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구간:피암목재-운장산서봉-연석산
*산행일자:2007. 4. 1일
*소재지 :전북진안/완주
*산높이 :운장산1,126미터/서봉1,123미터/연석산925미터
*산행코스:외처사동-피암목재-활목재-서봉-운장산
-서봉-늦은목재-연석산-연동계곡-연동마을
*산행시간:12시37분-17시47분(5시간10분)
*동행 :나홀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통제되지 않는 광란으로 4년 만의 운장산 산행이 짜증스러웠습니다.
금남정맥 종주 길에 마루금에서 동쪽으로 500미터 비껴서있어 전북의 명소 운일암 반일암 계곡에 물을 대는 운장산을 우정 들러 올랐어도 다른 분들이 보았다는 진안의 마이산은 뒤통수조차 보지 못했고 맑은 날이라면 손안에 잡힐 듯한 지척의 동봉도 흐릿해 제대로 눈인사를 나눌 수 없었습니다. 봄이 오면 어김없이 한반도를 내습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 황사가 중국의 경제발전과 궤를 같이 하며 해마다 극성을 더해가고 있습니다. 1970년대만 해도 황사는 미세먼지가 호흡기질환을 일으키고 아프로톡신이라는 발암물질이 들어 있어 해롭기는 하나 이 땅의 산성화를 막아주는 고마운 면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는데, 요즈음은 중국의 굴뚝경제가 내버리는 온갖 중금속의 미세가루가 잔뜩 들어있어 오랫동안 마시면 심장질환까지 일으켜 사람 몸에 극히 해로울 뿐만 아니라 정밀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에도 치명타를 입혀 백해무익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황사특보가 발동된 상태에서 얌전히 집안에 들어 있지 못하고 고집 쓰고 운장산을 올랐으니 밤에 목구멍이 칼칼해진 정도를 갖고 불평할 일은 못되지만 희뿌연 배경으로 볼품없어진 사진을 보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광란에 심히 짜증이 났습니다.
주천을 출발한 시내버스가 운일암반일암을 거쳐 열흘 전에 내려와서 묵었던 무릉리를 들러 외처사동에 도착한 시각은 주천 출발 28분 후인 12시시38분으로 버스는 내처사동으로 들어가고 저는 정맥 종주 출발점인 피암목재로 향해 아스팔트 차도를 따라 부지런히 걸어 올랐습니다.
12시57분 진안군과 완주군을 가르는 피암목재에서 정맥종주를 시작했습니다.
황사주의보가 발동되어서인지 일요일인데도 피암목재에 주차한 차들이 몇 대 안됐습니다. 주차장 남쪽 끝에 설치해 놓은 계단길 들머리를 지나 가파른 길을 계속 오르는 중 연분홍의 진달래꽃과 샛노란 생강나무 꽃을 만나 반갑게 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잎이 돋아나기 전에 꽃을 피우는 봄꽃들은 황사가 불러온 미세한 중금속 가루에 온몸이 노출되어도 다른 꽃들처럼 잎의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어 화무십일홍의 열흘을 다 채우기가 꽤나 힘들 것 같았습니다. 피암목재에서 22분을 걸어 구릉같은 무명봉에 올라서기까지 경사가 가팔라 힘들었습니다. 무명봉에서 왼쪽으로 난 능선 길은 초반에는 경사가 완만한 흙길이어서 한껏 편안했는데 얼마 후 진달래꽃을 다시 만나 사진을 찍고 나서부터는 돌가닥 길과 암릉 길이 840봉 암봉까지 계속됐습니다.
14시6분 안부삼거리인 활목재에 다다라 김밥을 들면서 15분을 쉬었습니다.
날씨만 좋다면 더할 수 없는 전망대였을 840봉에 올랐어도 희뿌연 황사로 운장산 정상은 물론 가까이에 있는 서봉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답답했지만 그래도 왼쪽 아래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시원스레 잘 들렸습니다. 840봉에서 조금 내려섰다가 작은 소나무들이 들어선 암릉길을 거쳐 산죽 길과 낙엽 길을 차례로 지나 소나무가 서있는 880봉 암봉에 올랐습니다. 880봉에 올라 숨을 돌리는 한 젊은 여성분에 소나무가 외롭게 서있는 암봉 사진을 찍겠으니 잠시 자리를 비켜 주십사하고 부탁드리기가 뭣해 아무 말도 않고 사진을 찍었는데 그 여성분도 함께 렌즈에 잡혀 본의 아니게 도둑사진을 찍은 결과가 되어버려 죄송했습니다. 880봉 출발 4-5분 후 비탈길을 따라 내려선 묘지 옆의 삼거리 안부가 바로 4년 전에 서봉에서 연석산 가는 길을 잘 못 들어 내려섰다가 되돌아 간 눈에 익은 활목재여서 반가웠습니다. 묘지가 들어선 활목재에서 왼쪽의 갈림길은 운장산유스호스텔로 내려서는 길 같고 마루금은 산죽을 베어내고 낸 서봉으로 오르는 직등 길로 이어졌습니다.
15시12분 해발 1,126미터의 운장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활목재에서 13분을 걸어 넙적 바위에 오르자 서봉을 오른 쪽으로 크게 에돌아 연석산으로 가는 길과 합류하는 갈림길이 나 있었습니다. 질펀한 흙길을 따라 걷느라 서봉 왼쪽 아래 고개 목에 오르자 그새 바지가랑이가 흙 범벅이 되어버렸습니다. 서봉 고개 목에서 정맥 길을 벗어나서 20분을 동진했습니다. 운장산 정상에 도착해 사방을 휘둘러봤어도 동봉과 서봉만 흐릿하게 보였을 뿐 먼저 오른 분들이 보았다는 마이산은 황사 속에 몸을 숨기고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지척의 동봉까지 마저 올라 삼형제봉을 모두 밟고 싶었지만 연석사 앞길에서 전주로 가는 저녁 6시차를 타야했기에 삼각점 앞에 배낭을 세워놓고 후다닥 사진을 박은 후 서둘러 정상을 떴습니다.
16시 정각 산죽이 무성한 삼거리안부에 도착해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나무의자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정상을 출발한지 15분이 조금 넘어 정맥 길로 되돌아왔습니다. 되돌아온 서봉의 암봉에는 정상에도 없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대신 삼각점이 없어 정상봉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칫 모자를 날릴 뻔한 강풍이 서봉에서 사과를 까먹으며 오래 쉬고자 했던 저를 연석산가는 길로 밀어냈습니다. 서봉을 내려서서 삼거리안부에 다다르기까지 내림 길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험로였습니다. 몇 곳의 바위 길에 줄이 늘어져 있어 크게 도움이 되었는데 한 겨울에 눈길을 헤치며 내려왔을 선등자분들에는 쉽지 않은 길이었겠다 싶었습니다.
16시47분 해발 925미터의 연석산을 올랐습니다.
산죽 길 삼거리안부에서 조금 올라서서부터 이어지는 정맥 길은 서봉에서 안부로 내려서는 동안 치렀던 수고에 보답하고도 남을 만큼 부드러운 길이어서 이 길을 걸으며 잃었던 여유를 되찾았습니다. 지나온 삼거리안부에서 다음 안부인 늦은목까지 대략 중간쯤에 위치한 평평한 암릉 위에 소나무 서너 그루가 왼쪽 아래 천길 낭떠러지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서있는 모습이 너무도 의연해보여 카메라에 옮겨 담아 왔습니다. 880봉과 854봉을 차례로 지나 서봉 출발 1시간이 채 못 되어 왼쪽으로 궁항리길이 갈리는 늦은목에 도착해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늦은 목에서 연석산으로 오르는 20분 동안이 마지막으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가파른 길을 올라 큰 바위를 지나자 까마귀 몇 마리가 까옥까옥 울어대며 저를 반겼습니다. 큰 바위를 지나고 나서는 경사가 조금 완만해져 오를 만 했습니다. 정상에 올라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았지만 아무래도 황사가 이 산에서 하룻밤을 묵을 듯이 진을 치고 있어 서봉과 운장산의 모습이 선명하지 못했습니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2백m를 진행하다가 남진하는 마루금과 헤어지고 오른 쪽으로 꺾어 연동 길로 들어섰습니다.
17시47분 연동마을에 도착해 한나절 산행을 마감했습니다.
연석산 정상에서 연동마을까지 하산 길이 2.5Km여서 저녁6시에 연동마을을 지나는 버스를 타는 데는 문제없겠다 싶었지만 긴장을 풀지 않고 부지런히 하산했습니다. 정맥 길에서 벗어나 연동계곡을 만나기까지 약 반시간 동안의 하산 길이 경사가 급했습니다. 진달래꽃이 더러 눈에 띈 것을 빼 놓고는 아직은 이렇다하게 봄 색깔을 찾아 볼 수 없는 고산에서 얼음장 밑으로 숨을 죽이며 소리 없이 흘렀던 계곡 물만은 겨울의 잔재를 다 털어버리고 완전히 봄을 찾은 듯 그 소리가 웅장하고 힘찼습니다. 바윗장을 에돌며 밑으로 떨어져 소를 만드는 크고 작은 폭포가 하얀 포말을 만드는 모습도 능선 길만을 오르내리는 종주등반에서 볼 수 없는 진풍경이었습니다. 합수점을 지나 만난 산객 한 분이 왜 혼자 내려오느냐고 묻기에 혼자 산을 와서 혼자 내려온다고 답을 하자 알겠다는 듯이 더 이상 물어오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현문에 우답이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징검다리를 건너 계곡과 헤어지고 넓은 임도로 들어서자 4년 전 이 길을 함께 걸은 한 분이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온 황대권 님의 수필집 “야생초 편지”가 생각났습니다. 시국사건으로 수감생활을 하면서 애정을 쏟았던 야생초에 관한 이야기들을 실은 이 책이 저로 하여금 들풀들에 더욱 관심을 갖게 했습니다.
연석가든 앞에서 기다리는 버스가 이곳을 지나는 시각이 저녁 6시가 아니고 6시 반이라고 해 맥빠져하는 저에게 전북토요산악회의 카페지기를 한다는 젊은 분이 차를 타라고 권해왔습니다. 종주산행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면 몸에서 땀 냄새가 진동해 제가 먼저 동승을 부탁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도 차를 멈추고 어서 타라고 하는 고마운 분들을 여러분 만났습니다. 배낭을 메고 터벅터벅 걷는 제 앞에 차를 세우고 동승을 권하는 사람들은 열이면 열 모두 다가 산을 좋아하는 산객 분들이었습니다. 이래서 공자께서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광란의 황사가 이 땅에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냉대를 받듯이 산을 오른답시고 조금이라도 이 산을 괴롭힌다면 저 역시 황사처럼 이 산하로부터 배척을 당할 것입니다. 어진 이들이 산을 좋아한다는 것은 분명 참이지만 퇴계 이 황 선생께서 산을 좀 오른다고 어진 척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듯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어질다는 명제도 참이 되기 위해서는 이분처럼 어질음을 몸소 실천해야 할 것 같았고, 이제껏 그리하지 못한 제가 새삼 부끄러웠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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