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한북정맥 종주기

제 2차 한북정맥 종주기 8(큰넉고개-죽엽산-축석령)

시인마뇽 2008. 4. 22. 23:53
                      한북정맥  8구간


     *정맥구간:큰넉고개-죽엽산-축석령

     *산행일자:2008. 4. 20일(일)

     *소재지  :경기포천/의정부

     *산높이  :죽엽산622m, 노고산366m

     *산행코스:큰넉고개-작은넉고개-죽엽산-비득재-노고산-다름재-민락고개-축석령

     *산행시간:8시52분-16시50분(7시간58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총17명

     (24기 김주홍/김경옥, 김남진/김양미, 서중원, 이명재, 이규성, 백인목, 이기후, 우명길

      29기 정병기/김의정, 유한준, 김정호, 오창환, 김준기 및 초대손님 박현출님)

 


   1995년에 아카데미 상을 휩쓴 영화 포리스트 검프(Forest Gump)는 저능아들이 얼마나 많은 편견과 차별 속에 살고 있는 가를 보여주는 문제작입니다.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밝고  진솔하게 다룬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장면은 톰행크스가 분한 주인공 포리스트 검프의 달리기였습니다. 처음에는 혼자 시작한 달리기가 얼마 후 그를 뒤따르는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 긴 대열을 이루며 달리는 장면이 지금도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저능아 포리스트 검프의 달리기는 처음에는 놀리는 친구들로부터 도망가기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달리기는 희망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포리스트 검프의 단순함과 진솔함이 달리기를 통해 희망으로 승화되어 뒤따르는 모든 사람들에 희망의 메시지를 나눠주었다는 생각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아니더라도 한 저능아의 진솔한 달리기가 멀쩡한 사람들에 저 토록 큰 희망과 감명을 줄 수 있구나 싶어 이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 포리스트 검프에 몇 번이고 박수를 보냈습니다.

  

  지난 해 9월 저희들도 다섯 명이 대성산 남쪽아래 수피령에서 한북정맥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태풍이 몰려온다는 일기예보를 무릅쓰고 수피령을 출발했을 때는 한북천마지맥 종주에 한두 번 참여한 동문들은 모두가 불참해 좀처럼 참여인원이 늘어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작년 5월 지리산을 함께 오른 동기들에 참여를 요청해 하오개에서 시작한 두 번째 구간에 는 14명이 참석해 반짝 한번 늘었지만 광덕고개-국망봉의 세 번째 구간에서 다시 9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저희들의 한북정맥종주가 희망의 메시지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네 번째 구간부터였습니다. 고정멤버가 늘어났고 한명 씩 한명씩 새 식구가 참여해 이번에는 17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수많은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면서 그 때마다 힘이 드는 것을 참아내고 희망을 키워가는 저희들의 모습이 다른 동문들 보기에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17명 모두가 한북정맥을 종주하며 기원하는 것은 같지 않겠지만 희망을 키워가고 희망을 전해주고자 하는 것은 모두 같을 것입니다. 진솔하고 단순한 포리스트 검프의 달리기를 한북정맥종주로 바꿔놓은 것이 저희들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키워갈 희망이 남아 있는 한 저희들의 종주산행은 계속 될 것입니다.

한북정맥 종주가 끝나면 오대산의 두로봉으로 옮겨 한강기맥의 종주산행에 나설 것입니다. 그리고 한발 한 발 옮겨가며 희망을 키우고 또 희망을 나눠줄 것입니다. 수피령에서 시작한 조촐한 희망의 발걸음이 앞으로도 계속 될 수 있도록 종주산행을 통해 몸과 마음도 함께 다져나갈 것입니다. 

 

  아침8시52분 큰넉고개를 출발했습니다.

한북정맥 종주 차 이제껏 타고 다닌 7시30분발 사창행 버스가 내촌에서 정차하지 않는다 하여 7시58분에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하는 버스를 탔습니다. 포천의 내촌에서 하차해 의정부행 버스에 오른 지  십 수분 만에 육사생도참전비가 세워진 큰넉고개에 도착해 한북정맥의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정서 방향으로 진행해 올라선 절개면 상단에서 87번 신도로로 내려서는 길이 없어 왼쪽 아래 공장건물을 지나 중앙분리대가 서있는 꽤 넓은 차도를 횡단했습니다. 산길로 조금 올라가 할미꽃이 고개 숙인 묘지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뒤따라오는 29기 두 후배를 기다렸습니다. 이번에 종주할 큰넉고개-축석령 구간에서 2004년 첫 종주 때 몇 번을 심하게 알바를 해 작년에 이 코스를 종주한 북한산님의 산행기를 복사해왔는데 표지기가 많이 걸려 있고 아직은 나뭇잎이 무성하지 않아 그때보다는 한결 쉬울 것 같았습니다.


  9시50분 작은넉고개를 지났습니다.

묘지를 출발해 서진하다가 얼마 후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남진해야 했는데 그대로 직진해 2004년의 알바가 재현될 뻔 했습니다. 이내 제 길이 아닌 것을 알아챘기에 별 문제 없이 갈림길로 되돌아가 남쪽의 작은넉고개로 내려섰습니다. 작은 넉고개에서 죽엽산 정상까지는 2003년 3월 이규성 회장과 함께 신설을 밟으며 올랐던 길이어서 눈에 많이 익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연초록으로 산색이 바뀌고 여기 저기 봄꽃들이 다소곳하게 피어있어 봄 색깔이 완연한 산길이 완만하게 이어져 일행들 모두가 천상의 길을 걷는 것처럼 환호했습니다. 작은넉고개에서 반시간 가까이 걸어 올라선 무명봉에서 10분 넘게 첫 쉼을 가진 후 10시30분에 자리에서 일어나 종주산행을 이어갔습니다.


  11시40분 해발 622m의 죽엽산을 올랐습니다.

완만한 오름 새는 벌써 끝났고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졌지만 화사한 진달래가 길 안내를 해주어 4년 전 숨 막히는 더위와 싸워가며 올랐을 때처럼 진이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571봉을 넘고 송전탑을 지나 광능시험림으로 들어서자 솎아낼 나무들을 제대로 간벌한 잣나무들이 하늘로 쭉쭉 뻗어 보기에도 시원했습니다. 소삼각점이 세워진 600.6봉을 넘어 헬기장에 다다랐습니다. 헬기장 바로 위 봉우리가 죽엽산의 정상임을 알려준 것은 그 흔한 삼각점이나 표지석이 아니고 누군가가 “죽엽산 600m 포천”이라고 써 놓은 돌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50분간 푹 쉬면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죽엽산의 대표수종인 잣나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나무(Pine)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우리 고유의 소나무는 한반도를 강점한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전 세계에 자기들 나무로 널리 알려 일본적송(Japanese red pine)으로 불린다 합니다.  그래도 잣나무만은 Pinus korai-ensis라는 학명을 갖게 되어 누가 뭐라 해도 우리나라의 소나무임이 확실해져 그나마 다행이다 싶습니다. 노아의 방주를 만드는데 이 나무가 쓰였다 하니 잣나무는 일찍부터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온 셈입니다. 밤나무와 더불어 대표적인 유실수인 잣나무는 높은 곳에 잣이 열려 잣 따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기에 한 때 경기도지사 한 분이 원숭이를 훈련시켜 잣 따기를 시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잣 따기에 투입된 원숭이가 배만 부르면 특별포상도 마다하고 잣 따기를 게을리 해 결국은 중단했다는데 원숭이는 사람들과 달리 금욕이 없어 시작부터 실패가 예상됐던 것입니다. 금욕이 없는 원숭이보다 칭찬과 보너스에 민감한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이 훨씬 용이하기에 인간세계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했을 것입니다.


  12시30분 죽엽산 정상을 출발했습니다.

정상에서 직진하면 2003년 무단출입으로 자인서를 썼던 광릉수목원에 이르게 되는데 정맥 길은 오른 쪽으로 확 꺾여 정 서쪽으로 이어졌습니다. 정상에서 비득재로 내려서는 적송 길을 지나며 감탄한 것은 수피가 불그스레한 적송들이 빽빽이 들어있어서도 그러했지만 저 멀리 도봉산과 북한산의 수려한 산줄기가 분명하게 눈 안에 들어와 반갑고 또 반가워서였습니다. 휴일의 북한산과 도봉산은 수많은 산객들로 먼지가 풀풀 일정도로 붐빌 터인데 먼발치서 바라본 두 산은 600여년 수도 서울을 지켜온 수호 산답게 의젓하고 늠름해 보였습니다. 고도를 낮추자 연초록 나뭇잎들이 산을 덮어 멀지 않아 산 속의 공기를 살균하고 맑게 하는 피톤치드를 발할 것 같았습니다. 적송이 들어선 급경사 길을 내려가 완만한 산길을 걷던 중  움직임이 불편한 토끼 새끼 한 마리를 만나 잔뜩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왔지만 막상 힘들어하는 새끼 토끼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해 미안했습니다.


  13시20분 비득재를 지났습니다.

4년 전보다 고개 마루 양쪽 아래로 더 많은 음식점이 들어서있어 그새 한북정맥을 종주하는 산객들이 많이 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득재 바로 위 그늘에서 15분을 쉰 후 노고산으로 향했습니다. 몇몇 일행들이 해발366m의 노고산 오르기를 해발622m의 죽엽산을 오르는 것 못지않게 힘들어 한 것은 다 내려왔다 했는데 다시 올라가서일 것입니다. 바위위에 홀로 새하얀 꽃을 피운 이팝나무(?)가 제 눈을 끌어 잠시 멈춰 서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14시5분에 송전탑이 들어선 노고산 정상을 올랐습니다. 이 산 산마루에 백제 초기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포곡식 산성인 고모리산성이 들어섰던 것으로 안내판에 적혀 있는데 두 번을 올랐어도 산성을 찾아보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쳤습니다. 정맥 길은 노고산 정상에서 왼쪽으로 90도를 꺾어 내려가는 길로, 그 길로 내려섰다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 지도와 산행기를 보고 틀림없다는 판단이 서기까지 몇 분을 멈칫거리고 나자 이제 몸소 체험한 것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억력이 쇠퇴한 것이 아닌 가 해 씁쓰레 했습니다. 14시58분에 옛날 기억이 생생한 천도교묘지를 지나고서야 잘못된 기억과 제대로 된 지형도와의 소리 없는 싸움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15시51분 98번 도로가 지나는 다름재에 도착했습니다.

노고산에서 로프 줄이 쳐있는 정 서쪽으로 내려가 다다른 임도를 건너 263봉에 다다르기까지 중간에 한 번 쉰 시간을 포함해 50분 남짓 걸렸습니다. 263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천도교공원묘지로 들어서자 비로소 4년 전에 이 길을 지난 기억이 생생하게 났습니다. 묘지를 지나며 바라다 본 왼쪽의 불암산과 수락산, 건너 편 오른 쪽의 사패산과 도봉 산, 그리고 북한산이 더욱 선명하게 보여 이번 산행의 종점인 축석령이 멀지 않구나 했습니다.  공원묘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정맥 길은 군부대 울타리를 따라 왼쪽 옆으로 나 있었습니다. 깊숙한 안부인 군부대 후문을 지나 얼마간 더 울타리 옆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울타리를 벗어나 98번 도로가 지나는 비득재로 내려서자 많이 지친 일행들이 이 고개에서 산행을 접었으면 하는 바람이 역력해 보여 잽싸게 차도를 건너 다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2004년 7월 다름재를 출발해 군부대를 한 바퀴 돈 후 다시 다름재로 가 공원묘지 앞까지 되돌아가는 멍청한 알바를 한 구간이어서 꼬박꼬박 표지기를 확인해가며 진행을 했습니다. 군부대 울타리를 따라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기를 몇 번 반복한 후 이번에는 제 길을 찾아 오른 쪽으로 건물이 보이는 임도로 내려선 시각이 16시22분이었습니다.


  16시50분 의정부와 포천을 경계 짓는 축석령에 도착했습니다.

임도에서 능선으로 다시 올라 오른 쪽 아래로 보이는 차도와 나란한 방향으로 얼마가지 않았다 싶었는데 왼쪽 아래로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차도가 나타나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포유모텔 앞 차도삼거리 바로 위 봉우리에서 직진해 에코브리지를 건넌 후 터널 절개면을 따라 오른 쪽으로 내려가 정맥 길을 이어가는 것이 정도임을 안 것은 오른 쪽 옛길로 내려가 새 도로를 횡단한 후였습니다. 도로 건너 정맥 길로 다시 올라서서 98번 도로와 나란한 방향으로 몇 분을 더 걸어 이번 산행의 종점인 축석령으로 내려섰습니다. 4년 전 저 혼자서 모진 알바로 헤매다가 2시간 37분이 걸린 다름재-축석령 길을 이번에는 17명이 1시간 만에 모두 주파해 성공적으로 8구간 종주를 마쳤습니다.


 의정부의 부대고기 집에서 뒤풀이를 가졌습니다.

장장 8시간을 종주했는데도 더위를 먹어 낙오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온 대원들의 주력이 눈에 띄게 좋아져 점심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졌는데도 예정시간보다 30분을 단축했습니다. 8구간 종주를 아무 탈 없이 끝낸 17명 대원 모두에 축하인사 드립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종주산행에 참여한 29기의 오창환님과 김준기님에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3시간 코스인 줄 알고 같이 했다가 얼떨결에 8시간을 걸은 김준기님은 이번 산행을 통해 자신감이 많이 붙었을 것입니다. 해 가리개 모자를 준비해 나눠준 백인목 동기의 세심한 배려에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포리스트 검프의 달리기는 벌써 끝났지만 저희들의 산줄기 따라 걷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