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한북정맥 종주기 4
*정맥구간:국망봉-민둥산-도성고개
*산행일자:2007. 12. 16일
*소재지 :경기포천/가평
*산높이 :국망봉1,168m, 견치산1,120m, 민둥산1,023m
*산행코스:국망봉휴양림입구-국망봉-견치산-민둥산-도성고개-연곡리군부대정문
*산행시간:9시16분-16시47분(총7시간31분/구간종주2시간55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11명
(24기김남진부부,김주홍부부,백인목,서중원,이기후,이명재,우명길/29기김정호,유한준)
경동동문산악회의 송년 산행이 하루 먼저 내린 눈 덕분에 더할 수 없이 풍성했습니다.
올 3월 제 친구 이규성 교수가 이 산악회를 맡은 후 처음 갖는 설산 산행이 마침 한북정맥 최고봉으로 눈 많기로 이름난 국망봉에서 도성고개까지 마루금을 이어가는 종주산행이어서 겨울산행의 즐거움을 한껏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의 기온이 영하 8도로 떨어진 냉랭한 아침에 집을 나서며 경기도 제3의 고봉인 해발 1,168m의 국망봉을 오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아 은근히 걱정됐는데, 산행 중 내내 바람이 불지 않아 체감온도가 한 달 전에 이 산을 올랐을 때 보다 훨씬 높아져 크게 다행이었습니다. 국망봉 턱 밑에서 된비알의 눈길을 오르며 몇 번이고 미끄러져 힘들었지만 푸근한 날씨가 한 몫을 해 소북이 쌓인 눈을 마음껏 밟으며 아무런 탈 없이 산행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지난 11월 광덕고개-국망봉 구간의 긴 코스를 무리해서 종주한 한 친구도 오랜 고민 끝에 이번 산행에 동참하기로 용단을 내린 것이 헛되지 않아 이번 산행을 말끔하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산행을 함께한 동문들 대부분이 이제껏 나름대로 꾸준히 산을 찾아 오른 터라 정맥종주라 해서 새삼 어려울 것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 동안의 산행이 한 산을 정해 정상을 오르내리는 점의 산행이었다면 한북정맥 종주는 산줄기를 따라 능선을 이어가는 선의 산행이어서 대부분의 동문들에 얼마고 생경했을 것입니다. 한 번에 끝나는 점의 산행과는 달리 십 수회를 연 이어 올라야 산행이 끝나는 선의 산행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그 많은 횟수를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데다 혹시나 일이 있어 불참 시에는 훗날 혼자서 빠진 구간을 다녀와야 하는 것이 크게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대간이나 정맥들을 종주하겠다고 나서는 산객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은 이들 산줄기들을 밟아보지 않고서는 우리나라의 산들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뒤늦은 깨달음 덕분입니다. 지난 12월3일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한 동문의 주선으로 3학년생 후배들에 백두대간으로 대표되는 우리 고유의 산줄기인 산경과 구한말 일본의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 씨가 정립한 산맥의 개념을 비교 설명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자원을 중심으로 땅속으로 맥을 이어가는 산맥과 눈에 보이는 산줄기로 맥이 이어지는 산경의 개념은 자연과학의 지질학과 인문과학의 지리학만큼이나 서로 다른 것이어서 어느 하나가 틀린 것으로 단정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중간에 산줄기가 끊기는 산맥의 개념으로는 우리나라에 있는 어떤 두 봉우리도 그 봉우리가 섬에 있지 않는 한 이 두 봉우리를 잇는 산줄기가 반드시 한 개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설명할 수 없음을 일러주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산경의 개념을 토대로 백두산의 장군봉과 지리산의 천왕봉을 잇는 단 하나의 산줄기를 백두대간으로 명명해 이 땅의 척추로 삼았고, 대간에서 갈라져 나와 바다나 인접한 강을 만날 때까지 내달리는 커다란 산줄기를 정간과 정맥으로 분류해왔습니다. 기왕에 정맥종주에 나선 동문들에 이러한 산경의 개념이해를 돕고자 1대간1정간13정맥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산경도를 복사해 배포했습니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정맥종주의 묘미에 빠져드는 동문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한북정맥 종주를 참 잘 시작했다 싶었습니다.
아침9시16분 국망봉휴양림을 출발했습니다.
산행시작이 예정보다 16분 늦어진 것은 주말에 외출 나온 장병들이 많아 이동에서 택시를 잡는데 시간이 좀 걸렸기 때문입니다. 아이젠과 스패취를 착용하고 임도 따라 7-8분을 걸은 후 왼쪽 숲길로 들어섰습니다. 얼마 후 만난 또 다른 임도를 건너서 2.7 Km 거리의 국망봉을 오르고자 철계단에 발을 들였습니다. 날씨가 많이 푸근하고 바람이 불지 않아 이런 정도라면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아 다른 산행에서는 반시간을 못 걸어 고통스러워했던 한 친구가 1시간을 넘게 걸었어도 생생했습니다. 혹한과 백설로 된 고생을 할 것이라는 제 생각이 기우임을 알고 나자, 비로소 하얀 눈으로 옷을 갈아입은 국망봉의 여러 산자락들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산행시작 1시간이 조금 지나 장송들이 서있는 평평한 구릉에서 숨을 돌리고 있는 동안 40분 늦게 동서울을 출발한 한 동문이 저희들을 따라잡아 지난 10월 지리산 종주 때 본 그의 빠른 주력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11시12분 국망봉대피소 안에서 한참을 쉬었습니다.
평평한 구릉에서 숨을 돌린 후 더욱 가팔라진 비알 길을 앞장서 오른 친구가 지난 번 이 길을 내려올 때 엄청 고전했던 바로 그 친구여서 한 달 새 근교산을 몇 번이고 올랐다는 연습산행 덕을 단단히 본다 했습니다. 잦은 망년회 모임으로 술에 찌든 몸을 이끌고 해발 100-200m대의 산 밑에서 1,100m가 넘는 고산을 똑바로 치켜 올라간다는 것은 누구라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몇 몇 친구들이 이번 산행을 특별히 힘들어 하며 후미로 쳐진 것은 이 달 들어 각종 모임에 너무 혹사당한 몸 동아리가 마침내 반란을 획책했기 때문입니다. 깨끗이 치워진 대피소 안에서 쉬고 있던 다른 분들이 자리를 내주어 과일과 떡을 들며 후미를 기다렸습니다. 한 달 전 바람을 가르며 광덕고개-국망봉구간을 쌩쌩 내달렸던 수지 사는 한 부부가 손수 준비해온 저희 일행들의 먹거리를 몽땅 지고 오르느라 뒤로 쳐졌음을 그들이 대피소에 도착한 후에야 알았습니다. 진작 짐을 나누어져야 할 것을 그리하지 못한 산행대장의 우둔함은 길안내를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변명될 수는 없어 죄송하고 미안했는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다른 대원들이 0.9Km 남은 국망봉까지 짐을 나눠지고 올랐습니다.
12시22분 해발1,168m의 국망봉을 올랐습니다.
대피소를 출발해 0.3Km 단위로 세워진 이정표를 지날 때마다 오름길의 경사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 정도 된비알의 눈길이라면 길옆의 로프 줄을 잡고 오르더라도 한두 번은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자, 위에서 굴러 떨어지는 커다란 바위를 수도 없이 산 위로 굴려 올리는 시지프스신의 고행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시지프스 신이 저희들을 엄청 부러워하는 것은 그가 겪는 고행의 본질이 바로 아무리 애써도 아무런 결과물을 산출할 수 없는데 있음에 반해 저희들은 몇 시간이고 땀 흘려 오르면 어느 산이고 정상에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망봉에 올라 사방을 휘둘러보자 전날 내린 눈으로 온 산이 눈부셨고 흰 눈을 머리에 잔뜩 이고 있는 경기도 제1의 고봉인 화악산이 다른 때보다 훨씬 가깝고 말쑥하게 보였습니다. 여름 내내 심술만 부려 밉살스러웠던 제우스신이 이리도 고운 눈을 내려주고 또 삭풍을 잠재워 햇살의 따사로움이 그대로 유지되도록 해주다니 정말 고맙고 또 고마웠습니다. 국망봉 등정을 기념하는 사진을 찍은 후 바로 아래 공터로 내려가 점심을 들었습니다. 한 자리에 빙 둘러앉아 준비해온 음식들을 모두 꺼내 놓고 함께 드는 산상의 식사는 시내의 웬만한 성찬보다 못하지 않아 언제고 점심시간이 즐겁고 그래서 식사시간도 길어졌습니다.
13시6분 긴 휴식을 끝내고 정맥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정맥종주가 시작되는 국망봉을 오르는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고 능선 길에 눈이 많이 쌓여 아무래도 제 속도를 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번에는 구간거리가 6Km가 채 못 되는 도성고개에서 정맥 종주를 마치고 일동의 연곡리 쪽으로 하산하기로 했습니다. 국망봉에서 잠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올라선 헬기장에서 어느 한 군데 끊이지 않고 남으로 북으로 줄기차게 내닫는 한북정맥의 산줄기를 보고 참으로 장대하고 도도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평 쪽 무주치폭포로 내려가는 왼쪽 길을 버리고 오른 쪽으로 내려서 견치산으로 향했습니다. 골바람이 실어 나른 골짜기 눈이 그대로 쌓여 있는 능선 길에는 적설량이 20cm는 족히 될 것 같아 설산 산행의 참 맛을 느끼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하루 전 하얀 눈발의 공중난무를 도왔던 바람도 하루를 쉬는 통에 산상에서 맞는 겨울햇살이 마냥 따사롭게 느껴졌습니다.
13시55분 해발1,120m의 견치산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3년 전 녹음이 싱그러운 5월에 이 산을 지났을 때는 짙은 안개로 어디가 정상인지 알아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견치산 정상에서 표지석을 확인했습니다. 그 때 이 산에 가득한 것은 안개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욱한 안개 속에 몸을 숨긴 수많은 야생화들 중에서 얼룩진 얼레지 꽃과 몸속에 선혈을 감춘 노랑꽃 피나물만은 호주머니 속을 뚫고나온 송곳처럼 돋보였습니다. 연곡리에서 올려다 본 한북정맥의 연봉들이 여기저기 개 이빨처럼 솟아올랐다 하여 개이빨산 또는 견치산의 이름을 얻었다는 이 산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산이름의 내력을 궁금해 하는 일행들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헬기장을 지날 때부터 힘들어하던 예의 그 친구가 견치산에서 몇 분을 쉬었는데도 20분도 못 걸어 다다른 용수목으로 갈리는 무명봉에서 눈 위에 벌렁 누워버리는 것을 보고 2-3시간짜리 짧은 코스를 몇 주 산행해 좋아진 체력이 이제는 바닥이 난 것이 아닌가 싶어 조금은 걱정됐습니다.
14시52분 해발1,023m의 민둥산을 올랐습니다.
용수목 갈림길에서 몇 개의 봉우리들을 넘고 또 우회해 깊숙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훤칠한 키의 누런 억새들이 넘실대는 길을 올라 한북정맥 마지막 1,000미터 대 봉우리인 민둥산에 올라섰습니다. 넓은 공터 한 끝에 정상석이 서 있는 민둥산은 민덕산 또는 민드기봉으로도 불린다는데 이봉우리에서 귀목봉 갈림길까지 사계정리가 잘 되어 있어 갈 길이 훤히 보였습니다. 억새와 잡목들을 베어내 늦은 봄날 산상의 화원을 이루었던 능선 길이 도성고개 쪽으로 시원스레 잘 나 있었지만, 막 녹기 시작한 눈들이 구두에 들러붙어 제 때 떼어내지 않으면 뒤뚱거리다 미끄러져 뒤로 자빠지기가 십상이었습니다.
16시1분 도성고개에 도착해 정맥 종주를 마치고 하산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민둥산에서 도성고개까지 2.55Km의 능선 길은 딱 한번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 것을 빼 놓고는 계속 고도가 낮아지는 내림 길인데다 민둥산에서 조금 내려와 남은 과일들을 모두 꺼내들어서인지 어느 누구도 힘들어 하지 않았습니다. 가평의 논남과 포천의 연곡리를 이어주는 도성고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5-6분을 걷자 삼거리가 나타났습니다. 능선으로 이어지는 직진 길 대신에 불땅계곡으로 내려서는 오른 쪽 내리막길로 들어섰습니다. 길이 몹시 미끄러우니 오른 쪽 내림 길을 조심하라는 몇 분들의 산행기를 보고 삼거리에 닿기까지 어느 길로 내려갈까 결정을 하지 못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오른 쪽 계곡길이 직진하는 능선 길보다 훨씬 잘 나있었고 경사는 급했지만 눈길을 내려가는 재미도 적지 않았습니다.
16시47분 연곡리부대 앞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도성고개 출발 반시간이 지나 자그마한 계곡을 건넜습니다. 골짜기에 쌓인 하얀 눈들을 녹여 계곡의 바닥을 적시며 졸졸 흐르는 저 계곡물이 끝내는 바다로 흘러들어간다 생각하니 시작은 미미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씀 그대로이다 싶어 한동안 계곡물에 눈길을 주었습니다. 곧 이어 임도로 들어섰고 7-8분을 더 걸어 불땅계곡 표지석이 서 있는 다리 앞에 다다랐습니다. 개이빨산의 정기를 몽땅 받았음직한 견공 두 마리가 목청 높여 지저대며 지키는 커다란 건물은 요양원인 듯싶었고, 왼쪽 산 아래 집 몇 채는 팬션이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아이젠과 스패치를 풀고 비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구원사 절 앞에서 택시를 부른 후 몇 분을 더 걸어 연곡리 군부대 정문 앞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부대 건너 저만치에 정좌하고 있는 국망봉과 여러 연봉들에 하루 종일 길을 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번산행이 한북정맥 종주 산행 중 정맥에 접근하기가 가장 힘들고 정맥구간은 가장 짧은 산행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다른 분들이 한 번에 뛰는 광덕고개-도성고개 구간을 두 번으로 나누어서인데, 그 덕분에 한북정맥 최고봉인 국망봉을 올라 설산산행의 진수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땀 흘린 자가 결실을 거두려니 한 달 후 도성고개를 올라 정맥종주를 이어가며 또 다시 땀 흘리고자 합니다.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가진 송년모임에 자리를 같이한 이규성회장과 이길호동문에도 감사를 표합니다.
<산행사진>
- 송림 통나무 송림 통나무 Y
- 2007.12.20 13:42
- 여러사람이 등반을 하니 보기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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