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한북정맥 종주기 3
*정맥구간:광덕고개-도마봉-국망봉
*산행일자:2007. 11. 18일
*소재지 :경기포천,가평/강원화천
*산높이 :국망봉1,165m, 백운산878m
*산행코스:광덕고개-백운산-도마봉-신로령-국망봉-국망봉자연휴양림
*산행시간:9시-18시10분(총9시간10분/구간종주6시간15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회원등 9명
(경동고24기김남진/김양미, 김주홍/김경옥, 이기후, 우명길,
29기유한준, 정병기, 초대산객 박현출님)
얼음을 빼놓고 겨울의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은 눈망울을 제쳐두고 여인의 미색을 얘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는 겨울이 다른 계절과 대별되는 근본적인 차이가 기온이 물이 어는 빙점이하로 떨어지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껏 입동이 언제냐 관계없이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얼음을 처음 만나보는 날을 그 해 겨울이 시작되는 첫날로 삼아왔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맞는 첫 겨울은 해마다 날자가 달랐습니다. 기상변화가 어떠했고 언제 고산을 올랐느냐에 따라 그 날자가 같지 않았는데 11월 초에 설악산이나 지리산 등 높은 산을 오른 해에는 입동 날보다 더 빨리 겨울을 맞았고, 이상고온의 날씨가 얼마고 계속되었던 어느 해에는 소설을 한참 지나 11월 말쯤에야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첫 얼음을 만나보기도 했습니다.
자연의 얼음은 크게 보아 상공에서 결빙하는 눈과 지상에서 어는 얼음으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상공의 눈과 지상의 얼음은 빙정환경이 크게 달라 하늘을 나는 눈과 강물의 빙판처럼 그 형상도 크기도 전혀 다릅니다. 눈만 해도 결정의 크기에 따라 진눈깨비, 싸락눈, 가루눈과 함박눈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에스키모사람들이 분류한 눈은 그 종류가 무려 스무 가지가 넘는다 합니다. 겨울하늘을 난무하며 무질서도가 최고조에 이르는 역동적인 함박눈이 나뭇가지에 내려 앉아 질서의 세계로 편입되고 나면 한겨울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설화를 꽃피우게 됩니다. 지상에서 어는 얼음도 지표수가 얼어붙어 생기는 얼음, 공기 중의 수증기가 얼어 지표면에 내려앉는 서리, 땅 속의 수분이 얼어 지표면을 뚫고 삐져나오는 서릿발 등 그 모양이 다양합니다. 초겨울 나뭇가지에 맺힌 상고대는 서리가 빚는 최고의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한 겨울이면 제 고향 파주의 자유로를 지나며 임진강가 흙을 뚫고 나와 도열하듯 날을 세워 곳곳하게 서있는 서릿발의 모습을 지켜보며 참 도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공의 눈만은 못해도 지상의 얼음도 이렇듯 그 모습이 다양하기에 마냥 겨울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입니다.
겨울초입에 만나는 얼음은 그 종류가 무엇이든 야무지지 못하고 어딘가 좀 엉성해 보입니다. 첫눈만 해도 그렇습니다. 가슴 설레며 맞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에는 아랑곳 않고 지표면에 닿자마자 이내 녹아버립니다. 지표수도 위만 살짝 얼어 얼음의 결정이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습니다. 산을 오른다 해도 상고대를 만나보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게는 첫 겨울 산행이 얼음다운 얼음은 만나보지 못하고 덜덜 떨다가 내려온 그저 그런 산행이었습니다. 그러나 광덕고개-국망봉 구간의 한북정맥을 종주하며 처음으로 겨울을 맞은 올해는 달랐습니다. 사계정리를 위해 나무와 풀들을 베어내고 낸 능선 길에서 피어난 서릿발은 이제껏 400산을 넘게 올랐어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얼음 꽃으로 그 절제된 아름다움이 연꽃을 뛰어넘었습니다. 풀들을 베어내지 않았다면 풀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것이고 한 겨울이라면 눈 속에 파묻혀버렸을 것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첫 겨울날 난생 처음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것은 국망봉의 산신령이 맹추위를 무릅쓰고 한북정맥을 종주하는 저희 일행들을 가긍히 여겨 베풀어준 은덕 덕분이다 싶었습니다.
아침9시 광덕고개를 출발해 3번째로 한북정맥의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올 들어 처음으로 서울의 기온을 영하로 떨어뜨린 추위가 더욱 더 극성을 부린 곳이 바로 한북정맥이었습니다. 서울의 기온이 영하 4도였다는데 그렇다면 고위도 산간지방인 포천의 이동은 2-3도가 낮은 영하6-7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해발 800-900m의 산줄기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은 고도100m당 0.6도가 낮아지므로 대략 영하 11도-12도에 이르렀을 것이고 이에 매서운 골바람이 더해져 피부가 느끼는 체감온도는 영하 15-16도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광덕고개에서 출발시간을 기록한 후 이내 손끝이 아려오고 볼펜도 말을 듣지 않아 더 이상의 메모를 포기하고 사진만 찍어야 할 정도로 추위가 매서웠습니다. 이 추위에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고 뛰어넘고자 이번의 긴 종주산행에 과감히 도전한 한 친구에 동료들 모두 성원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10시20분 해발904m의 백운산에 올라섰습니다.
하늘은 쾌청했고 전망도 좋아 한달 전에 오르내린 회목봉과 상해봉, 그리고 광덕산을 조망했습니다. 채 녹지 못한 싸락눈이 땅바닥에 살짝 깔린 백운산 정상에서 이번 산행 처음으로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도마치봉으로 향했습니다. 별안간 찾아온 추위로 산행속도가 조금은 빨라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땀이 별로 나지 않은 데다 추위로 오래 쉴 수 없었으며, 지난 4월 저희들을 붙잡았던 얼레지꽃등 산상 화원의 야생화들이 자취를 감추어서였습니다. 11시10분이 채 안되어 도마치봉에 다다랐는데 헬기장이 들어선 정상에 백운산보다 조금 많은 눈이 땅을 덮고 있었습니다. 해발 937m의 도마치봉 정상에 지난 4월에는 보지 못했던 “사자봉 950m”라고 적힌 표지목이 세워져 있어 헷갈렸습니다. 도마치봉에서 얼마간 내려서 만난 샘터만 믿고 식수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거의 물이 나오지 않아 난감할 뻔 했습니다.
11시39분 왼쪽으로 화악지맥이 갈리는 해발 870m의 도마봉에 올랐습니다.
샘터에서 조금 더 가다 뒤돌아본 도마치봉은 서쪽 바로 곁에 거암들이 자리를 같이해 든든하겠다 싶었습니다. 나뭇잎이 가로 막아 온전한 모습을 다 볼 수 없었던 이 준수한 암봉들을 다시 보자 지난 3월 한북천마지맥 종주 시에 본 주금산의 독바위와 많이 닮아 보였습니다. 도마봉에 오르자 왼쪽으로 경기도 최고봉인 화악산이 몇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화악산을 못 오르는 아쉬움은 한북정맥 종주를 마친 후 이 정맥에서 갈려나가는 8개 지맥을 차례로 오르겠다는 각오로 달래고 나서 6.09km 남은 국망봉으로 향했습니다. 도마봉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정맥 길은 1102봉의 땅벌봉에 이르기까지 사계정리를 위해 잡목과 풀들을 베어내어 지금까지 밟아온 어느 길보다 시원하고 넓었습니다. 깨끗한 능선 길을 따라 걸어 지난번에 점심식사를 한 소나무 밭가를 지난 시각이 12시15분이었으니 광덕고개를 출발해 3시간 15분이 걸린 셈입니다. 그 때보다 엄청 빨리 걸었다 했는데 실제 단축시간은 겨우 13분에 지나지 않아 이 역시 또 다른 의미의 데쟈뷰 가 아닌 가 했습니다.
13시20분 점심식사를 끝내고 다시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앞서간 일행들이 소나무 밭을 그냥 지나쳐 점심은 15분을 더 가서 들었습니다. 소나무 밭을 지나면서 땅속에서 피어난 얼음 꽃의 서릿발을 발견했습니다. 부족한 제 글 솜씨로는 이 토록 신비로운 얼음 꽃의 아름다움을 다 묘사할 수 없어 카메라에 그 역할을 맡겼습니다. 삼각점이 세워진 823.8봉을 지나고 국망봉을 3.8km 앞에 둔 구릉을 막 넘어서 양지바른 곳에다 자리를 잡고 빙 둘러앉아 점심을 들었습니다. 달랑 인절미 한 팩만 준비해간 제 손이 부끄러웠던 것은 9명 일행들이 모두 먹고도 남을 만큼 충분한 음식을 준비해온 수지친구내외의 세심하고 넉넉한 손 길 때문이었습니다. 50분 가까운 점심시간은 언제고 그렇듯이 한북정맥에 오른 우리가 모두 한 식구임을 다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마다 빠르기가 달라 산행 중에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고 보면 함께 모여 점심을 드는 시간이 우의를 다지기에 최적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헬기장을 지나서 신로봉을 왼쪽으로 우회해 오른 쪽 아래로 장암저수지 길이 갈리는 신로령에 도착하기까지 반시간이 조금 못 걸렸습니다.
14시29분 해발1103봉의 땅벌봉에 올라 잠시 쉬었습니다.
신로령에서 990봉인 돌풍봉에 오르는 길을 수놓았던 4월의 야생화 바람꽃은 바람같이 사라지고 얼음꽃 서릿발이 그 자리에 대신 들어앉았습니다. 이번 산행이 국망봉에 도전장을 낸 친구에게는 반드시 한 시간을 걷고 쉬겠다는 묵언의 약속을 깰 만큼 힘든 도전이었나 봅니다. 용케도 거의 보조를 같이해온 이 친구가 크게 쳐진 것은 점심 식사 이후로 생각보다 자주 쉬어 애당초 계획대로 해떨어지기 전에 산행을 마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돌풍봉을 지나고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 해발 고도가 1,100m를 넘는 첫 번째 고봉인 땅벌봉에 다다르자 국망봉 오르는 길이 꽤 가팔라 보였습니다. 남한 땅 최북단의 정맥인 한북정맥을 종주하노라면 벙커와 교통로, 그리고 헬기장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만, 사계정리가 시작되는 도마봉과 끝나는 땅벌봉 모두에 헬기장이 들어 있어 역시 한북정맥이다 했습니다.
15시15분 해발 1,165m의 국망봉에 올랐습니다.
일행들 대다수가 날쌘 돌이처럼 잽싸게 앞으로 내달았고 산행기를 회사 홈피에 올린다는 후배친구분과 모처럼의 도전으로 힘들어하는 제 친구가 저와 함께 후미로 쳐졌습니다. 이 추위에도 꼼꼼하게 지도를 보고 산세를 두루 관찰하며 메모를 남기는 후배친구분에 손이 곱다는 이유로 일찌감치 메모작성을 포기한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1103봉에서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골바람이 모아지는 바로 아래 안부까지는 비교적 편안한 길이었습니다. 마지막 힘을 모아 가파른 국망봉에 오른 친구에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내왔습니다. 지난 4월보다 8분을 빨리 오른 국망봉은 경기도 제3의 고봉으로, 그 동쪽 가까이에 제1고봉인 화악산이 자리 잡고 있고 제2고봉인 명지산이 남쪽방향으로 빤히 보여, 이 일대의 산들을 묶어 경기알프스라 불러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산행의 강점이 나뭇잎이 다 떨어져 조망이 일품이라는데 있다면 이번에 오른 국망봉은 한북정맥 최고의 전망지여서 북으로 이어지는 다함께 걸어온 정맥 길이 한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저 길을 하얀 눈이 덮는다면 얼마나 환상적일까 그려보자 다음 종주산행이 기다려졌습니다. 한번 내려갔다가 1,165m의 고봉을 다시 올라 다음 구간을 시작해야 하기에 국망봉에서 종주구간을 자르는 것은 피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러나 도성고개까지 진행해 하산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고 , 지난 4월 이 구간을 온전히 뛰었지만 이번 종주산행에는 참여하지 못한 몇몇 친구들과 다음 구간을 같이 시작하기 위해서는 만부득이 여기서 종주산행을 마치고 하산해야 했습니다.
18시10분 국망봉 자연휴양림 입구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정상도전에 성공한 친구가 다리가 풀려 하산 길에 시간을 많이 잡아먹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2시간40분까지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 국망봉에서 막 내려서 로프를 쳐 놓은 급경사길을 0.3km 내려서는데 20분이 걸려 해지기전에 국망봉자연휴양림입구까지는 모르더라도 보다 안전한 임도에 내려서는 것은 문제없겠다 했는데 이 조차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16시13분에 대피소를 지난 후 1시간을 넘겨 걸어 임도0.3Km 전방에 다다르자 하늘에 떠 있는 반달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였습니다. 이미 산행을 마치고 휴양림입구에서 저희 둘을 기다리고 있는 친구에 전화를 걸어 먼저 이동으로 옮겨 식당에서 기다리라고 부탁을 한 후 헤드랜턴을 꺼내 라이트를 켰습니다. 17시43분에 철계단을 내려가 만난 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숲속으로 들어섰습니다. 몇 분 동안 캄캄한 숲길을 걸어 내려가 윗길 임도보다는 많이 좁은 휴양림입구로 이어지는 또 다른 임도를 만나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이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다가 저수지를 조금 지나 걱정이 되어 되돌아 온 친구를 만났고, 종점인 휴양림입구에 도착하자 후배들이 반갑게 맞아 모두 다 고마웠습니다.
길고 긴 산행을 무사히 끝내고 도전에 성공한 이기후 동문이 일행들의 성원에 답하고자 이동의 갈비집에서 저녁을 냈습니다. 도전이 아름다운 만큼 힘들게 성취한 성공이 값졌고 그만큼 고기도 맛이 있었습니다. 고맙게도 이번 종주산행을 같이 못한 두 친구들이 급작스런 추위에 무사히 산행을 마쳤는지를 묻는 전화를 걸어와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는 깊은 뜻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올 겨울 첫 산행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50줄을 훌쩍 넘은 동문들이 영하 15도가 다되는 맹추위에 아랑곳 않고 한북정맥 최고봉인 국망봉 구간종주에 기꺼이 참여해 한 시간 가까이 오순도순 점심을 함께 든 것이 첫 번 째 남을 기억입니다. 작년 10월 설악산의 대청봉을 힘들게 오른 후 다른 동료들은 공룡능선을 뛰는데 힘이 달려 천불동으로 하산해야 했던 한 친구가 그동안 스스로 설정했던 한계를 과감히 돌파하고 장장 9시간을 넘게 걸어 광덕고개-국망봉 구간종주에 성공해 기뻐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 본 것이 두 번째로 생각날 기억입니다. 흙살을 뚫고 나와 얼음꽃을 피운 서릿발을 난생 처음 만나본 것이 마지막 기억거리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모두가 인간과 자연의 강인한 생명행위이기에 더욱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기억을 추려서 모으면 추억이 되고 추억이 쌓이면 인생이 됩니다. 아름다운 인생은 아름다운 기억들의 모음집이려니 9명의 동료들이 함께한 이번 종주산행이 아름다운 인생에 자그마하나마 좋은 기억의 디딤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올리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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