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한북정맥 종주기

제2차 한북정맥 종주기 6 (노채고개-운악산-47번국도)

시인마뇽 2008. 2. 20. 07:58
                                  한북정맥 종주기 6


               *정맥구간:노채고개-운악산-47번국도

               *산행일자:2008. 2. 17일(일)

               *소재지  :경기포천/가평

               *산높이  :운악산936m, 원통산567m

               *산행코스:노채고개-원통산-운악산-철암재-47번국도

               *산행시간:8시48분-16시37분(7시49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원등 총14명

               (24기김주홍부부, 김남진부부, 백인목, 서중원, 이규성, 이기후, 이명재

                우명길, 29기유한준, 김정호, 정병기 및 그의 지우 박현출님) 

 

 


  지난달에 오르내린 길마봉과 더불어 한북정맥 최고의 난코스로 알려진 운악산의 암릉 구간을 무사히 통과하여 정상에 오른 후 윗봉수리의 47번 국도변으로 하산했습니다. 2004년 여름 고교동창 몇몇이서 한번 종주한 구간이어서 길안내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위험한 암릉 길을 오르내리며 누구 한 사람이라도 만의 하나 다칠까 보아 산행이 다 끝날 까지 가슴 죄었습니다. 이번의 운악산 구간을 끝으로 한북정맥의 나머지 구간들은 더 이상 가슴조일 난코스가 없어 한 걱정 놓게 되었기에 저도 이제부터는 다른 일행들처럼 종주산행 중에 한 번 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볼 생각입니다.


  이번 한북정맥 6구간의 종주산행은 운악산 산행이 전부였습니다.  

운악산이 시작되는 북쪽의 노채고개에서 한북정맥에 발을 들인 저희들은 능선 길을 따라 남진해 운악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정상을 출발해 남진을 계속하다 아기봉 갈림길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1시간 여 하산하여 운악산이 끝나는 47번 국도변에서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이렇듯 이번 산행은 운악산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종주산행이었기에 산행 중 거의 내내 동쪽의 연인지맥과 서쪽의 명성지맥의 수려한 산줄기를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어제 오른 운악산(雲岳山)은 경기 오악의 한 산으로 일명 현등산(懸燈山)으로도 불리는 것은 고려 때 고승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창건한 현등사(懸燈寺)가 이 산 동쪽 자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산 중턱의 덤불 속 절터 석등에서 사흘 동안 불빛이 비치는 것을 본 지눌 스님께서 이곳에 절을 짓고 현등사로 명명했다는 전설처럼 구름에 가린 바위산에 불을 밝혀 길을 열어주는 현등사가 있어 운악산 산길이 보다 환한 가 봅니다. 기암절벽이 빼어난 운악산은 산림청에서 명산100산에 이름을 올렸을 만큼 산세가 아름다워 경기의 소금강으로 불린 다지만, 산행 중에 이 산의 빼어난 풍광에 넋을 빼앗겨도 좋을 만큼 녹녹한 길이 거의 없어 산행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아슬아슬한 산이기도 합니다.


  아침8시48분 노채고개를 출발했습니다.  

포천 일동에서 택시4대에 분승해 6구간 들머리인 노채고개로 옮겼습니다. 한 달 전 고개 마루를 두텁게 덮었던 그 많은 눈이 다 녹아 없어지자 맨 흙이 그대로 보여 이 길이 아직은 공사 중인 비포장도로임이 드러났습니다. 배수구를 따라 오른쪽 위로 난 가파른 길을 따라 절개지 위에 오른 후 왼쪽으로 꺾어 편안한 길을 따라 원통산으로 향했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골프장이 보이는 능선 길에서 뒤돌아본 청계산은 노채고개 너머로 작아 보였지만 정상 삼각봉의 예리함은 여전했습니다. 기온이 영하에서 머물러 살갗에 와 닿는 공기는 냉랭했지만 하늘이 쾌청했고 바람이 불지 않아 산행하기에 좋았습니다.


  9시23분 해발 567m의 원통산을 올라 숨을 돌렸습니다.

정상에 오르자 4년 전에 서있었던 각흘산악회의 낡은 표지목은 보이지 않고 삼각점 혼자서 이 봉우리를 지키고 있어 텅 빈 정상이 그 때보다 더 쓸쓸해 보였습니다. 7-8분을 이 봉우리에 머물면서 호흡을 가다듬은 후 운악산을 향해 남진했습니다. 첫 번째 내려선 사거리 안부를 지나며 일행들에 이 고개가 구 노채고개라 일러주었는데 집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아무래도 성황당 잔해가 남아 있는 다음 사거리 안부가 맞는 것 같아 바로잡고자 합니다. 1시간을 걸어 커다란 소나무와 참나무들을 솎아낸 간벌지 능선에 도착해 10분 여 쉬는 중 전날 저녁 군포성당에서 특전미사를 드리고 나서 본 SBS의 녹화프로그램이 생각났습니다. 카톨릭 성지인 미리내 일원에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 간벌을 핑계대고 멀쩡한 자연목을 마구 베어낸 산림현장을 고발한 환경보전프로그램으로 이 프로를 보고나서 서로 부대끼지 않고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간벌해서 솎아내야 할 것은 산속의 나무들이 아니라 자연림의 거목들을 마구 베어내도록 눈감아준 관련공무원들이다 싶었습니다. 선두에 나선 제 뒤에 바짝 붙어 다시 50분을 부지런히 걸었어도 힘들어하는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은 한 친구가 다른 친구들로부터 주목을 받은 것은 그동안 우리 팀의 산행시간이 이 친구에 좌우될 정도로 주력과 지구력이 모두 달렸는데 어느새 몰라보게 좋아져 산행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11시33분 커다란 암봉 바로 앞 양지바른 능선에서 또다시 쉬었습니다.

난코스의 암봉을 우회하는 갈림길이 멀지 않은 것 같고 전체적으로 산행속도가 빨라져 좀 쉬어가도 시간운용에 문제없을 것 같아 배낭을 벗고 마음 놓고 쉬었습니다. 산행 중에는 힘이 들어 나누지 못하는 이런 저런 가슴 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마음 놓고 나눌 호기가 바로 퍼지고 쉬는 시간이어서 아무리 길게 잡아도 짧게 느껴지는 것이 바로 휴식시간입니다. 조금만 더 걸으면 삼거리 우회길이 나타날 것이라는 제 기억이 곧바로 나타난 암릉 길이 좀처럼 끝나지 않음을 보고 맞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4년 전에 한 번 밟은 암릉 길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이 혹시라도 다시 무자년을 맞는 나이테의 두께 때문인가 걱정을 했는데 동행했던 저보다 몇 살 아래 후배사장도 마찬가지인 것을 보고 바뀐 계절 때문이구나 하면서 안심했습니다. 암릉 길 두 곳을 뒤따라온 친구와 후배사장의 도움을 받아 통과해 고사목이 서있는 전망바위에 다다르자 과연 운악산이다 싶을 정도로 자나온 암릉코스가 아기자기하고 주변 산세가 수려해 보였습니다. 12시 20분 경 거대한 암봉 바로 앞의 갈림길에 도착해 아이젠을 꺼내 찬 후 엄청 가파른 오른 쪽 우회 길로 로프를 잡고 내려섰습니다. 


  12시50분이 다 되어 아기봉에 조금 못 미친 능선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급경사 우회 길을 내려갈 때 혹시나 필요할 지도 몰라 준비해간 20m보조자일은 내려가는 길에 가느다란 로프 줄이 걸려 있어 꺼내 쓰지 않았습니다만, 우회하지 않고 암봉을 바로 넘으려면 20m로는 짧고 30m는 되어야한다는 것이 먼저 종주한 분들의 의견입니다. 두 개의 거대한 암봉을 오른 쪽으로 에돌아 다시 한북정맥의 마루금에 올라서자 이제 난코스는 끝났다 싶어 안심되어서인지 점심상이 다른 때보다 훨씬 더 풍성해 보였습니다.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병풍바위가 선명하게 보여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13시40분경 자리를 떴습니다.


  14시20분 해발935.5m의 운악산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애기봉을 막 지나 서쪽 아래 운주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해 눈이 녹지 않은 가파른 계단 길을 걸어 올랐습니다. 포천군에서는 첫 번째 오른 서봉에 정상석을 세웠지만 운악산의 주봉은 서봉에서 조금 떨어진 동봉이라 하는데 동봉의 표지석에 산 높이를 937.5m로 잘못 새겨 넣어 지형도에 나와 있는 해발고도 935.5m와 차이가 났습니다. 동봉에 세워진 표지석 뒷면에 백사 이항복의 시 한 수가 새겨져 있어 한 구절을 옮겨 왔습니다.


   遊人不道姓  노는 사람들 성을 말하지 않았는데

   怪鳥自呼名  괴이한 새는 스스로 이름을 부르네


스스로 이름을 부르는 새를 괴조라고 표현한 백사께서 금강산 바위에 새겨진 김일성-김정일 찬가를 보았다면 틀림없이 놀라 자빠졌을 것입니다. 정상에서 얼마 내려가지 않아 능선 왼쪽에 자리한 남근석 바위가 보였고 이 남근석을 사진 찍기 편하도록 남근석촬영소라는 안내판을 세워놓고 쉼터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생산력이 월등한 남자들이 더 대접을 받았던 농경사회에서는 아들이 많아야 부자가 될 수 있기에 아들을 여럿 낳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을 남근석 바위는 바로 부와 풍요의 상징이어서 어귀에 남근석을 세워놓은 동네가 여기 저기 꽤 많았나 봅니다. 왼 쪽 현등사로 내려서는 절고개에서 한 여성이 미끄러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와 깜짝 놀랐는데 크게 다친 곳이 없다하니 크게 다행이었습니다.


  15시6분 하얀 눈이 덮인 넓은 공터에서 십 분여 쉬었습니다.

절고개에서 825봉을 향하여 직진해 오르다 중간에 오른 쪽으로 우회했습니다. 철암재로 내려가는 길은 급했고 누군가 나무에 로프를 엮어 망을 만들어 놓아 바위를 내려서기가 수월했습니다. 한참을 내려가서 만난 철암재는 안부사거리로 오른 쪽 대원사로 내려가는 길이 잘 나있어 일행 중 한 명은 혹시 그 길이 정맥 길이 아닌 가해서 제게 물어왔습니다. 철암재에서 10분가량 걸어 헬기장으로 보이는 공터에 올라서보니 햇빛이 잘 드는 이 공터에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남은 먹거리를 꺼내 든 후 을씨년스러운 채석장이 잘 보이는 아기봉 갈림길의 바위 위에 올라섰습니다.


  16시37분 윗봉수리의 47번 국도변에서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아기봉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확 꺾어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자 안부로 내려섰다가 별로 높지 않은 649봉으로 올라서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한참을 내려가 군부대의 철조망 울타리를 지났습니다. 마루금은 부대 안으로 들어가 버려 이어가지 못하고 울타리에 바짝 붙어 산허리를 오르내리다 47번 국도변으로 내려서 예정보다 1시간 일찍 6구간 종주를 끝냈습니다.


  대성산 남쪽아래 수피령을 출발해 운악산을 지나기까지 그동안 꽤 많은 고봉들을 오르내렸습니다. 복계산, 복주산, 회목봉, 상해봉, 광덕산, 국망봉, 견치산과 민둥산은 그 높이가 모두 천미터를 넘는 고산들이고, 백운산, 도마치봉과 운악산은 9백미터를, 강씨봉과 청계산은 8백미터를 상회합니다. 산 높이가 이 정도 되는 정맥 길이라면 주변 산세가 웬만한 대간 길에 못지않습니다. 이러한 정맥 길이 서울에서 가까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하루치기로 종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운악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8백미터를 넘는 고봉을 정맥 길에서 더 이상 만나볼 수 없다 생각하니 서운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고산들을 남들보다 더 힘들게 오르내리며 체력을 강화해온 이기후동문은 그 서운함이 남다를 것입니다. 이 친구의 몰라보게 좋아진 주력이 이번 산행을 예정보다 1시간 빨리 마칠 수 있도록 했는데, 이제 남은 구간에는 도봉산, 수원산과 죽엽산을 뺀다면 진땀을 흘리며 오를만한 이렇다 할 고산이 없으니 말입니다. 남은 구간 종주로 얻게 될 은근과 끈기가 일반산행으로는 기대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에 저희들은 한 달 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한북정맥의 마루금을 이어갈 것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