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호남정맥 종주기

호남정맥 종주기 22 (입석리고개-만덕산-성림청소년수련원갈림길)

시인마뇽 2008. 3. 18. 11:49
                                 호남정맥 종주기 22


         *정맥구간:입석리고개-만덕산-성림청소년수련원갈림길

         *산행일자:2008. 3. 13일(목)

         *소재지  :전남담양/곡성

         *산높이  :만덕산575m, 연산505m, 무이산305m, 수양산593m

         *산행코스:입석리고개-수양산-만덕산-방아재-연산-과치재

                   -무이산-성림청소년수련원갈림길-성림청소년수련원 앞

         *산행시간:7시16분-15시4분(7시간48분)

         *동행    :나홀로 

 


  시작이 반아라는데 이번에는 정말 반을 해냈습니다.

작년 5월 전남 광양의 외망에서 호남기맥에 발을 들인 후 백운산에서 시작되는 호남정맥의 중간지점을 지나기까지 모두 22번을 출산했습니다. 웬만한 종주꾼들은 이 정도 횟수라면 이미 완주를 했을 터인데  제 걸음이 워낙 느려 구간을 짧게 잡는 통에 이제야 겨우 호남정맥의 반을 마친 셈입니다. 물론 중간지점이 광양의 백운산과 전주의 주즐산까지의 호남정맥에 전북 장수의 영취산에 이르는 금남호남정맥의 거리를 합한 것의 반이 되는 지점이기에 호남정맥 종주는 앞으로 15회 정도 더 출산하면 끝낼 수 있을 것 같고 이에 4회를 더하면 금남호남정맥 종주도 같이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엄격히 말한다면 외망-백운산의 호남기맥과 백운산-주즐산의 호남정맥 그리고 주즐산-영취산의 금남호남정맥을 모두 이은 산줄기의 중간지점은 벌써 지났다함이 맞을 것입니다. 그래도 백운산에서 도상거리로 231Km를 걸어 다다른 북위35도12분57.3초와 동경127도4분5.9초의 지점에 세워 놓은 “호남정맥 중간지점”의 스텐리스 안내판 앞에 서자 이제는 다했다 싶어 긴장이 조금은 풀렸습니다. 여기 중간지점 통과에 의미를 부여한 종주 꾼은 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비실이부부님, 강성원우유의 종주꾼님, 대정산악회 회원님, 배창랑과 그의 일행님들을 위시한 수많은 분들이 여기에 표지기를 걸어놓아 중간지점 통과를 자축한 듯 했습니다.


  힘든 일일 수록 반을 마치고나면 어떻게 해서든 나머지 반을 마저 해 완결을 보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의 마라토너들이 일단 반환점을 돌고나면 어떻게 해서라도 완주하려고 하듯이 저 또한 반을 마치기 전에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일단 반을 끝내고 나서 그만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어떤 일이든 우선 성공적으로 반을 마치겠다는 1차 목표를 세우고 추진해왔습니다. 내용이 난해하고 두꺼운 책들을 독파하는 일도 제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매주 책 한권은 읽어 텅 빈 머릿속을 채워 온 저는 종종 두껍고 난해한 책을 사 완독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이 책의 반을 읽기까지 접었다 펴기를 수도 없이 하지만 설사 내용이 제대로 이해가 안 되더라도 반을 읽기까지는 꾹 참고 읽어나갑니다. 일단 반을 넘기면 이미 읽어온 쪽수와 남은 분량의 쪽수를 비교해가며 이제는 거의 다 읽었으니 힘내라고 저 스스로를 독려하곤 합니다. 어떤 때는 정독을 해서 책의 내용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다 읽어치우는데 목표를 두기에 제 독서습관은 결코 좋은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남에게 권할 만큼 자랑스러운 읽기습관이 절대로 못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좋은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곰처럼 읽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작이 반이다”라는 금언보다 “반을 해야 다 할 수 있다”는 한마디를 더 신뢰하는 편입니다. 이러한 제게 이번에 호남정맥의 중간지점을 지난 것은 충분히 자축할 만한 일이어서 이렇게 그 기쁨을 산행기에 담아 보았습니다. 


  아침7시16분 입석리고개를 출발했습니다.

담양의 한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아침 6시 반에 담양정류장에서 33번 군내버스를 탔습니다. 30분 걸려 다다른 대덕의 아침거리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입석리고개까지 5천원을 들여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입석리고개에서 느티나무 거목들 옆으로 난 넓은 길을 2-3분 따라가다가 왼쪽 묘지로 들어서 산 오름을 시작해 반시간 가까이 치켜 오르는 중 며늘아기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일단 들머리에 들어서면 하산해서 요긴하게 쓸 수 있도록 바테리 소모를 막고자 전화를 꺼놓는데 이번에는 전날 밤 받지 못한 며늘아기의 전화내용이 궁금해 계속 켜 놓아 산행 중에 전화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이달부터 대학병원에서 방사선 전문의로 일하기 시작한 며늘아기가 직계존속인 제가 병원으로부터 각종 혜택을 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고자 전화를 걸어와 고마웠습니다. 병원신세를 지지 않고자 매주 이틀은 산을 올라서인지 아직은 제 몸 어디에도 아픈 구석이 나타나지 않아 건강에 관한 한 아들 며느리에 큰소리 칠 수 있지만 누구도 사람 앞일을 다 알지 못하는 바라 며늘아기의 보살핌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능선 갈림길에서 12분을 더 걸어올라 7시56분에 해발 593m의 수양산을 올랐지만 나무들이 시야를 가려 전망이 신통치 못했습니다.


  8시36분 호남정맥 중간지점을 통과했습니다.

수양산에서 갈림길로 다시 돌아와 호남정맥에 복귀했습니다. 담양읍내에는 이른 아침 문을 여는 밥집이 없어 전날 밤 준비한 떡과 바나나로 아침요기를 한 후 8시20분에 갈림길에서 일어나 북동쪽 아래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차들이 다닐만한 넓은 임도를 건너 둔덕에 올라선 다음 오른 쪽으로 꺾어 얼마간 걸어 스텐리스 표지봉이 세워진 중간지점에 다다랐습니다. 배낭을 표지봉 옆에 내려놓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오른 쪽 아래 임도와 나란한 방향으로  직진하여 다시 임도를 만났습니다. 임도를 건너 직진해 오르다 좌 사면이 벌목지인 능선 길을 따라 걸어 윗부분이 잘려나가고 밑동만 남은 소나무들이 삼각점을 빙 둘러싸고 있는 450.9봉에 도착한 시각이 8시56분이었습니다.


  먼저 호남정맥의 중간지점을 지난 많은 분들의 표지기를 보자 앞서 이 정맥에 길을 낸 많은 분들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길은 소통의 통로입니다. 먼저 용감하고 호기심이 많은 분들이 길을 내면 많은 사람들이 이 길로 소통을 합니다. 뒤이어 이 길을 통해 문물이 유통되고 문화가 소통됩니다. 사유림이라하여 철조망을 쳐놓고 길을 막는 것은 바로 모든 소통을 막는 것이기에 함부로 자행되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여암 신경준 선생께서 길은 그 길을 걷는 사람이 주인라고 갈파한 것도 땅은 임자가 따로 있어도 땅위에 낸 길의 임자는 땅주인이 아니고 그 길을 트고 닦으며 걷는 사람들이 주인임을 강조한 것으로 이리하지 않는다면 이런저런 소통이 막혀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썩어문드러지게 될 것을 염려해서였을 것입니다. 소통의 길은 끝이 없기에 기실 반도 중간지점이 있을 수 없습니다만, 무한히 계속되는 세월을 잘게 토막 내 달력을 만들면 언제 한 해의 반이 지남을 알 수 있듯이 끝없이 이어지는 산줄기도 지도를 만들어 선을 그으면 양끝지점의 중간지점이 어디인지 알 수 있기에 이처럼 감격하며 호남정맥 중간지점을 지날 수 있다는 생각이어서 고산 김정호선생에도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자 합니다.


  9시50분 해발 575m의 만덕산을 올랐습니다.

450.9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진행하다 다시 임도를 건너 직진해 석성(?)의 잔해가 보이는 무명봉에 올랐습니다. 이봉우리에서 왼쪽 안부로 내려서자 운암리길이 왼쪽 아래로 갈렸습니다. 직진해 얼마큼 올라 신선바위를 지났고 조금 후 전망바위에 다다라 왼쪽 아래 운암리 마을 전경을 사진으로 담아 왔습니다. 좌 사면이 급전직하 절벽인 능선 길을 걸어올라 “만덕산할미봉”의 표지석이 세워진 정상에 올라서자 바로 아래 묘지가 들어섰고 시야가 탁 트여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이번 산행 중에 지나야 할 호남고속도로가 좌우로 뻗어나가고 지나온 능선 길 아래로 깎아지른 절벽이 아찔해 보였습니다. 다시 “문재고개입구/정상할머니바위/등산로입구”의 이정표가 세워진 삼거리로 돌아가 억새밭을 지난 후 능선 따라 북동쪽으로 하산하다가 가파른 길을 걸어 500봉에 올랐습니다.


  11시 정각 방아재를 지났습니다.

500봉에서 오른 쪽으로 난 급경사 길을 걸어 내려가 만난 임도길이 방아재인 것 같아 상당히 빨리 내려왔다 했는데 지도를 꺼내보고 방아재는 앞에 보이는 390봉을 넘어야 다다를 수 있는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개 마루임을 알고 나자 맥이 풀렸습니다. 임도길  고개 마루에서 오른 쪽으로 조금 내려가 왼쪽 위 묘지로 올라섰다가 길이 끊겨 소나무 숲 사이로 길을 내며 40-50m를 왼쪽으로 이동해 다시 정맥 길로 들어서느라 초입에서부터 진이 빠져 390봉을 오르는데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큼직한 자갈이 듬성듬성 박힌 역암의 큰 바위를 지나 묘지가 들어선 390봉에 오르는 동안 전망 좋은 곳에서 숨을 돌리며 오른 쪽 아래 저수지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방아재에서 포장도로를 건너 대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빠져나오자 더위가 느껴졌습니다. 방아재에서 연봉에 오르기까지 40분간이 힘들었던 것은 방아재에서 쉬지를 못한데다 연봉 못 미쳐 460봉에 오르는 길의 경사가 아주 급해서였습니다. 고사목 지대와 묘지를 지나 460봉에 오르고 나서는 밋밋한 능선 길이어서 연산까지 가는데 힘든 줄 몰랐습니다. 11시39분에 나무줄기에 “연산”이라 쓰인 표지기를 매놓은 해발505m의 펑퍼짐한 연산 정상에 올라서서 두 다리를 쭉 펴고 14분간 편히 쉬었습니다.


  12시56분 N-C 오일 주유소가 들어선 과치재에 도착했습니다.

연산에서 과치재로 내려서는데 딱 1시간이 걸렸습니다. 11시53분 연산에서 얼마간 내려선 후부터는 한동안 편한 길이 이어졌습니다. 연산 출발 12분 후에 다다른 거암이 독특했던 것은 철의 산화물이 잔뜩 들어있는 시뻘건 바위를 기반암으로 해 그 위에 자갈들이 알알이 박힌 역암(礫岩)이 마치 사람이 들어 올린 것처럼 똑바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이 바위들을 지나 조금 올라섰다가 노간주나무들이 보이는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선 봉우리가 340봉으로 뒤를 돌아보자 힘들게 지나온 길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괘일산과 무이산이 보이는 전망바위를 지나 급하게 내려가다 밤나무 밭에 다다랐습니다. 가을철이었다면 밤을 줍느라 그냥 지나치지 못했을 밤나무 밭을 지나자 호남고속도로에 면한 절개면이 나타났습니다. 절개면 상단에서 오른 쪽으로 배수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이 배수로를 따라 호남고속도로를 지하로 통과했습니다. 허리를 잔뜩 구불이고 배낭을 질질 끌며 통과하는 배수로의 심리적 길이는 실제 길이의 몇 십 배가 넘는 듯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고속도로를 밑으로 통과해 N-C 오일 주유소가 들어선 구도로의 고개 마루인 과치재에 도착했습니다.


  연산을 조금 지나 만난 메주 형상의 바위들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지구의 외핵은 그 안의 내핵이나 밖의 맨틀 또는 지각과는 달리 액체로 되어 있는데 용융된 철(Fe)과 마그네슘(Mg)의 혼합물이 주성분이라 합니다. 지구가 자성을 띄고 있는 것도 외핵 속에 녹아 있는 철 성분 때문입니다. 역암은 바다로 굴러들어온 자갈에 진흙이나 모래가 채워져 굳어진 퇴적암입니다. 철은 지하 2,900Km-5,100Km 깊이의 외핵에 녹아 있고 역암은 바닷가에 퇴적되어 만들어진 바위인데 출신지가 전혀 다른 두 바위가 어떤 연유로 여기 호남정맥의 산줄기에서 만나게 되었는지 자못 궁금했습니다. 필시 산화철을 주성분으로 하는 시뻘건 바위는 화산활동 때 분출되어 식은 것이겠고 역암은 지각변동 시 바다가 융기해 만들어진 것일 텐데  이 두 가지 역경을 모두 견뎌내고 오늘까지 제 모습을 견지해온 우리의 호남정맥이 참으로 장하다 싶었습니다.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줄기가 합쳐진 것을 연리지(連理枝)라 부르며 금슬 좋은 부부에 비유하는 데, 시간과 공간을 전혀 달리하는 두 바위가 이렇게 만난 것은 연리암(連理岩)이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금슬 좋기는 연리지만큼만 해도 연리암(?) 바위의 수명이 연리지 나무에 비할 바가 아니기에 연리암에 마음이 더 가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14시29분 무이산 바로 아래 안부의 성림청소년수련원 분기점에서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과치재에서 240봉에 이르는 오름길은 경사는 그리 급하지 않았지만 햇빛을 가릴 수 없어 조금은 더웠고 길도 지루했습니다. 먼저 오른 한 분이 여기쯤을 지날 때 멧돼지들이 집단으로 꿀꿀거리는 소리를 들어 긴장했었다는 산행기를 본 터라 과치재에서도 쉬지 못한 몸을 이끌고 단숨에 240봉을 오르느라 많이 지쳤고 배도 고파 긴장은 됐지만 이 봉우리에서 짐을 풀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240봉에서 왼쪽으로 내려섰다가 260봉으로 진행하는 동안 누군가가 정성들여 만들어 걸어놓은 이제껏 접하지 못한 색다른 표지물을 보았습니다. 초록색 1개와 노란색 1개 그리고 붉은 색 2개의 바람개비를 한 줄로 엮어 걸어놓은 색색의 표지물로 모양도 아름답고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었습니다. 260봉을 넘어 해발 304m의 무이산을 오르는 길이 마지막으로 급했습니다. 14시18분에 한 소나무에 “무이산”표지기가 걸려 있는 무이산을 올라 잠시 호흡을 고른 후 이내 오른 쪽 아래로 성림청소년수련원으로 길이 갈리는 안부로 내려서 이번 종주산행을 끝냈습니다.


  일단 서흥고개까지 진출할 것인가 문제로 한참을 고심하다 여기 안부에서 멈춘 것은 귀경시간이 너무 늦고 비가 내릴 것 같아서였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그동안 정이 흠뻑 들은 전남 땅을 이번까지 걷고 전북 땅은 다음번에 발을 들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5-6분을 걸어 다다른 성림청소년수련원에 도착한 시각이 15시4분으로 여기에서 하루산행을 접고 택시를 불러 옥과로 이동했습니다. 2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광주행버스가 광천터미널에 도착하기까지 대략 40분이 걸렸습니다. 다음번에 광주에서 옥과를 거쳐 성림청소년수림원으로 가서 정맥종주를 이어가기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고 쉬워 수련원갈림길에서 구간을 끊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데 정말 반을 해냈습니다.

이제 남은 반은 천천히 걷고 찬찬히 여기저기를 들여다보며 마치고자 합니다. 오는 7월에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호남정맥종주를 마무리 지은 후 나머지 반을 마저 해낸 기쁨을 올릴 생각에서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