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66.용문산 (1-3)

시인마뇽 2007. 2. 15. 20:39

                           용문산 (3)


        *산행일자:2008. 7. 5일(토)

        *소재지  :경기 양평

        *산높이  :1,157m

        *산행코스:용문산일주문-용문사-상원사-장군봉-용문산정상

                  -마당바위-용문산일주문

        *산행시간:10시-19시30분(9시30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회원11명

         (24기김주홍/김경옥,백인목, 이기후, 이규성, 함기영, 우명길

          27기송기훈, 29기정병기/김의정, 초대산객 박현출님)

 

 

   용문산의 정상이 열렸습니다.

이 산에 첫 발을 들인지 39년 만에 처음으로 해발1,157m의 정상에 올랐습니다. 애당초 열려있던 이 산 정상이 40년 넘게 닫혀있었던 것은 군부대가 들어 있어서였습니다. 지난 해 2월 고교동문들과 함께 이 산을 찾았을 때도 정상에 오르는 길목이 굳게 닫혀 바로 아래 전망바위까지만 올랐습니다. 남과 북의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군부대가 정상을 점하고 있는 산들이 꽤 많이 있는데 용문산은 그동안 양평군으로부터 끈질기게 개방요청을 받은 군 당국이 용단을 내려 작년 11월 정상을 열어놓았기에 이번에 고교동문들과 함께 정상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양평군과 군부대에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합니다.


  용문(龍門)이란  중국의 황하 강 상류의 여울을 이릅니다.

이 여울은 하도 물살이 세어 잉어가 이곳을 뛰어 오르면 용(龍)이 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등용문(登龍門)의 어원이 바로 이 용문(龍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잉어가 용문(龍門)을 올라 용이 된 후 다시 용문산(龍門山)의 정상에 올라서면 승천(昇天)을 꿈꿀 것입니다. 용이 햇빛이 빛나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에 승천했다는 이야기를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것은 그동안 용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몰아치는 날을 골라 하늘로 올랐기 때문입니다. 어제 같은 날씨라면 용문산 정상에서 승천에 성공한 용이 나타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상은 열렸지만 하늘은 짙은 운무로 닫혀 있었습니다. 용이 용문산 정상을 올라 승천(昇天)을 꿈꾸었듯이 선인들은 정상에 오르면 하늘을 여는 개천(開天)을 꿈꾸었습니다. 자고로 개천은 개벽이요 개국입니다. 단군께서 기원전 2333년에 하늘을 연 것은 조선을 개국하기 위함이었고, 조선조 말 천도교를 창시한 최제우님이 하늘을 열고자 한 것은 이 사회를 개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 같은 소시민들이야 감히 이 나라나 이 사회의 개벽은 꿈도 꾸지 못하지만, 이 사회를 개벽해보겠다고 나선 분들이라면 시청 앞 광장에서 촛불시위를 주도해 애꿎게 소시민들의 발을 묶을 것이 아니라 여기 용문산 정상에 올라 촛불을 들며 이 나라 이 백성들을 위해 하늘에 길을 열어달라고 개천을 빌어보는 것이 훨씬 더 좋지 않겠나하는 싱거운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제가 용문산의 말산 탐방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2003년입니다. 

언제고 용문산의 정상은 열릴 것이고 그 전에 이 산을 둘러싸고 있는 말산들을 미리 다 오르자는 생각에서 그해 여름에는 틈만 나면 양평으로 달려갔습니다. 2003년에 유명산(862m), 소구니산(800m), 중미산(834m). 어비산(822m), 백운봉(940m). 함왕봉(947m), 도일봉(830m), 중원산800m), 폭산(992m), 봉미산(856m), 청계산(658m)과 대부산(742m) 등 12개산을, 2004년에는 곡달산(628m), 통방산(650m)과 삼태봉(683m)등 3개산을, 작년에는 소리산(479m)을, 그리고 올 봄에 보리산(628m), 장락산(627m)과 왕터산(412m)의 3개산 등 총 19개 말산의 정상을 모두 오른 후 이번에 스무 번째로 이 산들이 주군으로 모시는 용문산의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날씨만 좋았다면 그동안 오르내린 말산들을 한 눈에 볼 것을 그리하지 못해 많이 아쉬웠지만 궂은 날씨 덕분에 짙은 운무 속으로 승천해 하늘로 날아가는 용을 지켜본 듯해 말산들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오전10시 용문사 일주문에서 경동고교 동문들과 함께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침8시에 청량리역을 출발해 9시 조금 넘어 용문역에 도착했습니다. 곧바로 5-6분을 걸어 인근버스터미널로 옮겼습니다.  9시 반경에 출발하는 용문사행 버스에 올랐는데 마침 5일장이 서는 날이고 주말이어서 차안이 많이 붐볐습니다. 흐린 날씨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는 일기예보로 한결 마음이 놓였습니다. 작년 11월 정상이 열린 후 첫 번째 산행이어서 난생 처음으로 이 산의 정상을 오른다는 기대감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일주문에서 용문사까지 15분간 걸으며 수량도 풍부하고 물 흐름도 도도한 용각골을 보고나자 용문산은 역시 거산이다 했습니다.  용문사의 창건연대가 신라 신덕왕 때인 서기 913년이고, 그 앞의 은행나무 수령이 약 1,100세라 하니어느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거의 같은 시기에 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은 셈입니다. 천년을 한 자리에 머문 것은 은행나무나 용문사나 매한가지이지만, 은행나무는 삶을 잃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켜왔고 용문사는 그동안 여러 번 개보수를 해 오늘에 이르렀다 생각하자 사람들이 만든 건축물이 제 아무리 빼어나도 해도 아무려면 하느님이 만드신 나무를 당해낼 수 있으랴 싶었습니다.


  11시50분 상원사에 다다랐습니다.

용문사를 들러본 후 다리 건너 마당바위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절고개에 이른 시각이 10시40분이었습니다. 한 친구가 안내 지도도 받지 않고 하산 길에 들를 마당바위로 바로 오르는 바람에 또 한 친구가 그 뒤를 따르느라 이산가족이 되어버렸습니다. 정상을 오른 후 용문사로 다시 내려오는 원점회귀산행이어서 중간에 무리다 싶은 대원들은 하산을 해도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산행초반부터 나사가 풀린 듯 전혀 긴장되지 않았습니다. 절고개에서 한참을 쉰 후 정상으로 바로 오르는 북쪽 능선을 타지 않고 서쪽으로 직진해 상원사로 향했습니다. 능선과 골짜기를 번갈아 가며 산허리를 에돌아 상원사에 이르기까지 1시간 가까이 걸으며 참나무들이 울창한 숲도 지났고 나무의자가 놓여 있는 쉼터도 지났습니다. 절고개에서 100m가량 고도를 낮추어 상원사에 다다르자 시멘트길이 잘 나있었고 남쪽 아래로 앞이 탁 트여 시원스러웠습니다. 대웅전에 세월의 때가 끼지 않은 것으로 보아 창건된 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전망과 풍광은 용문사보다 못하지 않았습니다. 상원사에서 조금 내려가 다리 건너 능선으로 올라선 후 자리를 펴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한 후배동문은 무릎이 부실해 하산했고 나머지 여덟 명이 다시 산행에 나선 것은 12시50분이 다 되어서였습니다.


  14시43분 해발1,065m의 장군봉에 도착했습니다.

상원사에서 장군봉에 오르는 길이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초반 얼마간은 경사도 그만그만하고 길도 좋은 편이어서 하산 후 용문역에서 저녁 6시28분 기차를 타는 데 별 문제없겠다 싶었는데 가파른 암릉 길이 전개되고 능선 길에 올라선지 1시간이 지나자 비가 뿌리기 시작해 이게 아니다 했습니다. 어차피 산행시간은 발걸음이 제일 늦은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에 몇몇이서 서둔다 해서 기차시간을 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싶어 이미 끊어 놓은 표가 아깝기는 해도 포기하고 다음 열차를 타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연히 서두르다가는 줄기차게 내리는 비로 흥건히 젖어 있는 암릉 길을 오르내리다 자칫 사고도 날 수 있는 일이어서 천천히 그리고 천천히 올랐습니다. 허리통증으로 지난 번 한북정맥 종주를 건너 뛴 한 대원도, 그리고 무릎이 신통치 않아 해발고도 800m까지 올라본 후 하산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또 다른 대원도 모두 다 충분히 따라잡을 만한 속도였기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같이 산행했습니다. 저희들과 똑 같이 비를 맞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피가 붉은 적송과 허리가 휜 하얀 꽃의 까치수염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상원사에서 1.6Km를 올라 커다란 암봉을 왼쪽으로 에돌며 25분을 더 걸어 왼쪽 아래로 백운봉이 갈리는 장군봉에 다다랐습니다. 동강난 표지석을 간신히 맞추어 세워놓은 장군봉에서 후미를 기다리며 10분여 쉬었습니다.


  16시6분 해발1,157m의 용문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장군봉에서 북쪽으로 한참을 올라 만난 삼거리에서 정상봉을 우회하고자 오른 쪽으로 내려갔는데 직진 길이 정상을 왼쪽으로 에돌아 한강기맥으로 이어지는 길인 듯 했습니다. 지도로 눈짐작을 해보아도 상원사 위 능선에서 장군봉까지 2시간이 걸린 발걸음으로는 아무리 빨라도 정상까지 1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는데 다들 마음이 급했던지 정상가는 오름길이 보이지 않고 계속해 진흙길만 나타나자 조바심을 냈습니다. 비가 내리고 구름에 가려 정상이 보이지를 않아 답답해하던 차 윤필암터에서 올라오는 능선삼거리를 만나 지도상의 위치를 확인하고 이제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싶어 잠시 이곳에서 쉬어갔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직진해 얼마만큼 내려서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올라서는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진흙 길에 가느다란 외줄을 잡고 꽤 가파른 길을 오르기가 마냥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길을 다 올라서자 정상이 열리기 전에 가장 높이 올랐던 전망바위가 바로 앞에 나타났습니다. 전망바위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짧은 길에 철계단이 놓여 있었습니다. 급물살의 여울인 용문을 오른 용이라 해도 햇볕이 쨍쨍 쬐는 여름날에 뜨거운 철계단을 오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기에 이번처럼 비가 내리고 운무가 하늘을 가리는 날을 잡아 승천을 시도하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상석이 서있는 정상에 올랐으나 운무가 앞을 가려 그동안 올랐던 19개 말산 중 어느 하나도 보이지 않아 제우스신에 많이 서운했습니다.


  무슨 일로 제우스신이 비를 내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고 정상 주위를 짙은 구름으로 장막을 쳤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제우스신의 심술로 애꿎은 기상청이 욕을 듣는 것도 딱하지만, 39년을 기다려 처음으로 오른 정상에서 달랑 정상석만 보고 내려가야 하는 저도 속상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용문산이 어디 그저 그런 보통 산입니까?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인데다 산세의 수려함은 금강산에 견줄만하다 하여 경기의 소금강으로 불리고 오지랖도 하도 넓어 이 산이 거느리고 있는 말산만도 스무 개가 넘는 명산입니다.  모처럼 이런 산의 전모를 볼 수 있었는데 그 좋은 기회를 송두리째 앗아간 제우스신이 밉살스러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편 다시 생각해보니  용문을 오른 용이 이 산 정상에서 승천하고자 저희들보다 더 오래 정상의 열림을 학수고대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람들에 개천(開天)이 소중하듯이 용들에는 승천(昇天)이 그러하기에 하는 말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제우스신이 저희들과의 약속을 깨고 비를 뿌린 것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제우스신이 아무리 인격신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구름의 신이기에 정상에 비를 뿌리고 또 구름으로 산자락을 덮었다하여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낸 제우스신을 탓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18시9분 용각골의 마당바위에 다다랐습니다.

정상에서 공사 중이라서 자재들을 쌓아둔 옛길로 하산한 것은 올라온 길이 미끄럽고 경사가 급해 가느다란 줄을 잡고 내려서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4-5분을 내려서자 작년2월에 눈을 맞으며 점심을 들었던 평상이 세워진 쉼터가 나타나 반가웠습니다. 절고개로 내려서는 능선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 오른 쪽 마당바위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평상의 쉼터 위는 공사 중이지만 그 아래 길은 보수공사가 모두 끝나 한 해전의 험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웬만한 경사길이면 어김없이 계단을 설치해 놓아 이 길로 오르기는 정말로 힘들 것 같았습니다. 구름이 가시고 산자락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해 용각골 건너 용문봉 산줄기를 카메라로 잡아보았습니다. 마당바위에서 바지와 등산화에 묻은 흙을 씻어내고 탁족을 즐기며 10분 넘게 쉬었습니다. 날 맑은 날씨라면 등을 눕히고 얼마간 쉬어가도 좋을 마당바위에서 용문사까지 1.5Km 거리를 걸어 내려가는 동안 용각골을 건너는 다리도 몇 곳 지났고 깊은 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담한 소들도 몇 곳 보았습니다.


  19시30분 용문사 일주문으로 되돌아와 하루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용각골 어디서든 짐을 풀고 반시간 가량 푹 쉬어가면 딱 좋겠다 싶었습니다. 애당초 용문산을 산행지로 선정할 때는 정상을 오른 후 하산 길에 1시간 정도 이 계곡에서 쉬어갈 생각이었는데 7시간이면 충분하다 싶은 길이 9시간 반이 걸리는 바람에 마당바위에서 대강 닦은 후 서둘러 하산하느라 용각골에는 아쉬움만 남겨두었습니다. 용문사에 내려서자 은행나무에 기생해 사는 아주 작은 나무가 제 눈을 끌어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작은 나무가 고목이자 거목인  은행나무에 기생한다 싶은데 누가 알겠습니까? 1,100년을 살아온 저 은행나무가 하도 외로워 손자 녀석 데리고 놀 듯 이 작은 나무에 정을 붙이고 사는 것이라면 일방적인 기생이 아니고 서로가 도우며 사는 공생이겠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용문사와 천년 넘게 벗하며 살아온 은행나무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그 작은 나무에 자비를 베푸는 것일 수도 있기에 기생이라 단정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용문사주차장 앞 한 식당에서 반주를 곁들여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경동동문산악회의 정기산행 중 이번 용문산 산행이 가장 긴 산행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날씨도 좋지 않았고 몸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은 상태에서 초반에 산행을 접은 한 친구를 빼고 모두 정상에 올랐다는 것은 비록 시간이 지체되어 예정된 기차는 못 탔지만 충분히 자랑할 만한 일입니다. 용문으로 나가는 버스시간만 넉넉했다면 고된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뿌듯함에 주흥이 뒤따를 만한 식사자리였습니다. 이번 산행은 모처럼 화수분처럼 원 없이 시간을 써본 넉넉한 산행이었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도중에 내려선 송기훈 부회장, 오랜 시간 산행으로 허리에 부담이 갔을 김경옥 여동문님, 무릎통증에 따른 하산유혹을 이겨내느라 마음을 부대꼈을 함기영 전회장님, 마당바위로 홀로 빠진 한 친구를 돕고자 뒤따라 나선 백인목님 모두 힘드셨습니다. 모두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산행사진>

 

 

 

  • joohong
  • 2008.07.09 11:36
  • 오랫만에 기차도 타 보고 .....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우대장이 잘 이끌어 주셔 무사히 정상을 밟아 행복했습니다...
    퍼 갑니다....
    • 답글
    • 시인마뇽
    • 2008.07.11 07:45
    무궁화 호라도 기차가 많이 깨끗해졌고 쾌적해졌습니다.
    그토록 오래 기다려 정상에 오르는 순간을 얼마고 잊지 못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용문산 다녀오셨네요. 저는 마뇽님처럼 산행이 목적은 아니었지만
    작년 가을경 노오란 은행나무 보러 갔었습니다. 무척 인상적이었지요.
    오늘도 그렇지만 요새 날씨가 무척 더운데 산행시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덧글은 자주 달지 못해도 틈틈히, 말없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 시인마뇽
    • 2008.07.11 07:50
    반갑습니다. 산 꼭대기만이 우리 땅인 것은 아니지요. 어떤 사람들은 산에 들고(입산), 어떤 이들은 산을 오르지요(등산). 우리 선조들은 입산만으로도 산을 모두 보았고 유럽인들은 산꼭대기를 올라야 직성이 풀렸던 모양입니다. 용문산은 입산만으로도 이 산의 체취를 느끼는데 모자람이 없는 산입니다. 고맙습니다.

     

     

     

     

     

                                                                 용문산(2) 

     

                                     *산행일자:2007. 2. 3일

                                     *소재지  :경기양평

                                     *산높이  :용문산1,157미터/함왕봉947미터/백운봉940미터

                                     *산행코스:용문사매표소-마당바위-용문산-장군바위-함왕봉

                                                     -백운봉-백년약수-백안3리 마을회관

                                     *산행시간:9시50분-17시42분(7시간52분)

                                     *동행       :이규성, 정병기, 유한준 고교동문 

     


      입춘을 하루 앞둔 어제 고교동문들과 함께 경기도 양평의 용문산을 올라 이 겨울을 환송했습니다. 먼동이 트기 훨씬 전의 이른 새벽에 강원도의 조침령-단목령 구간의 대간 길을 걷는 동안 겪었던 영하20도를 밑도는 살을 에는 듯한 혹한도, 호남지방에 극심한 피해를 안겨주었던 엄청난 양의 폭설도 모두 비껴간 올 겨울은 앙칼진 작년 겨울에 비해 너무 온순했습니다. 올 겨울산행 중 그나마 기억나는 것은 소백산의 칼바람과 덕유산의 눈꽃정도여서 이렇게 그냥 끝나는가 싶어 아쉬웠는데 이 겨울의 마지막 날 흩날리는 싸라기눈과 휘몰아치는 삭풍을 용문산 암릉길에서 만나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용문산의 오지랖이 지리산이나 설악산을 뛰어넘는 것은 동쪽의 산자락에 자리한 고찰 용문사가 이 산의 이름을 빌린 것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됩니다. 설악산도 설악사를, 지리산도 지리사를, 금강산도 금강사를, 또 소백산도 소백사를 품에 안고 있지 못하는데, 유독 이산만은 자기 이름을 본 딴 용문사를 거느리고 있기에 말입니다. 산 낳고 절 낳았지 절 만들고 나서 산이 만들어진 것이 분명 아니라면 절이 산의 이름을 따르는 것이 순리이겠건만, 산이 내준 땅 떼기에다 절을 지으면서도 산 이름을 그대로 쓰는 절이 거의 없는 것은 예토의 산 이름으로는 서방정토에 다다르기가 힘들겠다고 스님들이 판단할 수도 있었겠다 싶어지자, 용문산이 자기 이름을 그대로 쓴 이 절에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절 앞의 은행나무를 천년이상 지켜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시50분 용문사매표소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청량리에서 용문 역까지는 기차로, 용문사입구까지는 아침9시30분에 용문을 출발하는 버스로 이동했습니다. 울창한 숲을 이루었던 넓은 잎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여름날의 영화를 기억하며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길가의 나무들은 아무 말 없이 저희들을 천년고찰 용문사로 안내했습니다. 신라말기 신덕왕 때 창건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 백년가까이 이 절이 겪어온 영고성쇠를 옆에서 지켜본 은행나무가 이제껏 침묵해온 것은 이 나무가 지켜본 내용 모두를 나이테에 담아놓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11시10분 용각골 중간쯤의 마당바위 옆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용문사를 지나 산길로 들어서자마자 싸라기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세등등한 함박눈과는 달리 소리 없이 이 땅에 내려앉는 싸라기눈이 제게 다가와 귀에 대고 눈이 그리 많이 오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말고 산을 오르라고 속삭였습니다. 먼저 내린 눈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계곡에 싸라기눈이 내리는 대로 그대로 쌓여가 겨울의 두께가 더해지고 있는데 발붙일 곳이 어디 있다고 봄이 벌써 머리를 들이미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몇 개의 나무다리를 건너 다다른 너른 마당바위는 머리 위에 소북이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이 마치 하얀 식탁보를 덮어씌운 듯 했습니다. 15분을 더 걸어 계곡과 헤어지고 왼쪽의 된비알 길을 오르는 동안 눈발이 거세지고 시야가 좋지 않아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11시52분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반시간 가까이 산 오름을 계속해 능선 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능선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암릉길로 접어들어 계곡 안에서 피해왔던 겨울바람을 다시 만났습니다. 아이젠을 찼어도 눈이 제법 깔려있는 암릉길을 오르내리기가  그리 쉽지 않았고 로프를 잡느라 장갑이 눈에 젖어 손끝이 아려왔습니다. 지난 8월31일 한남금북정맥을 종주하며 가시밭 풀 숲길에서 여름이 심통을 부려 고생을 많이 했었는데 이번에는 입춘을 하루 앞두고 암릉길에서 싸라기눈을 동원한 이 겨울의 마지막 저항이 저희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12시55분 용문산 최고점에 올랐습니다.

    정상은 군부대 안에 위치해 오르지를 못하고 울타리 밖 바로 아래 안내판을 세워놓은 접근가능 최고지점인 신선바위를 올랐습니다. 날씨만 좋았다면 최고의 전망지인 신선바위에서 어제는 희뿌연 회백색 공간만을 조망했을 뿐이어서 몇 커트 찍은 사진이 크게 기대되지 않았습니다. 다시 오른 길로 100여 미터를 내려가 장군봉으로 갈리는 능선삼거리의 나무의자에서 점심을 들며 2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13시23분 능선삼거리에서 서쪽 길로 들어서 부지런히 걸었는데도 눈이 많이 쌓여서인지 용문산 정상봉을 완전히 우회하는데 반시간이 걸렸습니다. 백운봉 3.7Km 전방을 알리는 표지목이 서있는 능선에서 왼쪽으로 꺾어 장군봉에 다다르기까지 한 두 사람 지나간 발자국이 남아 있어 길 찾기에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14시27분 해발947미터의 함왕봉에 올랐습니다.

    장군봉에서 상원사를 거쳐 용문사로 바로 내려갈까 잠시 의논한 것은 백운봉으로 가는 방향으로는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전혀 없어 길을 내며 진행해야 할 것 같아서였는데 시간이 충분해 예정대로 강행했습니다. 산 밑에서 계곡풍이 끌어올린 눈들이 고스란히 능선에 쌓여 만들어진 눈 언덕이 꽤 여러 곳에 있어 모처럼 발이 빠지는 깊은 눈길도 밟았습니다. 이미 난 길을 걷는 것보다 새로이 길을 내며 걷는 것이 이리도 신경 쓰일 줄은 몰랐지만 한 편으로는 처음 길을 밟는다는 쾌감도 컸습니다. 장군봉을 출발하여 함왕봉에 이르기까지 20분간은 이렇다할 갈림길이 없어 다행이었습니다.


      봉우리삼거리인 함왕봉에 올라서서 지도로 갈 길을 확인한 후 13분간 남쪽으로 전진하여 사나사 행 갈림길에 서있는 표지목을 보고 안도했습니다. 함왕봉에서 40분 가까이 걸어 석성의 잔해(?)인 돌들이 널려있는 능선 길을 지나며 이 돌무더기를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함왕봉-백운봉을 잇는 능선에서 서쪽 아래 해발 700미터  쯤에다 함씨의 시조 분이 석성을 쌓고 왕국을 세웠다 하여 함왕산으로 불린다 하니 방금 지나온 돌길이 산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습니다. 눈 속에 덮여 있거나 우회길 암릉 위에 있을 삼각점을 세 곳이나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저희들의 현 위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던 차 산성의 돌길을 지나자 백운봉이 안개를 제치고 제 모습을 내보여 반가웠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경기도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용문산의 자태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까탈스러운 암릉길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2003년 수둑골에서 백운봉을 올라 장군봉으로 산행하며 산길이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은 여름산행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함왕봉 출발 50분이 다되어 바람이 못 미치는 안부 아래에서 남은 먹거리를 마저 꺼내 들었습니다.


      16시 정각 해발 940미터의 백운봉에 올라섰습니다.

    뾰족한 삼각봉으로 이름이 나있어 한국의 마터호른으로 일컫는 백운봉 정상에 서기 위해 가파른 철제계단을 숨 가쁘게 올랐습니다. 쾌속의 바람이 얼굴을 때렸지만 이미 겨울바람이 아니어서 시베리아의 냉기를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저보다도 기온의 변화에 더 민감한 카메라가 하루 종일 속을 썩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도 이번 산행이 올 겨울에 안녕을 고하는 고별 산행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두산의 돌과 흙을 가져다 만든 통일단을 다시 보자 여기 백운봉의 돌과 흙을 갖고 가 백두산에다 제단을 만들어 놓고 빌어야 통일이 당겨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산 길은 새수미골로 잡았습니다.

    몇 친구들이 이내 아이젠을 벗어 넣을 정도로 등산로의 눈이 다 녹아 이제껏 걸어온 길에 비하면 완전히 보너스 길이었습니다. 처음 얼마간 경사진 길을 내려오다가 평평한 능선 길로 접어들어 편안히 걷는 동안 마음이 안온해짐을 느꼈습니다.


      16시37분 백년약수터에서 정상에서 들지 못한 캔 맥주를 꺼내 마셨습니다.

    약수 물이 샘솟은 지 백년이 넘어서인지 약수가 말라 맥주로 대신했습니다. 아이젠을 벗고 새수미계곡을 따라 하산하면서 얼어붙은 사자바위폭포를 지났습니다. 표면의 물은 얼어붙어도 속살은 그대로인 폭포수가 얼음장 밑에서 준비해온 봄이 입춘인 내일부터 고개를 들것이라 생각하자 사라져가는 겨울이 아쉬워졌습니다. 약수사를 지났고  잘 지어진 목재건물이 들어있는 자연휴양림도 지났습니다.


      17시42분 백안3리 마을회관에 도착해 이 겨울을 보내는 환송산행을 전부 마쳤습니다.

      택시로 양평역으로 옮겨 기차를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감자탕과 반주를 들며 하루산행을 되새겼습니다. 작년 4월 미시령-진부령의 마지막 대간 구간을 같이 뛴 동기 1명과 5년 후배 2명이 다시 모여 함께한 용문산 산행이 힘들었지만 동창애를 다진 보람 있는 산행이었음을 기록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용문산(1)


                                *산행일정: 2003년 6월14일-11월22일

                                *소재지  : 경기 양평

                                *산높이  :용문산1,157미터/유명산862미터/소구니산800미터/

                                              중미산834미터/어비산822미터/백운봉940미터/

                                              함왕봉947미터/도일봉830미터/중원산800미터/

                                              문례봉992미터/봉미산856미터/청계산658미터/

                                              대부산742미터

                                *산행횟수:총 8회   

                                *동행      :유명산-이 상훈교수

                                               기타산-나홀로


      지난 주 토요일인 11월22일 양평의 대부산을 올랐습니다.

    용문산 일원의 모든 산들을 한번 올라보자 마음먹고, 지난 6월 유명산에서 시작한 대탐방은 11월 22일 대부산을 오름으로써 1차 13개산의 산행을 마무리지었습니다.


      6월 14일 대학 친구와 함께 유명산-소구니산 -중미산을 연속해 등반하고자 유명산 입구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9시경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유명산 정상에서 목적한 소구니산으로 가지 않고 배너미고개로 잘못 빠져 용문산의 군사기지까지 왕복한 후 배너미고개에서 옥계리로 걸어 내려가다 지나가는 밴을 얻어 타 반대편의 유명산 입구의 출발지로 16시 경에 되돌아 왔습니다.  약 6시간 반을 걷고 30분 여 차를 탄 7시간의 여정 끝에 출발지로 되돌아 왔지만 당시로서는 우리가 오른 산이 어느 산인지, 어디서 길을 잘못 들어 반대편인 옥계리로  내려가게 되었는지 확인하지 못한 채 산행을 끝냈습니다. 유명산 정상에서 제대로 길을 확인하지 않고 안개 짙은 길을 무조건 전진한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그 후  6월 28일 소구니산에 올라 그 날 길을 잘 못 들어 엉뚱한 곳을 다녀왔음을 확인했습니다.


      6월 28일 저 혼자서 서너치고개-소구니산-서너치고개-중미산-명달리 코스를 밟아 지난 산행때 못 찾은 소구니산과 중미산을 올랐습니다. 15시 30분 경 서너치 고개를 출발, 소구니산을 다녀 온후 16시50분 다시 방향을 바꾸어  중미산을 올랐습니다. 서너치 고개에서 중미산 정상까지는 내내 오름 길이여서 지척의 거리여도 반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정상에서 하산하여 삼태봉에 조금 못 미쳐 왼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 큰 계곡을 만났습니다. 서울근교에 자리잡았다면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중미산 계곡은 의외로 조용했습니다. 중미산 끝자락에 위치한 명달리는 버스가 하루에 3 번밖에 다니지 않을 정도로 후미진 시골이어서 해넘이 시간의 저녁 풍경은 어릴 적 시골을 연상케 해 잠시나마 동심의 세계로 되돌아갔습니다.


      7월 12일 수득골- 백운봉-함왕봉-용문산-용문사주차장 코스를 약 7시간동안 저 혼자서 종주했습니다. 장마철 한가운데 들어서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고 때때로 비를 뿌렸지만, 그래도 사이사이로 햇살이 비추어 전체적으로 산들을 조감하고 길을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아침 10시에 수득골을 출발하여 저녁 5시20분 용문사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하기까지 제법 힘든 산행을 했습니다.  백운봉은 삼각봉의 뾰족한 외양과 같이 오르는 코스가 급경사였고 군부대가 자리한 용문산 정상을 끼고 도는 코스 또한 미끄러워 오르내림이 쉽지 않았습니다. 정말 오랫만에 양평역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청량리역까지 1시간 여 기차여행을 즐겼습니다. 옛날의 완행열차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그 깨끗함과 안락함이 완연하게 좋았습니다.


      7월 27일 도일봉과 중원산을 오르고자 오랜 산우와 같이 중원리를 찾았습니다.

    버스종점까지 약 4키로 정도가 길이 좁아 저보다 기술이 뛰어난 친구에 운전대를 넘겨

    중원리의 주차장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11시 35분 주차장을 출발하여 몇 번이고 계곡을 건너뛰어 12시 20분 합수곡에 이르렀습니다. 전날 과음한 탓인지 산행이 부담스러웠지만 이곳에서 시작된 깔딱고개를 이악물고 올라가 14시 경 도일봉에 올랐습니다. 정상에 서니 서쪽방향으로 먼 발치에 중원산이 눈안에 들어 왔습니다.  도일봉을 출발하여 중원산 방향으로 진행해 나가다가 과음의 후유증으로 중원산을 포기하고 14시 20분 안부에서 좌측으로 하산하였습니다. 덕분에 주 계곡의 진면목을 빼놓지 않고 볼 수 있었습니다. 16시 20분 주차장에 도착하여 5시간에 조금 모자라는 도일봉 산행을 전부 마쳤습니다.


      8월 3일 어비산-유명산-대부산-소구니산-서너치고개로 코스를 잡고 집을 떠나 유명산 유원지 입구인 가일리에서 10시에 나홀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11시 어비계곡 입구에 도착, 들머리를 쉽게 찾아 능선으로 올라섰습니다. 12 시경 어비산 정상에서 몇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정상에서  유명산을 향하여 계곡으로 내려가던 중  작은 빗줄기는 폭우로 변했고 유명산의 골짜기가 물에 넘쳐 길을 찾아 나서는 데 실패하여 결국 산등성을 향해 무조건 치고 올라가는 힘든 산행을 했습니다. 1시간 반 가까이 치받이 오름을 계속해서 능선을 만났을 때의 안도감은 그 동안의 공포의 강도에 비례했습니다.

     

      능선에 올라 섰어도 시계는 여전히 50미터 미만이어서 방향을 알 수 없었고, 두려움이 엄습해와 어서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하나로 2시간 여 죽기살기로 걸었더니 배너미 고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난 6월 한번 왔던 곳이라 저윽이 안심이 되어, 이곳에서 준비한 김밥을 먹고 휴식을 취한 다음 기운을 차려 대부산-유명산-소구니산-서너치 고개의 코스를 다시 도전하였습니다.  쏟아지는  비로 들머리를 찾지 못하여 결국 대부산은 오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유명산에 올랐습니다. 유명산에서 조금 내려와 서너치고개로 갈라지는 분기점을 찾아내어 소구니산을 오를 수 있었고, 17시 20분에 농다치 고개에 도착, 7시간여 긴 방황의 산행을 마쳤습니다.


      8월 9일 토요일 모처럼 하늘이 열렸습니다.

    중원산,폭산 및 봉미산의 3개산을 연속해 오르고자 새벽4시40분 용문사를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6시 10분 용문사입구에 도착, 차를 주차시킨 후 중원산 계곡으로 들어 서 나홀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용문사입구-중원산-폭산(문례봉)-봉미산-산음리의 길고 긴 코스를 걷고 또 걸어서 18시 30분 산행을 전부 마쳤습니다. 나 홀로 산행이었지만 날씨가 좋아 어비산보다 높고 깊은 산들을 12시간여  걸었어도 공포감이 덜해서인지 힘이 덜 들었습니다. 물론 산행중 길을 잃는 알바를 몇 번 겪어 1시간 여 시간을 낭비했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한 산행이였습니다. 그래도 중원산에서 폭산까지의 2시간 여 산행은 오르막이 계속되는 난코스여서 비지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코스이어서 인지 12시간 남짓한 산행 중 만난 분은 겨우 4분이었습니다. 오늘따라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도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8월 15-16일의 백두산 서파능선 종주를 대비한 산행훈련을 끝냈습니다.


      9-10월은 안내산악회를 따라 지방의 명산들을 자주 올랐습니다.

    그리고 11월 다시 양평의 산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11월 8일 토요일 용문산에서 꽤 떨어진 국수역 가까이의 청계산을 올랐습니다.

    국수역에 차를 주차시킨 후 국수역-509고지 -정상-509고지-국수역으로 되돌아오는 원점 왕복산행을 11시 정각에 시작하여 15시 10분에 마쳤습니다.  눈치 없이 내리는 가을비로 단풍의 진수를 맛볼 수 없어 아쉬웠고,  4시간 여 산행중 한 사람도 못 만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비록 6백 미터대의 낮은 산이라지만 인적이 전혀 없어 잎새가 흔들리는 아주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곤 했으나, 그래도 고즈넉한 가을 산길을 나 홀로 걷는 이 여유를 오래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11월 22일 토요일 대부산을 마지막으로 금년의 용문산 일원 말산 들의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한화콘도 조금 못 미쳐 신복리의 워더링카페에 차를 주차시킨 후 10시 40분 나 홀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임간 도로를 따라 20여분 걸으니 애견들이 떼거리로 덤벼들 듯이 쫓아와 샛길로 비껴 들었습니다. 방울 만한 애완견도 떼거리로 덤벼드니 겁나기는 덩치 큰 황견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비껴 든 길은 바로 끝났고 별 수 없이 길이 끝난 지점에서 능선을 향하여 길을 내며 치받이로 직등을 했습니다. 첫 추위라 한결 춥게 느껴졌습니다만, 그  동안 푸르렀던 잎들이 떨어져 버린 나목 들로 시야가 가리지 않아  길을 잃었어도 여름처럼 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길이 아닌 데로 오르는 것은 상당한 추가 에너지를 요구하기에 사이사이 사과도 까먹는 등 영양을 보충했습니다. 12시40분 대부산 정상에 올라 유명산을 보니 현위치가 보다 확실해 졌습니다. 유명산을 거쳐 다시 소구니산을 올랐고  농다치 고개로 내려 와 커피 한잔을 사 들며 4시간 10분 동안의 산행을 반추했습니다.


      그리고 6월에 시작한 대 탐방을 일단락 지었습니다.

    그동안 오른 용문산(1,157미터)과 그 일원의 유명산(862미터), 소구니산(800미터), 중미산(834미터), 어비산(822미터),  백운봉(940미터), 함왕봉(947미터), 도일봉(830미터), 중원산(800미터), 폭산(992및터), 봉미산(856미터) , 청계산 (658미터) 및 대부산(742미터)등 총 13개산을 뒤로 하고, 내년에는 다시 가평군과 경계에 자리한 삼태봉, 통방산, 곡달산, 고등산, 소리산

    및  장락산을 마저 오르고자 합니다.


      저는 나홀로 산행을 즐기는 편입니다.

    설레임과 두려움속에 산행을 하노라면 우리들의 삶도 이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기업인들이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해 나갈 때, 미지의 산을 오를 때의 설렘과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이 설렘과 두려움이 제 삶의 원동력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몇 달 동안 용문산 일원의 산들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내년에도 더 높고 더 깊은 산을 오르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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