대부분이 암릉 길이어서 오르내리기가 꽤나 고됐습니다. 향로봉을 출발해 헬기장을 지나자 능선 길이 좁아진다 했는데 얼마 후 만난 암봉을 만나 우회하고 나서부터 본격적인 암릉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치마바위(?)아래 상원사 2Km 전방 지점에서 잠시 쉰 후 7-8분을 더 걸어 채석장의 바위처럼 들쑥날쑥한 커다란 암봉을 오른쪽으로 에도는 중 바위에 붙박이로 붙여놓은 먼저 간 산악인을 기리는 추모동판을 보고나서 숙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얼마 후 계단 길을 따라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며 또 하나의 거암을 왼쪽으로 우회한 후 밧줄이 늘여진 몇 곳을 지나서 남대봉의 산불감시초소 몇 m앞에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안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초소를 통과해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17시 우리나라에서 절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자리한 상원사에 도착했습니다.
구렁이에 붙잡혀 목숨을 잃을 뻔한 꿩 한 마리가 종을 세 번 울려 자기 목숨을 구해준 나그네를 구하고 죽었다는 꿩의 보은 설화가 살아 숨쉬는 상원사를 그냥 지나치기가 너무 아쉬워 시명봉으로 뻗어나가는 능선을 따라 3백m를 더 걸어 다다른 삼거리에서 왼쪽아래 상원사 길로 내려섰습니다. 상원사가 가까워지자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와 걱정되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개가 무섭다고 되돌아설 수는 없는 일이기에 그대로 전진했습니다. 절 입구에 딱 버티고 서있는 덩치 큰 개 두 마리가 짖기를 멈추었고 그 중 한 마리는 저를 대웅전으로 안내했습니다. 이제야 이 개들이 바로 다른 분들의 산행기에 나오는 순덕이 개들임이 생각났습니다. 대웅전을 둘러보고 내려가는 길에 절 바로 아래 있는 다랑 밭 몇 떼기를 보면서 이 절이 명성과는 달리 살림살이가 넉넉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곧바로 하산하면 성남리로 하산하는 길이고 산허리를 돌아 다시 주능선에 오르면 영원사로 하산하는 길인데 내친 김에 영원사도 마저 볼 겸해서 산허리를 에돌아 주능선에 다시 올라 서쪽 길로 하산했습니다.
18시12분 하루해의 마지막 햇살이 가득한 영원사에 다다랐습니다.
주능선에서 영원골로 급전직하해 합수점의 다리에 내려서기까지 40분이 걸렸습니다. 무릎이 새큰대 마냥 하산속도를 낼 수 없었기에 두 거암사이의 협곡을 차분하게 지났고 능선 길의 양지꽃만큼이나 자주 눈에 띄는 파랑색의 현호초에 일일이 봄 인사를 건넬 수 있었습니다. 아들바위를 지나 합수점에 놓인 첫 번째 다리를 건넜습니다. 이 다리에서 영원사에 이르는 계곡도 비경이려니와 목판을 잇대어 만든 다리도 이 계곡과 잘 어울리는 명품이었습니다. 길에서 6백m 위에 떨어져 있는 영원산성은 들러보지 못하고 잣나무가 늘어선 바로 영원사로 올랐는데 절 입구에서 개 몇 마리가 계속해 짖어대어 가까이에서 대웅전만 바라보고 바로 야영장으로 향했습니다.
19시35분 상원사에서 7.4Km를 걸어 내려와 금대2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상원사에서 2.8Km 떨어진 영원사에서 2.2Km의 차길을 따라 걸어 금대리야영장에 다다르기까지 계곡 가에 자리한 음식점들과 팬션을 여러 곳 지났는데 대부분이 문을 닫아 썰렁했습니다. 야영장을 지나서 다시 2.4Km를 걸어 버스정류장으로 내려가는 중 땅거미가 지고 어둠이 완전히 산을 덮고 나자 능선 길에 빳빳하게 서 있는 나무들이 마치 성난 짐승들이 몸 털을 곧추세운 것처럼 보여 섬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슈퍼에 들러 후다닥 맥주 한 캔을 사마신 후 곧바로 원주시내로 돌아가는 버스에 오르자 장장 24km를 말없이 걸어 무사히 산행을 마치게 한 두 다리가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32년 만에 다시 오른 치악산이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묻어둔 옛 추억을 되살렸다는 이유로 미국의 시인 T.S. 엘리어트 의 “황무지” 시 몇 구절을 인용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떠들어 댈 뜻은 아예 없습니다. 제게는 산에서의 추억들 대부분이 힘들었지만 보람 있고 아름다운 것으로 가슴 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산에서의 추억거리를 생각만 해도 온몸에 엔돌핀이 돌아 삶에 활력을 불러일으켜 주기에 온 산하가 활력의 초록색을 다시 찾아가는 4월이 제게는 가장 활기찬 한달이 될 것입니다.
<산행사진>
*카메라가 고장나 아쉽게도 입구에서 사진찍기를 중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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