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호남정맥 종주기

호남정맥 종주기 20 (광일목장위 삼거리-백남정재-유둔재)

시인마뇽 2007. 11. 17.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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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맥구간:광일목장위 삼거리-백남정재-유둔재

           *산행일자:2007. 11. 13일

           *소재지  :전남담양 및 화순/광주

           *산높이  :북산777m

           *산행코스:무등산공원관리사무소...꼬막재...광일목장위 삼거리-북산

                     -백남정재-447.7봉-유둔재...경상리버스정류소

           *산행시간:9시54분-16시44분(총 6시간50분/구간종주4시간25분)

           *동행    :나홀로

 

 (위 사진은 같이 오른 친구가 전날 광일목장위  삼거리부근에서 무등산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무등산공원관리사무소에서 원효사로 올라서는 길에 한 음식점 주인이 된장의 5덕을 칭송하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내걸어 눈길이 갔습니다. 다른 것과 섞여도 고유의 향기와 맛을 잃지 않는 단심(丹心)이 오덕의 첫째요, 오래도록 상하거나 변함이 없는 항심(恒心)이 그 둘째요,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없애면서 본래의 자양은 생선이나 고기보다 못하지 않는 불심(佛心)이 그 셋째라 했습니다. 넷째는 선심(善心)으로 매운 맛과 독한 맛을 중화시켜 자연과 동화되는 것을 말하고 어떤 음식과도 어울리고 자연과 동화되는 화심(和心)이 마지막 덕이라 했습니다.


  마음가짐이 된장의 오덕만 같다면 그 어느 누구라도 1대간 9정맥 종주를 도전해볼 만 하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욕심 내지 않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땅의 등뼈를 한 번은 밟아보겠다는 단심을 갖는 것이 대간과 정맥 종주의 시작입니다. 한번 시작하면 쉽게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하겠다는 변치 않는 항심이 뒷받침되어야 완주가 가능합니다. 음주가무를 즐길 수 있는 기회나 다른 스포츠들이 유혹해 올 때 종주산행이 그 유혹들보다 진정한 달콤함은 절대로 못하지 않다고 믿는 불심도 필요합니다. 욱한 마음과 삐지기 쉬운 성정을 가라앉히고 같이 산행하는 분들에 마음을 쓰는 선심을 갖고 있다면 그는 종주산행의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저처럼 혼자서 종주 길에 나서는 사람들에는 나무와 야생화, 산짐승과 새, 흙과 바위, 바람과 구름 그리고 햇살 등 모든 산식구들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화심이 꼭 필요한 것은 그렇지 않고서는 긴 시간 혼자서 걸으며 엄습해오는 외로움과 두려움을 이겨내기가 정말로 힘들기 때문입니다.


  된장의 오덕은 뭐니 뭐니 해도 발효과정에서 얻어집니다.

발효란 시간을 삭이며 숙성하는 과정으로 슬로우푸드를 만드는 요체입니다. 대간이나 정맥 종주는 어느 한 산을 정해 오르내리고 나면 쉽게 끝나는 점의 산행이 아닙니다. 몇 백 키로가 넘는 장대한 산줄기를 오랜 기간 한 걸음 한걸음씩 옮겨 놓으며 이어가야 하는 선의 산행입니다. 종주하는 산객들에는 선을 이어가는 기나긴 과정이 바로 발효과정입니다. 선을 이어가는 동안 중간에 그만두고자 하는 또 다른 자기와 싸워가며 시간을 삭이고 완성도를 조금씩 높여가는 것이 대간종주이고 정맥종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1대간 9정맥 종주를 모두 마친 분들에게서 된장처럼 깊은 맛과 그윽한 멋을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일하고 또 한편 시간을 삭이며 기다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겠다 싶어서 하는 말입니다.


  1990년대 저와 함께 이 지역 영업을 담당했던 광주의 옛 동료들과 만나 마신 술이 너무 과했는지 아침 6시40분 광천터미널발 원효사행 첫 버스를 못타고 7시50분경에야 1187번 시내버스에 올랐습니다. 터미널에서 1시간 남짓 달려 다다른 종점에서 하차해 인근 원효사를 들러보았습니다.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이절은 6.25전쟁 때 완전 소실되어 그 후 다시 지어서인지 절간 어디에서도 원효대사의 체취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옛날에는 천불전이 있었다 할 만큼 대찰이었을 텐데 지금은 사천문도 보이지 않는 작은 사찰이어서 무등산의 산세를 드러내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일 듯싶었습니다. 거사님들 공덕비와 함께한 부도 자리가 색달랐습니다. 절 길 양옆에 아침햇살을 받아 제 색이 나는 단풍잎들이 발그스름하게 홍조를 띄고 있어 한시도 대웅전을 뜨지 못하고 가부좌를 하고 계시는 부처님께서도 잠시 밖으로 나가셔서 산사에 드리운 만추를 맞이하실 만하다 했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원효사를 찬찬히 둘러본 후 공원관리사무소로 돌아와 산행채비를 했습니다.


  아침9시54분 무등산관리공원사무소를 출발했습니다.

호남정맥 마루금까지는 전날 서둘러 내려온 길을 되짚어 올라가는 것이기에 길은 눈에 익었지만 오름길이어서 1시간을 채 못 걸어 내려온 꼬막재를 오르는데 1시간20분이 걸렸습니다. 길도 넓고 수종도 다양했습니다. 소나무에 이어 참나무가 참 많다 했는데 그 아래로 산죽도 무성했습니다. 뒤이어 편백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길을 걸어올라 첫 번째 쉼터인 오성원에 이르기까지 꼭 1시간이 걸렸습니다. 아침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새들이 우는 소리가 꽤 크게 들렸습니다. 터미널을 출발할 때만 해도 새목이재까지 진출할 생각이었지만, 예정에 없던 원효사 탐방으로 시간이 더 늦어져 2시간이 덜 걸리는 유둔재에서 마치는 것으로 목적지를 바꾸었습니다. 오성원에서 10분을 더 걸어 능선쉼터에 다다르자 정상을 왼쪽으로 완만하게 에도는 우회길이 이어져 이후부터는 한동안 산행이 편안했습니다. 10분후에 도착한 꼬막재의 높이가 640m가 아니고 710m라고 표지기에 적어 넣은 어느 한분에 손을 들어 주고자 하는 것은 능선아래 오성원의 해발고도가 660m로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11시50분 광일목장 위삼거리에서 마루금에 올라 정맥종주를 시작했습니다.

1187번 버스를 꽉 채운 연세 드신 분들은 아마도 원효사 뒤로 난 길을 따라 산책에 나셨는지 우회 길에서 한분도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군부대가 자리해 해발1,187m의 정상을 오르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이 산 높이를 따 번호를 매긴 1187번 버스를 타고 가 원효사 길을 산책하는 것으로 풀고 계시는(?) 노인 분들이 참으로 보기에 좋았습니다. 꼬막재에서 광일목장후면부라는 표지목이 세워진 삼거리에 닿는데 반시간이 조금 못 걸렸습니다. 오름길의 해맑은 단풍잎들은 거의 다 떨어지고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조망을 좋게 해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계단 길을 따라 묘지에 올라 만난 억새들은 시작에 불과했고 왼쪽아래 광일목장으로 갈리는 삼거리에 펼쳐진 억새밭은 하루 만에 다시 보아도 장관이었습니다. 일단 목장후면부삼거리까지 갔다가 들어오지 말라는 목장 안으로 몰래 내려서기가 꺼림직 해 다시 목장 위 삼거리로 되올라와 동쪽 아래로 펼쳐지는 키를 넘는 억새밭으로 내려섰습니다. 전날 밤 술자리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려 별 수 없이 제 머리를 메모리칩으로 또 제 가슴을 감광판으로 삼아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꽃들의 은빛 물결을 마음속에 담아 갔습니다.


  12시18분 해발777m의 북산을 올랐습니다.

억새밭을 지나 흐릿한 길을 따라 목장가까이로 내려서자 고삐 풀린(?) 우공들 몇이서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어 혹시나 저들이 침입자로 오인하고 덤벼들지 않을까 겁이 덜컥 났습니다. 목장 옆 넓은 길을 놔두고 왼쪽으로 내려가 한참을 돌아 안부를 지나서 신선대 가까이에 올라서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제껏 야생동물인 멧돼지와의 커뮤니케이션에도 별 문제가 없었던 제가 길들여진 소를 보고 겁을 집어 먹은 것은 고삐 풀린 소들이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을 어렸을 때 시골에서 여러 번 보았기 때문입니다. 안부에서 북산으로 오르는 길에 쇠똥이 많고 소들이 다닌 길 아닌 길들이 여기 저기 나있어 안개가 잔뜩 끼면 길 찾기에 애를 먹겠다 싶었습니다. 산불감시초소 바로 옆에 세워진 삼각점을 보고 돌탑이 세워진 이 봉우리가 북산 정상임을 확인한 후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2-3m를 내려가 바람이 가려지고 양지바른 곳을 찾아 점심을 들면서 반시간을 쉬었습니다.


  13시48분 경상리와 무동리를 이어주는 십자안부 백남정재를 지났습니다.

점심을 들은 후 모처럼 십 수 분간 맥을 놓고 따사로운 햇살에 몸을 맡겨서인지 전날 밤 과음으로 띵했던 두통이 말끔히 가셨습니다. 15년 전 시월 제가 맡은 호남지역의 대리점 사장 분들 여러분이 타고 있던 여객선이 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유명을 달리했을 때 동분서주 고생한 옛 동료들과 오랜만에 같이한 자리여서 자연 이야기도 길었고 마신 술도 꽤 많았습니다. 그리 힘들게 지켜낸 회사는 두 번이나 다른 회사에 넘어갔고, 저도 10년 전에 그 회사를 그만두고 바쁘게 제 길을 걸어왔는데 여기 광주 사는 두 동료들로부터 저녁대접을 받아 고마웠습니다. 백남정재로 내려서는 길이 의외로 힘들었습니다. 경사가 급한데다 매끈매끈한 새 낙엽이 길을 덮어 엄청 미끄러웠습니다. 엉덩방아를 찧지 않고자 스틱에 의지해 천천히 내려가느라 시간도 많이 걸렸고 팔도 아팠습니다. 억새밭 헬기장을 지나 올라선 소나무밭 능선에서 내려서는 길은 더 미끄러웠습니다. 낙엽만 없다면 30-40분이면 족한 길을 1시간을 다 걸어 백남정재에 다다랐습니다. 십자안부 백남정재는 고개마루에 돌무더기가 쌓여 있고 남북으로 좁은 길나 있어 성황당이 들어선 시골 산길의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14시53분 447.7봉에 올라 삼각점을 확인했습니다.

백남정재에서 430봉으로 올라서기까지 십여 분간 낙엽이 가파른 길을 덮어 진땀을 흘렸습니다. 410봉을 넘어 얼마 후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가다 묘지를 거쳐 갈림길이 희미한 능선사거리를 지났습니다. 몇 분 후 올라선 무명봉에서 5-6분을 쉰 후 왼쪽으로 꺾어 급하게 내려갔습니다. 풀 숲길을 막 내려서 만난 임도를 따라 내려가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진행해 곧바로 송전탑을 지났습니다. 임도 따라 계속 오르다 왼쪽으로 난 산길로 올라서 얼마고 오르자 커다란 묘지가 보였습니다. 한참을 더 걸어 올라선 삼각점의 447.7봉은 시야를 가리는 나무들을 베어내 조망이 그런대로 괜찮았고, 작년5월에 오른 담양의 추월산이 동쪽 가까이에 보여 반가웠습니다. 베어낸 나무들을 치우지 않고 내버려둔 447.7봉에서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도 낙엽 때문에 여전히 미끄러웠습니다.


  16시12분 887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유둔재로 내려서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447.7봉에서 왼쪽 깊숙이 안부로 내려서자 오른 쪽 바로 아래로 파란 지붕들이 보였습니다. 안부사거리를 지나 눈앞의 420봉으로 올라서는 동안 가파른 오름 길 중간 중간에서 몇 번이고 멈춰서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정맥 길은 420봉을 끝까지 오르지 않고 8부 능선쯤에서 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가는데 전망이 어떠할까 궁금해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만, 나무들이 앞을 가려 전망이 별로였습니다. 420봉에서 되돌아와 얼마고 내려서자 잘 조성된 묘지가 보였습니다. 오른 쪽으로 다시 꺾어 887번 도로에 내려서기 직전 옷을 갈아입고 유둔재로 내려섰습니다.  경상리와 가암리를 경계 짓는 고개 마루에서 다음 구간의 들머리를 확인한 후 왼쪽 경상리 쪽으로 내려갔습니다.


  16시44분 경상리버스정류장에 닿아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유둔재 고개마루에서 25분가량 걸어 내려가는 길은 S자형으로 굽이진 길인데다 갓길이 좁아 큰 차가 지날 때는 움찔 했습니다. 17시가 조금 못되어 가암리에서 유둔재를 넘어오는 225번 버스에 오르고 나자 이 고개를 지나는 차편을 몰라 졸였던 마음이 풀렸습니다. 40분 가량 걸려 광천터미널에 도착해 간단히 저녁식사를 하고서도 여유롭게 18시15분발 강남행 고속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이라면 하루에 뛰는 둔병재-장불재-유둔재 구간을 저는 두 번에 나누어 종주한 덕분에 광주의 진산 무등산을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된장만큼 오랫동안 같이 발효과정을 겪은 산 친구와 무등산을 같이 올랐고 저녁때는 직장동료들을 만나 제 인생의 발효기인 1990년대를 되돌아보며 발효주인 맥주를 한껏 마셨습니다. 속이 깊기로는 사람들보다 더 깊어 웬만한 채찍에도 펄쩍 뛰지 않고 눈만 껌벅거리는 우공들을 못 믿어 얼마고 비껴 돌아가는 등 이틀간 무등산 일원을 산행하고 나자 된장의 오덕을 두루 갖춘 산이 바로 무등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 빛고을 광주시가 예향의 도시로 자리매김해 전 세계적 비엔날레를 계속해 열 수 있는 것도 진산인 무등산의 단심, 항심, 불심, 선심과 화심 등 오덕을 이 도시에 옮겨놓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1대간9정맥을 혼자서 종주하는 제가 예향의 도시 빛고을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된장의 오덕을 읊조렸다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흉들을 일은 아니겠다 싶어 버스 안에서 마음 편히 눈을 감았습니다.


  무등산을 같이 오른 이규성교수와 빛고을에서 저녁자리를 만들어준 양방현사장 및 김재을 사장에 감사 하며 종주기를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