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금남정맥 종주기

금남정맥 종주기 9 (게목재-장군봉-피암목재)

시인마뇽 2007. 3. 27. 10:54
                                     금남정맥 종주기 9


               *정맥구간:게목재-장군봉-피암목재

               *산행일자:2007. 3. 23일

               *소재지  :전북진안/완주

               *산높이  :746미터

               *산행코스:무릉리-게목재-태평봉수대-싸리봉-장군봉-피암목재

               *산행시간:6시53분-16시57분(10시간4분)

               *동행    :나홀로

 


   이틀 연이은 정맥 길 종주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재작년 여름 대간 종주 때 지리산의 노고단에서 매요마을까지 이틀 연속 뛰어본 후 이번이 처음인 연속종주가 만만치 않았던 것은 섭씨 20도에 근접한 이상고온에 그동안 아무런 까탈도 부리지 않고 순응해온 두 다리가 자꾸 쉬어가자고 졸라대서였습니다. 비온 뒤 끝이라서 쌀쌀한 냉기가 가시지 않은 듯 해 옷을 몇 겹 껴입고 집을 나섰는데 하루 만에 기온이 치솟아 급기야는 속옷도 훌훌 다 벗어버리고 남방만 입고 산행했습니다. 봄날의 날씨는 같은 온도라도 무성한 잎이 그늘을 만들어 햇빛을 가려주는 여름날보다 훨씬 덥게 느껴졌습니다. 날씨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 해도 그동안 두 다리만은 제 뜻을 잘 따라주었기에 고마워하면서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경사가 조금만 가팔라도 비탈길을 오르는 두 다리의 무릎이 새큰대 이를 달래느라 도저히 제 속도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 일찍 게목재를 출발해 오후 3시반경이면 목적지인 피암목재에 닿아 주천가는 버스를 탈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오후 5시가 다 되어 도착하는 바람에 택시를 불러 타고 주천으로 나가 대전행 끝 버스를 탔습니다.


  최근에 저는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조지프 A. 아마토 교수가 지은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On Foot - A History Of walking)”라는 제목의 매우 흥미 있는 책 한권을 읽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인류는 약 6백만 년 전부터 이 땅위를 걸었으며, “어슬렁어슬렁, 쿵쿵, 질질, 터벅터벅......”하고 걷는 나름대로의 걸음걸이가 그 사람의 신분 등을 알려주는 언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걸어왔고 걷기를 통해 인류가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들려주는 이 책에서 걷기는 이제 필수에서 선택으로 그 중요성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인류의 삶과 움직임의 핵심을 차지할 것이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저자는 힘주어 말했습니다. 어제 금남정맥의 연봉들을 오르며 무릎이 아파 걷다가 쉬다가를 반복하는 제 걸음걸이를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면 저를 어떤 사람으로 보았을까 새삼 궁금했습니다. 저를 모르는 사람들이 시내를 걷는 제 걸음걸이를 유심히 관찰한다면 제가 산을 즐겨 오르내리는 산 꾼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약간 꾸부정한 허리에 보폭을 짧게 하고 확실히 발걸음을 옮기는 제 모습이 영락없이 배낭을 메고 산길을 오르는 산 꾼을 떠올리게 할 것 같아서입니다. 뭘 하든 자신감이 넘쳐 당당하게 걷는 젊은 날의 걸음걸이를 100% 되찾기는 쉽지 않겠지만, 또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 보여주려고 거들먹대며 걷고 싶은 마음은 아예 없지만, 공연히 주눅이 들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걷는 모습도 추할 것 같아  열심히 살고 부지런히 산을 찾으며 천천히 그리고 착실히 한걸음 한 걸음씩 내딛고자 합니다.


  아침 6시53분 무릉원을 출발했습니다.

대개의 온돌방은 저녁에 데운 구들이 새벽이면 차갑게 식는 바람에 머리통이 써늘해져 이른 새벽 일찌감치 눈이 떠지는데, 이 집의 황토방은 구들이 두꺼워 아침에도 잔열이 훈훈하게 감지될 정도여서 모처럼 오랜 시간 숙면을 취했습니다. 정갈한 아침식사를 배불리 먹고 나서 가지런한 장독대를 뒤로하고 저보다 덩치가 더 큰 이집의 큰 개 다롱이의 전송을 받으며 게목재로 향했습니다. 시멘트 길을 걷고 웅덩이를 지나 한 여름이라면 초롱초롱 맺힌 이슬로 구두를 다 적셨을 그런 풀 숲길을 걸어 게목재로 오르는데 40분이 걸렸습니다.


  7시 33분 게목재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산비둘기 두 마리가 게목재 출발을 축하해주어 신선봉이라는 표지판이 걸린 780봉을 단 숨에 올랐습니다. 오른 쪽 길로 내려서며 얼굴을 때리는 키를 넘는 산죽들을 처음으로 만났는데 이 후에도 오름길 곳곳에 이러한 산죽 길이 계속 나타나 이번 산행을 더욱 짜증나게 했습니다. 720봉에 올라 십수분전에 출발한 780봉을 카메라에 담고자 했으나 밧테리가 나갔다며 셔터가 열리지 않아 사진 찍기를 포기했습니다. 왜인지 이번 산행은 카메라마자도 저와의 동행을 거부한 철저히 “나홀로 산행”일 수밖에 없겠다 싶어지자 게목재에서 만난 비둘기 두 마리가 뒤늦게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른쪽이 낭떠러지인 능선을 타고 산죽 길을 몇 번 더 헤치고 나가 수피가 말끔한 철쭉나무 군락지를 지나서 햇빛이 잘 드는 무명봉에 다다른 시각이 게목재 출발 1시간 후여서 두 다리를 달랠 겸해 모닝커피를 마시며 10분을 쉬었습니다.


  9시22분 786.6봉에 올라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모닝커피를 마신 무명봉에서 안부로 내려섰다 소나무가 들어선 암릉 길을 지나 이름모르는 봉우리를 왼쪽으로 에돈 후 소나무 숲길을 지나고 길지 않은 산죽 길을 거쳐 720봉에 다다르기 까지 느닷없이 굉음을 내곤 하던 비행기도 날아가지 않아 하늘 길도 정맥 길도 모두 쥐 죽은 듯이 조용했습니다. 이토록 고요한 길에 햇살이 퍼지면 고맙게도 평화가 소리 없이 찾아드는 것 같아 저는 이런 고즈넉한 길을 좋아합니다. 720봉에서 또 다시 키를 넘는 산죽 길을 걸어 내려가 왼쪽 비탈면이 나무를 베어낸 벌목지인 능선 길을 지나서 한 암봉에 다다랐습니다. 여기서부터 얼마간 비교적 평평한 암릉 길이 펼쳐졌는데 지도에 나와 있는 삼각점을 찾고자 천천히 걸었지만 끝내 확인하지 못하고 786.6봉을 내려섰습니다. 맞은편의 봉수대는 깊숙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된비알 길을 걸어 올라야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았고 오른 쪽 건너편 산비탈에는 차가 다닐만한 임도 길만 촘촘하게 나 있고 나무숲이 제대로 없어 황량해 보였습니다.


  10시29분 태평봉수대에 올라서서 십 수분을 쉬면서 두 다리를 달랬습니다.

786.6봉에서 능선 더 걸어 다다른 봉우리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 깊숙한 안부로 향했습니다. 안부에 거의 다 내려가 벌목지에 방치된 베어진 나무들을 피하고자 오른 쪽의 임도로 들어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잠시 길을 잃어 정맥 길로 합류하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안부주위가 워낙 넓은데다 여기 저기 발이 빠지는 늪지대여서 이곳들을 피해가며 정맥 길을 되찾느라 십분 가까이 까먹었습니다. 안부에서 봉수대로 오르는 낙엽송 길을 얼마만큼 오르자 만만치 않은 된비알 오름길이 계속되었고 그동안 투덜대온 두 무릎이 더는 못 걷겠다고 아우성쳤습니다. 별 수 없이 쉬는 횟수를 늘려가며 수직고도를 200미터 넘게 높여가 태평봉수대에 올라섰습니다. 봉화 통신의 특성상 시야가 탁 트인 봉우리에다 봉수대를 설치했을 것이기에 전망은 당연 일품이었습니다. 아침시간 작동이 안됐던 카메라가 햇살이 풀려 기온이 올라가자 셔터가 다시 열려 정 남쪽에서 약간 빗겨 있는 동쪽의 마이산과 서쪽의 운장산, 그리고 이미 오른 780봉과 786.6봉을 차례로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그런 후 정방형의 널찍한 봉수대상단부에 털썩 주저앉아 두 다리를 쭉 펴고 쉬다가 갈림길로 되 내려가 정맥 길에 복귀했습니다. 


  11시40분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인 해발 750미터의 금만봉에 올랐습니다.

봉수대갈림길에서 작은싸리재로 내려섰다가 빤히 보이는 금만봉을 오르는데 한 시간이나 걸린 것은 작은싸리재 안부가 또 다시 깊어서였습니다. 비포장도로가 지나는 작은싸리재로 내려서는 내림 길이 경사가 하도 급해 스틱으로 하산속도를 조절해야 했고 작은싸리재에서 오르는 길도 봉수대오름길 이상으로 된비알 길이어서 새큰대는 무릎을 또 다시 달래가며 금만봉을 올랐습니다. 일명 싸리봉으로도 불리는 금만봉에서 북서쪽으로 금남지맥이 뻗어나가고 정맥길은 남쪽으로 이어졌습니다. 낙엽 길을 따라 싸리재로 내려섰다가 654봉에 올라 점심을 들면서 20분여 쉬며 원기를 되찾은 후 12시29분에 654봉을 떴습니다.


  13시28분 삼각점이 서 있는 724.5봉에 다다랐습니다.

산죽을 가르고 철쭉나무 숲을 지나며 봉우리 몇 개를 오르내렸지만 봉수대봉이나 금만봉처럼 오름 길이 급하지 않아 두 무릎의 새큰거림이 많이 삭으러들었습니다. 길 왼쪽에 초록색 철망이 쳐진 능선 길을 따라 700봉 삼거리에 도착했고 조금 더 걸어 다다른 724.5봉에서 사과를 까먹으며 9분을 쉬었습니다. 742봉으로 가는 길에 전망바위에 오르자 오른 쪽 멀리로 대아리저수지가 눈에 띄었고, 1993년 초 여름 하루를 날 잡아 식구들을 모두 대전으로 불러내려 드라이브 하는 길에 이 저수지에서 쉬어갔던 일도 같이 기억났습니다. 당시는 미처 운전을 배우지 못한 때라 기사분이 딸린 택시 1대를 전세 내어 대둔산의 케이블카, 대아리저수지, 화심순두부집, 마이산, 운일암 반일암과 칠백의총 등 전북완주, 진안 및 충남 금산의 명소들을 모두 들렀는데 이번 종주산행으로 이 모든 볼 것들이 금남정맥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에 있음을 알게 되자 옛 추억과 함께하는 이번 산행이 더 이상 나홀로 산행이 아님도 알았습니다.


  14시34분 해발742미터의 장군봉을 지났습니다.

눈앞에 딱 버티고 서있는 우람한 암봉들을 오르내리는 일이 이번에도 힘들었습니다. 발 딛을 곳이 별로 없는 바위를 로프만 잡고 수직으로 오르는 것이 딱 질색인 것은 80Kg가 다 되는 과체중 때문입니다. 로프를 잡고 하강하는 것은 아무리 경사가 급해도 운동방향이 중력 방향과 일치해 별로 어렵지 않은 데 중력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몸을 들어올리는 바위 오름이 제게는 고역이었습니다. 슬라브바위와 산죽길을 지나 안부로 내려선 후 로프를 잡고 바위길을 올라서서 조금 걷다가 또 다시 로프를 잡고 짧은 바위길을 올라 700봉에 다다랐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인 장군봉을 오르기 위해 700봉을 내려가다 로프를 잡고 장군봉 바로 아래 안부로 안착했습니다. 스탄스가 신통치 않은 거의 수직에 가까운 암벽을 로프를 잡고 오르느라 두 팔에 힘이 쭉 빠졌습니다. 암벽 길도 가장 길고 경사도 가장 심해 로프 줄이 걸려 있어도 눈비라도 내리는 날에는 과연 오를 수 있을까 싶은 직벽바위를 오르는 것으로 난코스는 끝났지만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해 정맥 길만 따라 오르다가 장군봉을 지났어도 정맥길에서 오른 쪽으로 약간 벗어나 있는 장군봉 정상석을 들러보지 못했습니다. 장군봉에서 15분을 더 걸어 암릉길을 완전히 벗어난 능선 길 전망바위에서 7-8분을 쉬면서 장군봉의 위용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15시26분 해발787미터의 성봉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능선 길 전망바위에서 성봉으로 가는 길은 완만한 오름 새가 계속되어 보기보다 힘들지 않았습니다. 산죽 길을 지나고 성벽의 잔해로 보이는 석축을 넘어 “잡목/밀림지역” 팻말을 보았습니다. 한 여름이라면 팻말대로 싸리나무 등 잡목들과 억새풀이 무성해 밀림이 만들어졌을지도 모를 평평한 풀 숲길을 한참 걸어 억새밭의 헬기장에 오르자 눈앞에 다가선 운장산과 연석산이 저를 반기는 듯 했습니다. 헬기장을 조금 지난 삼거리분기점에서 직진해 안부로 내려서는 길에 초록색 뱀을 만나 정맥길 봄 식구를 또 하나 늘렸습니다. 687봉 바로 아래 녹 쓴 볼트가 박혀있는 커다란 바위덩어리를 만나기까지 편안한 송림 길을 천천히 걸으며 지친 몸을 추슬렀습니다.


  16시57분 피암목재로 내려서 장장 10시간의 하루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볼트바위에서 675.5봉으로 오르는 길이 “급경사지”라는 팻말이 말해주 듯 된비알 길이어서 또 다시 두 무릎이 아우성칠 까 두려워 쉬엄쉬엄 천천히 걸어 올랐습니다. 주천택시를 피암목재로 부른 후 하산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내리막길이 거의 끝나 “높은울타리”의 훈련시설물이 세워진 길목에서 왼쪽으로 내려서 절개면 상단에 이르자 피암목재 고개마루에서 대기 중인 택시가 보였습니다. 절개면을 따라 오른쪽으로 진행해 차도로 내려선 후 왼쪽 고개마루로 이동해 다음에 이어갈 정맥길 들머리를 확인 한 후 택시에 올랐습니다. 8시간 반 정도면 마칠 수 있겠다는 예상이 뒤틀려 17시55분에 주천을 출발하는 대전행 막차에 대고자 만삼천원을 들여 택시를 탔어도 아깝지 않은 것은 숱하게 많은 봉우리를 연 이틀 오르내린 두 다리를 편하게 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어떤 심리학자는 인류가 직립보행을 한 후에야 호흡과 성대를 더 많이 이용할 수 있어서 비로소 말하기와 웃기가 가능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다리로 땅을 딛고 곧바로 서고 또 걷는다는 것이 다른 동물들이 받지 못하는 신의 은총임을 깨달은 것은 1973년 척추디스크로 직립을 거부당하고 방바닥에 등을 눕혀 살아가는 비인생활을 반 년 넘게 하고나서였습니다. 수술이 잘 되어 3년 만에 지리산을 다시 올랐습니다. 집사람과 함께 오른 지리산에서  1박2일간 직립보행을 하며 그동안 잊고 지냈던 말과 웃음을 되살렸습니다. 그 때 되살린 젊은 날의 말과 웃음을 또 다시 1박2일간 저 혼자서 직립보행을 하며 이번에는 안으로 깊숙이 숨겨놓았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