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63.팔공산 산행기(1-3)

시인마뇽 2007. 1. 3. 07:35



                                                          팔공산(3)

 

                                              *산행일자:2017. 4. 23()

                                              *소재지   :대구시/경북 군위 및 영천

                                              *산높이   :팔공산 비로봉1,193m, 청운봉대1,122m

                                              *산행코스:오도암주차장-오도암-청운봉-비로봉

                                                                  -염불암-팔공스카이라인 케이블승강장

                                              *산행시간:1033-1658(6시간25)

                                              *동행 :대구 참사랑산악회 및 서울독립군모임 회원 총13명

                                  (대구팀- 임상택, 기경환, 차성섭/나경숙, 차수근/박금선,

                                   박상훈/최미예, 박영홍/천정미,  서울팀- 이규성, 성봉현, 우명길,) 





     우리 선조들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강산의 변화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속담에 나와 있는 대로 10년 만에 강산이 변한다면 사람들은 그런 강산에서 살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강산이 변하려면 강과 산이 변해야 합니다. 강이 변하려면 강줄기가 변해야 하는데 이러려면 천재지변에 상당한 대홍수가 일어나야 합니다. 산이 변하려면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분출하거나 산사태가 일어나거나 산불이 크게 나야하는데 이런 재앙이 10년 만에 한번 씩 일어난다면 그런 땅은 재앙의 땅이어서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을 것입니다. 강산의 변화란 말처럼 쉽게 일어나지 않고, 또 일어나서도 안 됩니다. 그럼에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이 계속 전해지는 것은 그 변하기 어려운 강산도 바뀐다는데 인심의 변화야 오죽하겠는가를 일깨워주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대구의 참사랑산악회와 합동산행을 시작한지 어언 10년이 지났습니다. 그간 팔공산이 변하고 금호강이 변했을 리는 만무하지만, 인심이 변하지 않았으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읍니다. 인심이 모이면 민심이 됩니다. 민심은 숨겨진 에너지이기에 민심이 변하여 에너지를 긍정적 방향으로 분출할 수 있다면 이는 장려되어야지 경원시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봉건기의 민심과 개화기의 민심이 달랐으리라 보는 것은 그 민심이 바로 역사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라는 판단에 힘입어서입니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듯이 민심이 변해야 역사의 정체나 퇴행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변화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 야기되는 역사의 반동을 두려워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대구-서울 합동산행10주년 기념산행을 대구의 팔공산에서 가졌습니다. 봄가을로 우정산행을 함께 해온 합동산행은 2007년 봄에 팔공산에서 시작한 후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봄에는 대구 일원에서, 가을에는 서울 근교에서 번갈아가며 해왔습니다. 해가 더 해갈수록 느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우정입니다. 산으로 맺어진 돈독한 우정이 세속의 민심처럼 손바닥 뒤집듯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시작할 때부터 기대해온 바지만, 합동산행 또한 사람들의 일이라서 자칫 오해와 갈등, 그리고 반목으로 모임이 깨지는 불미스러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100% 장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모임이 더욱 견고해진 것은 회원들 모두가 우정을 깊이 느끼고 이 모임을 더 할 수 없이 소중하게 생각해온 덕분일 것입니다.



   아침 일찍 KTX를 타고 달려가 동대구역에서 대구팀과 상봉했습니다. 대구팀이 준비한 차로 이동한 곳은 10년 전 팔공산을 함께 오를 때 들머리였던 한티재로, 이곳에서 대구팀에서 준비한 아침을 맛있게 들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군위 쪽으로 내려가 제2의 석굴암으로도 불리는 국보 제109호인 군위삼존석굴을 찾아갔습니다. 팔공산 석굴암은 신라19대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절을 짓고 수도하던 곳으로 원효대사께서 절벽 동굴에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등의 삼존불을 조성 봉안했다 합니다. 석굴은 그 안에 안치된 불상을 보호하기 위하여 접근을 막아 먼발치서 사진만 찍고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오도암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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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5분 오도암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한티재를 오르며 눈부시게 화사한 하얀 꽃이 떨어진 벚꽃나무를 보고 이제 완연한 봄이다 했는데 오도암주차장에 이르자 이제 봄이 시작된 듯 연초록 나뭇잎이 파릇파릇했습니다. 산행채비를 마친 후 차도 오른 쪽으로 나 있는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올 들어 산행을 자주 못한데다 그나마 오른 산들도 대개가 해발고도가 2m 안팎의 낮은 산이어서 해발 1,200m가 다 되는 여기 팔공산을 제대로 따라 오를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됐습니다. 다행히 날씨가 쾌청하고 기온이 20도 내외로 그다지 높지 않아 천천히 오르면 견딜 만 하겠다 싶었습니다. 육모정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저와 동행하려고 후미로 쳐진 한 산우님과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1123분 오도암(悟道庵)을 들렀습니다. 육모정에서 15분 남짓 걸어 오도암으로 들어가는 사립문(?)을 지나 하늘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하늘길이란 군위군에서 재작년 6월에 개장해 오도암-비로봉-동봉과 서봉 등 정상부를 연결해주는 산길을 이릅니다. 암봉인 청운대를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오도암은 암벽으로 병풍을 쳐 놓은 듯해 포근함이 느껴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웅전은 규모도 아주 작고 지은 지 오래지 않은 새 건물이어서 원효대사가 지었다고 쉽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원효대사께서 이절에 머물면서 불교의 묘리를 깨우쳤다하여 이름 붙여진 오도암의 다소곳한 정경을 카메라에 옮겨담은 후 오른 쪽 데크계단 길로 다가갔습니다. 계단 수가 9백 개가 더 된다해 양 무릎에 무리가 갈까 걱정됐지만 다른 길이 나 있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데크 계단에 올라섰습니다. 중간에 몇 번 쉬는 동안 청운대를 받쳐주는 곧추선 암벽을 사진 찍었습니다. 이 위압적인 암벽에 원효대사가 조성한 좌선대, 수도한 원효굴, 화랑시절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의 대업을 꿈꾸며 물을 마셨다는 장군수가 있는데 선두의 두 일행이 원효굴을 다녀왔습니다.


 

   1229분 해발1,075m의 청운대를 올랐습니다. 아무리 계단이 많다 해도 다 사람이 다니도록 만든 것이어서 쉬엄쉬엄 천천히 오르자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시야가 탁 트여 바람도 시원한 계단 길을 올라 하늘 정원에 조금 못 미친 넓은 공터에 이르러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앞서 오른 몇 분이 북서쪽의 청운봉에 도착했다고 알려와 기념사진도 찍을 겸해서 뒤따라갔습니다. 오도암에서 바라볼 때의 장엄함은 찾아 볼 수 없었지만 꽤 큰 소나무가 자리하고 있어 사진 찍기에 딱 좋은 청운대에서 대구 팀의 참사랑 산악회 멤버들과 함께 사진 몇 장을 찍었습니다. 군부대가 점유했던 터를 일부 내주어 공원으로 꾸며 놓은 하늘공원으로 자리를 옮기어 점심을 들으면서 오손 도손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산행이 대구 참사랑산악회원들과 함께한 합동산행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어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144분 해발1,196m의 비로봉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군부대가 돌려준 것은 하늘정원만이 아니었습니다. 팔공산 최고봉인 비로봉도 돌려받아 10년 전 첫 산행을 할 때 밑으로 비껴가야 했던 이 봉우리를 능선 따라 편하게 올라갔습니다. 작년 11월 이 봉우리를 고교동문들과 함께 오른 적이 있지만, 그때는 수태골로 올라가 하늘정원-비로봉의 완만한 군부대 옆길을 지나가지는 않았습니다. 군부대와 접해 있는 하늘정원 길 벽면에 그려진 김수환 추기경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자 날로 심각해지는 일부 사제들의 현실정치에의 깊숙한 관여로 야기되는 갈등이 부끄러웠습니다. 군부대를 오른 쪽 옆길로 돌아 비로봉에 오르자 먼저 오른 많은 분들이 사진을 찍고자 대기하고 있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 아래는 벚꽃이 져 봄이 분명한데 정상부의 능선에는 아직도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움트지 않아 요즘 정국처럼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실감했습니다.


 

   1544분 염불암을 지났습니다. 비로봉에서 계단을 따라 내려선 곳에 자리한 팔공산동봉 석조약사여래입상은 10년 전에도 만나 본 것이어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서쪽을 향해 서 있는 약사여래상은 거대한 화강암의 서쪽 면에 거의 원각에 가까운 높은 돋을새김으로 조각된 높이 6m의 석조입상입니다. 이 불상은 얼핏 보면 투박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모습이 감지되어 온화하고 자비로운 불심을 느낄 수 있다 합니다. 약사여래 입상을 지나 염불암으로 내려가는 길에도 사람들이 많아 여전히 길이 붐볐습니다. 염불목을 지나 염불암에 이르자 이 절 뒤로 작년 겨울 고교동창들과 함께 지난 염불봉이 보였습니다. 오도암에 비할 바가 아닌 제법 큰 규모의 염불암도 지어진지 얼마 안 되어 보였습니다. 염불암 입구에 서 있는 벚꽃 나무의 가지마다 다닥다닥 붙어 피어 있는 수많은 꽃송이들을 보노라니 봄꽃은 역시 벚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658분 케이블카 승강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염불암에서 케이블승강장으로 이어지는 길이 잘 닦여진 대로여서 스틱을 접고 내려갔습니다. 이 길을 따라 얼마 동안 내려가다 왼쪽 계곡으로 내려가 탁족을 했습니다. 내친 김에 계곡물에 5분간 발 담그기에 도전했습니다. 처음 1분간은 너무 차갑다 싶었는데 그 후로는 그다지 고통스럽지 않아 목표한 5분간을 견뎌내고 나자,두 발이 엄청 시원했습니다. 계곡을 건너 다시 지름 길인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계곡에서 20분 남짓 더 걸어 케이블승강장에 이르자 10년 전 대구 팀과 함께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며 대구 시내를 관망한 기억이 새록새록 났습니다. 먼저와 기다리는 일행들과 함께 차에 올라 대구 시내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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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동산행 10주년기념식은 대구 기경환님의 '고향전집'식당에서 가졌습니다. 돌아가며 한 마디씩해 뒤늦게 합류한 권재형님에서 끝이 난 기념사는 거창하지 않았지만 우의를 더욱 깊게 하고 앞으로도 계속 산행을 같이 할 수 있도록 건강도 잘 챙기자는 다짐의 말이어서 오래 새길 만합니다. 이 행사를 주관한 대구의 참사랑산악회에서 준비한 기념수건 2장을 받아왔습니다. 혹시라도 이 모임에 대한 분심이 생겨 얼굴에 비춰지면 바로 닦아내라는 뜻에서 준비했다면 이 수건은 참으로 큰 선물이라 하겠습니다.


 

   지리적위상과 인문적 위상이 같은 산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느 산의 지리적 위상을 가늠하는 것으로는 아무래도 해발고도가 첫 손에 꼽힐 것입니다. 인문적 위상은 우리나라의 경우 불교적 유산과 선조들이 오르내리고 남긴 유산기가 얼마나 많은가로 어림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설악산은 지리적 위상은 높은데 인문적으로는 높게 평가되는 산이 아니어서 이렇다 할 명찰도 없고 정상인 대청봉을 오르내린 기록의 유산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산이 별로 높지 않은 청량산은 지리적 위상에 비해 인문적 가치가 과대하게 평가된 산이라 하겠습니다. 이는 퇴계 이황을 존중하는 후세의 유학자들이 이 산을 많이 찾았고 산행기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10주년을 기념해 같이 오른 팔공산은 지리적 위상과 인문적 위상이 균형을 이룬 산입니다. 고도가 1,200m가 다 되고 대구시와 경산, 군위, 영천과 칠곡을 어우르는 높고 큰 산으로 우리나라 대도시에 인접한 산으로는 가장 높습니다. 팔공산은 경상도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경상도 정중앙에 우뚝 솟아 북쪽의 소백산부터 서남쪽의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의 역동성을 볼 수 있고 낙동정맥의 산줄기들을 확인할 수 있는 천상의 전망대라고 노기석 백산연구소장은 찬했습니다. 팔공산의 인문적 위상이 불교 유적지가 유독 많은데 힘입었다는 것은  이 산에 자리한 동화사가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이자 팔공총림의 중심사찰이고, 은혜사는 제10교구 본사라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산이 불교의 성지라 해서 인문적 위상이 반드시 올라간 것은 아닙니다. 억불숭유를 건국이념으로 삼은 조선의 선비들이 해발고도가 천m도 안 되는 청량산은 오르면서 팔공산을 외면한 것은 이 산이 바로 불교의 성지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존하는 유산기로는 조우인의 <팔공산기>, 이상정의 <남유록>, 김익동의 <유팔공산기>, 김세락의 <유팔공산기>, 박재현의 <유팔공산기> 정도입니다. 금강산 또한 불교의 성지인데도 조선의 선비들이 탐방한 것은 일만이천봉으로 상징되는 수려한 경관이 빚어낸 높은 지리적 위상 때문인데, 팔공산은 금강산에 비견할 정도는 못되어서 선비들이 외면했을 것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이 산의 농연구곡을 걸어보고자 합니다. 농연구곡(聾淵九谷)이란 백석에서 농연과 정락대를 거쳐 용문에 이르는 골짜기입니다. 대암 최동집(1586-1661)이 팔공산자락 부인동(용수동)에 정자를 지어 은거한 곳에 그의 5대손인 최흥원(1705-1786)이 농연서당을 짓고 계곡 위아래로 9곡을 설정했다 합니다. 이상정(1711-1781)은 영조24년인 1748년에 지기 최흥원과 함께 부인동을 거쳐 팔공산 자락을 유람하면서 구곡의 용문, 농연, 고연 중에 농연이 가장 아름답다고 <남유록>에 적었습니다. 이제 저도 그동안 천착했던 지리적 위상보다는 인문적 위상에 눈을 돌릴 나이가 되었나봅니다


  10주년 기념산행을 준비하느라 애쓴 대구 참사랑산악회원 모두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 글을 맺습니다.


 



  

                                                                               <산행사진> 

 





 






























                                    

       

팔공산 정상부가 어느 정도 개방되었군요?
아 ! 뒷쪽 석굴암 사진 반갑습니다.
차타고 하늘공원까지 갈 수 있어 비로봉 가는 일이 이제는 일도 아닙니다.
그간 별고 없으신지요?다음 달에는 산서회를 나갈 계획입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선배님 잘 지내시지요?
반가고 또 반갑습니다.
대구 10주년 산행, 함께해야 했었는데 사정이 그리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의 사진은 많이 보았는데.............
선배님 글을 보니 현장감이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글을 읽으며
이동하고, 감상하고, 조망하는 생생함을 느낄 수 있을 곳 같습니다.
감사하고 잘보고 갑니다.
학교공부를 하다보니까 감성이 무뎌져 옛날처럼 글이 잘 쓰이지 않습니다.
조만간 한 번 만나야지요.
한번 뵈어야지요.
근대 성봉현씨가 운이 나빠 집에서 컵을 떨어뜨렸는데 우측 엄지발가락을 다쳤습니다.
어제 재수술을 했을 겁니다.

글구 선배님 팔공산 산행기를 제가 좀 인용할까 합니다.
약간 편집해서요, 당연히 선배님글이라는 거 밝히고요......
방금 들어가 확인했습니다. 재수가 없을라니까 별일이 다 일어나네요. 그냥 액땜 했다 생각하고 빨리 나아야지요. 인용할 만한 것이 있다면 제가 영광이지요.
  

 

       



                                     팔공산(2)


 

            *산행일자:2007. 5. 27일

            *소재지  :대구시/경북 군위, 영천, 경산

            *산높이  :1,193m

            *산행코스:한티재-서봉-비로봉-동봉-갓바위-갓바위주차장

            *산행시간:7시31분-17시29분(9시간58분)

            *동행    :총6명

              (대구 권재형, 기경환님/서울 범솥말, 성봉현, 조부근님.

               대구의 임상택님은 갓바위에 올라 하산 길 합류)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가 치산치수였던 옛날에는 산경표와 수경표는 바로 경국의 바이블로서 가치를 가졌을 것입니다. 산경표를 펴낸 여암 신경준과 대동수경표를 편찬한 다산 정약용은 이 일 하나만으로도 후손들로부터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2백여 년 전인 1800년경에 여암 신경준이 이 땅의 물줄기를 가른 전국의 산줄기를 1대간1정간13정맥으로 규정하고 여기에서 가지쳐나간 기맥을  일목요연하게 기록한 산경표를 펴내지 않았다면 그 후 60년 후에 고산자 김정호가 축척 21만6천분의 1의 대동여지도를 내는 것이 엄청 힘들었거나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이토록 소중한 산경표가 오래 잊혀져 있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 비로소 고지도연구가인 이우형님에 의해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반도 남녘의 백두대간과 아홉 정맥을 모두 밟은 대구의 몇 분들을 만나 이들 산줄기를 소재로 산행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대간과 정맥길 모두를 종주하고 벌써 기맥종주에 들어선 대구의 임상택/권재형 두 분이 뒤늦게 뒤를 밟고 있는 서울의 저희들 넷을 초대해 팔공산을 함께 올랐습니다. 토요일 오후에 내려가 케이블카로 산세를 조망한 후 한티재 너머 산자락에 자리한 레스토랑 “꿈의 도시”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우의를 다졌는데 처음 만난 자리가 서먹서먹하지 않고 편안했던 것은 참석자 대부분이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에 기초한 대간과 정맥길 종주를 이미 마쳤거나 한창 진행 중이어서 밤늦도록 술잔을 주고받으며 스스럼없이 종주산행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였습니다. 술자리를 파하고 자리에 눕자마자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었을 정도로 과음한 제가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팔공산 종주 길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여암 신경준이 열어놓은 대간과 정맥 길을 종주하며 몸과 마음을 단련한 덕분이었습니다.


  아침7시18분 팔공산의 한티재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전날 밤 쭉 자리를 같이했던 임상택 님은 급한 회사일로 한티재에서 헤어지고 친구 분인 기경환님이 종주산행을 같이 했습니다. 전 날 밤 기경환님은 물론 부인께서도 산을 좋아하는 친구 분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하며 저희들을 반겨주어 그동안 산에 다닌 보람을 느꼈습니다. 한티재에서 권재형님의 부인이신 임채미님이 싸 갖고 온 김밥을 받아들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길 건너 계단에 발을 들여 들머리에 들어섰습니다. 대구의 권재형, 기경환님과 서울의 범솥말, 조부근님이 선두로 나섰고 이번 미팅을 주선한 서울의 성봉현님이 걸음이 늦은 저와 보조를 맞추고자 후미로 빠졌습니다. 한티재의 해발고도가 700m가 다 되어 동봉을 거쳐 갓바위까지 능선 길을 종주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서는데 6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임상택님의 얘기는 준족의 프로급에나 해당된다 하더라도 적어도 9시간 안에는 산행을 마쳐야 너무 늦지 않게 서울에 도착할 수 있을 터인데 오랜만의 과음으로 숨소리가 여니 때보다 가빠 이 시간조차도 그리 녹록하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대구시내를 30도 넘게 달군 초여름의 태양이 하루 더 이 온도를 유지하겠다는 일기예보로 은근히 걱정을 했습니다만, 막상 산속으로 들어서자 아침공기가 선선하고 청량해 전혀 더위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능선 길에 완전히 자리 잡은 초여름의 신록이 그늘을 만들어줘 바람만 살살 불어준다면 한 낮에도 시내의 더위와는 관계없이 쾌적한 산행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습니다만, 넉넉한 너럭바위는 보이지 않고 날카롭게 날을 세운 바위들만 직립해있어 팔공산의 성깔이 보통이 아닐 것이라는 예감도 같이 들었습니다.


  8시46분 삼각점이 세워진 해발991m의 파계봉을 올랐습니다.

한티재출발 후 처음 만난 헬기장에서 7-8분을 걸어 사거리안부인 파계재에 내려섰습니다. 오른 쪽으로 파계사가, 왼쪽으로는 남산 길이 나있는 안부사거리 파계재에서 똑바로 직진해 파계봉에 올라서자 표지석 대신 삼각점이 서 있었습니다. 파계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봉우리를 하나 넘어 두 번째 헬기장을 통과했고 삼거리안부인 마당재를 지나 톱날능선으로 향했습니다. 암릉길을 왼쪽으로 에돌아 다다른 산 중턱의 전망바위에서 목을 축인 후 7분을 쉬는 동안 좌측사면에서 골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거대한 팔공산이 안온하게 느껴졌습니다.


  10시32분 톱날능선을 다 지나고 안부로 내려섰다가 올라선 산 중턱 능선 길에서 앞서 간 일행들이 한참동안 저희 후미 팀을 기다려 처음으로 함께 쉬었습니다. 전망바위를 출발해 암봉을 지난 후 삼거리안부 병풍재에 내려선 시각은 9시56분으로 한티재에서 4.9Km의 거리를 시속2.0Km의 속도로 2시간 반가량 걸은 후였습니다. 이런 속도라면 17.4Km를 걷는 이번 종주산행이 9시간은 족히 걸릴 것으로 보여 7시간이면 충분히 주파할 수 있는 다른 일행 분들에 미안했지만, 성경말씀대로 기다리는 자에 복이 있다면 이분들이 받는 복의 일부는 저의 늦은 걸음 덕분이라고 편하게 생각하며 미안한 생각을 얼마만큼은 덜었습니다. 톱날능선의 암릉 길을 그늘진 좌측사면으로 우회해 바위가 뿜어내는 복사열과 머리 위에서 이글거리는 태양열을 모두 피했습니다. 톱날 능선을 통과해 올라선 능선 길에서 일행들과 함께 잠시 쉰 후 서봉으로 향했습니다.


  11시32분 해발1,150미터의 서봉에 도착했습니다.

톱날능선을 지났어도 곧추선 암괴들은 여전히 많았고 이 바위들을 우회하느라 빤히 보이는 서봉에 다다르는데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파계재로 향하는 한분은 ”정상등산로120”지점이 서봉이라 일러줬는데 그 지점을 한참 전에 지났어도 작은 암봉에 가린 서봉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인적이 뜸한 곳에서 면팬티를 기능성팬티로 갈아입고 나자 사타구니가 시원해 속도가 붙었습니다. 미량의 황사가 날아든다는 일기예보대로 하늘이 쾌청하지는 않았지만 서봉에 올라서자 작년 12월에 올랐던 수태골 계곡과 동봉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동봉과 서봉이 좌우에 포진한 이산의 주봉에 방송중계탑과 군사기지가 들어서기 전의 비로봉 원래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궁금했지만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12시8분 해발1,193미터의 비로봉정상 바로 아래로 올라섰습니다.

서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비로봉 오른 쪽으로 우회하다가 중간쯤에서 똑바로 올라 자연바위 벽에 약사여래좌상을 돋을새김 한 석불을 들러보았습니다. 바깥의 돌부처는 대웅전에 안치한 정교한 부처님들보다는 투박하기는 해도 중생과 많이 닮은 것 같아 가까이 다가서서 만져보고 싶을 정도로 정감이 갔습니다. 진리의 빛이 가득한 연화장세계의 교주이신 비로자나불이 앉아 계실 비로봉의 아래 쪽 깊숙한 곳에 현세 중생의 모든 재난과 질병을 없애주고 고통에서 구제해주는 약사여래불이 숨어 있어 산 아래 중생들을 제대로 돌볼 수 있었겠나 싶었습니다. 다시 치켜 올라가 도착한 정상 바로 못 미쳐 철조망 앞에서 이 길을 같이한 권재형/성봉현님 함께 사진을 찍은 후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너덜겅을 지나 왼쪽으로 진행하다 이번에는 높이가 6m나 되는 높다란 입상의 장군부처를 만났는데 이분도 역시 약사여래부처님이었습니다. 갓바위 부처님으로 대표되는 약사여래부처님이 팔공산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있어 이 산 전체가 병들지 않고 건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부대가 들어서 등정이 불가능한 비로봉을 대신해 해발 1,155미터의 동봉이 주봉 역할을 하고 있기에 동봉은 불과 5m 밖에 낮지 않은 서봉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붐볐기에 꽤 긴 계단 길을 걸어 힘들게 올랐어도 정상에서 잠시도 쉬지 못하고 바로 내려서야 했습니다.


  13시5분 식사를 끝내고 갓바위로 향했습니다.

동봉에서 조금 내려가 바위아래 공터에 빙 둘러앉아 함께 점심을 들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이곳까지 후미에서 동행해준 서울의 성봉현님은 선두에 서서 내달리기로 하고 대구의 기경환님이 저와 보조를 같이했습니다. 대구에서 섬유기계관련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 분과도 전 날 밤 함께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었습니다. 이제까지 어느 한산을 정해 오르내리는 점의 산행을 주로 해와 능선 길을 이어가는 선의 산행에는 익숙지 않으며 백두대간과 9정맥을 모두 종주한 친구 분들이 새삼 존경스러워졌다는 이분도 저와 같이 한티재-갓바위구간의 팔공산 종주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좋아했습니다. 지난 12월 눈이 내려 병목현상을 빚었던 염불마당(?)에서 줄을 잡고 어렵게 통과한 길을 사뿐히 내려선 후 그 때 눈이 많이 쌓여 우회해야 했던 암릉 길을 이번에는 한번 올라서볼까 했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아 단념하고 전에처럼 철저하게 암릉 길을 에돌았습니다. 팔공산최대의 폭포인 공산폭포와 가장 큰 사찰인 동화사 가는 길이 좌우로 나있는 안부사거리인 신령재에 내려선 시각은 14시11분으로 술독이 몸에서 빠져나가서인지 오전보다 조금 빠른 시속 2.5Km의 속도로 걸었습니다.


  14시45분 팔공약수터에서 목을 축였습니다.

한티재에서 서봉사이를 오르내리는 산객보다 동봉에서 갓바위를 오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 보였습니다. 팔공약수터까지는 선두팀도 암릉길을 오르내리느라 우회하는 후미의 저희들과 진행시간이 거의 같았습니다. 저보다 체중이 더 나가는 범솥말님도 생각보다 주력이 뛰어나 선두팀에서 결코 쳐지지 않았습니다.  신령재에서 왼쪽으로 지능선이 나있는 봉우리에 올랐다가 헬기장을 지나 팔공약수터 안부에 다다랐습니다. 능선 길에서 왼쪽 아래로 70m 떨어진 팔공약수터의 샘물은 문자 그대로 생명수였습니다. 지도상에 나와 있는 약수터만 믿고 물을 조금 준비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일 수인 것은 능선 길 가까이의 샘터 대부분이 가물 때는 물이 고갈되고 장마 때는 지표를 흐르는 유수가 섞여 들어가 일년 내내 샘물을 마실 수 있는 샘터가 그리 많지 않아서입니다. 여기 팔공약수터는 물도 시원한데다 수량도 넉넉해 뱃속의 알코올 기를 깨끗이 씻어내고 페트병에도 샘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팔공산 주능선을 종주하는 저희들을 시원하게 만든 것은 샘물만이 아니었습니다. 좌측사면에서 쉬지 않고 불어오는 산바람이 몸의 열기를 식혀주어 과체중으로 더위를 유독 많이 타는 제가 계속해서 봉우리를 오르내렸는데도 전혀 땀이 배지 않았습니다. 잠시 그늘에서 벗어나 바위 길을 걷거나 바람이 막힌 우측사면을 걸을 때는 이내 몸이 땀에 젖을 만큼 기온은 높았지만 에어컨바람보다 한결 더 시원한 골바람이 계속불어와 30도를 웃도는 대구의 악명 높은 더위를 깔끔하게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15시42분 능성재정상이라는 표지목이 세워진 897.6봉에 올라섰습니다.

팔공약수터 안부에서 봉우리를 올라서자 우측사면에 들어선 골프장이 선명하게 보였고 대찰 동화사의 웅장함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왼쪽으로 은혜사 길이 갈리는 능성재정상에 올라서자 까치 두 마리가 반갑다고 인사를 건네 왔습니다. 대부분의 까치들은 산 들머리에서 잘 다녀오라고 환송인사를 건네고, 높은 산위에서 어서 올라오라고 환영인사를 하는 새는 까마귀인데 8-9백m대의 능선에서 까치를 만난 것은 이번 산행이 처음인 것 같았습니다. 받침대에 앉아 목을 축인 후 정남쪽으로 1.8Km 떨어진 갓바위로 향했습니다.


  16시50분 갓바위에 도착했습니다.

능성재정상에서 1km를 걸어 다다른 전망바위에 올라서자 갓바위 바로아래 선본암이 선명하게 보여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인봉(?)왼쪽으로 놓인 나무계단을 걸어 내려와 갓바위를 향해 능선 길을 걷다가 밧줄이 늘어진 왼쪽으로 꺾어 선본암 한참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수많은 돌계단을 걸어올라 선본암을 지났고 더 많은 돌계단을 따라 걸어 갓바위 아래 넓은 터에 올라섰습니다. 높이 4m의 좌불 머리 위에 평평한 바위가 올려져 있어 갓바위로 불리는 이곳의 돌부처도 현세이익적인 약사여래불로 효험이 높다고 널리 알려져 전국 각지에서 소원을 빌고자 모여든 불자들로 많이 붐볐습니다. 종주산행에 참여하지 못한 임상택님이 이곳 갓바위에 올라와 저희들을 반겨 맞아 고마웠습니다.

 

  17시29분 갓바위주차장에 도착해 10시간 만에 종주산행을 끝냈습니다.

갓바위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길은 경사가 급했습니다. 한 없이 돌계단을 내려가 관음사를 지났고 또 다른 절을 지나 주차장 상가에 도착했습니다. 한북정맥의 8지맥을 모두 종주한 조부근님과  지맥종주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하산했는데도 무릎이 새큰거리기 시작해 아무래도 이틀 후의 호남정맥 종주는 다음 주로 늦추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1,500개나 된다는 돌계단을 거꾸로 올라가 소원을 비는 불자들의 간곡한 정성을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 무슨 수로 외면할 수 있겠는가 싶어 자연 소원을 많이 들어주실 것 같았습니다. 대도시 근교의 산치고는 산줄기가 엄청 장대하고 주능선에 암릉길이 꽤 여러 곳 있는 팔공산을 종주하며 산자락에 들어선 크고 작은 사찰들과 편하게 누워있지 못하고 똑바로 서있는 능선 길 바위들에 자주 눈길을 주곤 했습니다.  뒤풀이로 반주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함께한 후 대구분들의 차로 한티재로 옮겼습니다. 반기에 한번 만나 하는 합동산행은 다음에는 북한산의 숨은벽을 오르기로 정하고 작별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칠곡IC까지 길안내를 해주고 서울에 무사히 도착했는가를 물어온 대구팀 임상택/권재형/기경환님의 세심한 배려와 서울팀을 승용차로 실어 나르느라 고생한 성봉현님의 수고가 더할 수 없이 고마웠습니다. 긴 시간 산행을 같이한 범솥말님과 조부근님, 점심을 준비해준 권재형님의 반려자인신 임채미님, 저녁 시간 짬을 내어 저희들을 환대해준 기경환님의 부인 분과 친구 분들에도 감사말씀 올립니다.  산경표가 저희들의 만남을 엮어 주었기에 뒤늦게나마 여암 신경준 선생께도 저희들 모두의 고마운 뜻을 모아 올립니다.  


  “길에는 주인이 없다. 그 위를 가는 사람이 주인일 뿐이다.”

여암 신경준은 산경표를 펴내면서 수많은 산길을 냈을 것입니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 김정호도 더 많은 산길을 새로 내고 밟았을 것입니다. 힘들여 낸 산길이  결코 자기만의 길이 아님을 갈파했기에 여암 신경준은 길에는 영원한 주인이 따로 없고 그 길을 걷는 순간만 그 위에 가는 사람이 주인이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지적재산처럼 어느 누가 길을 배타적으로 소유하거나 점유하고 있다면 대구 팀과의 팔공산 종주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분의 말씀을 새삼 떠올리는 것은 어느 누구도 대간과 정맥 길을 영원히 가질 수는 없지만 그래도 힘들게 걷는 순간만은 그 길을 걷는 산객들의 것이기에 귀중한 시간과 돈을 들여 고된 종주 길에 나서지 않았겠는 가 싶어서입니다. 한티재에서 갓바위까지 팔공산을 종주한 저희들이 잠시라도 함께 공유한 능선 길을 팔공산에 되돌려주고 주차장으로 하산하면서 이 땅의 일부를 빌려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우리네 사람들의 세상사는 이치도 이와 같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암 신경준과 고산자 김정호 두 분 모두 지도에 산길만 낸 것이 아니고 이 땅에 살아가는 길도 함께 낸 훌륭한 분들임을 되새기며 팔공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댓글()

권재형 2007.05.29 16:18 답글 삭제

  • 치밀한 구성과 해박한 지식이 겸비된 산행기를 읽으면서 절로 존경의 마음이 솟아 올랐습니다. 같이 한 산행이 산행기를 읽는 이 순간에도 그립습니다.
  • 권재형 2007.05.29 16:20 답글 삭제
  • 수려한 문장과 치밀한 노력이 돋보이는 산행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메이플~ 2007.05.30 22:28 수정 삭제

  • 만나서 반가웠구요~~늘 지금처럼 산행 많이 하셔서 건강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 시인마뇽 2007.05.30 11:26 수정 답글 삭제
  • 이틀간의 환대에 서울팀 모두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정맥길을 종주하며 님들의 표지기를 숱하게 보아온 터라 처음 만났어도 오랜 지기를 만난 듯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메이플~ 2007.05.30 22:26 수정 답글 삭제
  • 한편의 추억이 뭍어나는 소설을 읽는듯 합니다,,,멋지게 노래도 잘 하셔서 아직도 귓전에 들리는듯 하네요,,,저두 이날 수태골에서 서봉까지 산행을 했었는데 시간이 맞았으면 반가운 모습 마주칠뻔 했네요,,,저는 서봉에 도착한 시간이 4시30분쯤 됐었답니다~~멋진산행기 잘 봤습니다~늘 건강 하시길~~~^^*
  • 시인마뇽 2007.06.02 01:25 수정 답글 삭제
  • 그날 서봉까지 하실거면 같이 산행하셨으면 좋았을 걸 따로따로 했네요. 노래도 경청해주시고 산행기도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고 대구에서 함께 산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팔공산(1) 

 

               *산행일자:2006. 12. 10일

               *소재지  :대구/경북 영천

               *산높이  :1,193미터

               *산행코스:수태골입구-수태골-동봉-신령재-관봉-갓바위주차장

               *산행시간:11시-17시10분(6시간10분)

 


 

  “너희들이 참으로 하얀 눈을 탐하느냐? 그러면 팔공산의 동봉으로 올라오느라.”

  “보살님들,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으시다면 관봉으로 오셔서 갓바위 부처님께  빌어 보십시 오.”


 

  두 봉우리 모두 해발 1,000미터 내외의 고봉이어서 단숨에 오를 수가 없기에 원한다고 뭐든 쉽게 얻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얀 눈이 나뭇가지에 빚어놓은 눈꽃의 황홀경을 바라보는 기쁨을 해발1,155미터의 동봉에 오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었듯이, 돌계단이 1,500개나 되는 된비알의 치받이 길을 올라 고도가 852미터인 관봉의 갓바위에 다다르지 못한다면 100일 치성을 올린 후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보살핌을 받는 기쁨을 느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산을 올라 누리는 기쁨은 고통과 함께 사라지는 쾌락(pleasure)이 아니고 고통을 극복하고 나서야 얻어지는 환희(joy)이기에 신앙의 기쁨에 버금간다는 생각입니다.


 

  어제는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진땀을 흘리며 팔공산을 올라 환희의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팔공산 정상인 비로봉과 좌우의 서봉 및 동봉을 덮고 있는 하얀 눈이 마치 신선의 흰 머리를 보는 듯 신비로웠는데 동봉에서 조암(?)에 이르기까지 북사면의 나뭇가지에 활짝 핀 눈꽃이 이 산의 신비로움을 더해주었습니다. 동봉에서 남서쪽으로 7.2Km 떨어진 곳에 자리한 관봉의 갓바위부처 앞 광장을 지나면서 수 없이 절을 하며 소원을 비는 여인네들과 같이 저도 내년 한 해에도 두 아들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며 건강하게 잘 살아가게 해주십사 하고 마음속으로 빌었습니다.


 

  아침11시 해발 450미터의 수태골 입구를 출발했습니다.

내륙고속도로를 거쳐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선 버스는 대구로 내려가다가 팔공산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팔공산순환도로변의 수태골 입구에서 멈추었습니다. 푸르른 바늘잎의 침엽수가 양 옆에 서 있는 시멘트도로를 잠시 따라 오르다가 넓은 계곡을 건너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장송들이 들어선 소나무 숲길을 지나 산행시작 반시간 후에 다다른 샘터에서 차디찬 샘물로 도시에서 더럽혀진 폐부를 깨끗이 씻어냈습니다.  오름 길 대부분이 돌길이어서 마치 서울의 관악산을 오르는 듯 했고 계곡도 제법 깊어 물소리가 컸습니다. 6번째 계곡을 건너서 얼마고 올라서자 돌가닥 길이 끝나고 치받이 흙길이 시작됐습니다.


 

  12시18분 하얀 눈이 길을 덮고 있는 고개마루에 올라서 아이젠을 찼습니다.

군부대가 들어있지 않았다면 단숨에 뛰어 오를만한 지근거리의 정상 비로봉에 흰눈이 소북이 쌓여 있어 출입금지의 아쉬움이 더했습니다. 올라온 길을 뒤돌아보자 대구시내 너머 먼발치로 거대한 산줄기가 눈에 띄었는데 가장 높은 봉우리가 혹시 가야산이 아닐까 싶어 눈여겨보았습니다. 고개마루에서 7-8분을 걸어 서봉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도착해 잠시 숨을 고르며 처음으로 가지가지에 맺혀있는 눈꽃들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12시40분 해발1,155미터의 동봉을 올랐습니다.

입산이 금지된 비로봉을 대신해서 정상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동봉에 올라 사방을 휘 둘러보며 주변 경관을 조망하는 산객들이 저희 회원들 말고도 많이 있어 그리 넓지 않은 암봉인 동봉이 꽤나 붐볐는데 이 봉우리에서 어디를 둘러보아도 산줄기만 보여 대구시가 분지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쾌청했고 바람이 찼습니다. 대구의 진산인 팔공산을 오르자 “한국의 산하”에 옥고를 올리는 이곳에 사시는 몇 분들의 이름이 떠올랐습니다. 팔공산 정상인 비로봉을 카메라에 옮겨 실은 후 남서쪽으로 뻗어나간 산줄기를 타고 갓바위의 관봉으로 향했습니다. 눈이 내려 위험하니 암릉길을 돌아서가라는  산행대장의 얘기대로 왼쪽의 북사면으로 에도는 우회길로 들어섰습니다. 손끝이 아려왔고 눈길이 미끄러웠어도 우회 길의 나뭇가지에 눈꽃이 활짝 피어 힘든 줄 몰랐습니다.     


 

  13시2분 염불봉(?)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로프를 잡고 내려서는 외길 바위길이 병목이 되어 많은 산객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조금 더 가서 먹기로 한 점심을 이곳에서 미리 들었습니다. 15분여 점심을 드는 동안 방금 전에 탈진한 할아버지를 실어 나른 헬기가 다시 돌아와 또 무슨 사고가 나서 다시 나타난 것인가 해서 불안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바위 길을 힘들게 내려서 암릉길을 북쪽으로 옆 지르는 우회길로 들어섰습니다. 나뭇가지위의 눈꽃들이 만들어 놓은환상적인 눈꽃 터널을 지나며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염불암으로 갈리는 안부를 지나 한 바위에 올라서자 오른 쪽 밑으로 동화사와 좀 떨어져 있는 넓은 주차장이 내려다보였습니다. 암릉길을 우회해 15분을 더 걸어 갓바위가 5.6키로 남은 안부를 지나기까지 계속된 눈길 덕분에 겨울산행의 진수를 한껏 맛보았습니다. 


 

  14시30분 갓바위를 4.5Km 남겨놓은 신령재에 다다랐습니다.

이곳에서 회원 한분만이 동화사로 내려가는 B코스를 택했고 저를 포함한 후미 팀이 마지막으로 이 고개를 지나 갓바위로 내달렸습니다. 바람이 없는데다 햇살이 따사로워 다시 등에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993봉에 올랐다가 헬기장을 지나기까지 약 15분간 모처럼 편안한 흙길의 능선을 밟았습니다.  헬기장에서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며 비로봉 바로 위에서 하늘로 치솟은 흰 구름을 사진 찍었습니다. 오른 쪽 남사면에 자리 잡은 팔공산컨트리클럽은 겨울을 맞아 개점휴업상태인 듯 필드에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명봉을 지나고 또 다시 헬기장을 지나며 암봉들을 오르내리고 나무계단 길도 걸어 올랐습니다.


 

  16시2분 왼쪽으로 은해사로 내려가는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갓바위가 1.8키로 밖에 남지 않아 바로 아래 절이 선명하게 보였고 독경소리도 분명하게 들렸습니다.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선본재로 내려섰다가 인봉에 올라섰습니다. 한 여름이라면 땡볕에 수많은 암봉을 오르내리며 7.2키로를 걷는 것이 쉽지 않겠다 싶은 이 능선 길을 이번에는 한 겨울에 걸었기에 지치지 않았습니다. 비로봉을 중심으로 좌우로 뻗어나간 16키로의 주 능선이 아름답고 또 도시 근교의 산 중에서 가장 높다하여 산림청에서 팔공산을 명산 100산에 포함시켰다 합니다. 해가 긴 여름 날 하루를 잡아 16키로의 주능선을 종주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해야 팔공산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16시30분 해발 852미터의 관봉에 올라 석조여래좌상 앞에 섰습니다.

신라 선덕여왕 7년인 서기 638년에 조성된 이 불상은 높이 4미터의 거대한 단독 원각상으로 이 불상의 머리 위에 갓모양을 한 자연관석을 올려놓아 갓바위 부처로 더 많이 알려졌다 합니다. 투박한 돌부처인 석조여래좌상이 석양의 햇살을 받자 근엄한 얼굴에서 따뜻한 미소가 새어나오는 듯 했습니다.  이 불상에 지성으로 기도를 드리면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진다고 소문이 나 정월 초하룻날이면  경향 각지에서 못 이룬 소원을 빌고자 여기 갓바위로 몰려든다고 하니 이 땅에서 기복신앙의 위력이 어떠한가가 쉽게 짐작됐습니다.


 

  반복되는 “약사여래불”의 독경소리를 들으며 오른쪽으로 돌아 관음사로 내려갔습니다.

관음사 가는 길은 급경사의 돌계단 길이었습니다. 갓바위 부처님께 소원을 빌고자 1,500개나 되는 돌계단을 오를 때의 진지함과 기도를 다 드리고 나서 이 계단을 내려서며 이제는 부처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마음먹는 겸허함이 기도 길에서 얻은 소원성취만큼이나 소중한 자산일 것입니다. 서산에 걸린 해가 온 몸을 불살라 하늘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17시10분 갓바위주차장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투박한 얼굴을 한 돌부처님에 정작 중요한 한 가지를 빼놓고 빌었던 것 같습니다. 이 생명이 다 할 때 까지 제게 건각을 주시어 이 나라의 산들을 두루 돌아볼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을 빼놓았습니다. 앞으로도 산을 잘 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는 산에서 내려와 주님께 드리는 것 보다 산위에서 부처님께 비는 것이 맞겠다 싶어 가슴속에다 돌부처를 옮겨놓고 마음속으로 빼놓은 소원을 다시 빌자 돌부처의 투박한 웃음이 비로소 느껴졌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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