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한북정맥 종주기

제2차 한북정맥 종주기 2 (하오현-광덕산-광덕고개)

시인마뇽 2007. 10. 27. 14:21
                                      제2차 한북정맥 종주기 2


            *정맥구간:하오현-광덕산-광덕고개

            *산행일자:2007. 10. 21일

            *소재지  :경기포천/강원철원 및 화천

            *산높이  :광덕산1,046m, 회목봉1,027m, 상해봉1,010m

            *산행코스:하오현차도-하오현-회목봉-회목현-상해봉-광덕산-광덕고개

            *산행시간:9시30분-15시5분(구간종주5시간10분, 총5시간35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원 등 14명

                 (24기 김남진/김양미, 김주홍, 백인목, 서중원, 이기후, 이명재, 이규성,

                  이달헌, 장광종, 우명길, 29기유한준, 정병기 동문 및 그의 친구)

 


  한북정맥 능선 길을 걸으며 어느새 산허리로 성큼 내려앉은 가을을 만났습니다.

지난달부터 한주도 빼놓지 않고 지분대며 내린 비로 10월 들어서도 이렇다 할 단풍을 보지 못했지만, 위도와 고도가 모두 높은 강원도 화천의 한북정맥을 종주하는 이번 산행에서만은 새빨갛게 불타는 단풍들을 제대로 볼 수 있으리라 기대가 자못 컸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지난 주 주왕산을 함께 다녀온 고교동기들도 마찬가지로 기대가 커 하오고개에서 시작해 회목봉-상해봉-광덕산 등 1,000m를 넘는 고봉들을 두루 오르내린 후 광덕고개로 하산하는 두 번째 종주산행에 모두 다 합류했습니다. 그런데 한북정맥 마루금에서 만나본 가을은 정말 초라했습니다. 능선 길을 가득 덮은 낙엽들이 만산홍엽의 가을 산을 만나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처참히도 앗아간 데다 하늘마저 잔뜩 찌푸려 도시 가을의 진면목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능선에서 밀려난 가을이 그나마 산 중턱을 어느 정도 붉게 물들이기는 했어도 왠지 모르게 철지난 옷처럼 칙칙해 보여 더욱 그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계절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은 다른 변화와는 달리 때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속세의 변화는 그 속도는 물론 방향 또한 전혀 종잡을 수 없어 변화의 추이를 전망하거나 따라잡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30면이 넘는 신문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읽으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은 혹시라도 중요한 변화의 소식을 놓치는 것이 아닌 가 걱정되어서입니다. 정신없이 내달리는 속세의 이런 저런 변화에 시달린 사람들이 10월을 기다리는 것은 가을이면 어김없이 우리의 산들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제전이 화사하게 펼쳐져 많은 사람들이 여름 내내 혼란스러웠던 머리를 식히고 정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계절의 변화는 예측이 가능하기에 더할 수 없이 미덥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도 모르게 한북정맥의 산 중턱으로 슬쩍 내려앉아 어느새 저만치 물러선 가을을 보고 적지 아니 당혹했던 것입니다. 계절만이라도 별 이변 없이 때맞춰 변화해주기를 염원하는 것은 이 말고 달리 미더운 변화를 찾아볼 수 없어서인데 성급하게도 곱게 물들은 새빨간 단풍의 화사함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능선 길 단풍잎들을 모두 떨어내 길바닥에다 내동댕이치고 겨울 속으로 몸을 숨기는 이 가을의 뒷모습을 보고 이제껏 잘 지켜진 자연의 질서가 이렇게 깨지는 것이 아닌 가해 허망하기도 했습니다.


  아침9시30분 철원의 와수리로 넘어가는 하오터널 얼마 앞에서 택시를 보내고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동서울터미널 출발 꼭 2시간 만에 시작한 산 오름은 길도 넓고 경사도 완만한 임도 길을 오르는 것이어서 하오고개에 다다르기까지 27분 동안 워밍업을 잘했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제가 맡은 주 임무가 산행시작 반시간을 못 넘기고 주저앉는 한 친구의 지구력을 늘려가도록 도와주는 것이기에 이 친구와 함께 후미에 서서 천천히 임도 길을 걸었습니다.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등산은 중력을 거슬러 산에 오르는 운동이기에 지구력이 웬만큼 받쳐주지 않고서는 조금 올라가다 주저앉기 십상입니다. 그동안 이 친구와 함께 몇 번 산행을 하고나서 내린 결론은 이 친구에게는 무조건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걷는 훈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번 산행부터 지구력함양을 위한 오래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 친구에 강력히 요구한 것은 걷는 것은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좋은데 무조건 1시간을 걷고 나서 쉬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름 길에 땀이 나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느라 잠시 멈춰선 것을 제외하고는 정맥 길이 시작되는 하오현고개까지 반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오르는데 일차적으로 성공했습니다.


  9시55분 하오고개에서 왼쪽 폐타이어 길을 올라 한북정맥 길에 들어섰습니다.

하오고개에서 첫 봉우리에 다다르기까지 35분간은 계속되는 치받이 길이어서 여느 때처럼 마음대로 쉬어갈 수 없는 친구에게는 힘든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폐타이어 길을 올라 다다른 첫 번째 헬기장에서 뒤돌아온 복주산의 머리 위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소나기라도 금방 내릴 듯 한 기세였습니다. 헬기장 두 곳을 더 지나 두 번째 봉우리에 올라서서 숨을 고른 후 깊숙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12분 후에 다시 세 번째 봉우리로 올라섰습니다. 여름 내내 푸르렀던 나뭇잎들이 적황색으로 곱게 물들어 능선 길의 단풍이 볼만하겠다는 기대와는 달리 벌써 낙엽이 져 길바닥에 나뒹구는 것을 보고 적지 아니 실망했습니다. 능선 길에 늘어진 삐삐선, 길옆의 참호들, 그리고 헬기장들이 남한 땅 최북단 정맥 길을 더욱 스산하게 했습니다.


  11시5분 해발 1,027m의 회목봉에 올랐습니다.

세 번째 봉우리에서 나지막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4번째 헬기장을 지나 넓은 공터에서 짐을 풀고 쉬기 시작한 시각이 10시55분이었으니, 반시간도 못 견딘 친구가 이번에는 무려 1시간20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오르는 데 성공한 셈입니다. 가슴이 빠개지는 고통이 뒤따랐을 것입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휑하니 앞서가는 일행들이 밉살스러웠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산을 과연 올라야 하는 가 회의도 들었겠지만, 다른 일행들과 조금도 다름없이 1시간20분 동안 쉬지 않고 걸어 해발 1,027m의 회목봉을 거의 다 오른 것만으로도 이런 회의적인 것들을 모두 날려 보냈을 것입니다. 제가 이 친구에 주문한 것은 오직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걷는 것이었는데 산행속도 또한 그리 더디지 않아 혹시 무리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10분간의 쉼을 끝내고 한 봉우리에 오르자 GPS 수신을 돕고자 주변 나무들을 모두 베어낸 데다 초라하나마 표지목이 세워져 있어 이 봉우리가 3년 전 어딘지 모르고 지났던 회목봉 임을 확실하게 확인했습니다. 바로 앞 커다란 감투바위(?)를 왼쪽 아래로 우회해 다시 능선에 오르자 마당바위가 보였습니다. 로프가 늘어진 내림 길이 경사가 급했지만 물기가 없어 그 전처럼 미끄럽지는 않았습니다. 한참을 내려가 밋밋한 능선을 걸었습니다. 헬기장 바로 아래 회목현에 내려서자 왼쪽 아래로 광덕리가든 마을로 이어지는 넓은 길이 잘 나 있었습니다.


  12시34분 해발 1010m의 상해봉을 올랐습니다.

회목현에서 기상레이다관측소로 이어지는 찻길을 따라 오르다가 오른 쪽 산길로 올라섰습니다. 3년 전 5월 이 산을 뒤덮었던 얼레지 꽃은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낙엽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얼마 후 찻길과 다시 만나는 990봉의 헬기장에 올라선 후,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잠시 벗어나 정북 방향의 상해봉으로 향했습니다. 헬기장에서 15분 거리의 상해봉은 바다에 떠있는 섬과 같이 홀로 떨어져 있는 쌍암봉으로 일망무제의 최고의 전망지여서 마치 등대에 오른 느낌이었습니다. 광덕산을 기점으로 시계반대방향으로 명성산, 금학산, 복계산, 대성산, 복주산, 화악산, 국망봉 등이 차례로 보이는 상해봉을 올라 흐뭇해하는 동료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로프를 잡고 상해봉을 내려서서 990봉으로 되돌아가는 중 점심을 들면서 30분을 푹 쉬었으니 힘든 내색도 하지 못하고 꾸준히 따라 오른 한 친구도 충분히 피로를 풀었을 것입니다.


  13시55분 해발 1,043m의 광덕산을 오르자 구름이 완전히 걷히고 하늘은 파랗다 못해 냉랭했습니다. 990봉의 헬기장에서 광덕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시멘트로 포장된 찻길이어서 길이 꽤 넓었습니다. 어느 한 친구가 말 한대로 골프공처럼 생긴 돔형의 기상레이다관측소는 광덕산 바로 앞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광덕산 정상은 상해봉과는 달리 이렇다 할 정상석이 서있지 않아 초라해 보였는데, 표지목과 삼각점이 서있는 광덕산의 정상석은 다름 아닌 바로 옆 돔형의 관측소 건물이라고 바꿔 생각하자 정상이 더 없이 웅장해보였습니다. 광덕산 정상에서 직진하는 남서쪽 길은 명성지맥 길이고, 한북정맥은 왼쪽으로 꺾어 남동쪽으로 이어져 자칫 잘못해 직진하게 되면  엉뚱한 길로 내려서기 쉬운 곳입니다. 1차 종주 때는  비를 맞아 어두침침했던 잣나무 숲길이 이번에는 가을햇살이 퍼져서인지 어둠기가 완전히 가셨습니다.


  15시4분 광덕고개에 도착해 정맥 종주를 마쳤습니다.

광덕산 정상에서 광덕고개로 이어지는 정맥 길은 처음 얼마간 급하게 내려가다가 이내 밋밋한 능선 길로 변해 지구력함양에 열 올린 한 친구에게도 편안한 길이 되었을 것입니다. 능선 길에서 왼쪽 가든마을로 내려서는 분기점이 여러 곳 있어 마음 약한 사람들은 그 길로 내려갔으면 하는 유혹을 받았음 직한데 저희 동료 14명은 모두 다 마루금을 밟았습니다. 마지막 봉우리에 박혀있는 삼각점을 확인한 후 까까비탈의 절개면을 조심해서 내려가 광덕고개로 내려섰습니다. 산행시작 5시간 반 만에 목적지에 도착해 해가 중천에 떠있는 오후 3시경에 산행을 마치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시간상으로는 백운산이나 도마치봉까지 진출해도 해지기 전에 흥국사로 하산할 수 있겠지만 다음 산행을 흥국사에서 시작해 백운산이나 도마치봉으로 치고 올라가야하기에 별반 시간상으로 득이 되지 않아 광덕고개에서 하루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왼쪽 조금 아래 가든마을 버스 정류장에서 얼마 안 기다려 동서울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냥 헤어지기가 서운하다는 여론에 못 이겨 동서울터미널 부근의 추어탕 집과 호프집에서 뒤풀이를 가지며 두 번째 구간의 성공적인 종주를 자축했습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광덕산 일원의 깨끗하고 화사한 단풍에 한껏 빠져보겠다고 잔뜩 기대를 했는데 한발 늦어 가을의 뒤꽁무니만 보고 와 많이들 서운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서운함을 뒤로 물릴 수 있는 한 가지 쾌거는 30분이 한계였던 한 친구가 1시간이상 걷고 잠시 쉬곤 하면서 이번 산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것입니다. 속도는 차츰 올리면 되는 것이고 일단 1시간을 계속 걸은 데서 오는 자신감이 다음산행을 기다리게 할 것입니다. 이리되면 이 친구에도 산은 차츰 기다림과 그리움의 대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