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구간:오항동고개-백암산-게목재
*산행일자:2007. 3. 22일
*소재지 :충남금산/전북진안
*산높이 :인대산662미터/백암산654미터
*산행코스:오항동고개-인월산-백령고개-백암산-게목재
*산행시간:10시20분-18시40분(8시간20분)
*동행 :나홀로
껍질을 벗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인가 아니면 아름다운 것인가?
제가 내린 결론은 모든 생물이 어떤 형식이든 이 과정을 통해 생명을 이어가기에, 껍질을 벗는 것은 더 할 수 없이 고통스럽지만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뱀이 허물을 벗고 알이 부화를 하듯이 동물들이 껍질을 벗어버리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과연 식물세계는 어떠할까 궁금했었는데 어제야 비로소 금남정맥 종주 길에 목질을 감싸온 나뭇가지의 껍질을 벗겨내고 새로운 수피로 껍질갈이를 하는 나무들의 생명행위를 처음으로 목도했습니다. 단단한 목질에 회색의 매끈한 수피를 갖고 있는 이름모르는 나무 옆을 지나다 나뭇가지에 새빨간 무엇인가가 붙어 있어 가까이 가서보니 겨우 내내 가지를 보호해온 나무껍질이었습니다. 새로운 수피에 밀려 한풀 벗겨진 채 가지 끝에 붙어있는 옛 껍질은 그 색상이 새빨개 참으로 신비스러웠습니다. 여름 내내 광합성을 통해 나무에 영양분을 공급해온 푸르른 나뭇잎들이 겨울이 오면 엽록소가 사라져 더 이상 광합성을 하지 못하고 그래서 영양분을 새롭게 만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겨우 내내 나무에 남아 있는 영양분만 축낼 것이 뻔하다는 이유로 떼밀림을 당하는 나뭇잎과 그 종말이 너무나도 닮아 보였습니다. 푸르렀던 나뭇잎이 온몸을 불살라 가을 산을 새빨갛게 물들인 후에 가지에서 밀려났듯이, 겨우 내내 목질을 지켜온 나무껍질도 새빨갛게 달궈진 채 새 수피에 의해 벗겨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빨간 색상은 고통스러운 선혈의 색상이었으며, 수명을 연장해가는 아름다운 생명의 색상이었습니다. 사람들도 새빨갛게 변화하는 저 나뭇잎이나 껍질처럼 장엄하고 숭고하게 대물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 10시20분 오항동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이번 산행은 하루에 버스가 몇 대 밖에 다니지 않아 시간 맞추기가 대단히 힘든 벽촌의 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하고 마쳐야하기에 아예 중간지점인 게목재에서 하산해 하루를 민박하고 이튿날 다시 올라 운장산 아랫목의 피암목재까지 산행을 이어가기로 계획을 세운 터라 아침시간이 조금은 여유가 있었습니다. 9시30분에 대전시내 서부터미널을 출발하는 대둔산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진산에서 하차, 택시로 바꿔 타 15-6분 후에 오항동고개마루에 도착했습니다. 산행채비를 마친 후 채석장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길을 3-4분간 따라 오르다가 산길로 들어서 가파른 길을 치고 올라선 헬기장의 높이가 해발480미터이니까 26분 동안 수직으로 고도를 150미터 가량 높인 셈인데 진땀이 나고 숨이 찼습니다. 산불감시초소가 들어선 헬기장에서 북쪽 대둔산의 암릉 길을 조망한 후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시멘트길 안부로 내려서다가 지도에도 없는 삼각점을 지났습니다.
12시1분 해발 662미터의 인대산에 올라섰습니다.
시멘트길 안부에서 다시 능선을 타고 500봉에 오르기까지 다소 경사가 급했으나 560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밋밋한데다 낙엽이 길을 덮어 힘든 줄 모르고 걸었습니다. 잡목 숲길을 지나 560봉에 다다른 후 왼쪽으로 내려섰다 다시 올라 헬기장의 600봉에 이르자 인대산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고 남쪽 멀리 운장산이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구름이 걷히자 머리 위를 쪼이는 한낮의 햇살이 따갑게 느껴졌습니다. 헬기장에서 된비알을 올라 시멘트길 안부출발 1시간 만에 정맥 길에서 약간 떨어진 인대산 정상에 섰습니다. 사과를 까먹으며 10분을 쉬면서 지도를 정독해 갈 길을 확인한 후 갈림길로 되돌아가 낙엽이 깔린 급경사 길을 내려서느라 엉덩방아를 찧었습니다. 철쭉군락지를 지나 인대산 출발 반시간이 되어 헬기장을 만났습니다.
13시1분 622.7봉에 올라 삼각점을 확인한 후 점심을 들면서 16분을 쉬었습니다.
헬기장에서 가파르게 올라선 무명봉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평평한 낙엽 길을 걸으며 잠시나마 시간을 잊고 평화로움 속에 빠져든 저를 흔들어 깨운 것은 노랑나비의 출현이었습니다. 이달 초하룻날 금남정맥 종주 길에 만난 진달래꽃을 시샘하듯 많은 눈을 동반한 꽃샘추위에 밀려 한참동안 숨을 죽였던 봄이 다시 기지개를 펴 이 산길에 노랑나비 한 마리를 불러들였나 봅니다. 노랑나비가 활짝 연 봄 길에서 새로운 수피에 대물림을 해주고 가지에 붙어 있는 새빨간 나무껍질을 보면서 저러한 탈바꿈이 마냥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낮과 밤이 하루를 똑 같이 양분하는 춘분이 불러들인 노랑나비에 화답하는 생강나무의 꽃들도 나비와 똑 같은 노랑색이어서 얼마간은 노랑색 패미리들이 연분홍 진달래와 자웅을 겨루며 이 산을 물들일 것으로 보였습니다. 622.7봉에서 왼쪽으로 진행한지 얼마 안 되어 다다른 삼거리에서 곧바른 능선 길을 버리고 오른 쪽 길로 내려서서 정맥길을 제대로 이어갔습니다. 무명봉 2봉을 올라 급경사 길로 내려서는 중 이번에도 노랑색패밀리인 양지꽃을 만났습니다. 양지바른 곳을 귀신같이 기억해내 앙증맞은 순노랑 꽃을 피우는 양지꽃과의 첫 인사가 이제까지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습니다. 무명묘 몇 기를 지나 오른 쪽 아래로 굽이굽이 시골길이 보이는 서사면이 천애절벽인 전망바위(473봉?)에 오르자 다시 북서쪽으로 대둔산이 희미하게 보였고 남쪽으로 차도가 보였습니다.
14시48분 635번도로가 지나는 백령고개에 도착해 10분을 쉬었습니다.
473봉 전망바위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된비알 길을 올라 440봉을 넘고 이동통신 중계기를 지나 백령고개로 내려섰습니다. 고개마루와 백령정을 사진 찍은 후 간이매점에 들러 커피 한잔을 사들면서 왼쪽으로 높이 보이는 고산이 서대산이 아니고 진악산임을 확인했습니다. 이 일대에서 암약했던 공비들을 토벌하느라 희생된 분들을 기리고자 세운 육백고지전승탑이 같은 민족끼리 싸우는 내전의 참혹함을 다시금 일깨워주었습니다. 부인과 함께 백암산을 둘러온다는 한 분이 자신도 금남정맥을 종주 중이라며 게목재까지 4시간은 실히 걸릴 것이라고 알려주어 서둘러 백령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전승탑과 남아 있는 백령성 성곽을 거쳐 헬기장에 이르고부터 된비알의 산 오름이 반시간가까이 계속됐습니다. 200미터가량 수직고도를 높여 서암산 분기점에 올라 오른 편의 소나무 아래서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16시18분 해발654미터의 백암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서암산분기점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확 틀어 높낮이가 별로 나지 않는 암릉길을 걸었습니다. 독수리머리를 닮은 독수리봉에 자리한 소나무를 카메라에 담은 후 백암산으로 향했습니다. 암릉길을 따라 얼마고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 헬기장에 도착했고 다시 올라 육백고지로 불리는 백암산에 올랐습니다. 암봉인 정상주위에는 잡목들이 들어섰는데 “백암산”이라고 쓰여 있는 스텐레스 판이 잡목가지에 걸려있었고 육백고지정상임을 알려주는 남이의용소방대의 안내판(3)이 서 있었습니다. 백암산에서 내려섰다가 다시 6번째 헬기장을 올라섰습니다. 며칠 전에 동창들과 함께 오른 한북천마지맥에 헬기장을 많이 만든 것은 한수 이북의 휴전선과 가까운 지역이기 때문이겠는데, 여기 금강 이남의 금남정맥 길에 헬기장이 이렇게 많이 들어선 것은 무슨 연유인지 궁금했습니다.
17시42분 삼각점이 서있는 713.5봉에 올라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마지막 헬기장을 16시34분에 출발해 안내판(4)를 지나고 무명봉을 넘어 허리 차는 칼바위를 옆으로 돌아 묘지가 들어선 한 봉우리에 올라섰습니다.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한 정맥길 묘지의 공통점은 후손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봉분이 무너지고 잔디가 사라진 점인데 조상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고 후손들은 욕을 먹을지 몰라도 몇 십 년 후에는 묘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자연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어찌 보면 가장 환경친화적인 묘지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몇 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 안내판(5)에 다다르는 데 헬기장을 출발해 반시간이 넘겨 걸렸습니다. 다시 반시간 이상을 더 걸어 삼각점이 세워진 713.5봉에 오르기까지 오름길이 계속되어 모처럼 지쳤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나무가 들어선 짧은 암릉길은 아름다웠지만 얼굴을 때리는 산 죽 길은 마지막 오름새의 길이어서 더 했는지 몰라도 짜증이 나고 힘들었습니다. 지난 주 한 젊은이가 목청 높여 불렀던 정맥길 서쪽의 592봉을 지나는 산줄기가 충남과 전북을 가르며 남쪽으로 내달아 이 곳 713.5봉에서 다시 만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앞으로 1시간이면 무릉리 민박집에 충분히 도착할 것이고, 그렇다면 각오한 야간산행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비로소 마음이 놓여 10분을 쉬었습니다.
18시16분 게목재에 도착해 종주산행을 마치고 왼쪽의 무릉리로 하산했습니다.
713.5봉에서 충남금산군과 전북진안군 및 완주군등 3개 군이 만나는 720봉에 이르는 길이 그다지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아 많이 지쳤어도 걸을 만해 잠시 멈춰서서 서산을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을 카메라에 옮겨 담아왔습니다. 720봉에 올라 오른 쪽 능선을 타고 안부로 내려서자 민박집 무릉원의 전화번호가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이 고개가 게목재임을 알았습니다. 게목재에서 금남정맥의 8번째 구간 종주를 마치고 왼쪽 길로 내려섰습니다. 무릉원에서 매달아 놓은 표지기의 도움으로 어둡기 전에 산속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했습니다. 잣나무와 산죽이 어우러진 길을 지나 첫 번째 만난 작은 웅덩이에 물이 가득 차 아담스럽게 보였습니다.
18시38분 무릉원민박집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커다란 한옥 뒤뜰에 가지런히 들어선 크고 작은 독들을 보고 이 집의 살림규모가 보통이 아니겠다 싶었는데 이집이 바로 제가 하룻밤을 묵을 민박집 무릉원의 본채였습니다. 산 본 집을 갔다가 다시 내려와 종주산행을 이어가는 것보다 여기 무릉리에서 민박하는 편이 돈도 적게 들고 오가는 수고도 덜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 며칠 전에 전화로 예약을 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 것은 경제적인 제 판단이 옳은데다 주인장 내외분의 친절과 황토방의 뜨듯한 구들장이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저보다 두해 연배이신 바깥 분은 여기서 멀지 않은 충북 금산이 고향인데 서울서 생활을 하다가 13년 전에 이 마을로 와 정착하여 산림을 가꾸고 흑염소를 키우며 또 한편으로 쉬고 가고자하는 손님들을 맞는다 합니다. 이 분 또한 산을 좋아해 정맥을 종주하는 분들에 도움을 드리고자 게목재에 이르는 길에 표지기를 달아 놓고 게목재에 안내판을, 780봉에 신선봉안내판을 세워놓았다 합니다.
도시에서 사라진 별들이 모두 이곳 하늘에 모여 밤의 향연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초롱초롱 빛을 내며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은 그들 나름대로 고유의 별자리가 있어 대지의 주인들과 교감을 나누어왔는데 사람들의 탐욕이 부른 공해가 별자리를 가리는 바람에 우리의 일상에서 별들이 사라진지 꽤 오래된 것 같습니다. 우리 가슴 속이 이토록 황량한 것도 별과 함께 했던 동심이 같이 사라졌고 동화도 같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스모그에 별들이 가려진 밤하늘을 혼자 지켜낸 도시의 혼탁한 밤이 생각나서인지 때마침 떠오른 반달이 저보다 더 별들을 반가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름모르는 나무가 옛 껍질을 벗어내고 새 껍질로 갈이를 하며 생명을 지켜내듯이 한시 빨리 하늘을 뒤덮은 희뿌연 매연을 걷어내야 밤하늘도 건강히 별들과 사람들을 지켜낼 것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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