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정맥 종주기 7
*정맥구간:47번국도-수원산-큰넉고개
*산행일자:2008. 3. 16일(일)
*소재지 :경기 포천
*산높이 :수원산710m, 국사봉547m, 명덕산444m
*산행코스:47번국도-명덕산-명덕고개-수원산-국사봉-큰넉고개
*산행시간:9시30분-16시10분(6시간40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회원16명
(24기김남진/김양미부부, 김주홍, 백인목/백규진부자, 서중원, 이규성, 이기후,
이명재, 우명길, 29기유한준, 김정호, 박승욱, 정병기/김의정부부 및 박현출님)
날씨는 분명 많이 따뜻해졌는데 봄소식은 아직도 감감 무소식입니다.
겨울용 자켓을 벗어던지고 남방차림으로 7시간 가깝게 산행을 하는 동안 추위를 전혀 느끼지 못했음에도 산위에서 밤을 지새우는 나무들은 땅 속 뿌리 깊은 곳의 물을 가지 끝으로 끌어올리기가 아직은 조심스러운 가봅니다. 제가 사는 산본의 시청 앞 뜰에는 산수화가 꽃망울을 터트려 노란 꽃을 막 피웠습니다만, 한수 이북의 포천 땅을 지나는 한북정맥에는 꽃소식이 전무해 하얀 눈마저 사라진 3월의 산줄기가 마냥 황량해 보였습니다.
3월의 산줄기에서 황량함을 덜어내는 일은 산을 오르는 산객들의 몫입니다.
산이 자연의 꽃을 피우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이야기꽃이라도 피워야 합니다. 볼거리가 없다고 산 찾기를 외면한다면 산 속의 나무들은 아무도 반기는 이 없는데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꽃을 피우겠습니까? 또 산상의 화원에서 꽃 잔치가 벌어지는 5-6월에는 무슨 낯으로 산을 오를 수 있겠습니까? 풀꽃과 나무 꽃을 다 피우고 나면 가을에는 단풍 꽃을 피우고 한겨울에는 눈꽃을 피우는 것이 우리의 산입니다. 각종 꽃을 피우느라 숨 가쁘게 달려온 우리의 산들이 잠시 숨을 고르는 3월 한 달은 저희들이 산에 올라 이야기꽃을 피워야 일 년 열두 달 내내 우리 산에서 꽃이 지지 않습니다. 다른 짐도 무거운데 어느 누구도 사바세계의 욕지거리를 산상으로 메고 올라가지는 않기에 이런 저런 분들과 나누는 이야기꽃은 가슴을 후벼 파는 비수가 아니고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훈풍과도 같은 꽃입니다. 먼 옛날 수로부인에 꽃을 꺾어다 바친 사람이 젊은이가 아니고 노인임을 기억한다면 미쳐 이야기꽃을 준비하지 못한 젊은 여인네들은 당연 나이든 분에 이야기꽃을 부탁드리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경동동문산악회의 제7차 한북정맥 종주코스는 6시간만 걸으면 충분히 마칠 수 있는 보너스코스였습니다. 앞서 두 번을 모두 8시간 동안 강행군을 했기에 이번에는 코스를 짧게 잡고 쉴만한 곳은 다 찾아 쉬어가면서 한껏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47번 국도변의 윗봉수리를 출발해 명덕고개를 거쳐 큰넉고개에서 종주산행을 끝내는 이번 코스에는 가장 높은 수원산이 710m밖에 안될 정도로 산 높이도 낮고 상당 거리의 산길에 낙엽이 폭신하게 깔려 양탄자 위를 걷듯이 모두가 모처럼 편안한 산행을 즐겼을 것입니다. 산본 사는 한 동기는 아들과 동행했고 인천 사는 한 후배는 처음으로 부인을 정맥 길에 모셔왔으며 29기의 후배 한 명이 새롭게 종주대열에 합류해 새 식구들이 피운 이야기꽃이 35년 이상 이어온 우정의 이야기꽃에 더해져 한북정맥 산줄기가 때 아니게 화사한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아침9시30분 47번국도변의 윗봉수를 출발했습니다.
내달이면 없어질 상봉터미널에서 8시20분에 사창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기사 분께 부탁해 봉수리를 약간 더 가 윗봉수의 부대 앞에서 하차해 47번 국도를 굴다리로 건너 맹호부대 조금 지나 합동사진을 찍은 후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길을 따라 5-6분을 걸어가다 왼쪽으로 꺾어 군부대 울타리 오른쪽으로 난 길로 올라섰습니다. 4년 전 이 길을 처음 걸을 때는 내리쬐는 6월의 땡볕을 피하지 못해 진땀을 흘렸는데 이번에는 덥지가 않아서 산행시작 반시간이 조금 지나 해발444m의 명덕산을 올랐습니다. 먼저 오른 한 팀이 한북정맥을 안전하게 종주할 수 있도록 보살펴달라고 이 산 산마루에서 산신령께 안전기원제를 올리고 있어 숨도 돌리지 못하고 왼쪽으로 꺾어 명덕고개로 향했습니다.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가다 새로 시작한 한 후배가 힘들어해 능선 길에서 10분을 쉬었습니다.
11시6분 한북천마지맥이 시작되는 명덕고개로 내려섰습니다.
윗봉수 출발 1시간 만인 10시32분에 철조망울타리와 헤어졌습니다. 울타리 안에 망루가 세워진 지점에서 군부대울타리는 왼쪽 아래로 갈렸고 한북정맥 마루금은 남쪽 방향으로 똑바로 이어졌습니다. 북동쪽에 자리한 운악산을 카메라에 담은 후 잣나무가 무성한 능선 길을 반시간 남짓 걸어 명덕고개 삼거리로 내려서고 나서야 1차 종주 때보다 20여분 빨리 도착했음을 알았습니다. 서파와 명덕온천, 그리고 굴고개로 길이 갈리는 명덕고개삼거리에서 후미를 기다려 대오를 정비한 후 수원산 들머리로 올라섰습니다. 명덕고개에서 수원산에 오르는 40여 분 간의 산 오름이 길이 가팔라 힘들었습니다. 이 산 중턱을 다시 지나며 4년 전 한 여름 이른 아침에 이 산에서 만난 멧돼지 한 마리의 안부가 새삼 궁금했습니다. 그 때는 난생 처음으로 멧돼지를 만나 그 아래 산길을 지나느라 오금이 저렸는데 그 후 4년 동안 혼자서 열심히 산줄기를 타면서 멧돼지와의 심리적 거리를 상당히 줄여놓아 이제는 멧돼지를 만나면 어떻게 할까 하는 공포심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멧돼지의 자연수명이 얼마인지는 몰라도 그때 만난 멧돼지는 그리 큰 몸집이 아니었기에 그새 많이 커서 어른 멧돼지가 되었으리라 생각되는데 혹시라도 먹을 것을 찾아 민가로 내려갔다가 변을 당한 것은 아닌지 하는 방정맞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12시2분 해발 710m의 수원산 남쪽 후문 앞에 올라섰습니다.
군부대가 들어선 수원산 정상은 올라갈 수 없어 똑바로 치켜 올라가다 정상 바로 아래 울타리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남쪽 후문 앞에 다다랐습니다. 전에 없던 군부대구축물을 지나 왼쪽 임도로 내려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그동안 한자리에 모여 점심을 드는 식구들도 다달이 늘어 지난 9월 첫 종주산행 시에는 고작 5명이었는데 이번에는 16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자연 식사시간도 길어졌고 또 점심메뉴도 다양하고 풍성해졌으며 점심시간에 저희들이 나눈 이야기꽃으로 3월의 한북정맥도 황량함을 면했습니다. 항상 저희 일행들의 먹거리를 준비해온 수지 사는 한 분이 허리가 삐끗해 이번 산행에 동참하지 못해 부군이 그 일을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음에도 빈자리는 여전히 커 보였고, 자리를 같이한 모든 동료들이 빠른 쾌유를 빌었습니다. 한 시간 남짓한 점심식사를 끝내고 13시15분에 자리를 떴습니다.
14시36분 해발 641m의 전망바위를 올랐습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임도에서 능선 길로 다시 올라 남진을 계속했습니다. 4년 전에 보았던 군견교육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봉우리마다 새로 세운 삼각점이 아직은 5만분의 1 지형도에 등재되지 않았습니다. 산행재개 20분 만에 오른쪽으로 약수터정상길이 갈리는 봉우리삼거리를 지났습니다. 다시12분을 더 걸어 올라선 봉우리에 세워진 삼각점에는 지적측량용 깃봉이 세워져 있어 별스런 삼각점을 다 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꽤 멀리 보였던 첫 번째 송전탑도 50분을 더 걸어 지났고 곧이어 한북천마지맥이 한눈에 들어오는 암봉 위에 올라섰습니다. 5만분의 1 지형도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는 이봉을 월간 “산”지 3월호에는 불정산(국사봉)으로 표기해 놓아 헷갈렸습니다만 전망 하나는 빼어나 동쪽 맞은편의 오비베어스스키장에서 마지막 겨울을 즐기는 몇 몇 스키어들이 눈에 잡혔습니다.
16시10분 의정부-내촌 간 시내버스가 다니는 구도로의 큰넉고개에 도착해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전망바위에서 국사봉에 이르기까지 길안내는 송전탑이 맡았습니다. 송전탑과 나란한 방향으로 마루금이 나있는데다 계속해서 남진 길이 이어져 길 찾기에 어려움은 전혀 없었습니다. 마루금을 경계로 좌 사면에는 전나무가 가득하게 들어섰고 그 반대쪽으로는 활엽수들이 자라고 있어 아직은 새잎이 돋지 않아 전나무 숲이 훨씬 푸르러보였습니다. 이번 산행 중 지난 몇 개의 헬기장중 H자가 가장 선명한 마지막 헬기장을 막 지나 풀 숲 한가운데 삼각점을 세운 봉우리가 지형도에 나오는 해발547m의 국사봉으로 15시17분에 도착했습니다. 남진 길은 국사봉에서 끝났고 이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틀어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급하게 안부로 내려섰다가 좌 사면이 깎아지른 절벽인 채석장 위봉우리로 넘어 큰넉고개로 내려서는 길에 오른 쪽 아래 골짜기에 그대로 남아 있는 얼음판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저 골짜기가 바로 얼음골이다 했습니다. 육사생도육이오참전기념비 앞에서 전사한 젊은 생도들의 넋을 위로한 후 차도로 내려서 하루 산행을 접었습니다. 큰넉고개에서 내촌까지는 버스로 옮겼고 내촌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와 지난 달 울산대학교 건축대학장에 취임한 이규성회장이 낸 저녁자리에 함께해 그의 승진을 같이 기뻐했습니다.
한북정맥의 산줄기가 우중충한 회색의 옷을 벗어버릴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만, 아직도 남녘에 묶여 있는 화신이 한강을 건너는 데는 아무리 빨라도 열흘은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봄의 전령이 한강을 건너기까지 계속해 우중충한 한수이북의 산줄기를 마다않고 찾은 경동동문산악회에 산신령의 보살핌이 있으리라 믿으며 제7차 한북정맥 종주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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