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구간: 솔고개-노고산-숫돌고개-39번국도
*산행일자: 2004. 8. 14일 8시53분-19시 20분(10시간 27분)
*소재지 :경기고양
*산높이 :노고산496미터
*산행코스: 솔고개-노고산-배반고개-천일약수터-39번국도
*산행시간:8시53분-19시20분(10시간27분)
*동행 :나홀로
어제는 정말 힘든 산행을 했습니다.
힘들게 산을 올랐다 함은 고산준령이나 리지와 같은 험난한 바위 길을 오르내린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해발 487미터의 노고산이 제일 높은 봉이었고 바위 길이전혀 없었는데도 힘들었던 것은 길이 끊어져 새롭게 길을 내며 마루 금을 이어갔기 때문입니다.
저녁 7시 20분에 10시간을 조금 넘는 종주산행을 마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길의 고마움이었습니다. 끊긴 길을 이어가느라 철조망에 바지가 찢어졌고, 풀숲의 가시들에 팔다리가 긁혀 쓰리고 아렸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혹시나 풀숲에 숨어 있는 뱀이 공격해오지 않을 까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어제 비로소 길과 길이 아닌 곳의 차이가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의 차이를 훨씬 뛰어넘는 것임을 실감했습니다. 철조망 안으로 잘 닦여진 군부대 길이 시원스레 보였는데, 밖에서는 철조망에 바짝 붙어 풀숲을 뚫고 길을 헤쳐나가는 제 모습이 대비되었습니다.
아침 8시 43분 솔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오랜만에 비가 내려 35도를 넘나드는 한반도를 식혀준다기에 땡볕더위로 하순경으로 미루었던 한북정맥 종주를 앞당기고자, 어제 아침 구파발 역에서 송추행 버스를 탔습니다. 20년 전 훈련 차 와봤던 노고산의 예비군 훈련장을 지나 솔고개에서 하차, 잠시 산행기를 읽으며 산행계획을 점검했습니다.
8시 53분 차도를 건너 군부대 오른편의 시멘트 길을 따라 올라 산행을 시작, 7-8분 후 노고산으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찾아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경사진 군부대 울타리를 따라 올라가 나무를 비어낸 공터에 다다랐습니다. 이 공터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길을 찾느라 20분을 까먹은 후, 공터가 끝나는 곳에서 울타리 안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갔습니다.
10시 9분 폐타이어의 계단 길로 내려서 청룡사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고개마루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까먹은 20분을 벌고자 쉼 없이 바로 산등성으로 올라섰습니다. 능선 길을 30분 가까이 걸어 만난 군사도로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라면 햇빛을 가릴 수 없어 땀께나 흘리겠구나 싶을 정도로 꽤나 넓었습니다. 솔 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할 때 내리기 시작한 빗발은 고개 마루에서 그쳐 우의를 벗었는데 다시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10시53분 도로변의 나무 밑에서 비를 가리며 10분 가까이 첫 쉼을 가졌습니다.
군부대가 포진하고 있는 해발 487미터의 노고산 정상에 조금 못 미쳐서 좌우로 우회하는 등산로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선답자 분의 산행기대로 저는 왼쪽 길을 택해 트레파스를 했는데 무성한 풀들이 참호를 잇는 교통로를 뒤덮어 이들을 헤쳐나가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16분간의 트레파스를 끝내고 11시 35분 다시 능선 길로 올라서 바로 헬기장을 지났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비교적 편안한 길을 오르내리는 중 산토끼로 보이는 새까만 짐승을 만났습니다. 정상을 끼고 트레파스를 하는 것도, 트레파스가 끝나는 곳에 헬기장이 있는 것도, 그리고 산행 중 짐승을 만난 것도 지난 6월에 오른 수원산과 흡사했습니다. 그 때는 멧돼지 만한 짐승이 저를 보고도 꿈쩍도 안 했는데 어제 만난 짐승은 저보다 덩치가 작아서인지 저를 보자마자 도망가 어디론가 숨어 버렸습니다.
11시 47분 시멘트 블록이 깔려있는 480미터 대의 봉우리에 올라 이 봉우리를 지키고 있는 자작나무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자작나무는 사스레나무와 더불어 백두산의 대표적인 수종입니다. 백화목이라 불리는 자작나무는 우리 민족의 시원 점인 바이칼호 주변에 자생하는 한 대림의 수종이나, 옛날 왜가 김 알지 왕이 계림에서 백화목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하여 신라를 백 국이라 칭했을 정도로 한반도 전역에 널리 퍼져 있는 아주 친근한 나무입니다.
12시18분 시야가 탁 트인 작은 바위에서 10 여분을 쉬었습니다..
떡과 자두로 요기를 한 후 구름에 허리를 가린 백운대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발이 부르트는 것을 막기 위해 구두 속으로 빗물이 스며들어 젖은 스타킹을 벗어 짜냈습니다.
12시 48분 왼쪽 길로 돌아가라는 경고문을 무시하고 선답자 분의 산행기대로 오른 쪽 길을 택해 철조망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인근에 사격장이 있어 출입을 금했는데 이 길을 벗어나면 종주에 실패할 것 같기에 만 부득이 경고를 무시하고 산행을 했는데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다시 산등성을 타고 삼각점에 올라 잠시 숨을 고른 후 직진하여 내려갔습니다. 산행기를 통해 길을 잘못 들었음을 이내 알아내고 다시 삼각점으로 되돌아와 왼쪽 길을 택해 하산하여 13시22분 해발 220미터대의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13시 35분 다시 산등성이로 올라 군부대 초소를 지났습니다. 어느 분의 산행기와는 달리 초병이 제게는 되돌아가라는 말은커녕 쳐다보지도 않아, 승강이를 벌이지 않고 계속해 진행할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여름이 얼마 안 남아서인지 줄기차게 울어대는 매미들의 울음소리에서 그들도 이 여름과 함께 조만간 생을 끝내겠구나 하는 비감을 읽었습니다. 14시 5분 태양이 구름을 몰아내고 얼굴을 내밀었기에 배너미 고개로 내려서기 직전 그늘을 찾아 짐을 풀고 목을 추긴 후 다시 한번 스타킹을 벗어 짜냈습니다.
14시 21분 배너미고개로 내려서 349번 도로를 횡단, 약사사 방향으로 난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숫돌고개로 이어지는 이 산길은 해발 100-200미터 대에 나있어 오르내림이 편안하고, 주위가 고즈넉해 좋았습니다. 언제고 기회가 다시 온다면 마음 맞는 이와 함께 걸어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환상적인 길을 1시간 가까이 걸으며 그 동안 쌓인 피로를 떨구었습니다.
15시 19분 오금동의 배반고개에 도착, 노인 분의 도움으로 숫돌고개로 들어서는 들머리를 바로 찾아 종주 길을 이어 가 15분 후에 숫돌고개에 도착했습니다. 15시 34분 숫돌고개에서 1번 국도인 통일로를 건너 군부대 옆에서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군부대 정문을 지나 삼송리로 내려가 가게 집에서 맥주1병을 사 마시며 20여분을 편히 쉬었습니다.
16시 20분 가게 집을 출발, 마을을 완전히 통과하여 만난 밭길로 올라가 군부대의 철조망 울타리에 바짝 붙어 섰습니다. 천일 약수터를 향해 철조망을 따라 서북쪽으로 진행했는데 그 어려움이 노고산을 트레파스 할 때의 어려움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20여분간 무성한 풀숲을 헤쳐 나가느라 악전고투를 했고, 철조망에 걸린 바지가 찢겨 산행을 더욱 더디게 했습니다. 철조망 안으로 난 길이 하도 부럽게 보여 초병에 철조망 울타리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으니 길이 없어 갈 수 없다며 돌아가라고 답을 해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17시 6분 충북 옥천의 장룡산악회의 표지기를 발견했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찾아 왔다는 생각이 들자 꼭 필요한 곳에 표식 기를 걸어 놓은 그 산악회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17시 13분 천일 약수터에서 짐을 내려놓고 약수를 퍼 마셨습니다. 남은 떡 몇 조각을 마저 들고 자두도 꺼내먹어 원기를 회복했습니다. 그 동안 한북정맥을 종주하면서 지구력이 많이 보강되었고, 몸무게도 4-5키로 줄어들어 솔마루를 출발한 지 8시간이 넘었는데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17시22분 천일약수터를 출발하여 그 10여분 후부터는 길을 찾아 헤매느라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 18시3분 농협대의 과산정 정자에 다다르기까지 몇 번이나 똑 같은 산길을 오르내렸고 그 사이 음습한 숲 속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해 마음이 급해 졌습니다. 왼쪽의 골프장 안으로 들어가 아예 하산해 버릴 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열심히 골프를 즐기는 골퍼들 보기가 민망할 것 같아 포기하고 습지를 지나 산등성으로 올라섰습니다. 그 곳에서 골프장과 농협대학에서 쳐 놓은 이중의 철조망을 어렵게 넘고 넘어 소나무 길로 들어서니 오른 쪽으로 야구장이 보였습니다. 이제 살았다 싶어 내려 선 곳이 캠퍼스 안의 과산정이었고, 그곳에서 잠시 땀을 식혔습니다. 농협대 정문을 지나 1.5키로 떨어진 황토 포크집을 향해 포장도로를 따라 부지런히 걸어 내려갔습니다. 1번 버스 정류장에서 산행기를 잘못 읽어 서삼릉방향으로 10여분간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느라 18시 57분에야 황토 포크집을 지났습니다.
19시 16분 공사중인 도시외곽순환도로 밑을 지나 의정부로 이어지는 왕복 4차선의 39번 국도에 다다랐습니다. 차도를 건너 농노 길을 따라 10분 여 걸으면 어제 산행의 종착점인 제51탄약부대 앞에 도착하게 되는데 사방이 어두워져 다음 기회로 미루었습니다.
19시 20분 S-OIL 주유소에 도착하여 택시를 잡아타고 원당 역으로 이동, 10시간 남짓한 종주산행을 무사히 마쳤음을 자축하고자 맥주 1캔을 사 들었습니다. 저녁 9시를 조금 넘은 시각에 과천 집으로 돌아와 어제 하루 산행을 요약해 두었습니다.
이제 한북정맥의 종착지인 파주의 장명산까지는 아침 일찍 서두르면 하루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다음 주 토요일 마무리 지을 계획입니다. 마지막 구간도 어제와 다름없이 길 찾기가 쉽지 않을 듯 싶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종주산행이 매력적입니다. 길을 찾는 과정이 바로 삶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물리적인 길도, 정신적인 길도 모두 우리의 삶을 제대로 이끌어 주는 고마운 것이기에 설사 길을 찾느라 어려움을 겪더라도 저는 이를 감수할 생각입니다.
배너미고개에서 숫돌고개를 잇는 고즈넉한 길을 걷는 동안, 정 호승 님의 시 “길”이 생각났습니다. 척박한 이 땅에 시라는 나무를 뿌리내리고자 땀 흘린 정 호승 님은 이렇게 “길”을 읊었습니다. 그 님의 길을 안내 드리며 제 15차 한북정맥 종주기를 맺습니다.
길
님그리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며 님 그린다
꽃은 잎을 보지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못하고
님그리며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며 님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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