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흘산
*산행일자:2006. 12. 24일
*소재지 :경북 문경
*산높이 :주흘산1,106미터/부봉917미터
*산행코스:새재주차장-조령제1관문-주흘산-부봉
-조령제2관문-새재주차장
*산행시간:9시50분-17시(7시간10분)
*동행 :늘벗산악회
해가 짧은 한 겨울에는 오며가며 길에다 뿌리는 돈에 비해 정작 마루금을 이어가는 종주산행을 길게 할 수 없어 저 혼자서 해온 정맥종주를 일단 멈추었습니다. 그 대신에 여름 내내 능선만 이어가는 “선의 산행”을 하느라 새까맣게 잊고 지냈던 계곡도 찾아볼 겸 한 산을 정해놓고 좀 더 여유롭게 정상을 오르내리는 “점의 산행”을 즐기고자 안내산악회를 따라 명산탐방 길에 나섰습니다. 어제도 한 산악회를 따라 문경의 주흘산을 올라 명산탐방을 이어갔습니다. 어제의 주흘산 등정으로 산림청에서 지정한 명산 100산 중 그렁저렁 80산을 올랐고 산행기를 쓴 명산만도 64산이 되어 내친 김에 모두 올라 한번 “명산100산 탐방기”를 내 볼까하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문경의 진산으로 대접받고 있는 주흘산의 명성은 주흘산 혼자서 얻은 것이 아니고 주변의 명소 및 명산들과 한 데 어우러져 빚어낸 것이 분명합니다. 꼬깔봉-주봉-영봉으로 이어지는 이 산의 주 능선을 동남사면에서 받쳐주는 절애의 암벽들과, 그 너머로 조곡골과 곡충골의 두 계곡을 만들어낸 넉넉한 육산이 동과 서로 나뉘어 극명하게 대비되는 주흘산은 산세가 빼어날 뿐 아니라 전망 또한 일품이어서 해발 1,106미터의 영봉에 오르면 월악산, 황장산, 포암산, 조령산은 물론 멀리로는 소백산도 보인다 합니다. 이에다 바위 길이 험난하기로 이름난 부봉 6봉을 힘겹게 오르내린 후 새재 길로 들어서 흙길을 밟는 편안함과 안온함이 더해져 주흘산의 명성이 확고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9시50분 새재주차장에서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7시 조금 넘어 동대문을 출발한 버스는 여주휴게소에서 한번 쉰 후 내륙고속도로를 줄곧 달리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문경새재 도립공원으로 들어섰습니다. 조령천 오른 쪽의 넓은 차도를 따라 십 분여 걸어 조령 제1관문을 통과했습니다. 오른 쪽의 곡충골계곡으로 들어서 폐쇄된 산장을 지난 후 다리건너 여궁폭포에 다다르기까지 18분을 걷는 동안은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았습니다. 10미터를 내리꽂는 폭포수와 이를 담은 소의 여궁폭포를 사진 찍고서도 이름에서 연상되는 섹시함을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은 한겨울의 냉랭함 때문일 것입니다. S자를 그리며 너덜지대를 지나 고도를 급하게 높여가다가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이 다되어 신라시대의 고찰인 혜국사 바로 밑에 이르렀습니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 곳에서 머문 후 국은을 입었다 해서 이름 붙여진 이 절을 계곡을 7번이나 건너 다다랐지만, 중간 중간에 사진을 찍다가 맨 후미로 쳐지는 바람에 그냥 지나치게 되어 아쉬웠습니다.
11시31분 대골샘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혜국사를 지나자 너덜지대가 끝나고 적송림 흙길이 이어져 발걸음이 편안했습니다. 푸르른 산죽 길을 거쳐 해발640미터의 안정암 표지목을 지나고 얼마 후 여덟 번째로 작은 계곡을 건너자 흰눈이 살짝 깔린 눈길이 시작되어 오름 길이 미끄러웠습니다. 대골샘의 물이 말라 가져간 물로 목을 축인 후 아이젠을 꺼내 차느라 7-8분을 쉬었습니다. 샘터에서 십 분여 걸어 지능선에 올라선 후에야 비로소 눈다운 눈이 산길을 덮은 하얀 눈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1016봉을 왼쪽으로 에돌아 주봉 바로 아래 안부에 다다르자 오른 쪽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두 거암사이로 모아져 제법 드셌습니다.
12시11분 누에가 머리를 들고 일어나는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잠두봉으로도 불리는 해발1,075미터의 주흘산 주봉에 올라섰습니다. 남쪽의 꼬깔봉에서 이 주봉을 거쳐 북쪽의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959봉의 중간쯤에 자리한 영봉이 이 산의 최고봉으로 주봉인 이 봉우리보다 31미터가 높지만 주흘산의 대표봉은 주봉인 이봉우리가 맞다 합니다. 올 초하룻날 설악산에서 공룡능선을 함께 뛴 한 분을 만나 영봉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걸었습니다. 이분이 저의 옛 직장동료와 중학교 동창임을 확인하고 이 세상이 넓지 않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하얀 눈이 수북하게 쌓인 능선 길을 걸으며 동사면을 받쳐주는 절애의 암벽을 보고 저 암벽이 문경시내 뒤로 병풍을 쳐 놓은 듯 하다고 해 진산으로 모셔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시43분 이 산의 상봉인 해발1,106미터의 영봉에 올랐습니다.
점심을 들면서 20분여 쉬는 동안 흐렸던 하늘에서 햇빛이 다시 나자 오른쪽 아래의 문경시내의 전모가 드러났고 왼쪽 멀리 조령산 정상에서 오른 쪽으로 뻗어나간 백두대간으로 눈을 돌리자 부봉과 월항삼봉, 그리고 하늘재 너머 포암산이 차례로 보였습니다. 정상석과 삼각점의 사진은 찍었으나 먹이를 찾아 요기조기 날아다니는 박새를 카메라로 담아내지 못한 채 영봉을 출발했습니다. 일행들은 먼저 자리를 떠 백두대간과 만나는 959봉으로 가는 길이 외톨이였지만 생각보다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아 능선 길을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떠 올리느라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봉우리를 에돌아 양지 길로 들어서 그늘 길에 가득 쌓였던 눈이 다 녹아 없어진 것을 보고 이 나라의 말썽 많은 햇빛정책과는 달리 자연의 햇빛은 그 위력이 여전함을 실감했습니다.
13시40분 959봉에 도착해 백두대간에 발을 들였습니다.
상봉 출발 얼마 후에 능선 길에서 점심을 들고 있는 회원 몇 분들을 앞질러 후미를 면했습니다. 평탄하던 능선 길이 959봉 직전에서 바위 길로 변해 곧 이어 오를 부봉의 난이도를 예고해주는 듯 했지만 한번 씩 모두 오른 월악산과 포암산이 보다 분명하게 눈에 들어와 반가웠습니다. 원색의 표지리봉이 수많이 걸려있는 백두대간에 발을 들이자 지난봄 진부령에서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며 내년에 다시 한번 대간종주를 해보겠다는 각오를 다진 기억이 새롭게 되살아났습니다.
14시26분 부봉 제1봉을 올랐습니다.
959봉 삼거리에서 15분을 걸어 다다른 긴급구조표지판의 부봉(1)지점에서 로프를 잡고 바위 길을 에도는 아슬아슬한 코스가 시작되었는데, 이 코스는 안부로 내려섰다가 올라선 산 중턱의 대간 길 삼거리에서 부봉 길로 계속 전진해 제2관문으로 하산할 것인가 아니면 대간 길의 동문으로 에돌아 동화원을 거쳐 제3관문으로 갈 것이냐를 결정하는데 참고하라는 맛보기 코스처럼 생각됐습니다. 지름길을 놓아두고 대간 길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넉넉지 않아 마음을 가다듬고 부봉으로 올라섰습니다. 6개의 봉우리 중 해발 935미터의 제 3봉을 제쳐놓고 917미터의 1봉에다 정상석을 세워 놓은 것은 대간을 종주하는 산객들이 편히 들러가라는 배려로 보였습니다. 최고의 난코스는 3봉을 오르는 길이었습니다. 아무리 로프가 걸려 있다 해도 눈길에 저처럼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이 중력과 반대방향으로 로프만 잡고 온 몸을 끌어올리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지형지물을 최대한 활용해야 비교적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데 적절한 홀드와 스탄스가 눈에 띄지 않아 당혹스러웠습니다. 무리하게 발을 벌려 올라가려고 몇 번을 시도했으나 평소에 스트레칭을 전혀 하지 않은 근육이 놀라 굳어지는 바람에 포기하고 잠시 쉬었다가 오른 쪽의 아주 작은 스탄스와 홀드가 보여 왼손으로 로프를 단단히 잡은 다음 오른 손으로 홀드를 잡고 오른 발을 스탄스에 올려놓아 짧지만 경사가 급한 바위를 올라서는데 성공했습니다. 잠시 슬라브 길을 올라 3봉 정상에 서고난 후 온몸이 땀에 젖어 있음을 알았습니다. 3봉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저토록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안간힘을 쓰며 정상에 올랐기 때문으로 고통을 이겨내고 만끽할 수 있는 환희의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정상의 바위보다 늦게 태어나 먼저 생명을 다한 고사목이 눈길을 끈 것은 벗할 것이 별로 없는 정상에서 바위와 묵언의 대화를 나누다가 외로움에 지쳐서 죽어간 양 아직도 눕지 못하고 곧추 서있는 모습이 안타까워서였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난코스는 3봉으로 끝났고 4봉과 5봉의 사자암은 된 코스를 이미 경험한 터라 별 어려움 없이 오르내렸습니다.
15시19분 부봉 제5봉과 6봉 사이 십자안부로 내려서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부봉1봉에서 1시간 가까이 걸어 이 갈림길에 다다르기까지 잠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조심해서 걷느라 다른 때에 몇 시간을 걸은 것보다 더 피곤했습니다. 정월 초하룻날 오르내린 설악산의 공룡능선보다 코스는 훨씬 짧았지만 난이도가 몇 배는 더해 무척 힘들었습니다. 오름길의 철계단을 내보이며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해오는 눈앞의 제6봉을 기력도 달리고 시간도 모자라 아쉽지만 포기하고 왼쪽 능선 길로 내려섰습니다. 2관문을 거쳐 주차장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몰라 답답했고 산악회에서 정해준 16시까지 주차장 도착이 쉽지 않을 것 같아 이내 아이젠을 벗어 넣고 힘껏 내달렸습니다. 그래도 작년 봄에 오른 조령산이 반갑다고 해오는 눈짓을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어 잠시 짬을 내어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다. 20분 가까이 내려가다 지능선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한참을 내려서자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평지가 나타났는데, 여기서 저의 눈길을 끈 것은 잣나무아래를 뒤덮은 산죽들이었습니다. 솔잎만 덮여 있고 다른 식물들이 거의 자라나지 못하는 불모의 잣나무 밭에서 새파랗게 자라고 있는 산죽 길을 걷는 동안 한라산의 중턱까지 뒤덮은 산죽들의 지나치게 강인한 생명력을 걱정하는 한 제주 분이 생각났습니다.
16시10분 조령 제2관문을 지났습니다.
5-6분전에 계곡에서 스틱에 묻은 흙을 씻어내느라 정신없이 뛰어내려온 하산 길을 잠시 멈추었을 뿐 50분여 쉬지 않고 내달려 제2관문에 도착했습니다. 조곡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조령천으로 흘려보내는 새재계곡을 따라 맨발로 걸어도 좋을 듯한 흙길을 쏜살같이 내달렸습니다. 약속시간보다 늦게 도착함을 알리고자 산악회 집행진에 몇 번 전화를 시도했으나 터지지 않아 애를 태우다가 마당바위를 다 와서 통화가 되어 죄송함을 말씀드렸습니다. 내버려두었으면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들을 오늘에 되살린 문경새재도립공원의 정성들인 손길이 새재 길을 산교육의 현장으로 바꾸어 놓아 볼거리가 꽤 많았지만 시간에 쫓겨 그냥 스쳐 지나갔습니다.
17시 주차장에 도착해 버스에 올랐습니다.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해 죄송해 하는 제게 많은 분들이 박수를 쳐주어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는 공자님 말씀이 결코 허언이 아님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죄송하고 고마웠습니다.
산악도시의 메카답게 문경에는 100대 명산만 4개나 있습니다.
이 많은 명산 중 유독 주흘산이 문경의 진산으로 받들어지는 것은 동남사면의 천길 낭떠러지 암벽이 문경시의 병풍처럼 보이는 데다 새재로 대표되는 이 산의 역사적 중요성이 더해진 결과이지만, 주흘산과 새재를 온전하게 가꾸고 지켜내고자 애쓰는 문경시민과 산악인들의 노고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곳 새재에서 매년 열리는 마운틴페스티발(Mountain Festival)이 그 증거라 하겠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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