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맥구간: 39번 국도-고봉산-장명산-곡릉천
*산행일자:2004. 8. 22일
*소재지 : 경기고양/파주
*산높이 :고봉산208미터/장명산102미터
*산행코스: 39번 국도-제51탄약대대정문-고양왕릉-현달산-제 5895부정문
-잣골고개-고봉산-중산고개-송산고개-목동3거리
-교하중학교 후문-장명산-곡릉천
*산행시간:7시38분-17시10분(9시간32분)
*동행 :나홀로
어제 오후 4시 42분 파주의 장명산을 올라 한북정맥 종주를 전부 마쳤습니다.
지난 5월5일 강원 화천의 대성산 남단에 자리잡은 수피령에서 첫 구간을 시작한 한북정맥 종주는 총16개 구간으로 나누어 어제 원당에서 시작하여 장명산에 올랐다 곡릉천으로 내려가 마지막 구간을 끝냄으로써 마무리했습니다.
1969년 8월 대학 2학년 때 멋모르고 한라산을 올라 산행을 시작한 이래 실로 35년만에 처음으로 해본 종주다운 종주이기에 산행기를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제 스스로가 대견스럽고 가슴이 벅차 오름을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혹시나 전문산악인들에게는 대간도 아닌 정맥의 종주가 그리 대수로운 일인가 할 수 있겠지만 저와 같은 아마튜어에게는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내년에도 이어서 백두대간을 종주하여 산줄기를 따라 산행하는 "선의 산행"을 마무리해보겠다는 꿈의 나래를 펴보는 것도 이 작은 한북정맥의 종주에서 비롯된 자신감에서입니다. 어제는 좀 무리를 해서라도 종주를 마무리짓고자 새벽부터 서둘러 아침을 챙겨먹고 6시 정각에 과천 집을 출발했습니다. 7시 30분 한 주 전 산행을 마쳤던 원당-의정부간 39번 국도의 S-OIL주유소에 조금 못 미친 곳에 도착, 산행기와 지도를 꺼내 보고 하루 산행계획을 점검했습니다.
7시 38분 정맥 길에 들어섰습니다.
농로 길을 따라 얼마고 걷다가 철로를 건너 현대오일 주유소로 올라서 만난 원당-통일로 간 2차선 도로를 따라 걸어 제51탄약대대 정문 앞을 지났습니다. 통일로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가 삼거리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고려 공릉왕 묘지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 시애의 난을 진압한 왕손 이종을 기리는 충의제를 지나 왼쪽으로 논 뚝 길을 건너 8시6분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그 10분 후에 군부대 초소를 만났는데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서 산행을 할 수 없으니 식사동쪽으로 돌아가라는 초병의 말을 듣고나서 다시 오던 길로 돌아와 공양왕릉에서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왕릉을 담아보고자 카메라를 꺼냈으나 바테리가 다해 사진으로 남길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8시40분 공양왕릉을 출발, 동네 시멘트길을 지나 바로 산길로 들어서 얼마고 걷다가 다시 군부대의 이중 철조망 울타리에 바짝 붙어 울타리 우측으로 돌았습니다. 풀숲을 헤쳐 나가느라 고생을 했지만 이 것도 이제 끝이구나 생각하니 힘이 들기는 했지만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9시25분 군부대후문을 지나 2차선의 포장도로에 내려섰습니다.
도로를 횡단하여 현달산으로 이어지는 호젓한 산길을 걸어 광목장을 지났습니다. 10시 6분 깃발 없는 깃봉만이 달랑 서 있는 해발 139미터의 현달산에 올라서 삼각점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비탈길을 따라 맞은 편으로 하산했습니다.
10시 25분 5895부대 정문앞에서 포장도로를 건너 동국대병원방향으로 차도를 따라 걸어갔는데 차도를 벗어나기까지 30분간은 쉴새 없이 지나가는 레미콘차량들의 소음과 먼지로 걷기가 고통스러웠습니다. 차도가 끝나는 곳에서 10여분을 걸어 군부대의 철조망 울타리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준비해 간 떡 3조각을 들어 요기를 한 후 11시 12분 다시 울타리에 붙어 오른 쪽으로 진행을 했는데 울타리 주변에 풀들을 깎아내 걷기에 편했습니다. 10여 분 후 군부대북문으로 내려서 다시 울타리에 붙지 않고 동네를 가로질러 잣골고개에 이르렀습니다.
11시34분 잣골고개에서 도로를 건너 고봉산으로 들어섰습니다.
일산신도시가 인공호수와 고봉산이 없었다면 그 주민들은 주말에 어디를 찾을까 생각하니 비록 고봉산이 208미터로 낮은 산이지만 과천의 관악산이나 청계산만큼 소중한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1시 52분 장사바위에서 일산시내를 조감하고 짐을 풀어 목을 추긴 후 다시 걸어 고봉정을 거쳐 중산고개로 하산했습니다.
12시38분 중산고개에 도착, 한 음식점을 들러 점심으로 냉 콩국수를 들면서 그동안의 피로를 풀었습니다. 13시 정각 페트병에 냉수를 갈아 채우고 98번 국도를 건너 금정굴이 있는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9.28수복 후 북괴에 협조를 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양민들을 죽이고 금정굴에 매장한 현대사의 비극을 언제까지나 숨길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면, 역사의 교훈을
외면한 가해자들은 그들의 무지를 부끄러워 해야합니다.
13시 33분 108봉을 지나 호곡중학교 후문을 지났습니다.
산 숲이 아닌 아파트 숲을 지나 마루 금을 찾아 나섰습니다. 단지내의 슈퍼에서 캔 맥주를 사들어 마신 후 대림아파트정문을 지나 경의선 철로 위에 놓인 다리를 지나 서울-금촌간 6차선의 310번 도로상의 송산고개에 도착했습니다.
13시 48분 송산고개의 "일산가구단지"아취를 지나 경기인력원으로 향했습니다.
양옆의 가구점들 사이로 난 찻길을 지나자 시멘트길이 이어졌고 그 얼마 후 비포장도로를 걸었습니다. 개들을 풀어놓아 지나가기 신경이 쓰였지만 억척스럽게 짖어대거나 쫓아오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삼화골프연습장과 덕인농장을 거쳐 경기인력개발원 뒷길을 걸어 4차선 도로를 만났습니다. 14시 38분 도로를 건너 현대모비스물류센타 맞은편에서 10분 여 지도와 산행기를 꺼내 읽고 차도를 따라 목동3 거리로 갈 것인가 동패초등학교를 지나는 산길로 들어 설 것인가를 고심하다 14시 45분 동패초등학교로 이어지는길을 택해 걸었습니다.
그 5분 후 동패초등학교를 지났는데 그 학교의 "참되고 슬기롭게"라는 캐취프레이즈가 제 눈을 끌었습니다. 저도 사범대를 졸업한 후 5년 가까이 교직에 몸담았었습니다만 아이들을 참되고 슬기롭게 키우는 일이 학력을 키우는 일보다 우선되게 하기 위해서는 학부형들의 이해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산길을 걷다가 도로를 만나서 좌회전하여 진행하면 목동3거리에 닿으리라 생각했는데 산행길이 그리 수월하지 못했습니다. 몇 번을 알바를 하고 산을 빠져 나와 논길을 건너 차도를 만났는데 우측으로 보이는 월드메르디앙 아파트 단지 쪽으로 전진하다 어느 한 분의 도움으로 샛길로 찔러가 다리 품을 줄였습니다.
15시 28분 생명의 교회를 지나 우회전하여 시멘트 길로 들어섰습니다.
성재암-대방사 갈림길에서 성재암 길을 택해 계속 걷다가 절개지로 내려섰습니다. 15시 46분 아직 개통이 안된 6차선 이상의 포장도로를 건너 교하중학교로 이어지는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이 길은 분명 제 고향 파주의 정맥 길임에 틀림없기에 느낌이 새로웠습니다. 고향에서 정식의 산행으로 산길을 걷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나무를 해 대느라 산에 올랐고, 성묘 차 지금도 산에 오르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산행 길과는 같지 않음을 이번 산행에서 느꼈습니다.
16시 8분 교하중학교 뒤 울타리를 지나 "다율리 및 당하리 지석묘" 의 입간판이 서있는 도로에 들어섰습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2-3분 걸어 핑고개에 도착, 유진케미칼 뒷길로 들어섰습니다. 바로 우측으로 난 길로 올라서 왼쪽으로 진행, 산불감시소를 지나 맞은 편으로 내려서 교하환경건축 폐기물장을 횡단하여 변전소 앞에서 우뚝 서있는 장명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산 높이는 102미터에 불과하지만 오름 길은 꽤나 급해 풀숲을 헤치며 오르느라 마지막 진땀을 흘렸습니다.
16시 42분 깃대만 덩그러니 서있는 장명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바로 만세를 삼창한 후 무릎을 꿇고 한북정맥종주를 무사히 끝냈음을 감사드리고자 기도를 올렸습니다. 도상거리 178키로에 실제 산행거리는 260키로 남짓한 먼길을 걷고 또 걸어 한북정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장명산에 올라 섰습니다., 16시 53분 하산 길에 벌 한 마리가 제 귓밥을 쏘아 한북정맥 종주를 축하해 주었습니다. 17시 10분 곡릉천으로 내려가 손을 닦는 의례로 한북정맥종주를 전부 마쳤습니다. 그리고 교하지구대까지 걸어나와 생맥주 한잔으로 자축한 후 버스와 전철을 이용하여 저녁 8시 20분 경 과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분단의 현장인 중부전선에 가까이 위치한 수피령에서 출발하여 또 다른 분단의 현장인 서부전선 끝자락인 오두산을 바라보며 마무리한 이번의 종주 길에는 숱하게 많은 군부대의 철조망 울타리와 참호를 지났기에 마루금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또 100-300미터대의 정맥 길 상당부분에 도로 또는 공장이 들어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국토의 분단과 보존에 대해 생각의 깊이를 깊게 한 산행이었습니다.
이번 종주산행에 도움을 준 모든 분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김용진님의 산행기와 충북 옥천 장룡산악회의 표식기가 크게 도움이 되었기에 다시 한번 감사 말씀드립니다.
이제 얼마간 종주의 꿈을 접고 일상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에너지를 충분히 충전한 후 여건이 갖추어 진다면 내년 하반기쯤에 백두대간을 종주 해 볼까합니다. 4개월간의 한북정맥 종주로 제 스스로가 여러모로 성숙해졌으리라 믿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종주기를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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