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65.명성산 산행기(1-3)

시인마뇽 2007. 1. 25. 00:21

                                                              명성산(3)

 

 

                                             *산행일자:2014. 10. 26일(일)

                                             *산높이 :명성산927m

                                             *소재지 :경기포천/강원철원

                                             *산행코스:신안고개-삼각봉-명성산-팔각정

                                                              -등룡폭포-산정호수주차장

                                             *산행시간:10시50분-17시10분(6시간20분)

                                             *동행 :대구참사랑산악회원 등15명

                                             (대구팀:임상택, 권재형, 기경환, 차성섭 부부, 박영홍부부,차수근부부,

                                              기경환, 박상훈        서울팀:이규성, 범솥말, 터프, 성봉현, 우명길)

                                                                                            

 

 

 

  대구의 산친구들과 합동산행을 해온 것이 이번이 16번째입니다. 한북정맥 종주를 계기로 댓글을 주고받은 것이 서울의 ‘나홀로 산꾼’들과의 모임의 계기가 되었고 나아가 대구 참사랑산악회와의 합동산행으로 발전되었습니다. 햇수로 8년간 봄 가을로 대구와 서울을 번갈아 오가며 합동산행을 해와 서로 나눈 대화도 많이 쌓였고 정(情)도 깊어져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고 헤어지면 다음 산행이 기다려집니다.

 

 

  대개가 띠 동갑인 서울의 산 벗들과 대구의 지인들이 입을 모아 제게 주문하는 것이 이제 그만 말을 놓으라는 것입니다. 1970년대 시골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나이와 상관없이 상대방에 말을 높이는 것을 습관적으로 해와 고교후배들에도 소위 반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제게 말을 놓으라는 주문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고문입니다. 말을 놓기 위해서는 반말을 가르치는 학원에 나가 하대 말을 먼저 배운 후 시작하겠다고 한 것은 그냥 웃자고 한 말이 아닙니다. 어떤 이유로던 평소의 언어습관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를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다음 만날 때는 반드시 말을 놓겠다고 약속할 수 없는 것이 그 약속이 허언이 아님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경어법은 우리말이 다른 나라 말과 다른 주요한 특징 중의 하나입니다. 예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나 공손하게 말을 하느냐를 갖고 사람 됨됨이를 평하는 경우가 많은 편입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경어법을 제대로 가르쳐 제대로 된 언어예절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필요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우리말은 경어법의 대상을 사람으로 국한하고 있습니다. 말을 듣는 사람, 즉 청자의 신분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어법을 상대경어법이라 하는데 6등급이 있습니다. 해라체-반말체(해체)-하게체-하오체-해요체-합쇼체가 그것들로 제가 주로 쓰는 것은 최상급인 ‘고맙습니다’의 합쇼체이고 종종 ‘고마워요’의 해요체도 씁니다. 이런 제게 ‘고맙네’의 하게체보다 더 아래 등급인 ‘고마워’의 반말체를 쓰라고 합니다. 일단 학원을 나가 배워서라도 내년 봄 모임부터 반말을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아무래도 빈 말이 될 것 같습니다.

 

 

  10시50분 신안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이번 산행을 주선한 서울의 성봉현님이 하산 길에 지날 이 산의 명물 억새밭은 역광을 받아 사진 찍어야 제대로 나온다는 것을 간파해 신안고개를 들머리로 잡았습니다. 산정호수에서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신안고개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서쪽으로 진행해 계곡 길로 들어서자 만추의 가을답게 막 떨어져 길 위를 나뒹구는 단풍들이 지려 밟혔습니다. 후미의 범솥말 님이 걸음이 느린 제게 보조를 맞춰 선두가 보이지 않아도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한 여름과 달리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잔잔하게 들려 애잔한 가을의 정취를 더해주었습니다. 완만한 계곡 길을 따라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 무명폭포에 이르기 까지는 그다지 숨이 가쁘지 않았습니다.

 

 

  11시32분 무명폭포에 이르렀습니다. 산 속 깊이 자리한 무명폭포를 지나 왼쪽으로 올라 들어선 능선을 따라 조금 오르다가 직등의 능선 길을 버리고 오른 쪽으로 꺾어 진행한 것은 앞서 간 일행들이 지나간 흔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선두그룹의 자취를 따라 오른 쪽으로 진행하다가 왼쪽으로 꺾어 물이 흐르지 않는 계곡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후미를 부르는 선두의 목소리가 들려와 다시 왼쪽의 능선으로 올라가 앞서간 일행들을 만나고 나서야 원래 계획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올라왔음을 알았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이름 모르는 능선을 따라 직등 했는데 중간에 암릉 길을 지나느라 긴장을 풀지 못했지만 서쪽으로 보이는 전망은 일품이었습니다.

 

 

  13시20분 각흘산갈림길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암릉 길을 통과해 올라선 암봉이 삼각봉인줄 알았는데 각봉 표지석은 이 암봉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봉우리에 세워졌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명성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조금 벗어난 능선에 올라 남진하면서 명성산 정상과 삼각봉을 차례로 지나도록 되어있는 것을 길을 잘 못 드는 바람에 거꾸로 진행해야 했습니다. 표지석이 세워진 삼각봉에서 내려가 북쪽으로 조금 이동해 동쪽으로 각흘산 길이 갈리는 분기점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명성산 정상을 다녀온 선두와 보조를 맞추고자 각흘산 갈림길에서 산행을 멈추고 함께 모여 점심을 들면서 1시간 넘게 쉬었습니다.

 

 

  15시19분 팔각정 앞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이 산 정상은 이미 여러 번 오른 터라 미련 없이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삼각봉을 왼쪽으로 에돌고 암봉 또한 왼쪽으로 우회하면서 4년 전 겨울 명성지맥을 종주할 때 눈이 덮인 암봉 우회길이 미끄러워 밧줄을 꼭 잡고 지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팔각정에 이르러 발걸음을 멈추고 긴 호흡을 한 것은 바로 옆 빨간 우체통을 사진 찍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 편지를 넣으면 1년 후에 받는다는 이 우체통을 열어보지 않아 그 안에 편지가 얼마나 쌓였는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이 높은 산꼭대기를 올라와 여기 우체통에 넣고 1년을 기다려야 하는 편지속의 사연들은 모르기는 해도 꽤 애절할 것입니다. 이 우체통에 쌓인 사연들이 세월의 힘을 빌려 전설이 된다면 이제껏 이 산에 전해온 궁예의 전설을 대신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바람 부는 대로 하늘거리는 억새들의 군무를 저녁노을에 맞춰 지켜보는 것도 가을맞이 산행의 큰 기쁨인데, 이번에는 철이 지나서인지 팔각정 아래 억새들이 조금은 초라해 보여 그런 감흥이 일지 않았습니다.

 

 

  16시54분 산정호수 주차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하산코스는 팔각정을 출발해 등룡폭포와 비선폭포를 차례로 지나 산정호수 입구의 주차장에 이르는 길로, 신안고개에서 시작된 오름 길보다 경사가 완만하고 단풍이 잘 들어 사진을 찍느라 자주 멈춰서야 했습니다. 등룡폭포를 지나 붉은 단풍에 수면이 덮인 조그만 소(沼)를 보자, 계곡을 따라 흘러내려가는 물들이 단풍잎에 몸을 숨기고 잠시라도 편히 쉴 수 있겠다 싶어 그 포근한 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하산 길에 우려했던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다 이내 멈춰 편안하게 주차장에 도착해 합동산행을 마쳤습니다.

 

 

  대구 팀이 타고 온 버스를 타고 내촌의 한 식당으로 옮겨 저녁을 함께 하면서 다시 한 번 우의를 다졌습니다. 대구 팀의 산사나이들이 회식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요청하는 말이 바로 말을 놓으라는 것입니다. 10년 넘게 연상이고 이제 16번을 같이 산행했으니 너무 예의를 갖춰 ‘고맙습니다’의 합쇼체로 말하는 것은 큰 결례라며 예전보다 훨씬 강도를 높여 반말체로 말할 것을 간청해왔습니다. 제가 합쇼체로 말하는 한 제 본의와는 달리 얼마간 격의가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래서 독일의 철학자 하이덱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말했을 것입니다.

 

 

   마음 다져 먹고 다음 만남부터 말을 놓고자 합니다. 그래야 제 진정이 격의 없이 전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노력해볼 뜻입니다.

 

 

 

 

 

 

                                                                  <산행사진>

 

 

 

 

 

 

 

 

 

 

 

 

 

 

 

 

 

 

 

 

 

 

 

 

 

 

 

 

  • 범솥말
  • 2014.11.03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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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배님 안녕하시고요?
    몸도 성치않으신데 험한 암릉오르시느라 몸살이라도 난 건 아닌지요.
    길을 잃었어도 무슨 걱정이 되겠습니까? 선배님과 제 경력을 합치면 어려울 게 뮈 있겠습니까?
    아마도 일행을 만나지 않고 계속 올랐다면 더 추억에 남는 산행이 되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를일이었습니다.
    건강 지키시며 무리한 산행 삼가시고 늘 안산하세요~~~
    걱정했던 감기가 명성산 산행후 감쪽같이 나아 역시 산이 최고다 했습니다.
    나이가 한낱 숫자가 아님을 새기고 건강관리에 유의할 뜻입니다. 고맙습니다.
    시인마뇽님 반갑습니다
    무척이나 궁금했었는데 산행기록을 접하게되니 정말 반가웠습니다
    진작 블로그에 들어와 인사를 올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저도 10월말에 마눌과 명성산에 다녀왔지요
    명성지맥 능선을 다시올라 지나왔던 마루금과 전차훈련장을 날이저물어가는
    시간에 통과했던 기억을 더듬어봤습니다
    저는 시인마뇽님 덕분에 홀로 산행을 시작후 여러 지맥들을 답사중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안산과 무산을 기도하겠습니다 ......
    아이고, 반갑고 또 반갑습니다. 저도 궁금했습니다. 작년 7월 낙동정맥완주를 끝으로 종주산행을 중단했다가 지난 9월에 한강기맥 종주에 나섰습니다. 그새 걸음이 많이 느려져 구간을 끊는데 많이 애를 먹고 있습니다. 요즘은 어디를 종주하시는지요? 항상 안산, 즐산하시기 바랍니다.

            

                                                      명성산(2) 

     

                            *산행일자:2010. 12. 19일(일)

                            *소재지   :경기 포천/강원 철원

                            *산높이   :명성산923m

                            *산행코스:약사삼거리-약사령-명성산-팔각정-비선폭포 여우봉갈림길

                                            -산정호수주차장

                            *산행시간:9시4분-16시1분(6시57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원 16명

     

     

      명성지맥 종주 길에 명성산의 팔각정에서 빨간 우체통을 보았습니다. 이 빨간 우체통이 제 눈을 끈 것은 우선은 드럼통만한 그 크기였고, 다음으로 우체통 상단에 쓰인 하얀 글씨의 “1년 후에 받는 편지”라는 문구였습니다. 이삼일도 못 참아 등기 속달로 보내거나 그도 성이 안차 이메일로 보내야 직성이 풀리는 오늘날 1년 후에 편지를 받는 산꼭대기 우체통에 편지를 써 넣을 사람들이 과연 누가 있을까 궁금했고, 도심의 작은 우체통도 그 안에 온갖 쓰레기가 편지보다 훨씬 더 많이 들어 있다는데 이 높은 산에 너무 큰 우체통을 세운 것이 아닌 가 싶어서였습니다.

     

     

     

      여기 산 꼭대기 우체통에서 1년을 기다리는 편지들의 사연들은 과연 어떤 내용일까 또 궁금했습니다. 잘은 몰라도 대다수의 편지가 사랑을 노래하는 연서(戀書)일 것이라 짐작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젊어서 연애편지 한 번 안 쓴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는 해도 사랑에 빠져 수없이 편지를 나누면서 정작 결혼은 엉뚱한 사람과 해, 나중에 주고받은 연서가 문제가 되어 당혹했다는 경험이 회자되던 시대는 이제는 지난 듯합니다. 요즈음은 거의다가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이루어져 ID만 잘 간수한다면 물증을 남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 덕분입니다.

     

     

     

      이 산의 빨간 우체통을 보고 십 수 년 전에 상영된 일본 영화 “러브레터”를 떠올렸습니다. 1995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상영된 것은 그 4년 후인 1999년이었으니 당시만 해도 한일 간의 문화교류가 요즘만큼 원활하지 못한 때로 일본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어느 정도 저와 같은 보통사람들에 상존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2년 전 등반사고로 목숨을 잃은 연인 후지이 이츠키의 옛 주소를 졸업앨범에서 확인하고 그 주소로 편지를 보내는 와타나베 히로코에게 답장이 날라 와 이를 위안 삼고 살다가 연인 이츠키의 옛집을 찾아가지만 답신을 보낸 사람이 죽은 연인과 이름이 같은 중학교동창임을 확인한다는 내용인데, 여 주인공 히로코가 연인이 등반사고로 숨진 산을 찾아 하얀 눈밭에서 연인을 부르며 절규하는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우체통 앞에서 뜬금없이 일본영화 “러브레터”가 생각난 것은 히로코가 절규하는 눈 덮인 산에다 빨간 우체통을 세워놓는다면 어떨까 싶어서였습니다. 편지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산에서 죽어간 산꾼을 찾는 연인들의 눈물만은 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우체통에도 눈물로 적셔진 러브레터 몇 통쯤은 들어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내년 이맘때쯤 집배원 아저씨와 함께 다시 올 생각입니다.

     

     

     

      아침 9시4분 약사삼거리를 출발했습니다. 포천 이동에서 택시를 타고 약사삼거리로 옮겨 “준희네”가게 집 앞에서 합동사진을 찍은 후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가게 앞에서 서쪽으로 난 약사령 가는 길에 눈이 녹지 않고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산길에서는 아이젠을 차야할 것 같았습니다. 겨울바람에 뒷덜미가 써늘해 영하의 기온이 체감됐는데 아직은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지 않아서인지 손끝이 아려오지는 않았습니다.

     

     

     

      10시10분 약사령에서 명성지맥의 2구간 종주 길에 들어섰습니다. 고개 너머가 강원도 철원 땅인 약사령에서 아이젠을 꺼내 찬 후 왼쪽 산길로 올라섰습니다. 각흘산과 명성산 사이의 가장 깊숙한 안부인 약사령에서 고도를 200m 가량 높여 두 번째 헬기장에 올라서기까지 반시간 남짓한 오름 길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깔딱 코스였습니다. 첫 번째 헬기장을 지나 좌측 사면이 거의 낭떠러지인 가파른 길을 몇 번은 로프를 잡고 오르면서 아이젠을 잘 찼다는 생각을 한 것은 오름 길에 하얀 눈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인데 덕분에 겨울 산행이 마냥 썰렁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짐을 많이 진 후미의 한 친구와 보조를 맞추느라 천천히 오르는 동안 나머지 대원들은 앞으로 내달려 따라잡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10시45분 제5지점 안내판이 세워진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두 번째 헬기장에서 명성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주위는 나무들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키 작은 억새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시야가 탁 트였습니다. 한 여름이라면 햇빛이 내리쬐는 땡볕의 능선을 지나는 일이 엄청 고역일 것이기에 겨울에 지나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지난번에는 해토 때 이 길을 지났는데 길이 미끄럽고 진흙이 바짓가랑이에 철떡 들러붙는 등 애를 먹은 기억이 생생해 더욱 그러했습니다. 왼쪽 아래 움푹한 넓은 곳이 이름난 포사격 장으로 군사도로도 얼기설기 잘 나있었습니다. 헬기장에서 내려선 제5지점의 안부삼거리는 바람이 지나는 길목이어서 귀가 시렸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계단 길을 걸어 올라선 봉우리에서 오른 쪽 바로 아래 삭풍을 피할 만한 곳을 찾아 과일을 꺼내들며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11시43분 해발923m의 명성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잠시 쉬고 나자 앞서 간 일행들이 보이지 않아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저희들이 이번에 종주하는 산줄기가 한북명성지맥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이 산줄기가 명성산을 지나서인데 정작 명성산의 정상은 명성지맥에서 0.3Km 북쪽으로 떨어져 있어 잠시 마루금에서 이탈하여 우정 다녀와야 했습니다. 지맥 길이 왼쪽으로 꺾이는 능선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북릉 길을 오르내려 앞서 다녀간 산객들로 바닥의 눈이 단단하게 다져진 명성산의 고스락에 올라섰습니다. 곧바로 함박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날씨로 북쪽 지근거리의 궁예봉에 자리하고 있을 비운의 사나이 궁예와 인사말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능선삼거리로 되돌아갔습니다.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몇 분간 걸어가자 바람을 가릴 만한 넓은 곳이 눈에 띄어 이곳에서 산행을 멈추고 전 대원이 빙 둘러 앉아 점심을 들었습니다. 언제고 그랬듯이 이번에도 김주홍동문이 손수 가져온 식재료로 겨울산행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오댕 국을 끓여 주어 으스스한 한기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13시55분 팔각정에 다다랐습니다. 따끈한 오뎅 국과 동문들과의 훈훈한 정담으로 40분 남짓한 점심시간이 내내 행복했습니다. 13시가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남쪽으로 뻗어나가는 지맥 길을 다시 밟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앞 910m봉에서 팔각정 쉼터까지의 남릉 길은 고도차가 별로 없어 오르내림이 심하지는 않았지만 곳곳의 암릉 길에 눈이 깔려 있어 조심해야 했습니다. 로프를 쳐놓은 우회 길로 암봉을 왼쪽으로 에돌아 능선에 올라선 후 남진을 계속하자 얼마 후 오른 쪽 아래 먼발치로 산정호수가 눈에 잡혔습니다. 우측 사면이 낭떠러지인 능선을 지나 삼각봉에 이르자 팔각정과 빨간 우체통이 보였습니다. 명성산 정상에서 시작된 아기자기한 능선 길은 삼각봉에서 끝났고 너른 안부로 내려가 팔각정 앞에서 바로 옆의 빨간 우체통에 눈길을 주며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마루금은 바로 위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데 저희들은 명성산이 자랑하는 광활한 억새밭을 지나고자 왼쪽 아래로 곧바로 내려갔다가 얼마 후 오른 쪽 능선으로 붙어 지맥 길로 복귀하기로 했습니다.

     

     

     

      15시6분 얼어붙은 등룡폭포의 물줄기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지난 번 팔각정 아래 억새밭을 지날 때는 저녁 시간이어서 이 밭에 몸을 숨긴 작은 새들이 억새풀 사이를 떼거리로 날아다녀 억새들이 부딪치며 사각사각 내는 소리가 산상의 화음이다 했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일러서인지 그 소리를 듣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지맥 길이 지나는 능선에 다시 올라선 지 얼마 후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간 것이 지맥 길을 놓친 직접적인 원인임을 알게 된 것은 집에 돌아와서 지형도를 보고 다른 분들의 산행기를 읽고 나서였습니다. 직진하면 마루금을 타게 되지만 사격장을 지나게 되어 사격훈련을 쉬는 일요일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저희들처럼 오른 쪽으로 꺾어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가 비선폭포 즈음해서 계곡을 건너 왼쪽의 여우봉으로 오르므로 길을 잘 못 들었다고 부끄러워할 일도 아닙니다. 짧은 너덜 길을 지나 만난 계곡 길에서 한참 동안 숙고 끝에 시간이 여의타면 적당한 지점에서 계곡을 건너 여우봉으로 붙기로 하고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산정호수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얼마 후 다다른 등룡폭포는 물줄기가 얼어붙어 또 다른 비경을 연출했습니다. 등룡폭포의 물줄기를 얼어붙게 한 동장군이 세월도 같이 얼어붙게 한다면 그 때만이라도 나이가 들지 않아 몇 년이라도 더 산에 다닐 수 있겠는데 과연 그런 자비를 베풀지 모르겠습니다.

     

     

     

      16시1분 산정호수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산정호수로 흘러들어가는 계곡물이 얼어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이 예전처럼 탁류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넓은 공터에 세워진 격자  창살모양의 모던한 쉼터에서 산행대장이 여우봉 산행을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결정해 이제 멀지 않은 산정호수로 하산해 버스를 타는 일만 남았습니다. 비선폭포(?)를 막 지나자 “여우봉 2.5Km"의 표지목이 서 있어 여우봉으로 오르는 길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사격장을 지나서라도 반드시 마루금을 타야겠다고 고집하지 않는다면 다른 산객들도 저희들과 같은 코스로 산행했을 것이라 생각하자 뭔가 찝찝한 기분이 사라졌습니다. 산정호수 버스정류장에서 택시를 불러 운천으로 나가 저녁을 들었습니다. 모처럼 동서울터미널에 일찍 돌아와 동기들과 인근 맥주 집을 들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자정이 다 되어 귀가해 산 나들이를 전부 마쳤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영화 “러브레터”의 여주인공처럼 편지를 보낼 곳이 있습니다. 10년 전에 제 곁을 떠난 집사람이 머무는 천국이 그 곳입니다. 당신의 막내아들이 반듯한 규수를 만나 장가를 들었고, 당신의 남편이 방송대국문과에 입학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막내 녀석 결혼을 축하하는 고마운 분들에 올릴 수 있도록 때 맞춰 “섬진강둘레산줄기에서 길을 찾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는 소식을 담은 편지를 써 갖고 명성산을 올랐다면 우체통에 넣을 수 있었을 텐데 진작 우체통이 세워진 것을 알지 못해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기왕 늦은 김에 한 해를 더 기다려 당신의 두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남편이 정말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사진 찍고 글을 써 편지를 보내고자 합니다. 혹시라도 주님께서 제 편지를 보시고 집사람에 답장을 보내라고 명하실지 누가 압니까? 그래서 저는 내년 이맘때쯤 편지를 보내고 1년이고 10년이고 기다려볼 뜻입니다.

     

     

     

     

     

                                                                      <산행사진>

     

     

     

     

     

     

     

     

     

     

     

     

     

     

     

     

     

     

     

     

     

     

     

     

     

     

     

     

     

     

     

                                                           

     

                                                           명성산(1)


                    *산행일자:2007. 1. 21일

                    *소재지  :경기포천/강원철원

                    *산높이  :명성산923미터/삼각봉903미터/각흘산835미터

                    *산행코스:자등고개-각흘산-약사령-명성산-삼각봉-등룡폭포 -산정호수버스정류장

                    *산행시간:8시33분-16시20분(7시간47분)

                    *동행       :나홀로


     

      명성산(鳴聲山)을 울음산으로 풀이한 안내 글들이 많이 있어 국어사전을 꺼내 “명성”의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목 놓고 큰 소리로 울고 가야 궁예나 마의태자처럼 역사적 인물로 대접받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대부분의 사이트들이 “명성”의 산 이름이 “울음소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소개하는 글들을 많이 올리고 있지만, 저는 이제껏 울음소리를 명성으로 표현한 예를 다른 글들에서 접해보지 못했기에 “명성”이 과연 이 뜻으로도 사용되는 가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역사적 인물들의 통한의 울음을 새들의 울음 정도로 비하하는 “명(鳴)”을 써서 표현할 리가 없을 것이라는 저의 생각대로 제가 갖고 있는 “동아새국어사전”에는 명성의 뜻풀이로 “좋은 평판(名聲)”과 “샛별(明星)” 등 2가지만 실려 있을 뿐 “울음소리(鳴聲)”로는 전혀 풀이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명성산”산행기에 굳이 울음소리를 언급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어 홀가분했습니다. 그동안 먼저 오른 수많은 분들이 그들의 역사적 울음에 대해 많은 글들을 남겼기에 제가 덧붙일 만한 새로운 것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입니다.


      아침8시30분 자등고개를 출발했습니다.

    명성산 들머리로 멀찌감치 광덕산과 각흘산의 안부인 자등고개로 잡았습니다. 자등고개에서 각흘산을 거쳐 명성산을 오른 다음 산정호수로 내려서는 만만치 않은 거리의 긴 산 능선 곳곳에 나무들을 베어내고 방화로를 만들어, 온몸으로 땡볕을 쪼여가며 걷기에는 차라리 한 겨울이 날 듯 싶어 저 혼자서 자등고개를 찾았습니다. 고맙게도 동서울을 출발한 와수리행 직통버스 기사분이 경기도와 강원도의 도계인 자등고개에서 저를 내려주어 하루산행이 출발부터 순조로웠습니다. 들머리로 들어서자 한북정맥에 가로막혀 아침햇살이 퍼지기 직전이어서 한기가 만만치 않게 느껴졌습니다. 한달 여전에 이 산에 오른 터라 각흘산까지는 한 걸음에 내달렸습니다. 자등고개를 출발 10분이 지나 한북정맥을 짚고 올라선 태양이 오름길에 햇살을 퍼부어 제 몸의 온기를 되찾아 주었습니다. 오름 길 사이사이에 동쪽의 바람막이 한북정맥의 연봉들을 카메라에 옮겨 놓았습니다. 


      9시48분 해발836미터의 각흘산을 올랐습니다.

    밑동이 파헤쳐진 삼각점과 볼품없는 표지목이 지키고 있는 암봉의 정상은 초라해 보였지만 둘러보는 조망은 더할 수 없이 시원스럽고 장대했습니다. 휴전선을 뚫고 북에서 남으로 면면히 이어가는 한북정맥의 거대한 산줄기들을 바라보며 숙연함을 느꼈고, 명성산으로 이어지는 뻥 뚫린 갈지자의 능선 길에서는 친근함이 감지됐습니다. 서쪽으로 뻗어가는 맨머리의 방화로를  따라 안부로 내려서면서 미끄러질까 신경이 쓰인 것은 능선 양쪽 아래로 나무들을 다 베어낸 데다가 표토가 모래로 되어 있어 한번 미끄러지면 대책 없이 용화저수지까지 굴러 떨어지는 것이 아닌 가 싶어서였습니다. 각흘산 출발 20분 후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삼거리에서 용화저수지쪽으로 내려서는 방화선과 헤어지고 왼쪽의 약사봉으로 향했습니다. 어느 한 분이 이 소나무를 독거수로 표현한 것이 참 적절했다고 생각이 든 것은 다른 나무들이 모두 베어져나가 혼자 남게 된 소나무 한 그루가 한 짝을 먼저 보내고 혼자 사는 독거노인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11시05분 눈 덮인 약사봉에 올라 십 수분을 쉬었습니다.

    독거수 소나무의 삼거리봉우리에서 그동안 내린 눈이 제법 많이 쌓인 왼쪽 능선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눈길을 따라 약사봉을 오르면서 이 봉우리를 오르다가 실족사한 것으로 알려진 장준하 선생의 단아한 생전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 나라의 독립과 통일, 그리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치신 선생은 동시대를 살아온 박 대통령과는 여러 면에서 대비되는 삶을 살아왔고 그래서 대립했지만 두 분의 공통점은 사심 없는 조국애와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제가 좀 더 일찍 태어났거나 선생께서 조금 더 오래 사셨다면 선생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었을 것을 그렇지 못해 아쉬워하면서 선생께서 실족사를 할 만큼 위험한 곳이 어디인가를 눈여겨보았지만 선생이 돌아가신 1975년과는 달리 지금은 암릉을 우회하는 길이 안전하게 나있어 전혀 위험하지 않았습니다. 약사봉에 올라 눈 속에 스틱을 꽂아 세워놓고 잠시 선생께서 평안히 잠드시기를 빌었습니다.


      11시17분 약사봉을 출발했습니다.

    약사봉에서 고도를 200미터가량 낮추어 약사령으로 내려서는데 20분이 조금 더 소요되었습니다. 내림 길의 경사가 급하고 눈이 그대로 남아 있어 빤히 내려다보이는 고개 마루로 내려서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경기도 포천의 도평리와 강원도 철원의 용화저수지를 이어주는 비포장도로가 대전차장애물로 큰 돌무더기를 여러 개 쌓아 놓은 약사령 고개 마루를 남북으로 넘고 있고, 동서로 이 고개를 가로지르는 각흘산-명성산의 산줄기는 키를 낮추어 안부인 이 고개 마루에서 문명을 만나게 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개란 그저 이 마을과 저 마을을 소통시켜주는 깊은 산 속의 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고개에서 시작하여 고개에서 하루산행을 마무리하는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나서 산줄기를 밟는 종주꾼들이 산속에서 문명을 만나는 유일한 곳이자 바람이 넘나들어 땀을 식히며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인 편안한 안부가 바로 고개 마루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제가 또 다시 백두대간을 종주하겠다고 욕심을 내는 것도 마루이자 안부인 고개에 얽힌 문명 이야기를 발굴해서 제 산행기에 한번 담아보고 싶어서입니다. 고도를 잔뜩 낮춘 약사령에서 명성산을 오르는 것은 자등고개에서 각흘산을 오르는 것보다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약사령에서 막 올라선 작은 헬기장에서 바라다 본 까까비탈의 암봉들이 저를 압도해 걱정됐으나 밑으로 바짝 다가서자 오른 쪽으로 우회해 오르는 길이 나있어 안심했습니다. 우회길이 그늘진 곳이어서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있었는데 전혀 다져지지 않아 아이젠을 찼어도 가파른 길을 오를 때 미끄러져 뒷걸음을 치기도 했습니다.


      12시31분 용화저수지로 가는 길이 오른 쪽으로 갈라지는 능선삼거리를 지났습니다.

    수 분전에 억새밭이 시작되는 헬기장을 오르자 저수지 쪽에서 부부로 보이는 두 분이 올라오고 있어 반가웠는데 그분들의 발걸음이 빨라 한참을 앞서가는 바람에 인사를 나누지 못했습니다. 나무를 베어낸 넓은 평원에 황금빛 억새들이 꽉 들어차 마냥 초라하지만은 않았습니다. 헬기장에서 정상300미터 전방의 갈림길까지 40여분 동안 주로 억새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 올랐는데 길 양옆으로 억새가 자라지 못하도록 흙을 갈아엎어 시야는 탁 트였지만 보기에 흉했고 춘삼월에 봄 길을 걷는 듯 엄청 질퍽댔습니다.


      13시19분 해발923미터의 명성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아 옆 자리의 공터에서 쉬면서 기다렸다가 한참 후에 배낭을 정상석 옆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북쪽에 자리한 암봉의 위용이 대단하다 싶어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 봉우리가 바로 궁예봉이었습니다. 만약에 궁예가 견훤처럼 전라도 땅을 지배했다면 철원벌이 넓다고 이 곳에다 도읍지를 정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이곳에서 비운의 죽음도 당할 리가 없기에 저 암봉들이 궁예봉으로 불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쓸데없는 생각에 잠시 빠졌습니다. 정상에서 산정호수로 하산하는 길은 6년 전에 친구와 한번 오른 터라 눈에 익었습니다만 포천군에서 정상 남쪽의 바로 맞은 편 910봉에 세운 삼각봉의 정상석은 낯설었습니다. 


      14시54분 팔각정 쉼터에 이르렀습니다.

    정상에서 남으로 뻗어나가는 능선 길의 처음 얼마간은 동서 양방향으로 급경사의 까까비탈위에 비교적 넓은 길이 나있었습니다. 능선 길 왼쪽 아래로 포사격장(?)이 보였습니다. 정상 출발 40여분 후에 안부삼거리에 도착해 오른 쪽의 산정호수에서 올라온 장년의 남자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 분은 이 산에 자주 오르는 듯 여기 지리를 꿰뚫고 있었습니다. 낡은 표지목이 세워진 원래의 삼각봉에 다다르자 명성산의 브랜드가치를 높여주는 산정호수가 비로소 눈에 들어왔습니다. 산속에 폭 들어앉은 산정호수는 생각보다 작았으나 역정의 세월을 지켜보느라 거칠어 보이는 암봉의 궁예봉과는 달리 퍽이나 아담하고 다소곳해 보였습니다. 반시간 가까이 질펀한 능선 길을 더 걸어 다다른 팔각정 쉼터에서 남은 김밥을 들며 15분을 쉬었습니다.


      15시10분 팔각정 쉼터에서 일어섰습니다.

    쉼터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서 이 산 최고의 억새밭 평원을 지나는 중 하루 종일 미풍도 불지 않아 조용했던 황금빛 억새밭이 별안간 출렁댔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잠시 멈춰서 지켜보았더니 자그마한 새들 수 십 마리가 떼를 지어 마치 억새밭이 그들만의 낙원인양 계속해 조잘대며 억새사이를 헤집고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지켜보는 저도 잠시 낙원에 머무는 듯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억새밭을 지나서는 하산을 서두르느라 등룡폭포를 지나면서도 궁예의 죽음을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빙폭에 감금된 것이 흐르는 물이 아니고 세월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계곡 길로 하산했습니다.


      16시20분 산정호수 유원지에 도착해 8시간 가까운 하루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빙판의 산정호수에 마지막 하루 햇빛을 쏟아 붇는 석양이 고마워 카메라에 옮겨 담고자 했으나 약이 다 달아 실패했습니다.  산세가 가파르고 거대한 암봉들이 억새밭을 지켜주는 명성산 산기슭에 포사격장을 설치하느라 능선 길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방화로를 낸 것이 옥의 티로 보이지만 이 나라를 굳건히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여서 불평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의태자나 궁예가 이 산에서 통곡하기 전에 단단히 챙겨야 했던 것은 바로 한 나라의 안보였기에 말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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